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 짜 : 97/2/12
제목: <서평>모독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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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아침 나는 네팔로 떠난다. 매년 이맘때가 되면 겨울방학을 맞아 의료
봉사를 떠난다. 교수와 학생들이 어우러져 떠나는 이 봉사는 올해로 아홉번
째 떠나는 네팔 의료봉사다. 네팔로 떠나면서 나는 며칠간 박완서 선생이
쓴 세계문학예술기행 티베트 네팔편 ‘모독’을 숙독했다.
내가 숙독했다는 뜻은 무슨 학술논문을 꼬치꼬치 따지면서 읽었다는 뜻이
아니라 건성건성 읽기도 하고 띄엄띄엄 읽기도 했다. 네팔부터 먼저 읽기도
해보고 티베트를 먼저 읽고 네팔로 건너와 보기도 했다. 중간중간 제목을
따라 솎아 읽기도 해보았다. 그래저래 몇날을 두고 읽다보니 숙독을 한 셈
이다. 그런 의미에서의 숙독이지 결코 분석하듯 그런 버릇으로는 읽지는 않
았다는 뜻이다.
이 책을 읽게 만든 것은 바로 재미가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읽어도 재미있
고 저렇게 읽어도 재미가 있다. 소설이 지니는 허구적 스릴 같은 게 있어
서가 아니라 어릴 때 할머니의 무릎을 베고 듣던 그런 재미가 있다.
할머니한테서 듣던 이야기의 줄거리는 너무도 단순하고 별 것도 아니며 그
결과가 뻔히 내다보이는 이야기인데도 가슴을 찔끔거리면서 또 듣고 또 듣
고싶어했었던 기억이 있는데 그에 비하면 이 ‘모독’이 주는 줄거리는 확
실히 별것이며 가슴으로 느끼게 만들며 스스로의 모습을 진하게 반추하게
만들어주는 진언같은 매력을 지니고 있다. 그래서 재미가 있다.
재미뿐만 아니라 글이 퍽 평이하고 친근해서 튀지않지만 마음 속속들이 쉽
게 들여다 보게 만드는 내면적 투명성도 있다. 흔히 재미로 일관한 글들이
자칫 쾌락의 말초에만 매달리게 만드는데 비해 이 책의 재미는 쾌락보다
는 스스로의 고통스런 내면을 직면시킴으로써 환희를 경험케 만드는 그런
심층적 내면을 자극해 주는 재미도 있다.
“………” 혹시 나의 재미론에 동의하지 않는 독자가 있다면 그것은 전적
으로 독자가 머리로 읽거나 지식을 읽으려는 습관때문이지 이 책이 미흡해
서 그런 것은 아닐 것이라고 확신한다. ‘모독’-제목만 보아선 소설같기도
하고 추리소설의 제목같은 느낌도 준다. 모독이라면 ‘언행으로 더럽혀 욕
되게 하는 것’이라 사전에 적은 것을 보면 더럽혀 지는 것은 알겠는데 그
주체가 누구일까가 더 궁금했다. 내가 누구를 모욕했다는 것인지 내가 그들
로부터 모욕을 당했다는 것인지….
네팔이나 티베트를 여행해본 사람이면 두가지 상반된 경험담을 이야기한다.
하나는 사람들이 가난에 찌들어 구질구질하다는 이야기이고, 다른 하나는
착하디 착해보이는 눈망울을 통해 내면의 투명성을 보고 탄복했다는 이야기
도 한다. 보고 느끼는 사람들의 이야기일진대 어느 것 하나 틀렸다고는 하
기 어렵다. 그러나 이런 양면성은 불취외상이라며 내면 보기를 즐기는 사람
에겐 투명성이 보일 것이고, 옷이 날개라고 믿고 있는 사람에겐 세계에서
구질구질한 몇나라 가운데 하나를 본듯 할 것이다. 지식따라 찾고자 하는
사람은 실망할는지도 모른다.
“느낌이 중요하지 지식은 나중에라도 얼마든지…” 저자가 ‘작가의 말’
에서 밝혔듯이 체험을 통한 개인의 느낌이 강조된 이 책은 자신의 내면속에
자신이 주인되어 들어앉은 사람에겐 한단계 더 체험의 깊이를 가늠하게도
해준다. 작가가 모독이라고 강하게 써내려간 사건은 티베트에 침입한 한족
이 주인이었던 티베트인에게 해버릇하는 무례함을 두고 하는 말이다. “뚱
뚱한 식당주인 나무랄 자격은 아무에게도 없었다. 우리의 관광행위 자체가
이 순결한 완전 순환의 땅엔 모독이었다” 작가는 한족이 티베트인을 모독
하는 장면을 보고 자신의 내면을 쓰다듬는다. 작가는 절규하듯 말한다.“당
신들의 정신이 정녕 살아있거든 우리를 용서하지 말아주시오” 랏채라는 곳
을 떠나면서 남긴 말이다.
나는 모독이란 적절한 묘사를 생각해 내진 못했어도 이 책을 읽으면서 네팔
에서 경험했던 꾸마리와의 만남을 통해 느꼈던 분노가 바로 모독으로 인해
일어났던 것은 아니었는지 하는 공감을 해본다. 인간이 그들의 불안을 은폐
하거나 왜곡시키기 위해 멀쩡한 한 소녀를 신이라고 투사하여 정신분열증의
긴장형같은 몰골을 만들어 놓은 것을 보고 느꼈던 분노가 바로 그런 모독
으로 연유되었던 것은 아닐까 유추해본다.
네팔에는 모두 25개나 되는 소수종족이 살고 있지만 크게 나누면 몽골리안
과 아리안계통으로 나누어진다. 주로 남쪽 국경지대에는 인도계통의 아리안
이 많고 북쪽에는 티베트계통의 몽골리안이 많이 산다. 그래도 서로 정답게
그들 특유의 전통적인 삶을 흐트리지 않고 존중해가면서 사는 지혜도 바로
히말라야라는 신의 집을 이고 살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박완서선생의 기
행집은 주로 몽골리안인 티베트와 북부 네팔에 거주하는 몽골리안계통의 네
팔인에 대한 모습을 집중적으로 그리고 있다. 올라가면서 읽어도 좋고 내
려오면서 읽는 재미는 별미다.
“당신들의 정신이 정녕 살아있거든 우리를 용서하지 말아주시오” 나는 네
팔이나 티베트사람은 아니지만 아마도 그들은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본
래 없던 것인데 용서를 하고 말고 할 것이 무엇인가”라고. 작가가 겸손해
하며 “나는 시인의 사진에다 설명을 붙이는 정도의 역할밖에 하지 못했다
”고 적고 있듯이 정말 사진도 아름답다. 시인의 눈에는 그렇게 비치는 것
일까. 사진은 사진대로 좋고 글은 글대로 좋은 책인데 그 두가지가 네팔의
소수종족이 자연과 어우러져 평화롭게 공존하듯 그 빛을 더해 주고 있으니
역시 작가들이 꾸미는 모습은 다르다. 마음이 담담해지기를 바라는 사람들
은 이 책을 꼭 읽어보기를 권해본다.
<이근후. 이화여대의대 교수.정신과학>
… 평자는 경북대의대출신의 신경정신과 전문의. ‘정신치료 어떻게 하는
것인가’등 다수의 전공서적외에 네팔기행 수필집 ‘신은 우리들의 입맞춤
에도 있다’등을 저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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