날 짜 : 97/2/19
제목: 구승희의 '에코필로소피'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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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찍이 서구식 산업주의가 머잖아 인류 모두에게 최악의 저주가 될 것이
라고 경고했던 이는 간디였다.그의 예언성 경고는 이제 예언이 아니고 현실
이다.인간이 다른 생명체 및 존재들과의 공동체적 연대를 통해서만이 제대
로 생존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지 못한 채 비영성적이고 폭력적인 기술문명
을 성장시킨 결과로서의 현실인 셈이다.
인류는 간디의 경고에 좀 일찍부터 귀기울였어야 했다.또 있다.전통적으로
살아오던 인디안 부족의 땅을 팔라는 미국 대통령의 제안에 응답한 두아미
쉬-수쿠아미쉬족의 추장 시애틀의 저 유명한 “우리는 결국 모두 형제들이
다”는 연설에 귀기울였어야 했다.그는 영성적으로 호소했었다.
“그대들은 어떻게 저 하늘이나 땅의 온기를 사고팔수있는가? 공기의 신선
함과 반짝이는 물을 우리가 소유하고 있지도 않은데 어떻게 그것들을 팔 수
있다는 말인가? 우리에게는 이 땅의 모든 부분이 거룩하다. 빛나는 솔잎,
모래 기슭,어두운 숲속,맑게 노래하는 온갖 벌레들,이 모두가 우리의 기억
과 경험 속에서는 신성한 것들이다.
우리는 땅의 한 부분이고 땅은 우리의 한 부분이다.향기로운 꽃은 우리의
자매이다.사슴,말,큰 독수리,이들은 우리의 형제들이다.바위산 꼭대기,풀의
수액,조랑말과 인간 체온 모두가 한가족이다.(중략)만물은 서로 맺어져 있
다. 만물은 마치 한 가족을 맺어주는 피와도 같이 맺어져 있음을 우리는 알
고 있다.인간은 생명의 그물을 짜는 것이 아니라 다만 그 그물의 한가닥에
불과하다.그가 그 그물에 무슨 짓을 하든 그것은 곧 그 자신에게 하는 짓이
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이른바 약육강식의 논리에 기초한 경쟁력의 문
제가 전지구적으로 운위되고 있다.이때 문제는 끊임없이 생태적인 위기를
조장하고 있으면서도 그 위기에 대해 책임지려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이런
현실에 대한 반동으로 요즘 들어 폭넓게 환기되고 있는 것이 바로 생태학적
관심이다.
근대 이후의 인간중심주의,그리고 경제주의,기술주의 혹은 계량주의에 입
각했던 기존의 지배적인 사유 체제에 대한 반명제적 성격을 생태학적 사고
는 담고 있다.
방금 반명제라고 쓴 것은 현단계의 사정을 드러내기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왜냐하면 생태학적 사유는 최근의 사회경제적 현상의 모순적 성격에서 도출
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마도 태초 이래 줄곧 아주 근본적인 사유방식의 하나로 지속되어 왔던
것이 바로 생태학적 사유일 터이다.
물론 역사적으로 생태적 관심이나 사유는 늘 신중심주위나 인간중심주의,
혹은 경제중심주의 등 지배적 담론의 뒤안길에서 가늘고 긴 그림자만을 드
리우고 있는 형국이었다.
이제 그 뒤안길의 사유가 본격적으로 제 모습을 드러내려 하고 있다.자체
내의 오랜 역사적 성격 때문에 가장 보수적이면서도,우리 시대의 전지구적
위기 상황에 대한 포괄적인 대안명제를 모색하고 종합하려는 야심만만한 영
역이라는 점에서 가장 진보적인 사유 영역이 바로 생태학이다.
그런 점에서 구승회씨의 저서 ‘에코필로소피’는 우리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하다.‘생태·환경의 위기와 철학의 책임’이라는 부제가 암시하듯,이
책에서 저자는 생태적으로 위기에 처해 있는 것처럼 보이는 현재 상황에 대
해 철학적인 모색을 펼쳐보이고 있다.현대 일본 철학계를 대표하는 철학자
이자 미학자인 이마미치 도모노부가 지은 ‘에코에티가:기술사회의 새로운
윤리학’을 떠올리게 하는 책이기도 하다.
저자는 기존의 인간을 위한 규범윤리에 회의하고 반성하는 데서 출발한다.
그것이 인간 집단의 유대와 결속을 위해 긍정적으로 작용하기도 하였지만,
전지구적인 생태계의 위기라는 부정적 상황에 대한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
다고 생각한다.이런 반성적 지평에서 저자는 자연윤리학이라고 불릴 수 있
는 거시윤리를 강조한다.
