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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리브에 남긴 발자욱

** 한국의 도서관문제에 대하여 - 10


7. 그 밖에 몇가지 생각한 것들

7.1. 전쟁과 도서관. 얼마전 작고하신 前 이화여자대학교 교수
김세익 선생께서는 「圖書-印刷-圖書館史」(1982)에서 다음과
같은 지적을 했다. "도서와 도서관은 전란이나 폭군에 의하여
수없이 많이 희생되었다는 사실은 우리가 명심해야 할 일이다.
또, 그와 같은 이상 사태에 대비하고 보호하는 것은 지성의 숭
고한 책임어어야 할 것이다" (162면) 우린 이미 근대역사를 시
작하면서 일본제국주의의 지배를 겪었으며, 해방 후에는 각종
폭력에 시달렸으며, 나아가 동족간 전쟁이라는 비극적 역사도
경험했다. 전쟁 후 본격적인 근대화 과정에서 경제개발 중심의
강력한 권력의 지배하에서 김세익 선생의 지적이 얼마나 뼈아
픈 역사에 근거한 진솔한 고백인가를 알게된다. 현재 전세계는
새로운 질서재편 과정에서 민족분쟁, 전쟁, 각종 폭력이 심각한
수준에 이르고 있다. 우리나라 안으로 보아도 80년대 이후 깊어
진 지역감정, 세대간 갈등의 폭이 더욱 심해지고 있다고 한다.
이러한 시대적 상황에서 도서관은 명백한 입장을 견지해야 한
다. 어떠한 폭력에 대해서도 거부해야 하면 그러한 입장은 도서
관 활동 전반을 통해 드러나야 한다. 우선 도서관 내에서는 그
러한 갈등과 폭력적 지배양태는 없는가를 살피고 있다면 과감
히 개혁해야 한다. 외적으로는 평화를 정착하기 위한 각종의 노
력에 대해 적극적인 정보 및 자료제공을 통해 전세계적으로, 작
게는 우리나라 안에서 모든 갈등과 분쟁을 해소하고 다함께 평
화로운 삶을 살아가도록 하는 일에 지지와 지언을 아끼지 말아
야 한다. 도서관은 평화 속에서만 비로소 살 수 있는 유기체이
다.

7.2. 도서관의 역사성을 기억하자. 근대 도서관은 시민혁명을 통
한 구시대 질서를 탈피하는 과정에서 시민들의 자발적인 노력
으로 생겨났다. 근대 이전의 도서관은 지배계층이나 귀족 등 일
부 계층의 전유물이었다. 그러던 도서관이 일반 대중의 것으로
넘어가게 된 것은 민주 시민사회의 성숙과 깊은 연관이 있다.
비로소 인간 각자의 인권이 중심이 되는 정치,경제체제에 걸맞
게 도서관도 자유로이 일반대중들의 손에 의해 성장했던 것이
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그 역사성이 더욱 뚜렷하다. 우리의 경
우 근대 도서관은 일본제국주의 치하에서 독립을 꿈꾸는 일부
지사들에 의해 설립되어 국민의 계몽과 교육의 확산을 위해 만
들어졌다. 그러나 한국민의 저항이 거세지면서 일제는 문화정책
으로 정책을 바꾸었고 그 과정에서 도서관도 그들의 지배도구
로 전락하고 말았다. 도서관은 일제 식민통치를 위한 수단과 그
들 정책을 수행하는 기능이 중시되었으며 나중에는 사상선도가
주된 목적이 되었다. 해방이 된 이후에는 많은 인사들의 노력에
도 불구하고 경제성장 위주 정책에 밀려 도서관은 다시금 사회
의 한 구석으로 내몰리고 말았다. 90년대 들어와 정보사회가 그
윤곽을 드러내면서 비로소 도서관의 잠재력이 부각되고는 있지
만 오랜 세월 소외되었던 도서관은 아직 제 기능을 찾지 못하
고 있다. 이렇듯 도서관은 그가 속한 시대의 역사에 따라 존재
하는 것이다. 따라서 도서관은 언제나 중립적이어야 한다는 말
은 어패가 있다. 도서관은 존재하는 그 자체가 이미 일정한 경
향성을 드러내는 것일 수 밖에 없다. 이제 우리 도서관계는 도
서관이 중립성을 가져야 한다는 피상적인 일반론에서 벗어나
확고한 역사성을 가지고 역사적 상황에 적극 대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근대 이후 도서관은 이미 그 출발자체가 일반 대중들
을 위한 도서관이었다. 이제는 어떤 지향성을 가져야 하는지 곰
곰히 생각해 볼 문제이다.

