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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리브에 남긴 발자욱

[펴온글] 새로운 책의 시대... (정병규)

천리안에 있는 애서동의 한국애서가협회 방에서 가져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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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호:4/12 등록자:ZSBL 등록일시:95/12/05 22:49 길이:219줄
제 목 : 6/3; 정병규/ 새로운 책의 발견의 시대를 위하여

새로운 책의 발견의 시대를 위하여
새로운 책의 발견의 시대를 위하여
오늘의 책의 문화는 왜 종이에 주목하는가

정 병 규
북디자이너

1.
책의 시대는 끝나 가는가.
오늘의 책의 문화는 보는 입장에 따라, 책의 탄생 이후 그 존재에 대한 더없
는 가치의 혼란상태에 빠져 있다고 보여진다.
이미 오래전부터 제기되어서 서서히 그 호응도를 넓혀가고 있는 책의 시대가
끝나가고 있다는 생각은 많은 대중적 관심을 넓히고 있다.
날로 새로운 차원으로 개발, 보급되고 있는 뉴미디어의 도구들은 이러한 견
해들을 끝모르게 증폭시키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한마디로 말해 디지털 혁명시대에 살고 있는 오늘의 입장에서 보면 책의 운
명은 쇠락의 일로를 치닫고 있다고 볼 수도 있다.
이러한 생각에 동의하는 사람들은 쉽게 말해 서가에 놓여진 한 발 폭의 백과
사전이 시디롬 한 장 속에 다 들어간다는 사실에 흐뭇해하고 흥분하는 사람들이
다.
과연 시디롬 한 장과 수십 권의 백과사전은 같은 것일까.
뉴미디어 찬미론자들은 그들이 무엇을 잃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을까.
물론 아날로그 시대에서 디지털 시대로의 전환, 그리고 개인용 컴퓨터의 대
중화는 서양식으로 말해 구텐베르크의 활자발명과 인쇄술의 발전에 못지않는 혁
명적인 사실임에는 아무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이러한 디지털 혁명시대에서는 책의 존재이유가 점점 쇠락해 갈 것이라는 생
각은 언뜻 필연적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우리, 책을 만들고, 책을 사랑하고 하는 사람들로서 느끼는 안타까움
과 답답함은 또 무엇인가.
백과사전이 한 장의 디스크로 변한다. 그렇다고 책이 사라지는 게 아니냐고
걱정할 필요는 없다. 많은 우려에도 불구하고 사진과 회화가 공존하고, 텔레비
전과 영화가 공존하듯 백과사전과 디스크도 얼마든지 공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책장에 죽 늘어선 백과사전을 볼 때의 풍요함, 백과사전을 한 권 한 권 펴들고
볼 때의 그 느낌들은 책만이 줄 수 있는 인간적인 것들이다. 뉴미디어의 출현은
오히려 우리에게 〈책다운 책의 미학〉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 주는 기회가 되었
다.
� 책을 통하여 우리는 또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어떻게 책의 세계를 다시 생
각해야 하는가. 비행기 여행보다 기차나 버스 여행이 좋은 것은 느리게 달리면
서 온갖 세상구경을 한다는 것이다. 주변풍경을 보면서, 마주한 사람들의 표정
을 음미하면서 마음껏 인간적인 것들을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스피드하게 많은 양의 정보를 제공하는 뉴미디어에 비해 책을 읽는다는 것은
오히려 〈게으름의 미학〉이다. 갇혀진 공간의 비인간적인 요소를 떠나 느지막
하고 한가하게 인간 냄새를 느껴보는 것, 그것이 바로 책이 주는 인간다움이며,
책을 통해 펼쳐가야 할 책이 만들어내는 세상이다.
분명 이 시대는 책의 존재에 대한 새로운 자리매김을 시도해야 할 시대이다.
책의 또다른 탄생의 의미가 발견되어져야 하는 책의 발견의 시대에 우리는 있
다.