“윤리적 고려는 인간의 행위,인간과 인간 상호간의 관계와 관심이라는 측
면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생물과 생물,생물과 무생물,나아가서 무생물들
간의 관심과 상호관계에까지 확대되어야 한다”는 것이다.요컨대 저자는 생
태계 위기 시대의 새로운 과제로 다원적 공동체 차원에서 더불어 책임지며
더불어 함께 사는 보편적 거시 윤리가 진지하게 그리고 실천적으로 모색되
어야함을 역설한다.
이 책은 크게 2부로 구성되어 있다.제1부 ‘생태계 위기와 사회철학적 대
안’은 주로 생태철학,생태윤리학의 범주와 과제에 대해 논증한 부분이고,
제2부 ‘현대의 생태·환경철학’은 칼 마르크스,니체,한스 요나스,머레이
북친 등의 철학을 생태 철학의 관점에서 재해석한 부분이다.
그 어떤 글에서든 저자는 기존 논의들을 구체적으로 참조하면서 그것들을
종합하려는 노력을 보인다.그래서 독자들은 저자의 생태 철학적 견해 이외
에 이 분야의 많은 여타 철학자들의 사유를 포괄적으로 일별할 수 있는 기
회를 갖게 된다.
철학분야의 저서뿐만 아니라 다른 저서에서도 전체의 결론을 제대로 지니
고 있는 책은 그리 많지 않다.이 책의 저자 역시 전체의 결론을 유보하고
있다.아마도 생태 철학이라는 주제 자체가 매우 포괄적이고 종합적인 분야
이기 때문에,그리고 저자 자신이 여전히 새로운 대안을 모색중이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어쨌거나 미시 윤리에서 거시 윤리로,이성 철학에서 생태 철학으로 패러다
임의 변화를 강조하고 이끌어내려는 진지한 저자의 모색적 준비로부터 우리
는 새로운 사유와 실천의 방향에 대한 많은 생각거리를 제공받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우찬제:건양대교수, 문학평론가) 평자는 서강대 경제학과와 동 대학원
국문학과를 졸업한 문학박사이며 논문으로 ‘현대 장편소설의 욕망시학적
연구’와 저서로 ‘욕망의 시학’‘상처와 상징’‘타자의 목소리’등이 있
다.
제목: 구승희의 '에코필로소피'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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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찍이 서구식 산업주의가 머잖아 인류 모두에게 최악의 저주가 될 것이
라고 경고했던 이는 간디였다.그의 예언성 경고는 이제 예언이 아니고 현실
이다.인간이 다른 생명체 및 존재들과의 공동체적 연대를 통해서만이 제대
로 생존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지 못한 채 비영성적이고 폭력적인 기술문명
을 성장시킨 결과로서의 현실인 셈이다.
인류는 간디의 경고에 좀 일찍부터 귀기울였어야 했다.또 있다.전통적으로
살아오던 인디안 부족의 땅을 팔라는 미국 대통령의 제안에 응답한 두아미
쉬-수쿠아미쉬족의 추장 시애틀의 저 유명한 “우리는 결국 모두 형제들이
다”는 연설에 귀기울였어야 했다.그는 영성적으로 호소했었다.
“그대들은 어떻게 저 하늘이나 땅의 온기를 사고팔수있는가? 공기의 신선
함과 반짝이는 물을 우리가 소유하고 있지도 않은데 어떻게 그것들을 팔 수
있다는 말인가? 우리에게는 이 땅의 모든 부분이 거룩하다. 빛나는 솔잎,
모래 기슭,어두운 숲속,맑게 노래하는 온갖 벌레들,이 모두가 우리의 기억
과 경험 속에서는 신성한 것들이다.
우리는 땅의 한 부분이고 땅은 우리의 한 부분이다.향기로운 꽃은 우리의
자매이다.사슴,말,큰 독수리,이들은 우리의 형제들이다.바위산 꼭대기,풀의
수액,조랑말과 인간 체온 모두가 한가족이다.(중략)만물은 서로 맺어져 있
다. 만물은 마치 한 가족을 맺어주는 피와도 같이 맺어져 있음을 우리는 알
고 있다.인간은 생명의 그물을 짜는 것이 아니라 다만 그 그물의 한가닥에
불과하다.그가 그 그물에 무슨 짓을 하든 그것은 곧 그 자신에게 하는 짓이
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이른바 약육강식의 논리에 기초한 경쟁력의 문
제가 전지구적으로 운위되고 있다.이때 문제는 끊임없이 생태적인 위기를
조장하고 있으면서도 그 위기에 대해 책임지려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이런
현실에 대한 반동으로 요즘 들어 폭넓게 환기되고 있는 것이 바로 생태학적
관심이다.
