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 서 명 : 세계화 시대와 양서 읽기 운동
원 저 자 : 서평문화 제17집 1995년 3월
집 필 자 : 이한구
세계화의 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다. 이 바람은 우리가 일찍이
경험하지 못한 바람이다. 세계사의 추세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이 바람이 역사상의 그 어떤 바람보다도 거칠고
파괴적이라는 것을 예감하고 있다. 이 바람은 먼저 지금껏 신성시
되어 오던 국경들을 무너뜨리면서, 세계를 하나의 촌락으로 만들고
있다. 동시에 국적없는 상품들이 세계를 뒤덮고 센터가 없는
'지구기업'이 등장한다. 이것이 소위 '글로벌리제이션'이며
세게화이다
이것은 단순한 변화의 바람이 아니다. 새로운 문명의 탄생을
알리는 그런 바람이다. 이 바람은 우리가 맞설 수 있는 그런 바람이
아니다. 아무도 여기에 정면으로 맞설 만큼 강하지 못하다. 물론
그렇다고 이 변화의 바람을 무조건 환영만 한다 해서 될 일도 아니다.
어떤 사람들은 세계화만 되면 만사가 저절로 잘 해결될 것처럼
생각한다. 말하자면 지금까지 일이 제대로 안풀린 것은 우리가 문에
빗장을 걸어 놓고 살았기 때문이고, 닫았던 문의 빗장을 풀기만 하면
큰소리치며 살아갈 수 있다는 식이다.
이런 생각들이 전혀 터무니 없는 것은 아닐 수도 있다. 세계화의
서곡인 우루과이 라운드가 타결될 무렵 손익계산서가 작성되었을 때
우리의 농촌이 입을 손실을 감안해도 전체적인 손익 대차대조표는
대체로 우리의 이익쪽으로 계산되었었다. 세계화에 대한 소박한
기대는 아마 여기에 기초하고 있는 듯이 보인다.
그렇지만 이런 생각의 위험성은 <무한경쟁에서 우리가 이겼을
때>라는 대전제를 망각하고 있는 데 있다. 세계화란 결국
개별국가들이 제각기 쳐놓았던 울타리를 없애는 과정이 될 것이다.
이때 외국과의 경쟁이 종전과 비교해서 훨씬 더 치열해지리라는 것은
쉽게 추측할 수 잇다. 무한경쟁이란 표현이 이를 잘 상징한다.
무한경쟁의 시대에 이익을 얻을 수 있는 자는 이 경쟁에서 승리한 자
일 것이고 승리자는 경쟁력이 앞선자라는 점도 명백하다. 우리의
경쟁력은 어느 정도인가? 앞으로 닥쳐올 무한경쟁의 파도를 무사히
넘어 살아 남을 수 있을까?
우리는 아직 세계화만 이야기할 뿐 이 세계화가 갖는 비정하고
냉혹한 의미를 충분히 음미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무한경쟁은
아마도 약육강식의 처절한 싸움이 될 가능성이 높다. 무한경쟁을
유한경쟁, 즉 제한적 경쟁과 비교한다면 승자가 모든 것을 차지하는
게임으로 규정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한명만 뽑는 국회의원 선거에서 2
등은 아무 소용이 없는 것과 흡사하다. 제한적 경쟁은 불리한 쪽이
경쟁에 응하지 않을 수도 있고 여러 가지 조건을 붙여 경기를
유리하게 만들수도 있다. 그러나 무한경쟁에는 그러한 조건들이
통하지 않는다. 승자만이 살아 남는다.
세계화 시대의 생존전략은 다양할 수 있겠지만 책과 관련해서 보면
양서 읽기가 하나의 좋은 전략이 될 것으로 생각된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경쟁에 이길 수 있는 길은 자신을 알고 동시에 상대방을
아는 데 있다. 그런데 우리 자신이나 상대방을 아는 데 있어서 좋은
책보다 더 나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양서 읽기는 세계화
시대의 훌륭한 생존전략일 수 있다.
