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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리브에 남긴 발자욱

][ [북리뷰#26] 권영필 `실크로드미술`

번호 : 2/43 입력일 : 97/03/05 15:15:38 자료량 :58줄
제목 : <서평>'실크로드 미술'
날짜 : 97년 03월 05일

◆金秉模<한양대 교수·문화인류학과> 대세계에서는 미스터리 사건이 많
았다. 현대인이 상상할 수 없는 일이 고대사회에서는 아주 많았다. 신라인
들이 로마제품의 유리잔으로 술을 마셨다면 믿을 사람이 얼마나 될까. 그러
나 그것은 사실이다. 또 로마 귀부인들 사이에선 중국제 실크 옷이 크게 인
기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실크로드는 일본 텔레비전이 제작 방영한 사막-오아시스 길만 있는 것이
아니라, 북방 유목민족들의 초원의 길도 있고,남쪽 해양을 통한 바닷길도
있다. 이 길들을 통하여 동양과 서양이 아주 옛날부터 문물을 교환하였다.
각지역의 희귀한 상품들이 다른 지역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하였고, 호기심
이 높아짐에 따라 상품의 가격은 비싸졌다. 알타이지역의 玉(옥)을 구하기
위해서 중국인들은 비단을 열심히 생산하였다. 두 희귀품은 같은 무게로 맞
바꾸었다고 한다. ‘실크로드 미술’을 펴낸 權寧弼 교수는 이 분야 연구
에서 국내 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자이다. 그는 연구실에만 파
묻혀 있는 학자가 아니라 동서양의 넓고 넓은 무대를 실제로 답사하면서 이
런 방대한 연구서를 완성하였다. 중앙아시아의 민족과 미술로부터 돈황의
미술과 고구려의 벽화미술에 흐르는 脈(맥)을 잡아내고 있다. 또한 기마민
족들의 역동적 미술세계가 고구려에 전달된 내용도 ‘北方氣流(북방기류)’
라는 표현으로 요약하고 있다.
신라인의 미의식에서는 신라인들의 서역에 대한 열정과 향수를 소개하면서
혹시 신라 지배계층들의 고향이 서역이 아니었을까 하는 조심스러운 문제
제기도 하였다. 매우 흥미있는 연구 테마이다. 경주의 신라시대 왕릉인 괘
릉을 지키고 있는 石人(석인)도 위구르인이었을 것이라는 추리를 하여 독자
들의 눈을 즐겁게 하였다.
이 역저의 최대 강점은 한국 고대미술을 세계미술속에 포함시켜 놓고 조감
하고 있는 시각이다. 즉 강대문명의 상대개념인 ‘로컬리즘’을 폐기처분하
고 지역미술을 중심미술로 보자는 것이다.
이는 서양문명은 모두 로마문명의 아류이고, 동양문명은 중국문명의 아류
라는 문화패권주의에 대한 강렬한 독자성 확보 행위이다. 이는 실크로드 전
역에 걸쳐 살고있는 여러 소수민족에 대한 정체성 부여이고, 애정있는 시각
이다. 그런 시각의 연장선에서 한국미술의 특징을 ‘소박성’이라고 압축하
였다.
책의 마무리부분에 또 한가지 놀라운 선물이 독자들에게 소개되었다. 한국
에도 중앙아시아 벽화가 있다. 이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벽화의 존재는 전문
연구자들만 알고 있던 것이다. 일본인 오타니(大谷 光瑞)의 컬렉션이 우여
곡절끝에 한국땅에 남아있는 것이다. 이를 읽으면서 전쟁과 문화재의 관계
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연구자들 뿐만아니라
정치가 군인 경제인에게도 꼭 일독이 필요하다고 느낀다.
열심히 연구하여 책을 내는 것은 ‘아들을 낳는 기쁨’이라고 저자는 말하
였다. 그렇지만 이 책에도 약한 부분이 보인다는 말을 하지않을 수 없는 평
자의 미안한 입장을 밝힌다.
미술사연구서의 3분의2가 넘는 분량이 회화사에 편중되어 있다. 그 결과
조각품이나 생활 미술품에 대한 분량이 상대적으로 적게 다루어졌다. “권
교수의 그동안의 연구활동으로는 충분히 다룰 수 있는 분야인데”하는 아쉬
움이다. 전체분량이 너무 넘쳐 그리 되었다면 속편으로라도 독자의 지적 욕
구를 충족시켜주기 바란다.
책을 쓰는 작업은 종교적 고행과 같다. 그러나 책을 만드는 사람들도 온갖
정성을 기울이게 마련이다. 편집자가 책의 말미에 영문 요약을 넣어서 외
국인 독자들에게 서비스한 점이 무척 돋보이며, 전문연구자들에게 방대한
분량의 논저 목록을 제공한 것도 아름다운 노력이다.
연구서로서의 가치는 말할 것도 없고, 일반 지식인들에게도 매우 가치있는
양서가 될 것임에 틀림없다.

평자는 한양대 박물관장을 역임했으며, 저서로는 ‘한국인의 발자취’
‘몽골학술기행’ ‘김수로왕비 허황옥’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