2.
납활자가 사라지고, 사진식자라는 만질 수는 없어도 쓰다듬어 볼 수 있던 활
자마저도 거의 소멸되어 버렸고, 이제는, 활자는 모니터 속에 깜박이며 여위어
가고 있다.
활자는 더이상 손을 전제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어두운 하늘의 별처럼 멀
리만 있는 게 아닐까. 아니 그렇게 느껴지지 않는가? 인간생활에 있어서 보편적
상징 기호인 문자는 활자의 꼴로 존재한다. 이 활자의 꼴도 최초에는 우리의 손
으로 느끼며 확인할 수 있는 입체로 된 것이었고, 그 대표적인 것이 납활자이
다. 그러던 것이 필름활자인 평면적인 것으로, 그리고 모니터 속에서 빛으로만
존재하는 형태로 점차 변하고 있다.
이는 활자가 인간의 촉감과는 점점 멀어지고 있다는 것, 정보의 알맹이만 추
상화될 뿐 정보전달에 있어 인간적인 특성인 〈감각〉의 문제는 날로 약화되고
있다는 것을 말한다.
책이라는 집에 종이라는 방에 오순도순 살고 있던 활자들은 모니터라는 집단
수용소에 갖혀 있는 것 같다. 생각도 감정도 없이, 삶의 기미도 없는 기계인간
들이 되어 무슨 거대한 힘에 의해 깜박이고 있다. 줄서라면 줄서고, 밀면 커지
고, 누르면 납작해진다. 부르면 나오고, 두드리면 깜짝 사라져버린다. 이제 〈
活字〉는 스스로의 에너지에 의해 무엇을 생성하는 힘을 잃어버린, 인간의 에너
지에 의해 활동하는 생명력을 빼앗겨버린 신세처럼 되어버렸다.
전기에 의해, 전기라는 에너지에 의해 그 현시성이 좌우되는 것, 그런 것이
다. 이것을 이제는 〈電字〉라고 부르기도 한다.(〈電子〉가 아니다.)

3.
종이가 사라지는 것에 비례해서 일의 효율성을 가늠하는 시대가 오늘이다.
한 대기업에서는 내년부터 모든 사무실에서 종이를 추방시킬 것이라고 당당히,
뽐내며 발표했다. 정보통신부 고관이 결재를 컴퓨터로 한다고 홍보를 하고 있
다. 간단히 말해 인간과의 접촉을 없애버린다는 것이다. 그래서 자연스레 만남
을 유지시켜 주던 종이가 사라지게 된다는 것이다.
서류는 말 그대로 종이로 되어 있다는 말이다.
문서,서류를 없애고 그 위에 놓여있던 기호만 들어내어 컴퓨터에 집어 넣고
그 흐름만 관리한다는 얘기이다.흐름의 양끝에는 실사구시적인 관계자만 앉아
있다. 서류도 종이이고 책도 종이로 되어 있으니, 서류가 사라지면 책도 따라서
사라져야 하는가. 고무신도 신이고 구두도 신이니 고무신과 구두는 같다는 논리
인가.
서류 위에 실린 기호가 일의 성취를 목적으로 하는 <일-기호>라면 책에 실
린 기호는 그런 것과는 구별되는 <생각-기호>일 것이다. 본질적으로 책에 실린
기호는 저자의 생각에서 태어나서 독자로 하여금 생각을 하게 하는 미완성의 기
호, 수신자의 참여 정도에 따라 그 전달성의 성취도가 가늠되는 즉 생각을 전제
로 한 기호일 것이다. 이러한 <생각-기호>를 우리는 살아있는 〈活字〉라고 부
른다.
생성이 멈추어버린 기호로서의 활자와 삶과 생각의 에너지의 활동성을 전제
로 한 활자를 구별해야 할 것이다. 그것은 기호, 활자가 어디에서 서식하고 있
느냐에 달려있다고 보아야 할 것 같다. 생명력있는 활자가 살아가는 곳, 그곳은
종이로 된 책이다.

