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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리브에 남긴 발자욱

[퍼온글] 한국 책판목록연구서설 (윤병태)

역시 한국애서가협회방에서 가져온 것입니다. 윤병태 교수님은 현재
충남대 문헌정보학과에서 후학들을 가르치고 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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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호:6/12 등록자:ZSBL 등록일시:95/12/06 00:30 길이:382줄
제 목 : 6/5; 윤병태/ 한국 책판목록 연구서설

韓國 冊板目錄 硏究序說
韓國 冊板目錄 硏究序說

尹 炳 泰
忠南大 敎授

1. 緖言
우리나라는 삼국시대 이전부터 전적문화가 있었다. 삼국시대의 고구려나 신
라의 책은 지금도 남아 있다. 그 전통은 남북조시대의 고려와 조선왕조시대까지
이어져 왔다. 전적은 필사한 것만 있는 것이 아니고, 이들을 널리 펴기 위하여
인쇄한 것도 많이 있다. 인쇄의 방식은 우선 크게 목판인쇄와 활자인쇄로 나눌
수 있다. 목판인쇄를 위해서는, 그 기본 도구인 판목(板木)이 꼭 필요하다. 판
목의 종류는 많지만, 우리의 관심이 가는 것은 책과 관계가 있는 판목이다.
판목 중에서도 가장 흔한 것이 책을 찍기 위한 책판(冊板)이다. 책판은 불경
을 찍기 위한 경판(經板), 삼경 사서를 찍기 위한 경서판(經書板), 다라니를 찍
기 위한 다라니판(陀羅尼板)과 같은 이름으로 부르는 경우도 있다. 책판과 함께
아니면 따로 쓰이는 판목 중에는, 글씨를 베껴 새기고 찍기 위한 글씨판인 서판
(書板)도 있고, 그림을 찍기 위한 그림판 즉 도판(圖板)도 있다. 도판 중에는
초상화를 그린 초상판(肖像板), 산소를 그린 묘산도판(墓山圖板), 지도를 그린
지도판(地圖板), 계도를 그린 계도판(系圖板), 부적을 그린 부적판(符籍板) 등
도 있다. 글을 쓸 때에 줄을 잘 맞추기 위한 괘지를 찍기 위한 괘지판(罫紙板)
이나 편지나 시가(詩歌)를 적는데 쓰기 위한 종이인 전지를 찍기 위한 전지판
(箋紙板)도 있다. 또 책을 장책하기 위하여 책의 겉장을 아름답게하고 튼튼하게
하기 위한 능화문을 찍는 능화판(菱華板)도 있다.
중국의 정사(正史) 끝에는 <경적지(經籍志)>나 <예문지(藝文志)>와 같은 그
역대의 서목이 붙어있지만, 우리나라 정사에는 그런 서목들을 붙인 것이 없다.
그러나 우리 조상들은 슬기로워 따로 책자(冊子)로 된 서목을 만들었다. 책자서
목은 조선왕조시대에 만든 것이 많이 남아 있다. 이러한 서목 중의 한 종류에
책판목록(冊板目錄)이 있다. 책판목록은 바로 책판의 목록이다. 넓은 의미의 책
판목록에는 앞에서 든 모든 판목을 다 넣는 것으로 되어 있다. 책판목록에 굳이
‘목록’이라는 글자를 붙이는 이유는, 이 목록이 소장처를 밝히고 있기 때문이
다.
책판목록의 편찬 체재는 소장처별로 서명(書名)을 나열한 경우도 있고 아니
면 서명 아래에서 소장처를 밝힌 것도 있다. 우리는 서양인들에 의하여 종합목
록(綜合目錄)이 시작되었다는 시기보다 수세기 이전에 이미 종합목록을 편성하
였고, 그 실물인 책판목록이 남아 있다.
이 글에서는 이렇게 서양인 보다도 앞선 생각을 가지고 실행하고 있었던 우리의
주체적 소산인 책판목록에 대하여, 그 역사적 전개를 살펴 보려 생각한다.

