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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리브에 남긴 발자욱

[읽기자료] 뉴미디어시대의 독서


도 서 명 : 뉴미디어시대의 독서
원 저 자 : 서평문화 제19집 1995년 9월
집 필 자 : 이중한

뉴미디어시대의 독서
- 책 읽기의 경쟁자는 누구인가 -

이중한 : 서울신문 논설위원·출판평론가

뉴미디어 시대는 빠르게 전진되고 있다. 컴퓨터 시대라는 말마저
지나가고 있다. 이제는 텔레퓨터라고 말한다. 텔레비전 수상기와
컴퓨터 단말기는 양자를 구분하기 어려울 만큼 외양이나 기능이
유사해지고 있다. 컴퓨터의 기능은 결국 컴퓨터보다 먼저 탄생했던
모든 매체들을 자신의 네트워크를 통해 통합적으로 전달되게 하는
것을 향해서 가고 있다. 이미 가시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상태로서
전화, 방송, 비디오들이 컴퓨터 네트워크를 통해 유통되고 있다. 이
상황을 인정한다는 뜻의 말이 곧 텔레퓨터이다.

텔레퓨터의 세계는 사람들의 삶을 변화시키고 있다. 언뜻 보면
세계를 넓게 해주고 일상적 삶을 편리하게 해주는 것 같다. 인터넷은
이제 세계시장 속에서 홈쇼핑을 가능하게 하고 있다. 전세계의
상품들을 자신의 거실에 앉아 24시간 동안 그 어느 때던지 구입하게
해주는 것이다. 이 기능은 앞으로 더욱 더 간편하게 변할 것이다.


자식과 정보의 소유와 이동에서도 이 양식은 같다. 부지런한
사람은 현재 굳이테크노스릴러 소설같은 것을 읽지 않고도, 미
국무성자료의 일부까지를 어느날 밤 재미삼아 꺼내어 볼 수 있다.
공개되는 자료라면 세계 모든 곳에서 매일 발표하는 새 연구업적들도
몇 달씩 저널을 기다릴 이유가 없이 즉시 프린트 자료로 내것처럼
들추어 볼 수가 있다.

그러나 이 열려 있는 세계의 편리함이란 실재는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무의미한 것일 수 있다. 사람들의 평균적인 삶의
감성은 단지 많다는 것에는 오히려 혼란을 일으킨다. 산더미처럼
많은 물건 속에서는 대부분 어떤 것도 고르지 못하며 갖고 싶다는
생각도 잃어버린다. 지식이나 정보에서는 더욱 그렇다. 지식의
산더미는 혼돈과 마비를 일으킬 뿐이지, 그것이 지혜로움과 질서의
체제를 알려주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텔레퓨터의 광활한 세계는
환상적 이미지일 수는 있어도 실제로 삶의 본질을 바꾸고 있는 것은
아니다.


데이타베이스를 비롯한 컴퓨터 하드웨어에서 우리가 또 오해해서
안되는 것은 컴퓨터 하드웨어 속으로 들어갔다고 해서 그 들어간
소프트웨어가 완전히 새로운 컴퓨터적 소프트웨어가 되는 것은
아니라는 데 있다. 영화나 미술이나 음악들이 컴퓨터로 유통되낟
해서 영화·미술·음악작품 그 자체가 전혀 다른 예술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창조는 여전히 변함이 없는 기존 형식속의 창조일
뿐이다.


그러나 뉴미디어에 의한 텔레퓨터의 체제가 변화시키고 있는 것이
있기는 있다. 이는 뉴미디어들을 사용하게 되는 시간의 양이다.
미디어가 새로 태어날 때마다 인간의 시간이 하루 25시간이나



26시간으로 늘어나지는 않는다. 사람들의 매체를 사용하는 시간은 그
최대치가 1일 5시간내외이다. 이 5시간을 매체끼리 나누어 가질 수
밖에 없다. 때문에 더 잘 수용되는 매체의 시간이 늘어나게 된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리고 지식과 정보에 있어서도 더 빠르게 자료를 찾아
준다는 보장이 있다면 그 찾아주는 매체를 사용하는 시간이 늘어나게
될 것도 사실이다.


이 틈바귀에서 가장 수용하기 힘들고 가장 많은 시간을 소요케
하는 가장 오래된 미디어 <책>과 <책 읽기>는 지금 더욱 더 밀려나고
있다는 것을 부정하기는 어렵게 되었다. 또 한편 뉴미디어는 영상적
감각을 확대시킨다. 이 역시 고전적 매체인 <책>으로서는 경쟁을
하기가 힘든 조건이다 .그래서 자주 책과 출판의 위기가 운위된다.
세계적 저명 출판사의 편집자들이 <이제는 문학적 표현으로 쓰여진
소설은 출판하기가 어렵게 되었다>라고 말하는 지경에까지 온 것도
사실이다. 왜인가. 독자들의 감각이 나날이 영상적이 되어서, 책으로
된 소설도 영상적 감각으로 쓰여야 팔리게 되어가고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이에 준하는 소설들이 벌써 나오고 있다. 최근 베스트셀러가 되고
있는 대중적 소설들은 한 장(章)이 2페이지에서 4페이지를 넘지
않는 형식을 보이고 있다. 영화의 한 장면 처럼 한 장이
수십페이지씩에 이르면 사람들이 지루해서 끝까지 읽어주지를
않는다는 것이다. 이 점에서 책의 전통적 권위와 가치가 훼손되거나
파괴되는 것은 일단 대중적 읽기와 대중적 도서에서는 인정해야 할
것 같다.