근대 이후의 인간중심주의,그리고 경제주의,기술주의 혹은 계량주의에 입
각했던 기존의 지배적인 사유 체제에 대한 반명제적 성격을 생태학적 사고
는 담고 있다.
방금 반명제라고 쓴 것은 현단계의 사정을 드러내기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왜냐하면 생태학적 사유는 최근의 사회경제적 현상의 모순적 성격에서 도출
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마도 태초 이래 줄곧 아주 근본적인 사유방식의 하나로 지속되어 왔던
것이 바로 생태학적 사유일 터이다.
물론 역사적으로 생태적 관심이나 사유는 늘 신중심주위나 인간중심주의,
혹은 경제중심주의 등 지배적 담론의 뒤안길에서 가늘고 긴 그림자만을 드
리우고 있는 형국이었다.
이제 그 뒤안길의 사유가 본격적으로 제 모습을 드러내려 하고 있다.자체
내의 오랜 역사적 성격 때문에 가장 보수적이면서도,우리 시대의 전지구적
위기 상황에 대한 포괄적인 대안명제를 모색하고 종합하려는 야심만만한 영
역이라는 점에서 가장 진보적인 사유 영역이 바로 생태학이다.
그런 점에서 구승회씨의 저서 ‘에코필로소피’는 우리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하다.‘생태·환경의 위기와 철학의 책임’이라는 부제가 암시하듯,이
책에서 저자는 생태적으로 위기에 처해 있는 것처럼 보이는 현재 상황에 대
해 철학적인 모색을 펼쳐보이고 있다.현대 일본 철학계를 대표하는 철학자
이자 미학자인 이마미치 도모노부가 지은 ‘에코에티가:기술사회의 새로운
윤리학’을 떠올리게 하는 책이기도 하다.
저자는 기존의 인간을 위한 규범윤리에 회의하고 반성하는 데서 출발한다.
그것이 인간 집단의 유대와 결속을 위해 긍정적으로 작용하기도 하였지만,
전지구적인 생태계의 위기라는 부정적 상황에 대한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
다고 생각한다.이런 반성적 지평에서 저자는 자연윤리학이라고 불릴 수 있
는 거시윤리를 강조한다.
“윤리적 고려는 인간의 행위,인간과 인간 상호간의 관계와 관심이라는 측
면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생물과 생물,생물과 무생물,나아가서 무생물들
간의 관심과 상호관계에까지 확대되어야 한다”는 것이다.요컨대 저자는 생
태계 위기 시대의 새로운 과제로 다원적 공동체 차원에서 더불어 책임지며
더불어 함께 사는 보편적 거시 윤리가 진지하게 그리고 실천적으로 모색되
어야함을 역설한다.
이 책은 크게 2부로 구성되어 있다.제1부 ‘생태계 위기와 사회철학적 대
안’은 주로 생태철학,생태윤리학의 범주와 과제에 대해 논증한 부분이고,
제2부 ‘현대의 생태·환경철학’은 칼 마르크스,니체,한스 요나스,머레이
북친 등의 철학을 생태 철학의 관점에서 재해석한 부분이다.
그 어떤 글에서든 저자는 기존 논의들을 구체적으로 참조하면서 그것들을
종합하려는 노력을 보인다.그래서 독자들은 저자의 생태 철학적 견해 이외
에 이 분야의 많은 여타 철학자들의 사유를 포괄적으로 일별할 수 있는 기
회를 갖게 된다.
철학분야의 저서뿐만 아니라 다른 저서에서도 전체의 결론을 제대로 지니
고 있는 책은 그리 많지 않다.이 책의 저자 역시 전체의 결론을 유보하고
있다.아마도 생태 철학이라는 주제 자체가 매우 포괄적이고 종합적인 분야
이기 때문에,그리고 저자 자신이 여전히 새로운 대안을 모색중이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어쨌거나 미시 윤리에서 거시 윤리로,이성 철학에서 생태 철학으로 패러다
임의 변화를 강조하고 이끌어내려는 진지한 저자의 모색적 준비로부터 우리
는 새로운 사유와 실천의 방향에 대한 많은 생각거리를 제공받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우찬제:건양대교수, 문학평론가) 평자는 서강대 경제학과와 동 대학원
국문학과를 졸업한 문학박사이며 논문으로 ‘현대 장편소설의 욕망시학적
연구’와 저서로 ‘욕망의 시학’‘상처와 상징’‘타자의 목소리’등이 있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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