2. 13世紀 以前의 冊板目錄
고려시대의 책판목록으로 지금 남아 있는 것은 여러가지 경판목록과 그와 관
계가 있는 목록 뿐이다. 가장 먼저 들 수 있는 것이 <대장목록(大藏目錄)> 이
다. 이 목록은 대장도감(大藏都監)에서 편찬하였다. 고려 고종(高宗) 23-38(123
6-1251)년 사이에 간행한 재조대장경 (再雕大藏經)의 판목은 지금도 합천(陜川)
의 해인사(海印寺)에 장치되고 있다. 목판본 3권 1책으로 되어 있는, 이 책은
1930년대 이후의 후쇄본이 많이 돌고 있다. 그런데 최근에 한국문학박물관(韓國
文學博物館)에는 해인사판 보다도 오래된 듯한 목판본의 고본이 입수되었다. 그
판본을 보면 매우 오래된 듯한 판식을 하고 있다. 현재 볼 수 있는 <대장목록>
의 판본은 아래와 같은 것이 있다.
1. 木板本, 卷上-零本 1冊-韓國文學博物館 藏本
2. 木板本-3卷 3冊-再雕大藏經-奎章閣 藏本
3. 寫本-3卷 3冊-서울大 藏本
4. 寬文10年. 日本 木板本, 3卷 3冊
5. 隆熙4年-報告書
6. 大正新修大藏經本
7. 大藏 補遺目錄-東國大, 影印本

대장경은 오자나 탈자가 없어, 세계에서도 유래가 없는 정확한 것으로 알려
져 있다. 고려의 수기(守其)는 고려대장경의 교정결과를 기록으로 남겼으니, 바
로 <고려국신조대장교정별록(高麗國新雕大藏校正別錄)> 이다. 이 별록 역시 대
장경의 경판목록의 역할을 한다 하겠다. 이 책은 해인사에 수장하고 있는 판목
을 찍은 목판본도 있지만 이를 동국대학교에서 영인한 책이 더 많이 쓰이고 있
다. 또 이 책은 중국에서도 <여장신조본교기(麗藏新雕本校記)>이라는 이름으로
간행된 책이 국립중앙도서관에 전하고있다.
<고려사(高麗史)> <열전>에 보면, 고려 선종 3년(1086) 6월 18일에, 왕제인
석순이 송에서 돌아와 경서 1000권을 바치고, 또 흥왕사에 교장도감을 둘 것을
주하였다고 한다. 또 요, 송, 일본으로부터 4천여권의 많은 책을 구매하여 이를
모두 간행하였다고 나와 있다. 《신편제종교장총록》에 있는 서문과 <대각국사
문집(大覺國師文集)>에 있는 같은 서문에 의하면, 고려 선종 7년(1090) 8월 8일
에 석순이 새로 <제종교장총록(諸宗敎藏總錄)>을 편성하였다고 한다. 현재 남아
있는 이책의 정식 명칭은 <신편제종교장총록(新編諸宗敎藏總錄)> 이다. 이 책은
대각국사 의천(義天)이 앞에서 언급한 것과 같이, 의천이 고려.송.요.일본 등
여러나라에서 수집한 경률론(經律論) 삼장(三藏)에 대한 장소(章疏)를 모은 목
록이다. 고려 선종(宣宗) 7(1090)년에 편찬하였으니, 이것이 우리가 말하는 “
속장경 목록(續藏經 目錄)”이다. 권1(卷一)에는 경(經)에 대한 주소(注疏), 권
2(卷二)에는 율소(律疏), 권3(卷三)에는 논소(論疏)를 싣고 있으며, 기술은 서
명(書名), 저작자(著作者), 권수(卷數)로 되어 있다. 현재 이 책의 판본으로서
볼 수 있는 것은 아래와 같다.
10. 新編諸宗敎藏總錄 序-大覺國師文集
11. 日本 十無盡院本
12. 元祿間-日本 木板本
13. 大正新修大藏經本
14. 京城:1933-1책(96p.); 19cm

해인사(海印寺)에 소장하고 있는 경판 중에는 대장경 이외의 불경도 들어 있
다. 그 목록은 경성제국대학교의 교수로 있었던 이마니시(今西龍)가 유인본으로
간행한 것이 남아 있다. <사간장경목록(寺刊藏經目錄)>이라는 목록은 겨우 3장
에 불과한 것을 등사판으로 1900년대에 간행하였다. 필자가 가지고 있는 이 책
에는 “今西龍圖書”라는 네모난 붉은 도장이 찍혀있다. 이 목록은 현재 해인사
에 장치하고 있는 사간(寺刊) 경판(經板) 중 *각에 수장하고 있는 <주본화엄경
(周本華嚴經)> 등 23종과 속장각(續藏閣)에 수장하고 있는 <자*문(仔夔文)> 등
38종의 경판(經板)을 기록하고 있다.

