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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리브에 남긴 발자욱

** 빈약한 공공도서관 무엇이 문제인가


빈약한 공공도서관, 무엇이 문제인가

1. 우리나라에 도서관이 있는가? 있지만 없다. 도서관이란 건물은 있는데 정
말 도서관다운 도서관 서비스를 제공하는 곳은 거의 없다고 하는 것이 일반
적인 생각이다. 우리에게 도서관(공공이든, 대학이나 학교, 심지어 일부 전문
도서관까지도)은 '공부방'의 이미지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도서관=공부
방>에 머물고 있기 때문에 정작 도서관은 도서관의 기본적 기능인 문화발
전 및 평생교육에 이바지하는 적극적 이미지를 드러내지 못한 채 시들어 가
2. 이러한 도서관 현실에 대한 일차적인 책임은 무엇보다도 도서관인들에게
있다. 전문직으로서 도서관을 사회적으로 쓸모있는 기관을 만들어야 할 책
무를 방기한 책임을 면할 길이 없다. 그러나 과연 이렇게 일방적으로 책임
을 스스로 감당하려고 해도 몇가지 의구심을 떨칠 수는 없다. 우선 도대체
이 사회나 정부는 국민들이 어떤 생각으로 현실을 살아가기를 바라고 있는
지 알 수가 없다. 사회는 온통 물질적 풍요에 정신을 잃고 이리저리 흔들리
고 있다. 이러고도 과연 선진국이 될 수 있을까? 경제적 측면만을 강조해서
는 결코 우리가 바라는 것을 얻을 수는 없다는 것은 명확하다. 그럼에도 점
점 더 도서관에 주어지는 관심은 줄어들어, 이제는 사회적으로 도서관에 작
은 관심이 나마 있는지 조차 감지되지 않는다. 이렇듯 도서관은 경제적 성
장일변도의 사회적 발전추세에 밀려 어두운 구석으로 내몰리고 있다. 또다
른 한편 일반 국민들은 도대체 무슨 책을 읽고 싶어하는지 궁금해 진다. 동
네마다 들어선 도서대여점에서 읽히는 책은 과연 어떤 종류일까? 최근 만난
시집을 내는 출판사 사장은 요즘들어 시를 읽고자 하는 독자들이 무척 줄었
다고 한다. 사회과학 출판사들의 변신은 이미 오래전 이야기이다. 이렇듯 사
회는 의도적으로 가벼움에 처하고자 하는 것 같다. 그런 속에서 한 사회, 한
시대의 문화창달이니 정보축적이니 평생교육이니 하는 고상한 목표를 표방
하고 있는 도서관이 외면당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가볍게 살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도서관은 너무 무겁고 접근할 필요성이 거의 없는 곳이다. 그러
니 이제 그 공간은 미래를 위해 열심히 공부해야 하는 학생들에게 넘겨주는
것도 합리적일 수도 있다.