그러나 책과 독서는 좌절될 것인가. 결코 그렇지 않다. 책 읽기는
개별적으로 자기 자신의 사고력과 상상력을 키우게 하는 역량을 갖고
있다. 그래서 책 읽기야말로 인간 사회에 있어 가장 완전한 자유라고
말해 왔다. 이에 비해 모든 영상물은 이미 누군가가 선택하여 결정해
놓은 상상력일 뿐이다. 또 하나 책은 내것으로서의 소유라는
감수성을 갖고 있다. 내 손에 쥐고 내 정서적 감촉으로 가질 수
있다. 때문에 책의 용지와 장정이 책의 판매에 영향을 준다. 이
출판물 그 자체의 독자적 창조성은 어떤 타매체가 새롭게 나타나도
사라지지 않고 버려지지 않을 가치이다.


그러나 읽기를 통한 사고력이나 상상력의 증진과 책 자체의 문화적
감수성은 생래적인 것이 아니라는 데 문제가 있다. 이것은
교육되어져야 하고, 강요된 교육을 통해서만 습득되는 감수성이다.
5백여년 전 인쇄 기술이 나타났을 때, 그 이전까지 있었던 구술에
의한 커뮤니케이션과의 심각한 긴장관계가 야기되었을 것이라는
추정이 있다. 하지만 인쇄물의 역사는 출발되었다. 마찬가지로
영상매체가 지금 인쇄매체와 갈등관계를 갖게 됨에 있어 이 역시 또
한번 겪는 문명적 긴장의 시기라고 볼 수도 있겠다. 그리고 이
긴장의 전쟁 속에서 영상이 이길런지 문서가 이길런지를 누구도
가늠하기는 힘들다.


그러나 현재로서는 <창조적 상상력> 만들기가 인쇄된 책에 의해서
더욱 확실하게 가능하다는 견해까지 무너지고 있지는 않다. 때문에
뉴미디어가 발전되면 될수록 읽기교육이 강조되어야 한다는 견해가



커지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우리의 경우이다. 우리는 읽기교육에
대한 교육적 신념을 갖고 있지 않다. 지난 수십년 간의 교육적
경쟁형식은 읽기능력을 묵살하고 이를 통해 자신의 개별적
감성키우기를 억압하고 단지 통일된 단 하나의 답안만을 외우게
하는데 열중해 왔다.


이 결과는 심각하다. 오늘의 영상적 매체들에 너무 쉽게 몰입하고
함몰하는 감수성을 만들어 놓게 된 것이다. 더 난처한 것은 이
현상을 보다 구조적으로 파악하려는 관점이나 시도가 없다는 것이다.
그저 '독서를 해야한다' 라는 고전적, 교양적 요구의 도식화가 있을
뿐이다. 하지만 교양은 지식과 함께 뉴미디어가 더 잘 알려줄 수도
있다. 백과사전은 CD-ROM을 사용하는 것이 실제로도 현명하다.
상당히 많은 명작소설들도 일주일씩 걸려 읽기보다 두시간짜리
비디오를 보는 것으로 충분할 수 있다.


그렇다면 계속 '읽어야 된다' 라고 말하는 독서의 의의와 그
내용은 무엇인가. 결국 내 손에 쥐고 명상하듯 읽을 책, 나의 사상을
내것으로 정리하고 창조해낼 수 있는 촉발제로서의 읽을 책, 그리고
진정으로 상상력을 자극하고 상상력을 상상케 해주는 책, 그러한
책들을 읽어야 한다라고 말해야 한다. 이 책들은 특별히 정선되고
끊임없이 재평가되는 과정 속에서 교육이 책임져야 할 부분인
것이다.

1990년 스웨덴에서 전자매스미디어의 영향에 관한 유의할만한
연구가 하나 이루어졌다. 스웨덴은 유럽에서도 대표적으로 읽기능력
키우기가 아주 잘 교육되어져 온 나라이다. 1989년기준으로
스웨덴인(9_79세)의 매체이용 인구비율은 다음과 같이 나타났다.
라디오 77%, TV 76%, 잡지·저널 24%, 축음기 20%, 주간지 19%,
만화책 11%, 비디오 9%등이다.


이들에 대한 총매체 소요시간은 1일 평균 5시간45분. 이를 또
비율로 보면 라디오 38%, TV 30%, 카세트 7%, 조간신문 6%, 서적 5%,
축음기 4%, 석간 타블로이드 3%, 잡지·저널 2%, 주간지 2%, 비디오
2% 만화책 1%이다. 스웨덴에는 아직도 읽기매체에 19%, 주1일 1시간
6분이 쓰이고 있다는 결과이다. 이 연구 결과는 그러나 확신적인
것은 아니었다. 스웨덴에 있어 1990년까지는 전자매체의 영향이
나타나지는 않았다였을 뿐이었다.


스웨덴의 경우에서 우리가 해석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 읽기능력이
있는 곳에서는 뉴미디어의 영향이 지극히 완만하게 진행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읽기가 계속되는 속에서 읽기를 통한 창조가 계속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책 읽기를 멈추게 하거나 또는 경쟁하는 매체는 사실상 있는 것이
아니라고 할 수 있다. 책 읽기 능력은 그 자체가 독립적이며 변하지
않는 가치를 가진 특별한 능력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훈련되지
않으면 조만간 영상적 삶과 영상적 가치로만 살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