3. 14~15世紀의 冊板目錄
조선시대 전기에 출판된 책판목록으로 단행본은 없으나, 명종(明宗) 9년
(1554)에 어숙권(魚叔權)이 편찬한 분류순 백과편람(分類順 百科便覽)인 <고사
촬요(攷事撮要)> 속에 책판목록이 들어 있다. 이 책 속에는 卷上에 교서관(校書
館)에서 간행하여 팔고 있었던 책의 목록이 들어 있다. 이 책은 판본이 많아,
임진전(壬辰戰) 이전의 판본과 소위 훈감자(訓監字)로 찍은 책은 “서책시준(書
冊市准)”으로 되어 있고, 1636년 이후부터의 판본에는 이를 “서책인지수(書冊
印紙數)” 또는 “서책인지용입수(書冊印紙容入數)”로 바꾸어서 수록하고 있
다. 임진전 이전 판본에는 卷下에 “팔도정도(八道程途)”에 “책판(冊板)”에
관한 기록이 있다. 이것도 임진전 이후의 판본에서는 책판를 완전히 삭제하여
버렸다. <고사촬요>의 판본으로 알려진 판본에는 아래와 같은 것이 있다.
1. 宣祖9(1576)年. 乙亥字本-晩松本
2. 宣祖9(1576)年. 乙亥字覆刻本
3. 宣祖18(1585)年. 木板本-南文閣 影印本
4. 宣祖18(1585)年. 日本 寫本

이 중에서, 1은 고려대학교 도서관의 만송문고에 소장하고 있다. 이 책은 선
조(宣祖) 9년(萬曆4, 1576)에 을해자(乙亥字)로 찍은 책이다. 2 역시 고려대학
교 도서관에 소장하고 있다. 이 책은 앞의 을해자본을 다시 같은 해인 선조(宣
祖) 9년(1576) 7월에 복각(覆刻)한 책이다. 이 책에는 없어졌지만, 이와 같은
판본을 가지고 있는 미끼(三木 榮)의 책 끝에는 “萬曆四年七月 日”일이라는
날자와 “水標橋下北邊二第里門入 河漢水家刻板買者尋來”라는 간기와 광고가
있어, 서울의 수표교 근처에서 하한수가 복각한 책임을 알 수 있다. 이 책의 “
서책시준(書冊市准)” 아래에는 약간의 보사가 있다. 이 책을 영인한 책에서는
흐려서 잘 보이지 않는다. 3은 국립중앙도서관에 소장하고 있다. 이 목판본은
남문각(南文閣)에서 영인하였다. 4는 지금 부산 시민도서관에 소장하고 있는 일
본사본(日本寫本) 이다. 이 책은 선조 18(萬曆13, 1585)년의 간본을 베껴둔 것
이다. 이 <고사촬요>에 대해선, 김치우(金致雨)교수가 쓴 석사학위논문과 <攷事
撮要의 冊版目錄 硏究> (釜山 : 民族文化, 1983.12.30.)을 보면 도움이 될 것이
다.

4. 16-17世紀의 冊板目錄
조선조 후기에 와서도 단행본으로 된 책판목록이 편찬된 것은 1700년대에 들
어와서이다. <고사촬요>는 아래와 같은 판본이 나왔으나, 교서관에서 찍어내어
팔고 있는 책의 기록만 기록되어 있다.
1. 光海5(1613)年 內賜. 訓監字本
2. 訓監字本-精文硏本
3. 1636年跋. 活字本-奎1117
4. 1674年頃. 戊申字本-藏書閣 貴-尹錫昌 舊藏本
5. 1674年頃. 戊申字本-晩松本
6. 1674年頃. 戊申字本-延大本
7. 1674年頃. 戊申字本-山本
8. 1734年頃. 印書體活字本. 延大本
9. 1734年頃. 印書體活字本