7.3. 학교도서관을 살려야 한다. 학교도서관은 숫자상으로도 가
장 많은 도서관이며, 전국 구석구석에 산재해 있는 도서관이다.
따라서 학교도서관을 제대로만 살려낼 수 있다면 도서관문제
해결의 가능성은 더욱 높아질 것이다. 그러나 학교도서관문제는
독립적으로 풀어낼 수 없다는 한계가 있다. 거대한 교육이란 구
조가 얽혀있기 때문이다. 최근들어 교육개혁이 추진되고 있어
좀더 두고 보아야 할 문제이기는 하겠지만, 학교도서관을 활성
화하기 위한 구체적 방안들은 강구되어야 한다. 이미 현장 사서
교사나 도서관담당교사들이 중심이 되어 학교도서관 살리기 움
직임이 구체화되고 있다는 것은 매우 고무적이다. 그런 노력에
더하여 공공도서관 등에서도 학교도서관의 장점을 활용해 공공
도서관의 문제를 풀어나갈 수 있도록 해야한다. 관종별 상호협
력이 매우 중요한 요인이 될 것이다. 요즘 많은 시골 학교들이
폐교되고 있다. 이러한 폐교를 도서관 입장에서 활용할 수 있는
방안도 아울러 강구되면 더 좋겠다. 학교는 전국 구석구석 없는
곳이 없다. 일정 수준의 시설도 있다. 그대로 도서관으로 바꿀
수도 있지 않겠는가. 아무튼 좋은 학교도서관을 이용해 본 학생
들이 성장하면서 도서관을 친숙하게 바라보고 그 필요성을 인
식한다면 장기적으로 도서관의 활성화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믿는다.

7.4. 활발한 도서관운동이 필요하다. 도서관은 살아 성장하는 유
기체다. 살아있는 생명체들은 모두 일정한 운동성을 가지고 있
다. 움직이지 않는다면 그것은 죽은 것이다. 도서관이 살아있다
면 무엇인가 부지런히 움직임을 드러낼 것이다. '전국사서협회'
를 중심으로 한 사서직 운동, 종로도서관이 중심이 되어 추진되
고 있는 작은도서관운동, 각 지역주민들에게 뿌리를 내리며 자
생하고 있는 주민도서실운동, 대학사회의 생활도서관운동, 전국
의 문헌정보학과학생들의 운동체인 '전국문헌정보학과학생연합'
와 지금은 활동이 중단된 상태이기는 하지만 매우 중요한 학술
운동의 단초를 보였던 '문헌정보학과대학원연합연구회' 등의 운
동이 우리나라 도서관계 전반에 새로운 활력소로 작용하고 있
다. 이제 기존의 도서관들도 이러한 운동과의 연대를 통해 명실
상부한 전체 도서관운동을 참여해야 한다. 이러한 운동들은 도
서관현장에 활력 넘치는 토론을 제공하며 생산적인 갈등과 경
쟁을 유발하게 될 것이다. 그러한 상호 조화를 바탕으로 하는
건전한 운동체들의 건강한 갈등구조는 도서관계가 생동감있게
살아있음을 확인케 해 줄 것으로 확신한다.


(다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