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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리브에 남긴 발자욱

[서평] 아나키.환경.공동체 (연세춘추)

연세대학교 연세춘추에 실린 서평입니다.
이 책은 제가 개인적으로 열심히 읽었던 책으로
어떤 '대안'을 고민하시는 분들에게 읽어보시기를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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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춘추/Annals/독자투고 ()
제목 : [97/03/31]서평-『아나키, 환경, 공동체』
#5480/5509 보낸이:김용우 (Academic) 03/30 05:52 조회:7 1/6
단평
『아나키, 환경, 공동체』
대안적 공동체의 모색, 아나키즘
김준수 기자

1997년이 시작된 지 아직 3개월이 채 지나지 않았지만, 이미
우리는 너무나 많은 정치적, 경제적 ‘사건’들을 접해야 했다.
집권당에 의해 자행된 노동법안의 날치기 처리와 그에 이은 총파
업 사태, 우리나라 굴지의 재벌 기업인 한보그룹의 부도와 거기
서 드러난 엄청난 정치적 부패 구조, 그리고 핵폐기물 등 오염물
질로 뒤덮여가고 있는 우리의 생활터전… 이 모든 것들이 우리에
게 삶에 대한 긍정적 생각을 불가능하게 만들어 버렸다 해도 과
언이 아니다.
이 총체적 위기에 대한 대안으로서 19세기의 고전적 아나키스
트인 프루동과 바쿠닌의 얘기를 꺼낸다는 것은 적절한 대안제시
가 아닌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사실 아나키즘은 이미 19세기에
맑스주의자들에게 ‘소부르주아의 철학이며 경제학’으로 인식되
어 배척당했고, 흔히 ‘무정부주의자’로 알려진 아나키스트들은
기존 정부로부터도 국가 전복을 꾀하는 위험 세력으로 간주되어
왔다. 그러나 『아나키, 환경, 공동체』의 저자들은 단순한 무정
부주의가 아닌 ‘자율적 주체를 양성할 수 있는 이데올로기’로
서 아나키즘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이 책에서 각각의 저자들은
서울 ‘자유사회운동 연구회’, ‘대구 아나키즘 연구회’, 그리
고 ‘부산 아나키즘 연구회’의 세미나 등에서 논의된 내용들을
여기에 옮김으로써, “왜, 다시, 아나키즘인가”를 우리에게 보
여준다.
근·현대를 지배해 온 이념이라 할 수 있는 자본주의와 공산주
의는 이미 역사적으로 많은 결함을 드러내왔다. 현실적 쇠퇴가
역력한 공산주의는 물론, 시장경제 제도를 근간으로 하는 자본주
의 역시 기업간의 가열한 경쟁 속에서 현대사회의 다양한 요구를
제대로 수용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같은 시대적 상황 속
에서 저자들은 이제 아나키즘이 좌(左)도 우(右)도 아닌 ‘제3의
대안’이라는 매력으로 다가옴을 부각시킨다. 비록 아나키즘이
공상적 유토피아주의라는 비판과 함께 공허하고 적실성없는 이론
으로 판명난 것처럼 보이지만, 이것은 현대 사회가 안고 있는 수
많은 문제점들, 정치권력의 부패, 경제구조의 편향성, 권위적 교
육체계 등에 대한 나름대로의 해결책을 준비하고 있다는 것이다.
아나키즘의 제1명제는 무엇보다도 ‘권위의 부정, 권위에 대한
저항’으로 규정할 수 있다. 여기서의 권위란 주체적 개인에 대
한 국가의 강압적 지배를 뜻한다. 아나키즘 이론의 선구자라 할
수 있는 프루동은 “국가의 거대한 권력에 직면하고 있는 한, 개
인도 집단도 자발적이고 독자적인 행동으로 해낼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고 말한다. 아나키즘 본래의 의도는 이런 외부적
억압을 거부하고 다원적 가치를 인정하자는 것이다.
이 다원주의를 실현시키기 위해 아나키스트들은 공동체 지향적
인 성향을 보인다. 즉 권력의 독단적 결정을 거부하고 개인적 의
사에 최대한의 자율성을 부여함으로써 다원적 가치를 인정할 수
있는 길을 열어놓는다. 결국 아나키즘은 정치적 이데올로기로서
개인간의 연대와 공동체로의 적극적 참여를 이끌어내고, 경제체
계로서 개인적 노동을 물적 가치로 환원하지 않는 등가교환의 원
칙을 성립시켜 ‘참여 민주주의’라는 궁극적 이상을 실현시키려
하는 것이다.
저자들의 논의 상에서 아나키즘의 이러한 이론적 특성들은 환
경과 교육에도 연관된다. 아나키스트는 성장과 이윤의 극대화라
는 자본주의적 논리에서 탈피하여, 자연을 생각하는 소규모 생산
을 지향하려 한다. 또한 아나키즘적 ‘자유교육론’은 개인적 자
율성을 증대시킨다는 점에서 현재의 획일적인 관리형 교육에 대
한 신선한 대안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과거에 아나키스트들은 곧잘 ‘과격 폭력주의자’ 혹은 ‘몽상
적 이론가’로 폄하되었다. 아마도 그들의 이상을 실현시킬 구체
적인 방향을 제시하지 못하고 곧잘 우발적 폭력을 사용했기 때문
이거나 맑스주의에서 민중혁명처럼 후련한 전복의 통로를 제시하
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국가의 강권에 맞서 공동체 주의
를 실현하는 실제적 과정을 제시하는 부분에서 아나키즘의 입장
은 언뜻 모호하게 보인다. 그러나 앞서도 말했듯이 제3의 대안이
라는 점만으로도 우리가 아나키즘을 고찰해 볼 가치는 충분하다.
프루동과 바쿠닌의 논의를 넘어서서 우리를 연대의 세계로 이끌
어 줄 아나키즘을 꿈꾸는 것은 무리한 기대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