책은 단순한 종이 묶음이 아니다. 그것은 죽은 사물이 아니라 살아
있는 생명이다. 책은 문명 그 자체이기도 하다. 전쟁이 나서 우리의
도서관까지 모두 다 파괴되었다고 생각해 보자. 우리가 지금과 같은
문명을 건설하기 위해서는 아마도 과거에 소요되었던 시간만큼의
시간이 소요될 것이다. 그렇지만 다행히도 도서관만은 파괴되지 않고
보존되었다고 하면, 문명의 재건에 그렇게 많은 시간이 소요되지는
않을 것이다. 과거의 경험축적이 활용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책 중에서도 정선된 책이 양서이다. 그것은 여러 사람들에
의해 높이 평가되고 있는 정선된 작품을 말한다. 세상에는 수많은
종류의 책이 있다. 단편적인 지식이나 개인의 체험을 기록한
것에서부터 포괄적이고 일반적인 지식이나 인류의 보편적 경험과
사색을 전달하는 것까지 다양하다. 좋은 책은 가치있는 정보를
우리에게 전달한다. 그것은 과거의 축적된 지식일 수도 있고, 새로운
첨단적 지식일 수도 있다.
세계화의 시대에는 국경이 없다. 국내의 양서 뿐만 아니라 외국의
양서도 읽지 않으면 안된다. 풍부한 내용을 가진 책들을 통해 우리는
우리 자신 뿐만 아니라 상대방에 대해서도 이해의 폭을 넓힐 수 있고
교류를 심화 시킬 수 있다.
양서 중의 양서가 고전이라 할 수 있다. 고전이란 단순히 오래된
책이 아니다. 고전은 작가가 살았던 시대나 그 지역에서만 평가되는
것이 아니라 시공을 넘어서서 그 가치가 인정된다는 점에서, 그것은
인류 보편의 체험과 사상의 결정체이며 영속적인 가치를 갖는다고 할
수 있다. 우리의 개인적 정신은 극히 유한하고, 인류 전체의 정신과
비교해 보면 그 존재는 무에 가까울 정도로 미미하다. 그것은 거대한
강물을 이루는 작은 한 물방울에 비유될 수 있다. 그렇지만 개인적
정신은 인류전체의 정신과 연결될 때 자신의 한계를 뛰어 넘어 성장할
수 있다. 그렇지만 개인적 정신은 인류 전체의 정신과 연결될 때
자신의 한계를 뛰어 넘어 성장할 수 있다. 우리의 개인적 정신들은
인류 전체의 정신이라는 생명의 강과 합류될 때 힘찬 활력으로서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다.
역사의 굽이마다 그 진로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 고전들이 있다.
로크의 「정부론」, 프로이트의 「정신분석」, 다윈의 「종의 기원」
등이 그런 실례이다. 이들은 모두 당시까지의 낡은 사고 방식의 틀을
깨트리고 새로운 사유지평을 제시한 것들이다. 우리가 만약 이런
작품들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역사를 제대로 이해할 수 없고,
현대사회도 이해할 수 없게 될 것이다.
고전에 대한 이해 없이는 새로운 창조 역시 불가능 할 것이다.
창조란 기초가 튼튼할 때만 가능하며, 그 기초는 지금까지 축적된
전통이 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전통의 핵심인 고전은
전통을 넘어서는 창조의 과정에 대해서도 필수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오늘날의 젊은 세대들은 고전을 기피하는 경향이
매우 강하다. 그들은 감각적이고 즉흥적이며, 깊이 음미하고 생각하는
것 자체를 싫어한다. 이러한 경향은 물론 그들만의 책임이라 할 수는
없을지 모른다. 텔레비전이나 컴퓨터가 더욱 친숙하게 느껴지는
오늘날의 문화환경이 그들을 그렇게 만들었는지 모른다.
이런 상황은 결코 바람직한 상황이 아닐 것이다..세계화의 시대
우리의 생존은 우리가 창조하는 문화의 질에 달려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런 관점에서 양서 읽기를 세계화 시대에 대비하는 국민적
운동으로 전개해 보는 것도 의미있는 일이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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