이 중에서 1은 광해(光海) 5(萬曆41, 1613)년 9월에 내사(內賜)한 소위 훈감
자(訓監字)로 찍은 책이다. 그 원본은 지금도 규장각에 전하여지고 있다. 이 책
은 일찍이 일본 사람이 <규장각총서(奎章閣叢書)>의 하나로 영인한 일이 있다.
2도 앞의 책과 같은 판본으로 정신문화연구원에 소장하고 있다. 3부터 7까지는
모두 무신자(戊申字)로 찍은 책이다. 이 무신자본에서는 “서책시준(書冊市准)
” 대신에 “서책인지수(書冊印紙數)”로 바꾸었다. 그 중애서 3은 인조(仁祖)
13(1636)년 1월 30일자의 발문(跋文)이 붙어있으며, 지금 규장각(奎章閣)에 소
장하고 있다.(奎1117). 4는 윤석창(尹錫昌)씨의 장본으로 지금은 한국정신문화
연구원으로 들어갔다고 한다. 5는 고려대학교중앙도서관 만송문고(晩松文庫)에
남아 있다. 6은 연세대학교 중앙도서관에 소장하고 있다. 7은 국립중앙도서관
일산문고(一山文庫)에 수장하고 있다. 8과 9는 영조(英祖) 10(1734)년경에 인서
체활자(印書體活字)로 찍은 것이다. 이 두가지 판본에는 “서책인지수(書冊印紙
數)” 대신에 “서책인지용입수(書冊印紙容入數)”라는 교서관 판매 도서목록이
수록되어 있다. 그 중에서 8은 연세대학교 중앙도서관에 소장하고 있으며, 9는
국립중앙도서관에 소장하고 있다.
본격적으로 단행본의 책판목록이 편찬된 것은 1670년경이 아닌가 생각한다.
이 때 편찬된 것으로 보이는 <서책치부(書冊置簿)>는 부산대학교의 류탁일(柳鐸
一)가 소장하고 있다. 그 책의 내용은 류교수가 1965년에 <국어국문학(國語國文
學)> 제28호에 발표함으로서 알려지게된 것이다. 류교수의 글에 의하면 이담명
(李聃命)의 수택본(手澤本)이라 한다. 이담명은 현종11년(1611) 별시에 등과하
여 주로 숙종 때 관직을 지낸 분이기 때문에, 이 목록은 늦어도 1680년경에는
편집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 책은 1첩 36절의 첩본(帖本)으로 되어 있다고 하
며, 경상도(慶尙道) 지방의 책판을 기록한 목록이라 한다.
또 다른 목록으로 <고서책판유처고(古書冊板有處攷)>가 있다. 이 책의 원본
은 찾아내지 못하였지만, 이를 베낀 먹지 사본(寫本)을 필자는 가지고 있다. 이
책은 미농괘지(罫紙) 12장에 베껴둔 것이다. 그 내용을 검토하여 보면, 숙종(肅
宗) 26(1700)년경에 편찬한 것으로 보인다. 그것을 1939년에 먹지로 베껴둔 것
이니, 이는 이 책에 "昭和十四年八月十一日書"라는 필사기(筆寫記)가 있어 알
수 있다. 이 책은 주로 경상도(慶尙道) 25개 고을의 책판을 기록한 것이며, 마
지막에 개성(開城)의 1종을 추기(追記)하고 있다.
<고서목록집성(古書目錄集成)>을 보면, <고책판소재고(古冊板所在攷)>가 수
록되어 있다. 천혜봉(千惠鳳)의 해제에 따르면, 이 책은 <해동지지(海東地志)>
중에서 경기(京畿), 충청(忠淸), 전라(全羅), 강원(江原), 황해(黃海), 그리고
함경도(咸鏡道) 등 6개 도(道)의 책판을 전재하였고, 또 경상도(慶尙道)의 책판
은 <영남책판기(嶺南冊板記)>에서 전재한 것을 편집한 것이라 한다. 이 두가지
책판목록을 보면, 주로 임진전 이전에 간행된 책들만 수록하고 있다.

