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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리브에 남긴 발자욱

[북리뷰#6] 세상의 별은 다, 라사에 뜬다

번호 : 7/20 입력일 : 97/01/15 15:24:42 자료량 :75줄

제목 : <서평>강석경의 '세상의 별은 다,라사에 뜬다'
날짜 : 97년 01월 15일

오랜 존재의 늪에서 헤맨 작가가 그 고뇌와 번민의 여정을 한편의 소설
로 담아내었다면 이는 경하와 주목의 대상이 된다. 밥짓듯, 옷 갈아입듯 양
산하는 여느 작가들의 남작 습성에 비추어 보아서도 이는 기려질만한 것이
다. 그렇지만 작품 평가와 그 발표의 속사정이란 기실 아무 상관도 없는 별
개의 사항일 수 있다는 점에서 냉엄한 시선으로 우리는 ‘8년만의 화려한
외출’에 대해 회의의 눈길을 줄 수 있다. 이 회의는 다분히 ‘여성주의’
와 관련된다.
‘여성적 시각의 적용’으로 이해될 수 있는 오늘 페미니즘의 문학 현상에
대하여 맹목적 비난만을 가한다면 이는 시대착오적 남근주의의 발로로 질타
될 수 있다. 그러나 이 위험을 무릅쓰고라도 만약 하나의 문학작품이 여성
적 세계만을 맴돈다면,‘여성적 한계’라는 비평적 지시는 여전히 유효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러니까 시야의 한계. 책 뒤표지 평설의 언어를 빌려, ‘첫 결혼에서 자
신의 삶을 실현시킬 수 없었던 두 자매가 각자 새로운 삶을 모색해가는 이
야기’의 이 소설은, 그리하여 ‘결혼이라는 제도의 폭력, 남성중심주의의
폭력, 집착의 폭력, 이기심의 폭력, 관습의 폭력’등등에 괴로워하며, ‘인
도라는 환상적 공간에서 평화와 사랑이 어떤 식으로 존재하는가’를 우리에
게 알려주는 소설로 요약된다. 여성적 시각이 주조로 되어 있다는 뜻이다.

여성적 시각이란 것 자체가 근본적이고 절대적인 문제가 될 리는 없다. 훌
륭한 여성소설이 얼마든지 가능하기 때문이다. 다만 중요한 것은 대화적 상
상력, 변증법적 장력 생성의 여지가 여기에 부재하여 있음이고, 그것이 미
학적 결손을 이룬다.
소설학의 근본원리가 대화적 상상력에 있음을 바흐친은 밝히지 않았던가.
자매간의 대립이 극적 추동의 주된 힘으로 작용할 수도 있었지만, 시각의
교체원리로만 투사된 이 자매간 병립의 양상은 그 약한 대립성으로 말미암
아 힘의 진공 상태, 긴장의 결여 상태를 작품에 빚고 있다. 왜 소설 미
학이 힘으로만 설명되어야 하는가? 사랑과 평화는 왜 힘일 수 없는가?이러
한 반론도 물론 가능하다. 사랑과 평화, 자유와 화해의 근본가치들을 추구
한다는 점에서 문학의 속성은 근본적으로 여성적이다. 다만 사랑의 제가치
가 힘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대립의 가교를 넘지 않으면 안되며, 이 진정한
대립성의 부재는 사랑을 취약한 것으로 만든다.
참으로 남성(적인 것)들은 이제 구태여 문학을 추구하지 않으리라. 오늘날
소설, 문학의 여성화는 이 근본 지각변동 속에 있으며, 여성 문학을 함정
에 빠트리는 요소도 이 지각변동 속에 있다. 아무래도 자각이 너무 깊어진
탓일까,여성이라는 자각. 그러나 ‘자각’‘자의식’이란 또한 본질적으로
대타적인 것이라 하지 않던가. ‘결혼’ ‘사랑’ ‘혼자됨’ ‘가족’의
범주를 맴도는 이 작품 주조의 여성적 시야를 벗어나면 여행문학이 제공할
수 있는 깊은 새김의 언어들을 여기서 만날 수 있다.
오래 여행한 사람이 제시할 수 있는 갖가지 음식 문화와 생활의 편린 묘사
가 여기에 파편처럼 무수하다. 속 깊은 독자라면 그러나 여기서도 이방의
신기한 풍물보다는 우리 삶의 나상을 비춰보는 일련의 자백적 담화에 관심
가지리라. 거칠고 난폭함으로 특징지어진다는 우리 문화의 폭력적 성향에
대한 자가비판, 이 작품의 훌륭한 미덕을 나는 여기에서 본다.
“…여기서도 한국인들 보면 거칠고 난폭해. 남에게 상처주는 말도 서슴없
이 하고 저하고 상관없다 싶으면 밀쳐버려요”(227쪽)이 모두가 남성중심
문화의 탓인가.
여행이란 자아 발견을 위해 떠나는 것이라고 누군가 말했지만, 이러한 효
용 가치의 척도 안에서 이 작품은 성과를 가진다. 세상의 모든 별이 뜬다는
‘라사’로의 여행으로 이 작품의 대미는 장식되고 있지만, 이는 종장의
분철일 뿐이다. 달라이 라마, 슬픈 티베트인들의 얘기가 읽는 독자의 가슴
을 적시지만, 압권이라 말하기에는 너무 애상적이다.
이탈로 칼비노의 흥미로운 소설‘반쪼가리 자작’이 종장으로 가는 여행의
담화 무늬를 이루고 있지만, 이 차용의 소설 이야기는 작품의 미덕으로 칭
송될 수는 없다. ‘여성적 한계’란 이 모두를 포함하는, 느슨한 서사와 성
긴 사유의 궤적으로서, 긴장없는 약한 구조의 성격 일반을 지시하는 것이다
.
반면 중후반부에 담고있는 생활문학적인 글쓰기들은 작품의 주제와 고급문
학으로서의 향기가 집중되어 있는 대목으로 평가받을 만하다. 실상 이 대목
을 말하기 위하여 작가는 작품을 끌어온 것이 아닐까.
한국 사람(남자)의 그 일반적인 패악모양 남에게 상처주는 말을 서슴없이
하며, 저하고 상관없기에 함부로 밀쳐버리는, 폭력적 비평의 실태를 나 또
한 여기서 재연하고 있는지 모른다. 한 나라의 문학, 그리고 문화의 수준은
독자의 수준과 나란히 가는 것이 불가피하다고 할 때, 독자 대중의 눈높이
와의 겨루기가 이러한 문학적 결과를 낳았다고 본다면, 그것을 우리는 ‘여
성적 한계’라고 지시하지 않을 수 없다. 나의 비평적 요구는 이땅의 조건
과 한계를 감안치 않은 무리와 만용을 저지르고 있는 것인가?…
한기<안성대교수·문학평론가:서울대 대학원에서 현대문학을 전공했다. 박
사논문으로 일제 말기세대의 미의식’이 있으며 평론집 ‘전환기의 사회와
문학’(문학과 지성사)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