3. 공공도서관을 둘러싼 사회구조적 문제는 우리 사회가 도서관을 필요로
하지 않을 만큼 단편적이고 물질중심적 구조로 강화되고 있다는데 있다. 이
러한 구조적 관점에서 문제를 접근하지 않는다면 공공도서관 문제는 해결되
기 어렵다. 그러나 지금 필자는 이 문제를 더 이상 추적하지는 못한다. 대신
빈약한 공공도서관에 대해 조금은 구체적 문제점을 진단해 보고자 한다. 앞
에서 지적한 사회구조적 문제에 더해서, 마치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하는 문제제기와 유사하게도, 공공도서관에는 읽을 만한 책이 없다는 것이
다. 이러한 문제제기의 극명한 표출이 바로 도서대여점의 확산이라고 할 수
있다. 독자들은 읽고 싶은 책을 찾아 서점과 도서관을 찾았지만 만족할 만
한 결과를 얻지 못했다. 그래서 저렴한 비용을 감당하고서라도 읽고 싶은
책을 볼 수 있는 기구를 만들어 냈다고 본다. 결국 수요가 공급을 창출해
낸 것이다. 그럼 우리나라 공공도서관 장서의 수준은 과연 어떤가 <'95년
도 전국공공도서관현황> (문화체육부)에 의하면 1994년 현재 전국 317개 공
공도서관의 총장서는 1,116만여책이고 년간 증가책수는 170만여책이다. 1개
관당 년간 약 5,700여책 정도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1994년도 국
내발행도서가 총 2만9천여종이라고 하니, 단순 계산으로도 1개 공공도서관
은 년간 국내에서 발행되는 도서의 약 20% 정도 밖에는 새로 입수하지 못
하고 있는 실정임을 알 수 있다. 이런 현실이니 도대체 이용자들은 도서관
에 가서 보면 보고 싶은 책이 없는 경우가 허다하다는 불평을 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이러한 도서관 수준은 세계적으로도 하위권에 드는 한심한 수
준이라는 것은 이미 다 알려진 일이다. 도서관의 힘은 장서라고 하는데, 우
리 공공도서관의 장서는 질적인 수준은 검토할 여지도 없이 그저 양적 수준
으로만 보아도 비약하기 짝이 없음을 알 수 있다. 이렇게 도서관 장서가 빈
약한 이유는 최근 발표된 연구(박인웅 등, "공공도서관 자료선정과 구입의
현단계" : 도서관, 1995년 가을호)에 잘 설명되어 있다. 이 연구는 그러한 원
인으로 ① 자료수집과정에서 수서정책의 부재에 따른 자료선정과 구입의 무
질서, ② 사서들의 장서에 대한 방관적 자세, ③ 구입과정에서 전문사서가
아닌 사람들에 의한 외압의 작용, ④ 영세한 자료구입비 등을 들고 있다. 이
중에서도 영세한 자료구입비 문제는 장서구성에 심각한 부작용으로 작용하
고 있다(1994년 자료구입비는 1개관 평균 약 3,800만원이다). 매년 많은 책
이 발행되지만 적은 자료구입비로는 쓸만한 자료를 충분하게 구할 여력이
없을 수 밖에 없다. 그러다 보니 도서관에서 자료를 구하는 일에 있어 정상
적인 방법이 아닌 여러가지 편법을 동원해 마구잡이로 책을 구하는 경우도
생기는 것이다. 여기에 더해 기증받은 자료 마저도 과연 쓸만한 책인가 여
부를 가릴 여유도 없이 장서로 받아들일 수 밖에 없는 안타까운 현실에 처
해있는 것이다. 쓸모있는 장서가 없다보니 이용자들은 도서관을 외면하고,
이용자들이 외면하다보니 도서관은 그저 공부방으로 전락하고, 그러다 보니
도서관에 대한 지원은 부족할 수 밖에 없고, 적은 지원에 장서의 질은 계속
빈약해 지고.... 빈곤의 악순환이다. 이것이 도서관 문제의 본질이다.
4. 빈약한 장서와 볼 것이 없다는 우리나라 공공도서관의 문제는 해결될 수
없는가?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는 공공도서관은 제자리를 찾지 못한다.
최소한 출판계에서 도서관의 구입능력을 믿고 양서를 출판할 수 있는 문화
적 기반이 되어야 한다. 이용자들은 자신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공공도서관
이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 무슨 책으로 채워져 있는지, 앞으로는 어떻게
발전해 나갈 것인지, 주인된 각오로 한번쯤 찾아가 검토해 봐 주기를 바란
다. 그러한 적극적인 관심만이 우리 공공도서관을 되살릴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이다. 이제 정보가 자본인 시대에 수천년 정보의 보고인 도서관을 자기
것으로 만드는 현명한 국민들이 되기를 바란다. 그러나 최종적인 책임은 결
국 도서관 사서들에게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아무리 현실이 어렵다고 해도
도서관을 도서관답게 만들 책임은 사서들에게 있는 것이다. 사서들의 분발
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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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훈 (李龍勳)
출처 : 출판저널 통권 제18호 (1995.1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