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서평>국역 완당전집 3책
날짜 : 97년 01월 08일
'국역 완당전집' 3책이 발간되었다. 반가운 마음에 앞서 「이제서야」하
는 아쉬움이 없을 수 없다. 전설로 신화로만 떠돌던 완당 김정희 선생의 정
신세계가 이제야 오롯이 일반 앞에 그 전모를 드러내게 된 것이다.
전집은 예전 문집 체계로 10권의 분량이니 적다고는 할수 없다. 권수에서
권3까지는 임정기 선생의 번역이고,권4에서 권10까지는 신호열 선생의 편역
이다. 본문 하단의 근 2천8백개에 달하는 세심한 각주는 이 문집을 우리말
로 옮기는 작업이 번역자에게 얼마나 혹독한 고통과 인내를 요구했던가를
말해준다. 번역자인 신호열 임정기 양 선생 11년의 각고가 이 한편에 관주(
貫注)되어 있다는 전언이 조금도 과장으로 들리지 않는다.
권수(卷首)에는 정인보를 비롯한 제가의 서문과 소전(小傳)을 실어 완당의
학문과 예술을 가늠케했고, 권1에는 고(攷)와 설(說), 변(辨)을 실었으니
오늘로 보면 논문에 해당하는 글들이 망라돼 있다. 해동 금석학의 존재를
내외에 알린 진흥왕순수비에 대한 변정도 여기서 만나볼 수 있다.권2에서
권5까지는 소(疏)와 서독(書牘), 즉 편지글을 수록하였다. 2백40여통에 달
하는 길고 짧은 편지글에는 추사의 인간 체취가 물씬하고, 그 융성한 학문
과 예술의 세계가 읽는 이를 압도해 온다.그 또한 삶의 고통에 번민하던 다
감한 인간이었다. 권6에서 권8까지는 서(序) 기(記) 제발(題跋) 전(」) 명(
銘) 송(頌) 잠(箴) 상량문 제문 묘표(墓表) 잡저(雜著)와 잡지(雜識)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서화론(書畵論)의 피력이 적지 않다.
권 9와 10에는 4백수에 가까운 시들이 실려 있다. 워낙 호한한 식견에다
방대한 전거(典據)가 얽혀 있고, 게다가 불가어(佛家語)가 적지 않아 그저
글자만 따라가서는 뜻을 알 수 없는 것들이 대부분인데도, 정작 번역은 3.4
조와 7.5조의 리듬까지 살려 읽기에 껄끄러움이 없는, 진정 다시 만나기 힘
든 대가의 솜씨이다. 상세하고 친절한 각주는 일반의 이해를 돕는다.
글씨는 완당에 이르러 다 망하고 말았다는 말이 있다. 그가 하도 우뚝하고
보니 그 그늘 아래 나머지는 다 묻히고 말았다는 뜻일 터이다. 그 자신이
세운 정신의 지표가 워낙 범인(凡人)이 범접하기엔 아득히 높았을 뿐 아니
라, 그 바탕에 아로새긴 학문의 온축이 깊고도 도저하여, 그 안하(眼下)에
성에 찰 사람이 없었다.
일찍이 그는 청고(淸高)하고 고아한 뜻을 지니지 아니하고, 또한 가슴 속
에 문자향(文字香) 서권기(書卷氣)를 갖추지 않아서는 일자 일획에도 그 정
신이 드러날 수 없다 하였고, 난초 한 촉을 그려도 가슴 속에 5천권의 서책
을 담고 팔뚝 아래 금강저(金剛杵)의 울력이 없다면 하찮은 기예일 수밖에
없다고도 했다. 또 종정고관(鍾鼎古款)에서부터 더듬어 내려온 탐원(探源)
이나, 「한례자원」(漢隷字源)에 수록된 3백9비(碑)의 온축이 없다면 예서(
隷書)는 아예 논할 수조차 없는 것이라고도 하였다. 이 얼마나 자부와 득의
에 찬 발언이던가. 나는 선생의 이런 글들에서 일종 지적 오만의 기미마저
맛보곤 한다.
동국 진체(眞體)를 일컬으며 면면히 내려오던 조선풍의 글씨는 완당에 이
르러 일소되었고, 회화 또한 진경산수풍의 사실 경향이 그에 이르러 남종화
계통의 탈속한 문인 취미로 회귀하고 말았다. 이러한 변화는 시대의 변동
이 안받침된 예술사의 역동적 움직임에 기인한 것이 아니라, 한 천재가 일
으킨 「바람」으로 말미암은 것이어서 우리의 놀라움은 더하다. 이것이 과
연 발전인가 퇴보인가. 변화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좋은가. 이런 문제를 앞
에 두고 미술사가들은 여전히 심각한 고민에 빠져 있는 듯하다.
일전 금석갑골학의 큰산이신 청사(晴斯)선생 댁을 찾았더니, 당신이 손수
목각하신 완당필(阮堂筆)의 「小窓多明(소창다명), 使我九坐(사아구좌)」
여덟자가 응접실에 걸려 있다. 이를 보니 금세 생각은 예산의 선생 고택에
거린 영련(楹聯)의 한 구절 「半日靜坐(반일정좌), 半日讀書(반일독서)」의
글귀로 달려간다. 볕드는 창 아래서 오래도록 앉아 반나절은 고요히 내관
장신(內觀藏神)하고, 또 반나절은 이런 저런 독서로 소일하던 선생의 맑은
하루가 그림처럼 그 위로 포개진다.
「국역 완당전집」의 출간을 계기로 답보상태의 학계와 예술계에 숨통을
틔우는 「완당학」의 새바람이 불어오길 기대한다. 다만 그것은 아득한 저
편의 범접할 수 없는 존재에 대한 외경으로서가 아니라, 실사구시(實事求是
)의 바탕에서여야 할 것이다. 그런 뜻에서 오늘 우리에게 완당의 의미는 여
전히 현재진행형이다.
鄭珉<한양대 교수·국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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