5. 18世紀의 冊板目錄
조선시대의 목판인쇄문화는 숙종 때에 와서 매우 흥성하여진 것 같다. 특히
나 지방마다 자리잡고 있는 학자를 중심으로 하거나, 아니면 문중이 중심이 되
어 활발한 인쇄활동을 벌리고 있었고, 또 지방관으로 임명된 사대부와 양반 그
리고 관리들은 그들의 학파나 가문을 위한 인쇄출판 활동에도 힘을 기울였지만,
중앙에서 보내오는 경세 치민에 필요한 서적들을 많이 출간하게 되었던 것이다.
한편 지방에 있어서의 고용효과도 창출할 수 있었던 것이다. 조정에서의 요구
그리고 관리나 사대부끼리의 서적의 교류를 위해서도 책판목록의 편찬은 부득하
지 않았나 생각된다. 그래서인지 1700년대 부터는 책판목록이 많이 만들어진 것
같다. 아래에서는 남아있고 알려진 책판목록들을 다루어 보려고 생각한다.
필자가 소장하고 있는 <영남책판(嶺南冊板)>은 겨우 15장의 필사본 1책이다.
서명은 표지에서 땄으나, 권수에 "慶尙道冊板營上"이라 있어 일명 <慶尙道冊板>
이라고도 부를 수도 있다. 그 내용을 검토하여 보면, 목록이 편찬된 것은 영조
(英祖) 6(1730)년경으로 보인다. 이 책을 이병기 구장본과 비교한 결과, 이 책
이 더 오래된 사본으로 보인다. 기술은 서명(書名), 권수(卷數), 소요 장수(張
數) 등을 기록하였다. 경상도(慶尙道) 21개처의 각 고을에 소장하고 있는 책판
을 기록한 것이다. 1948년에 국립도서관(國立圖書館)에서 가람 이병기(李秉岐)
선생이 가지고 있는 <경상도책판(慶尙道冊板)>라는 목록을 베껴둔 것(古 026-21
)을 보면, 그 수록한 내용이 필자의 <책판록>과 꼭 같다.
지금은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에 기증되어 신암문고(薪菴文庫)본으로 남아
있는 <책판치부책(冊板置簿冊)>은 고 신암(薪菴) 김약슬(金約瑟)씨가 소장하고
있던 책이다. 이 책에는 “운경(雲卿)”이라는 장서인이 찍혀 있다. 이 책은 영
조(英祖) 16(1740)년경에 괘판(罫板)으로 인쇄한 용지에 필사한 사본(寫本) 이
다. 모두 137장 1책으로 되어 있다. 그 내용을 보면, 전라도(全羅道) 등 7개도
의 고을별 책판목록으로, 수록한 서명의 총수는 모두 634종 이다.
국립중앙도서관에 소장하고 있는 <삼남소장책판(三南所藏冊板)>이라는 편자
미상의 사본 1책 20장본(古 0267-3)은 전라도(全羅道), 충청도(忠淸道) 및 경상
도(慶尙道) 등 3개도의 책판목록이다. 원래는 전주부(全州府)에 소장하고 있던
사본을 1941년에 베껴온 것이니, 이는 권말에 있는 "全州府廳藏, 昭和十六年七
月謄寫"라는 필사기에 의하여 알 수 있다. 이것만 보아도 당시의 국립중앙도서
관에 근무하던 일본인 사서들이 얼마나 우리의 전적문화에 관심을 두고 연구하
였는가를 알 수 있다. 이 책의 권수제(卷首題)는 “金山寺宴, 三南所藏冊板”으
로 되어 있다. 내용을 검토해 보면, 영조(英祖) 19(1743)년경에 편찬한 것으로
생각한다. 그리고 권말에 "東京誌卽慶州冊板錄出於崇禎後”라 있고, <활인심방
(活人心方)> 등 51종의 책판이 기록되어 있다. 충청도(忠淸道) 중에는 경상도
(慶尙道)의 선산(善山), 옹궁(龍宮), 영천(永川)의 책판을 오기하여 들어있고,
경상도(慶尙道) 중에는 <東京誌>의 책판을 중복하여 추기하고 있다.
서울대학교 도서관에 소장하고 있는 <제도책판록(諸道冊板錄)>은 편자를 알
수 없는 1책 34장의 필사본으로 되어 있다. 이 책은 전라(全羅), 충청(忠淸),
경상(慶尙) 및 함경도(咸鏡道) 등 4개 도의 책판목록이다. 내용을 검토하여 보
면, 영조(英祖) 25(1750)년경에 편찬한 것으로 생각된다.
분명한 날자가 기록된 책판목록은 1759년에야 나왔다. 규장각에 소장하고 있
는 <완영책판목록(完營冊板目錄)>이 그것이다(奎 7050). 1책 50장인 이 책은 전
라감영에서, 임금에게 올린 원본으로 보인다. 해서체의 글씨로 잘 쓴 필사본이
다. 권수제는 “乾隆二十四年二月 日完營冊板”으로 되어 있어, 이 책이 1759년
에 편찬된 것을 알 수 있다. 이 책 표지의 외제(外題)는 “三南冊板目錄”으로
되어 있다. 첫째 장 앞면에 [관물헌(觀物軒)]과 [중극지장(重極之章)]이라는 두
과의 장서인이 찍혀있는 것으로 보아, 정조(正祖)가 보던 책 같다. 이 책의 내
용은, 전라(全羅), 충청(忠淸), 경상(慶尙), 함경(咸鏡) 등 각 도의 감영(監營)
과 각 고을에 보존되어 있는 책판을 영조 35년(1759) 2월일자로 조사한 기록이
