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만드는 사회, 책 읽는 사회의 위대한 가능성
이제 정말 우리 사회는 ‘책의 문화’를 진지하게 성찰해
보아야 할 문명사적 대 전환기에 서 있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추상적이고 관념적이며 선언적인 요식행위로서의 책 문화가
아니라 개인과 사회와 국가와 민족의 본원적인 발전에 책의
문화가 필요충분조건이라는 명제를 제대로 인식하고 그것을
실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인류문명의 역사는 책 문화의 양적·질적 발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인간은 책을 통해 문화적·문명적 존재가 되었습니
다. 전근대사회로부터 근대사회로의 이행은 바로 책 문화의
발전 정도와 속도로 측정될 수 있습니다. 한 사회의 구성원
또는 한 민족 공동체의 구성원들이 책의 문화를 얼마만큼 소
유할 수 있느냐 없느냐로 그 사회, 그 민족공동체의 문화적·
문명적 수준은 물론이고 그 정치적· 경제적· 과학적 발전수
준을 아울러 살펴보게 합니다. 책의 문화는 총체적 차원에서
한 사회의 삶의 수준인 것입니다.
인간은 책을 만들었습니다. 인간이 만든 책은 다시 그 인
간과 그 인간이 더불어 존재하는 사회를 창조적으로 발전시킵
니다. 책을 만들고 다시 그것을 창조적으로 활용하는 변증법
적 연속과정은 사치스러운 관념의 유희가 아니라 현실적인 과
학적 법칙이자 논리적 귀결입니다.
우리 사회는 그러나 이 같은 책 문화의 역학적· 과학적 의
미와 구조를 지극히 피상적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책은 문
화적·지적 사치가 아닙니다. 책은 우리들 삶을 새로운 차원
으로 진동시키고 승화시키는 힘입니다. 따라서 책문화를 키우
는 일은 만시지탄이지만 지금이라도 한시 바삐 국가 ·사회·
민족의 발전정책의 책임으로 위치 지워져야 합니다.
책 없이 교육이 가능합니까. 책 없이 학문이 가능합니까. 책
없이 과학과 산업이 가능합니까. 책 없이 예술이 가능합니까.
책 없이 도덕윤리가 존재할 수 있습니까. ‘책’은 국가· 민
족·사회의 문화적· 정신적· 사상적 인프라스트럭처입니다.
책은 이 산업정보시대에 문화적 고속도로이자 제철산업과 같
은 것입니다.
이제 우리 사회가 한 차원 높은 단계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높은 수준의 책 문화가 토대가 되는 정책을 마련하고 그것을
실현해내야 합니다. 양으로서뿐만 아니라 질로서 경쟁하기 위
해서는 문화로 뒷받침되는 문화적 인프라스트럭처를 구축해야
합니다.
책을 만들고 책을 읽지 않는 사회가 질 높은 컴퓨터와 아름
답고 튼튼한 자동차를 만들 수 있을까요. 책을 읽지 않고 생
각하지 않으며 철학과 사상이 빈곤한 국민사회에서 탁월한 패
션산업이 가능할까요. 책 하나를 제대로 쓰고 만들어내지 못
하는 사회가 우주선을 제조할 수 있을까요. 생명학과 물리학
의 발전이 가능할까요.
지금 우리 정부는 책문화에 관한 한 아무런 일도 해내지 못
하고 있습니다. 국가의 인프라스트럭처를 기획하기는커녕 읍
면 사무소 수준의 인식을 갖고 일을 하고 있을 뿐입니다. 이
중요한 작업에 투입되는 예산이란 다른 산업 분야에 비해서
거의 전무한 상태입니다. 예산없이 인프라스트럭처를 어떻게
구축할 수 있습니까? 정당한 책문화에 대한 안목없는 정책으
로 21세기 정보산업사회를 어떻게 건설할 수 있습니까? 정말
지혜로운 정책이라면 약간의 예산을 들이지 않는 것은 아니지
만 그 규모나 질은 여전히 구시대적 차원에 머물고 있을 뿐입
니다. 물론 이같은 슬픈 현실은 우리 사회 전반의 책문화에
대한 한심한 인식수준을 반영하는 것입니다.
이제 정말 국가·민족의 차원에서 책문화의 정당한 자리매
김과 그것을 추진할 수 있는 결단이 요구됩니다. 이는 출판사
들과 서점들의 이해문제가 아니라 21세기로 치닫고 있는 우리
사회의 운명이 걸린 문제입니다.
작금 우리 사회는 컴퓨터로 야단입니다. 컴퓨터는 물론 대
단히 중요하지요. 그러나 컴퓨터는 ‘수단’입니다. 정보와 지
식을 활용하는 경악할 만한 문명적 수단입니다. 문제는 이 위
대한 매체를 제대로 이용하기 위해서는 역시 책의 문화가 토
대가 되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종이책’으로 상징되는 이
문명문화의 발전과 토대없이 컴퓨터는 그 의미가 없습니다.
