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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리브에 남긴 발자욱

][ [북리뷰#17] 劉向선집 `說苑 (상,하)`

날 짜 : 97/2/19
제목: <서평>劉向선집 '說苑(상,하)'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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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우리말 완역본 ‘설원’이 최소한 스물한권의 책으로 구성될 ‘
漢典大系(한전대계)’의 제1책과 제2책으로 출간되었다. 한전, 즉 ‘중국고
전’의 세계는 바다처럼 넓고 깊으며 게다가 한문으로 되어있어 한차례 편
력하고싶은 뜻을 가진 사람들에게 먼저 막막함을 넘어선 두려움마저 느끼게
한다.
하지만 튼튼한 배와 나침반, 그리고 노련한 조타수가 있으면 파고 높은
망망대해도 순탄하게 건널 수 있듯, 고전의 바다에도 든든한 출판사와 높은
식견의 편집자, 그리고 수준 높은 번역자가 삼위일체를 이루어 도와주면
크게 어렵지 않게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
중국의 고전이라면 마땅히 시경·서경·역경을 비롯한 유가의 경전도 포함
되어야할 것이나 이들은 ‘經典(경전)’의 영역에 따로 두고, 이외의 모든
전적을 ‘한전’으로 분류한 것이 편찬자의 의도인 듯하다. ‘한시외전’‘
안자춘추’‘삼부론’‘세설신어’‘전국책’‘당재자전’‘신서’‘오월춘
추’‘서경잡기’‘고사기’‘수신기’‘열녀전’‘대대례기’‘국어’이상
14종 19책이 이번의 ‘설원’을 이어서 출간될 한전대계 1차분의 목록이다
.
그러니까 위로 ‘전국책’으로부터, 아래로 ‘당재자전’까지 1천4백여년
의 시공에 걸친 고전들이 정선되어 있다. 이외에도 중요한 ‘한전’들을 계
속 번역 출간할 예정이며 채택 범위 또한 중국에 국한되지 않고 우리나라와
일본의 고전에까지 미칠것이라고 한다. 그러고보니 1차분 목록가운데 ‘고
사기’가 일본의 그것으로 끼여있다.
이제야 이 ‘한전’이 중국고전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한자문화권의 중
추인 한·중·일 세 나라의 고전을 망라, 정선하였음을 알겠다. 또 지금까
지 한글로 번역된 적이 없었던 고전을 중심으로 하였다니 참으로 어렵고도
획기적인 시도가 아닐 수 없다. 그런데다 이 엄청난 사업의 편집자와 번역
자가 임동석교수 단 한사람이라니 놀라움에 벌어진 입이 한참동안 다물어지
지 않는다. 그러나 끝내는 비감한 마음이 든다.
사실 오늘날 우리 학계의 상황에서라면 아무리 임교수같은 견인불발의 의
지와 천부적 번역감각을 가진 사람이라도 그 능력을 발휘할 수 없게 되어
있다. 새삼스럽지만 번역을 학술업적으로 치는데 무척 인색할뿐아니라 은근
히 낮추어 보는 시선까지도 존재하는 학계의 일반적 분위기때문이다. 또 턱
없이 적은 번역료도 한 몫을 단단히 한다.
한때 어떤 분이 번역의 가치가 학술논문에 조금도 뒤지지 않는다고 목 아
프게 외쳐보았지만 학계의 반향은 미미했다.
이런 사정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있는 임교수가 한전의 번역에 뜻을 세워
묵묵히 작업에 몰두한 지 10여년만에 이미 10여종의 번역을 끝냈다고 한다.
이같은 말없는 실천이야말로 일견 무모한 자기 소모처럼 보이지만 알고보
면 철저한 자기 완성이자 우리 문화예술계에 마멸될 수 없는 공덕을 쌓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설원’은 한나라 劉向(유향:BC77∼6)이 편찬한 책이다. 진시황의 焚書(
분서)와 항우의 아방궁 방화로 대부분의 고서가 불타버리자 한나라 초기의
군주들은 통치에 도움이 되는 서적, 특히 유가의 서적을 찾기에 열심이었고
그 결과 천하에서 수집한 책이 산더미를 이루었다 한다. 그리하여 유향
이 활동하기 이전에 유가의 경전만은 그 본모습을 대부분 회복하였지만 나
머지 전적들은 여전히 정리되지 못한 채로 있었다. 유향은 20여년간 고서
정리에 전력하여 이번에 번역출간된 ‘설원’을 비롯해 ‘신서’‘전국책’
‘세설’‘열녀전’등 불후의 편저를 남겼다.
‘설원’은 작자 불명의 책 ‘說苑雜事(설원잡사)’를 근간으로 하고 여기
에 민간에서 얻은 자료와 유향 자신이 가지고 있던 자료및 스스로 꾸며 만
든 이야기를 덧붙여, 君道(군도) 臣術(신술) 建本(건본)등 스무 부문으로
분류 정리한 8백여가지의 다양한 역사이야기 모음이다.
그 내용은 대부분 고대의 요순시대로부터 한나라에 이르는 수천년간의 성
현 제왕 제후 대신 지사 호걸들의 언행이며, 그 바탕을 일관하는 사상은 仁
義禮知信(인의예지신)같은 유가의 기본 덕목이다. 설원의 특징가운데 하나
는 유가의 경전이나 선진 제자서에서 빠진 이야기들을 짧은 소설체 형식을
빌려 상당량 수록하였다는 점이다.
가벼운 듯 깊이 있는 삶의 지혜와 철학적 내용을 담은 이야기들의 모음이
므로 ‘설원’을 글자 그대로 ‘이야기동산’이라 하기엔 너무나 무게가 느
껴진다.
‘설원’은 그 내용의 다채로움과 흥미진진함 때문에 중국에선 대대로 널
리 읽혀졌고 일본에서도 독자적인 주석을 달아 출간한 바 있지만 우리나라
에서는 오히려 그 소설적 구성과 재미때문에 전래된 지 천년가까이 되도록
널리 읽혀지지 못했다. 그래서 다만 정약용 같은 몇몇 박람가만이 일부를
읽은 적 있는 희귀한 책이 되어 버렸다. 그러고 보니 ‘설원’을 통해 우리
의 편협성과 극단지향성이 다시 한번 확인되는 셈이다.
지나친 서구문물에의 추종때문에 이러다 한자문화권과 그 전통에서 이탈
하고 마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마저 없지않은 오늘날, 임동석 교수의 고독
한 작업의 첫 성과는 한자문화권과의 연계를 팽팽히 할뿐아니라 과거의 빈
틈도 메우는 양수겹장의 쾌거가 아닐 수 없다. 다만 설원에 실린
내용과 유사한 것으로 선진 제자서등에 보이는 부분들을 빠짐없이 인용하여
수록한 것이 돋보이긴 하지만 원문으로 처리되어 있을 뿐이어서 아쉬움이
남는다. 또 오늘날의 가치관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에 대해서도 역자
의 해설이 곁들여 졌더라면 금상첨화였을 것이다.
평자는 국립대만사범대에서 ‘정다산 논어고금주원의 총괄 고징’을 전공한
중국문학박사이며, 역서 ‘한자의 역사’등의 저서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