다. 각 도(道)의 지명(地名) 아래에 서명(書名), 책지(冊紙), 장수(張數), 책판
의 완결( 缺) 등을 간략하게 기록하고 있다.
경북대학교 남권희(南權熙)교수가 소장하고 있는 <책도록(冊板錄)>은 편자를
알 수 없는 필사본이며 1책 32장으로 되어 있다. 서명은 표지에서 따왔으나, 이
책은 사실상 <경상도각읍소재책판(慶尙道各邑所在冊板)>과 <전라도각읍소재책판
(全羅道各邑所在冊板)>의 합책이라 할 수 있다. 깨끗이 정서된 책으로, 경상도
와 전라도의 책판목록 이다. 기술은 서명(書名), 권수(卷數), 저자(간혹 적음),
종이의 종류, 소요 장수(張數), 소장처 등을 기록하였다. 특히 대구영에서 간행
한 <삼경사서(三經四書)>는 신판(新板)의 종이 장수를 옛판의 아래에다 적어두
고 있다.
강전섭(姜銓燮)교수가 소장하고 있는 <영호열읍소재책판목록(嶺湖列邑所在冊
板目錄)>은 <한국어문론총(韓國語文論叢)>(螢雪出版社, 1976)에 발표한 글에 의
하여 소장을 알게되었다. 강교수에 따르면, 영조(英祖) 36(1760)년경에 필사된,
경상도(慶尙道)와 전라도(全羅道) 두 도의 책판목록이다. 이 책은 정조(正祖)
17(1793)년경에 성립된 것으로 믿어지는 <영우병마절도영촬요(嶺右兵馬節度營撮
要)>라는 사본 1책 101장 중에 14장의 분량이 필사되어 있다 한다.
규장각(奎章閣)에 소장하고 있는 필사본 1책의 <운각책도록(芸閣冊都錄)>은
교서관(校書館)에서 편찬한 원본(原本)이다(奎 11707). 이 책은 원래는 교서관
의 장서목록이나, 교서관에 소장하고 있는 책판들을 “책판도록(冊板都錄)”이
라하여, 모두 30종 3,265판의 목록을 수록하고 있다. 영조(英祖) 36(1760)년경
에 작성한 것으로 보인다. 권말에 “교리(校理) 송(宋)”과 화압(花押)이 있고,
곳곳에 관인이 찍혀 있어, 교서관의 사무용 원본(原本)으로 보인다.
연세대학교에 소장하고 있는 <각도책판목록(各道冊板目錄)>은 편자를 알 수
없는 해서체의 필사본이다. 이 책은 첫장이 매우 손상되어 있다. 내용을 검토하
여 보면, 정조(正祖) 2(1778)년경에 편찬한 것으로 보인다. 서명 그대로 각 도
에 소장하고 있는 책판의 목록이다. 마지막으로 각 부(府), 경기지역과 교서관
의 책판목록도 붙어 있다.
필자가 소장하고 있는 <고책판유처고(古冊板有處攷)>는 푸른 색의 미농괘지
에다 먹지를 대어서 쓴 필사본이다. 1책 29장의 엷은 이 책의 편자는 알 수 없
으나 책의 첫머리에 “海東地志三十五冊中記載. 姜世晃豹庵時代寫本”라는 글이
있는 것으로 보아, <해동지지> 속에서 책판에 관한 기록만을 추려서 모은 것 같
다. 그리고 <해동지지>는 표암 강세황이 돌아간 영조(英祖) 52(1776)년 이전에
편찬된 것이 틀림 없으므로, 이 책판의 성립은 그 때를 전후한 것으로 볼 수 있
겠다. 7개도를 다시 고을별로 나눈 다음 책판을 기록하였다. 마지막 장에는 표
암의 약력을 간략하게 기록하고 있다.
편자를 알 수 없는 <책판록(冊板錄)>은 주로 전라도 지역의 고을별로 책판을
기록하였고, 필사본 속의 일부분에 기록되어 있는 것이다. 그 내용을 보면, 정
조(正祖) 초에 편찬된 것으로 보인다.
<오거서록(五車書錄)>은 <고서목록집성(古書目錄集成)>에 수록되어 있다. 천
혜봉(千惠鳳)의 해제에 따르면, 필사본 1책으로 되어 있다고 한다. 권수제(卷首
題)는 “완영책판록(完營冊板錄)”으로 되어 있으며, 정조 15년(1791) 이후에
다시 조사된 것으로 보고 있다. <완영책판록(完營冊板錄)>을 기초로하여, 완질(
秩)의 여부, 다시 조사한 당시의 판목의 유무나 변동사항과 장수를 기록한 것이
라 한다.
사역원(司譯院)의 역관인 김지남(金指南)이 편찬하고, 김경문(金慶門)이 증
보하여 편찬한 <통문관지(通文館志)>는 사역원의 활동사 겸 직무편람을 기록한
책이다. 규장각에 소장하고 있는 책을 1944년에 조선사편수회(朝鮮史編修會)에
서 조선사료총간(朝鮮史料叢刊)의 일부로 영인한 책이 있어 일찍부터 알려져 있
었다. 이 책의 권지8의 “집물(什物)”조에 <노걸대(老乞大)> 등 18종과 "續"에
<신석로걸대(新繹老乞大)> 등 14종 모두 32종의 책판이 기록되어 있다.
국사편찬위원회에서 편찬 발행한 <용호한록(龍湖閒錄)>에는 “완영객사책판
(完營客舍冊板)”이 기록되어 있다. 전라감영과 전주지방의 책판목록으로, 완영
(完營, 40종), 석계서원(石溪書院, 2종), 전주 사판(全州 私板, 33종)만 수록하
고 있다. 이 책의 기술은 서명(書名), 권수(卷數), 소요 장수(張數) 등을 기록
하였다.