지금 우리는 최근 재벌회사들이 가히 폭압적인 언어로 강조
하고 있는 컴퓨터 문화에 대해 정확히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
다. 컴퓨터의 경이적인 기여와 효과를 결코 인정하지 않는 것
은 아니지만 그것이 그 고유의 기능을 제대로 다해내기 위해
서는 책의 문화가 아울러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지요.
21세기는 분명 지식과 정보가 중시되는 시대일 것입니다.
그 21세기를 주도하는 국가라면 그 지식과 정보를 체계적으로
생산, 관리, 전승시키는 철학과 안목이 있어야 하고 그것을 현
실화시키는 구체적 정책이 있어야 합니다. ‘과학입국’이라
고 야단들 하면서 꼭 나와야 할 책들이 만들어지지 않고 있다
면 그것은 모순입니다.
이러한 작업은 그러나 개인이나 민간 부문에서가 아니라 국
가와 공공 부문에서 그 일을 가능하게 해야 합니다. 인류의
위대한 지적 유산을 번역·해설해 나가는 작업이 민간 개인
부문으로는 어렵다면 그것에 대한 지원이 절대로 필요합니다.
국가기간산업을 국가 공공 부문에서 해내듯이 이제 문화적 기
간산업이라고 할 수 있는 특수한 책의 생산· 보존· 배포·
유통을 국가가 지원해야 합니다.
인간의 힘으로는 절대적으로 불가능한 국가·민족·사회의
문화적 기간산업을 민간에게만 맡기겠다는 것은 국가공공기관
의 직무유기입니다. 우리 사회도 경제적 수준이 이쯤되면 책
이라는 문화부문에 그것을 뒷받침하는 실질적인 정책을 마련
하고 예산을 투입해야 합니다. 우리 경제를 질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공공교육부문과 같은 차원의 관점에서
책문화의 발전을 국가부문에서 지원해야 할 것입니다.
창조적으로 살아가는 국가민족이 되기 위해서는 지금 우리
국가가 중점적으로 해야 할 세 가지 일이 있습니다.
첫째, 문제의식 있고 역량있는 출판인과 출판사를 키워내야
합니다. 역량있는 출판인과 좋은 책을 기획하는 출판사의 존
재는 그 자체가 바로 우리 사회의 발전 구조이자 동인입니다.
선진사회는 정말 좋은 책을 펴내는 전통있는 명문출판사들을
분명 갖고 있습니다. 출판사란 개인기업이기도 하지만 그것은
문화기관, 교육기관입니다. 좋은 책을 기획하면 그것에 대해
과감하게 지원해 주어야 합니다. 좋은 기획출판에 대한 지원
은 사실 가장 적은 예산으로 가장 큰 효과를 볼 수 있는 사회
· 문화 발전 정책의 일환입니다.
둘째, 서점을 키워야 합니다. 서점은 열려 있는 시민의 교육
장입니다. 단순한 경제현상으로 따질 수 없는 엄청난 교육적
· 문화적 그리고 나아가서 경제적· 정치적 가능성이 서점에
존재합니다. 국민들이 책을 만날 수 있는 현대화된 서점 시설
은 국가가 막대한 예산을 투입해 운용하는 공공교육기관보다
더 효과적이고 경제적인 사회발전 정책의 하나입니다.
교보문고나 종로서적이 우리 사회에 기여한 바는 참으로 큽
니다. 이들 서점들의 공헌 사례를 실증적으로 연구하고 그것
을 우리 사회 전반으로 확산하는 서점문화운동은 21세기를 살
아가는 국민들에겐 참으로 편리한 국민교육, 정보지식 운동입
니다. 거리거리마다 현대화된 서점들을 존재시키는 정책은 미
래지향적인 문화행정가들의 몫으로 남아 있는 것입니다.
셋째, 너무나도 많이 강조된 논의로 21세기 지식정보사회에
서는 보편적인 현상이지만, 도서관을 키워야 합니다. 생산된
지식과 정보를 체계화시키고 전승시키는 문화공간으로서 도서
관은 21세기 지식정보사회의 일상적 구심처입니다. 도서관은
이제 시민들의 일상적인 삶의 형식이 되게 해야 합니다. 엄청
나게 생산되는 책들을 개인이 구입한다는 것을 애초부터 불가
능할 뿐 아니라 바람직하지도 않습니다. 책이 담아내는 지식
과 정보, 학문과 사상은 바로 최고품질의 자원입니다. 이 자원
을 도서관을 더불어 공유하는 것은 참으로 경제적인 자원이용
방식입니다.
책 만드는 사회, 책 읽는 사회가 분명 21세기의 지식정보시
대를 주도할 것입니다. 우리의 정치·경제·사회·문화의 질
적 도약은 책의 문화를 통해서 이윽고 가능해집니다. 총체적
인 의미에서 책의 문화를 새롭게 인식하고 실천하는 단계에
우리는 지금 서 있는 것입니다.
김언호·출판인 (주) 도서출판 한길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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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는 사회에 대한 출판인의 입장이 잘 정리되었다고 생각되어
함께 읽어 보았으면 해서 올렸습니다.
낙골 재두루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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