4.
얼마든지 디스켓에 저장할 수 있는 내용으로 된 문서철과 책을 구별해야 하
지 않을까. 이 두 가지는 공통적으로 지금까지는 종이로 되어 있다. 그러나 전
자는 앞으로는 종이라는 물질의 표면에 몸담을 필연성은 없어져 버렸다. 그러나
책은 종이를 떠나서는 그 존재의미가 없어진다. 우리는 지금까지 문서철과 책을
같은 종류로 취급해 오고 있었다. 예를 들면 숫자로만 인쇄된 통계자료집, 책의
형태를 빌린 그런 것들은 이제 책이라는 형태에 머물기를 거부하고 있다. 그런
것들은 형태적으로만 책일 뿐이며, 진정 책이 아니라고 부를 수밖에 없는 상황
이 다가오고 있다. 필요에 따라 통계자료집은 책의 꼴을 띨 수도 있겠지만 그런
것들은 컴퓨터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 더욱 기능적이리라. 그러면 책의 세계는
점점 좁아지고 있는 것일까.
이러한 현상에 대해 오히려 책의 세계가 선명해졌다고, 책이라는 존재가 더
욱 분명해져 가고 있다고 생각하면 어떨까. 나아가서 책과 종이와의 관계가 더
욱 주목을 요하는 계기라고 받아들여져야 하지 않을까. 어떤 꼴로 어디에 존재
해도 관계가 없는 정보 위주의 책들이 떠나버린 책의 마을에는 진짜 책만이 남
게 될 것이다. 책의 세계는 그 허전함을 다시 책의 존재를 곱씹어보는 생각의
깊이를 요구하고 있다. 이러한 생각의 깊이를 위해서 우리는 지금까지 소홀히
여겨졌던 주로 활자화된 정보를 담고 있던 그릇이었던 종이에 대한 여러가지 속
성들을 재발견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다. 책이 종이로 만들어진다는
장점이나 그 특성을 떠나서는 이제 더이상 옛날과 같은 미디어의 상좌를 차지하
고 있을 수는 없다. 책이 아직도 기록과 보존의 대명사라고 고집할 수만은 없
다. 그러한 고집은 오만일 수 있으며 오히려 책의 본질을 가리우는 기능적이지
못한 사치스러운 발상일 수가 있다. 책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발상은 이제는
자만이다. 책을 읽지 않으면 죄책감을 느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 역시 책을 만
들고 파는 사람들의 오만이다. 책을 누가 얼마나 읽고 안 읽는다는, 단순히 겉
으로 드러난 통계적 수치로 우리의 독서문화에 대해 패배감을 주장하는 것도 옳
지 않다.
이러한 태도들은 뉴미디어 예찬론자들이 책을 경멸하는 오류와도 다르지 않
기 때문이다. 기계, 금속성으로만 존재하는 뉴미디어와 구별되는, 책만이 가진
인간적인 촉감들, 책만이 가진 인간다움을 회복해내는 총체적인 책의 존재를 구
성하는 특질들을 재확인하는 작업이 중요한 일이다. 디자인한다는 것, 넓게는
책을 만든다는 행위의 의미가 지금까지의 종이의 표면 위에서만 이루어지는 행
위로 인식되었다면, 이제는 그 의미를 넓히고 깊이를 더해야 한다. 종이의 모든
요소들을 의미화시켜야 한다는 말이다. 책의 완성도는 책을 이루고 있는 종이의
문화적, 예술적 완성도와 다름아닌 시대로 우리는 이미 발을 들여놓고 있다. 따
라서 종이에 대한 새로운 인식은 바로 새로운 책의 문화를 위한 출발점이며 또
북디자인의 출발점으로 재인식되어야 할 것이다. 특히 오늘의 열악한 우리 종이
문화를 염두에 두고 생각할 때 이 점은 안타깝게도 공허한 외침처럼 느껴질 수
가 있지만, 그럴수록 이러한 원론적 주장은 이제 모든 책의 문화에 관련하는 사
람들의 현실적인 상식으로 자리잡아야 할 것이다.