6. 19世紀의 冊板目錄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에 원본이 소장되어 있는 <임원십륙지(林園十六志)>는
서유구(徐有구)가 편찬한 책이다. 이 원본은 판심(版心) 아랫부분에 구“자연경
실장(自然經室藏)”이라고 있는 괘판지에 쓰인 것으로 보아, 그의 고본(稿本)이
아닌가 생각한다. 이 책 권106의 “이운지(怡雲志)” 7에는 “도서장방(圖書藏
訪)” 속에 “경외루판(京外鏤板)”이 있다. 이 부분이 <누판고(鏤板考)>의 내
용과 같은 것으로 보아, 그 초고(初稿)로 생각된다. 서울대학교 출판부에서는
일정시에 베낀 후사본(後寫本)을 3책으로 영인한 일이 있다. 정조(正祖)의 어
제를 모은 문집인 <홍재전서(弘齋全書)> 속에는 <누판고(鏤板考)>의 서례가 있
다. 종전까지는 <누판고>가 서유구(徐有 ) 개인의 뜻에 의해 편찬된 것으로 알
고 있었으나, 정조의 명에 의하여 편찬한 것이라는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홍
재전서>는 정조가 돌아간 해인 순조(純祖) 원(1801)년 12월 11일에 완장(完粧)
하였고, 주자소에서 정리자(整理字)로 찍어 순조 14(1814)년 3월 22일에 임금에
게 올린 책이다. 그 책 권184에 있는 <군서표기( 書標記)> 속에 <누판고>의 서
례가 들어 있다. 고려대학교도서관에 소장하고 있는 책은 당지에다 찍은 가장
아름다운 책 중의 하나이다. <홍재전서>는 정사한 사본의 영인본이 출판된 일도
있으며, <홍재전서>의 권179-184만 뽑아서 < ` 書標記>라는 이름으로 학문각(學
文閣)에서 영인한 일도 있다. <군서표기> 속에는 정조의 어정서(御定書)와 명찬
서(命撰書)가 해제되어 있는데, 그 중에서 간본(刊本)에 대하여는 판각(板刻)한
기록이 있고. 책판의 소재를 알려주고 있다. 서유구(徐有 )가 정조(正祖)의 명
으로 편찬한 <누판고(鏤板考)>는,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를 보면, 정조
20(1796)년에 편찬이 끝난 것으로 되었고, 범위와 내용은 <누판고>를 편찬한 시
기인 정조 당시에 서울의 관아(官衙)와 팔도 감영(八道 監營)과 각 부(府), 목
(牧), 군(郡), 현(縣), 서원(書院), 사찰(寺刹), 사가(私家)에 장치되어 있는
책판을 조사한 것이다. 그 내용은, 어찬서(御撰書), 어정서(御定書), 경부(經
部), 사부(史部), 자부(子部), 집부(集部) 등 6개 분야로 나누고, 사부(四部)
에 해당하는 곳에서는 다시 유(類)로 세분하여서 분류하고 있다. 이 책에는 서
명(書名), 권수(卷數), 저자(著者)와 내용의 간단한 해제(解題), 책판의 소장처
(所藏處), 완결( 缺)의 여부(與否), 인지 장수(印紙 張數) 등을 기술(記述)하고
있다. 각도의 책판의 소재를 정확하게 기록하고 있다. 내용 중의 <대장경(大藏
經)>의 목록을 제외하면 매우 정밀한 해재서지(解題書誌)이기도 하다. 이 책의
후사본은 고려대학교를 비롯한 여러 곳에 소장되어 있다. 1941년 6월 20일에 경
성(京城)의 대동출판사(大同出版社)에서는 홍명희(洪命熹)가 교정(校訂)한 7권
1책본을 연인본으로 출판하였다. 이 연인본과 초고본과의 차이는, 내용중의 “
본조(本朝)”를 전부 “이조(李朝)”로 바꾼 것이다. 1968년 10월 10일에는 보
련각(寶蓮閣)에서 필자가 이 연인본을 100부 한정판으로(책에는 70부 한정판으
로 표시됨) 영인하였다.
순조(純祖) 14(1814)년 7월경에 주자소(鑄字所)에서 편찬한 <주자소응행절목
(鑄字所應行節目)>은 주자소의 규칙, 비품 등을 기록한 직무편람이다. 원본인
필사본 1책이 규장각에 전하여지고 있다(奎 7901). 이 책의 외제(外題)가 "판당
고(板堂考)로 되어 있어, 그 이름으로도 알려져 있다. 그 내용 속에는 주자소에
두고 있는 책판에 관한 기록도 들어 있다. 원본의 전문(全文)은 1941년에 <서물
동호회회보(書物同好會會報)> 제11호에 발표된 이후, <조선학론고(朝鮮學論考)>
와 <서지학선독(書誌學選讀)>(景仁文化社, 1976.)에도 영인 수록되어 있다. 이
책에는 주자소에 수장하고 있는 책판인 <정음통석(正音通釋)>을 비롯한 30종이
기록되어 있다.
고 남애(南涯) 안춘근(安春根)선생이 소장하였고, 지금은 한국정신문화연구
원으로 기증된 <서책목록(書冊目錄)>은, 편자를 알 수 없는 책판목록 이다. 관
아에 소장하였던 원본인 모양으로 붉은 색 관인이 찍혀 있다. 1첩 21절 43면의
필사본인 이 책은 앞뒷면에 걸쳐 책판목록이 기록되어 있다. 이 목록에 수록한
책판은 우선 “영상(營上)”과 “각읍소재(各邑所在)”로 나누고, 다시 각 고을
별로 세분하여 용지(用紙), 장수(張數), 소재지(所在地), 등을 기록하였다. <아
세아학보(亞細亞學報)> 제1집에 발표된 일이 있으나 오자나 탈자가 많다.
연대가 분명한 책판목록 중의 하나에 <각도책판목록(各道冊板目錄)>이 있다. 편
자를 알 수 없는 필사본 1책 34장본으로, 현재 규장각에 소장하고 있다(奎
7926). 헌종(憲宗) 6(1840)년경에 필사한 것으로 짐작하는 것은, 권수제(卷首
題) 아래에 “道光庚子編”이라는 글이 있어서이다. 그 때 이전에 이 책을 편찬
한 것은 틀림 없으니, 날자는 훨씬 뒤에 추기한 것으로 보이가 때문이다. 내용
은 경기(京畿), 강원(江原), 충청(忠淸),황해(黃海), 전라(全羅), 경상(慶尙),
평안도(平安道) 등 7개도의 각 고을에 있는 책판을 기록한 것이다. 기술된 사항
은 서명(書名), 책수(冊數). 완결( 缺) 여부, 용입지(容入紙)의 수 등이다. 이
책의 내용은 <고서목록집성(古書目錄集成)> 속에 수록한 일도 있다.
<삼남제자백가책판소재주현기(三南諸子百家冊板所在州縣記)>는 부산대학교
류탁일(柳鐸一) 교수가 1965년에 <국어국문학(國語國文學)> 제28호에 발표함으
로서 알려지게 되었다. 류교수의 해제에 따르면 “어록해(語錄解)”의 책 끝에
붙여서 필사한 것이라 한다. 전라도(全羅道), 충청도(忠淸道) 그리고 경상도(慶
尙道)의 책판을 기록한 것이다.

7. 結言
앞에서는 우리나라의 책판목록에 대하여 고려시대부터 조선시대 말기까지의
책판목록들을 세기별로 나누어서 개략적으로 살펴 보았다. 특히 13세기 이전의
<대장목록>을 비롯한 경판목록, 14~15세기 및 16세기의 <고사촬요>, 17세기 이
후에 나타나기 시작한 단행본의 책판목록을 중심으로하여 살펴보았다. 이러한
책판목록들은 그 하나 하나를 개별적으로 분석하여 연구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고사촬요>를 제외한 개개의 책판목록에 대한 연구는 아직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이에 대하여는 다른 기회에 이어서 발표할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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