5.
종이가 책으로 형상화되는 과정 중에서 고려해야 할 여러가지 요소인 종이와
인쇄, 종이와 잉크, 재생지의 문제, 산성지와 중성지, 비펄프 종이, 환경과의
문제 등 어느 한 가지 중요하지 않은 것이 없지만, 앞에서 말한 책에 대한 새로
운 인식과 종이와의 관계를 주목하는 이 자리에서는 생각을 좁힐 필요가 있다.
그러면 우리는 종이의 새로운 존재감에 대한 인식, 무엇보다도 종이의 질감
에 주목하게 될 것이다. 크게는 지금까지 종이의 이용 부분은 단순히 종이의 표
면에 지나지 않았다고 말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종이를 떠나서 서식이 가
능한, 오히려 기능적인 측면에서 종이 이외의 서식지가 더욱 효율적인 정보들이
책이라는 형태로 즉 종이에 머물러 있었기 때문에 우리는 책과 종이와의 관계에
대해서 매우 혼란스러운 입장일 수밖에 없었다고 볼 수 있다. 예를 들면 이제는
시디롬화한 백과사전과 책의 형태로, 종이로 된 백과사전과 같은 것으로 생각하
고 있는 것이 대부분 사람들의 태도인데 이제는 이 두 가지를 다른 것으로 생각
해야 할 것이다. 백과사전적 정보의 의미는 어느쪽이든 같겠지마는 그 장소성의
차이를 우리는 이제 구별해야 한다. 책으로 된 백과사전은 종이로 되어 있다는
사실이 새롭게 인식되어야 한다. 여러가지 측면에서 이 두 가지는 비교될 수 있
고, 그 차이점과 특성들을 나열할 수가 있겠다.
그 중에서, 무엇보다도 손꼽아야 할 차이점은 손으로 만질 수 있느냐에 관한
것이다. 책은 손과의 관계를 떠날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책은 인간의 손
이 닿지 않고는 열리지 않는, 견고하게 닫힌 문과도 같은 엄폐성을 가진 존재이
다. 다른 어떤 미디어와는 달리 그것은 인간 스스로가 자발적으로 에너지를 투
여할 때까지 자신을 드러내는 법이 없다. 예를 들면 TV는 인간의 에너지를 필요
로 하지 않는다. TV는 인간을 소외시킨다. 책은 인간의 손이 거기에 닿아서 그
세계를 열기 시작하면서 물질로서의 무표정한 상태를 뛰어넘기 시작한다. 책,
종이 그리고 손이라는 관계에서 우리는 종이의 피부감 -즉 종이의 질감을 말하
지 않으면 안된다. 종이의 질감이 모여서 책은 살아 있는 형태를 취한다. 책은
손의 기능을 회복하는 입장에서 만들어져야 한다. 잉크로 종이 위에 찍힌 활자,
기호(Figure)에만 관심을 한정해서는 안된다. 그 밑에 있는 물체, 종이(Ground)
에도 충분히 관심을 두어야 한다.
출판물 생산에 있어 세계 10위라는 우리나라, 그러나 책이 살아남기 위한 환
경의 발전은 너무도 더디다. 아직도 단 몇가지의 종이로만 그 많은 종류, 부수
의 책을 찍어내는 나라가 얼마가 될는지, 한지라는 둘도 없는 종이를 만들던 나
라로서는 여간 안타깝고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6.
손으로 직접 종이, 책을 만질 때 우리는 종이 속에 숨겨져 있는 은밀한 자연
감을 느끼게 된다. 모니터 속에만 존재하는 디지털 타입- 컴퓨터 활자들과 종
이 위에 인쇄된 마치 스스로 존재를 주장하는 듯한 활자들과의 차이점은 물론이
고, 이 정보들이 살고 있는 집인 종이의 질감까지를 우리는 이제 책의 세계의
한 특징으로 다시 인식해야 할 것이다. 나무→ 펄프→ 종이→ 책의 생산과정을
거꾸로 짚어갈 때 우리는 우리의 손과 나무의 생명력의 세계인 자연을 느끼지
않을 수가 없지 않겠는가. 이러한 책이란 존재의 환기력의 원초는 바로 종이의
질감에서부터 시작된다.
인간의 문명의 발달에 따라 가장 퇴화된 감각은 일반적으로 촉각으로 말해진
다. 인간은 더 편안한 삶을 끝도 없이 추구하고 있다. 그 편안함을 추구하기 위
해 가장 우선적으로 벌이는 행태가 정보의 다량 소유이고 또한 그 수단인 갖가
지 종류의 미디어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그러나 새로운 온갖 미디어들은 보는
것 아니면 듣는 것에만 치중함으로 인간에게 〈감각의 분화〉라는 결과를 초래
하였고, 그럼으로써 인간들은 사물에 대해 종합적으로 감각하는 능력을 상실하
고 있다.
특히 그 중에서도 손으로 만지며 느끼는 감각, 즉 촉각은 가장 퇴화된 감각
이 되었다. 그것은 정보의 습득이 눈으로 읽고 귀로 듣는 쪽으로만 치우쳐 손이
수고해야 할 역할은 상대적으로 퇴화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촉각의
새로운 부활에 대한 무의식적이면서도 인간적인 욕망은 종이의 문제에만 국한된
것은 아닐 터이지만, 지금까지 소홀히 해왔던 책의 피부성, 종이의 질감에 대한
새로운 인식은 새로운 책의 시대를 위해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독자와 책 사이엔 손을 통한 촉감이 존재한다. 눈으로 읽는 동시에 손으로는
한 장 한 장 넘겨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책은 인간이 가지고 있는 가장 〈인
간적인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 다른 뉴미디어들은 전기라는 에너지가 필요하
지만 책을 읽기 위해서는 인간은 스스로의 노동을 통한 에너지를 직접 투여해야
만이 손과 잉크 묻은 종이와의 만남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렇게 이
루어진 만남이라야 우리는 책이 가진 잠재력을 무한히 체험할 수 있다. 이렇듯
사람의 손길이 닿는 순간, 활자매체가 생명력을 띠는 책의 매력, 이러한 감, 이
러한 맛이 〈책맛〉이다. 책은 우리에게 늘 인간적이기를 요구한다. 책은 언제
어디서나 두 손으로 소유할 수 있는 친근한 형태로 존재하면서 따뜻한 매체로서
의 체온이 숨겨져 있다. 광물성의 차가운 느낌을 가진 컴퓨터나 텔레비전에는
체온이 없지 않은가.
지금까지 말한 것은 종이의 〈접촉적 질감〉이다. 그 외에 종이는 그 표면,
종이마다의 표정에서 오는 〈시각적 질감〉도 가지고 있다. 시각적으로 전달되
는 질감은 새로운 종이 개발, 종이 디자인에 매우 중요하게 응용되는 개념이다.
최근 외국에서의 종이개발상황을 고려해 볼 때 이제 막 시작한 우리 종이 개
발의 활성화를 위해서 이 시각적 질감은 관심을 두어야 할 요소일 것이다. 다양
한 종이의 종류는 이제는 이러한 시각적 질감의 다양화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
까 근년 우리의 책 디자인, 특히 커버 디자인에서 많이 응용되는데 이러한 시각
적 질감이 강조되는 디자인 경향은 단순히 고가 종이 사용 불가라는 출판사측의
제작비 한계 때문이라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경향은 크게 보아 질감,
종이의 질감 중시의 표현으로 그 흐름을 잡아야 할 것이다. 평면에서 이루어지
는 북 디자인의 작업이 이제는 종이의 질감의 세계를 중시하지 않으면 안되는
현실은 디자이너로 하여금 단순한 조형적 상상력을 넘어 물질적 상상력으로 하
도록 옥죄고 있다. 그래픽 디자인에서 거의 유일하게 독립된 실체, 독립적 상품
으로 완성되는 책 디자인에 있어서 종이를 매개로 한 물질적 상상력은 앞으로의
책의 시대를 넓히고 깊게 하는 데에 있어서 분명 새로운 감수성으로 주목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종이로부터 출발되며, 특히 종이의 질감의 새로운 차
원으로의 형상화는 앞으로의 북디자인의 중요한 디자인 방법론의 기본임은 물론
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