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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리브에 남긴 발자욱

][ [강연] 실물장서, 아직도 중요한가 (2)

교수B : 지금이 어느 때인가? 이 효율성과 스피드의 시대에, 전
자매체의 수월성이란 것이 분명 판명이 난 상태인데 자네처럼 그
것의 위치를 그렇게 깎아내려도 되는 걸까? 자네는 전자매체의 위
력을 너무 과소평가하는 것 아닌가?
교수A : 내 자네 앞에서 유식한 척 한번 해 봐야겠네. 모르티머
애들러(Mortimer Adler)라는 사람이 있다네. 그가 말하는 '마음의
네 가지 자산(the four goods of the mind)'이란 것이 있다네. 애
들러는 인간의 마음은 정보(information), 지식(knowledge), 이해
(understanding), 지혜(wisdom)로 나누어지며, 지혜쪽으로 갈수록
보다 큰 가치를 가지는 것으로 설명했어. 여기서 정보는 사실 혹은
유용한 정보가 될 수 있는 원시적인 요소인 데이터와 이 데이터가
유용성을 갖게 된 정보로 나누어질 수 있다고 보았어. 이러한 정보
가 의미를 갖게 변형된 것이 지식이며, 세계의 시각과 개인적인 전
망이 통합된 지식, 즉 완전히 인간의 마음속에 존재하는 것을 이해
로 정의했어. 그리고 지혜는 완전하며 일반적인 이해에 의해 이루
어지는 것을 말한다고 했네. 그러나 오늘날은 가장 작은 가치를 지
닌 정보가 핵심처럼 되어 있으며, 이 때문에 미래도서관의 논의가
정보의 신속한 전달에만 치중하게 된 것이라는 설명일세.
여기서 중요한 점은 도서관은 데이터와 정보의 단순한
보관소 이상이란 걸 우리가 충분히 인식해야 한다는 점일세. 도서
관은 금방 나온 뉴스나 원자료 보다는 누군가가 조직해 놓은 정보
를 주로 다루는 곳으로 보아야 할 것일세. 데이터와 정보를 보관하
는 것이 도서관의 중요한 기능이기는 하지만 분명 전부는 아니라
는 거야. 도서관은 학습의 장소이며 그 안에서 지적으로 변하는 곳
일세. 또한 도서관은 오락과 뜻밖의 횡재와 현실문제의 본질을 이
해하게 하는 계기와 모든 인간정신의 진수를 제공해 주는 곳이란
말일세.
물론 전자적 커뮤니케이션과 비전자적 커뮤니케이션의
역할은 분명 구분이 되지. 숫자나 시각정보 등의 데이터나 작은 단
위의 정보들은 전자적 방법이 효율적이며, 지식과 대규모의 축적된
정보의 전달매체로서는 인쇄매체가 탁월하다고 보아야지. 따라서
도서관은 단기적인 정보의 빠른 유통에만 큰 의미를 부여하려는
것에서 벗어나, 사회의 기록을 보존하고 유용한 기록이 되게 해야
한다고 보는 거야.
한편, 종이와 모니터 상의 텍스트를 비교해 보아도 전자
매체의 효율성을 장담하기 어려워지지. 모니터를 바라본다는 것은
그 빛으로 인해 쉽게 피로함을 느끼게 되며, 해상도 또한 인쇄매체
에 비해 훨씬 떨어지지. 그리고 스크린으로부터의 독서는 인쇄지
면으로 부터의 독서보다 몇 배 더 느리며, 이해하는 데도 어려움이
따르지.
이에 반해 인쇄매체는 분해와 재생산을 위한 가장 유
용한 매체라고 할 수 있어. 종이는 완전히 랜덤하게 접근할 수 있
으며, 고도의 해상도를 갖고 있지. 또 갖고 다니기 쉽기도 하지. 따
라서 종이는 여전히 고도의 사고 내용을 전달하는 수단이 되고 있
지. 책은 이러한 이유로 살아남을 것이고 계속 번영할 것이라는 것
을 알 수 있어.
이와 함께 전자매체는 신빙성의 문제도 내포하고 있어.
즉 전자매체에서 그 확실성은 어떻게 보장받을 것인가? 인터넷상
데이터의 익명성은 또한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정보원에 대한 신
뢰성의 문제와 질적인 면에서의 의구심은 어떻게 해소할 수 있는
가 따위의 문제도 함께 풀려야 할 과제로 남아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일세.
교수B : 듣고 보니 자네 말에도 수긍이 가는 점이 많으네. 그렇
지만 나는 경제성의 면에서는 아무래도 전자매체가 단연 앞설 것
이라고 보는데, 자네는 그 점에서도 인쇄매체를 두둔할 셈인가?
교수A : 미안하지만 그렇다네. 많은 사람들이 경제성을 이유로
들며 인쇄매체가 사라질 것이라고 말하지만 엄격히 따져 보면 설
정이 잘못되었거나 빠뜨린 부분이 많은 경우가 대부분이라네. 한
예로서 전자정보를 얻는데 드는 비용이 '기본적으로 무료'라고 생
각하기 쉽지만 결코 그런 것은 아닐세. 전자정보를 이용하기 위한
하드웨어에 관련된 비용만 보더라도 무시하기 어렵지. 컴퓨터 하드
웨어의 비용은 낮아지고 있지만, 실제로 그것의 발전에 따른 상대
적인 비용은 오히려 더 높아지고 있다는 점은 누구나 공감하는 부
분이 아니겠는가. 또한 전세계의 기록된 정보의 5%정도만이 전자
형태라는 것과, 그 양이 증가하고는 있지만 인쇄매체를 전자매체로
변환하는데 드는 엄청난 비용의 문제와 시간, 저작권, 신뢰성 등의
제한을 크게 받는다는 점이 전자매체의 경제성 논리를 받아들이기
어렵게 만들고 있어.
사람들은 인쇄의 경제성에 대해 잘못 설정된 가설을
가지고 인쇄가 사라질 것이라고 보고 있어. 인쇄매체의 실질적인
이점과 경제성의 문제에 대한 올바른 판단은 결코 전자출판이 비
용절감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인식시켜 줄 것이네.
전자매체가 경제적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정보량의
폭발적인 증가를 또 하나의 근거로 제시하곤 하지. 그러나 정보의
홍수라는 말은 과장된 것이며 오히려 쓸데없는 정보가 너무 많다
는 사실을 간과한 것이야. 정보의 폭발이라는 말은 사실은 정확하
게 말해 데이터의 폭발이라고 해야 옳을 것이네. 이것은 쓸데없는
데이터가 매5년마다 두배가 될지는 모르지만 유용한 정보는 오히
려 수없이 쏟아지는 데이터의 처리에 밀려 줄어들고 있을지도 몰
라. 또한 데이터의 과대생산이란 오늘날의 일만은 아니지 않겠는
가.
교수B : 자네 이제 보니 대단한 전통주의자일세. 자네 말대로 라
면 21세기가 되어도 단위 도서관의 위치나 실물장서의 가치는 오
늘날과 별반 차이가 없을 것 같은데? 나는 별로 할말이 없구만. 어
디 자네 이야기나 더 들어보지.
교수A : 자네가 나를 조금 전에는 '첨단에 둔감한 반동'이라고
하더니 이제는 또 '전통주의자'로 몰아 세우네 그래.
교수B : 아니, '반동'이야기는 서울에 그런 말이 있더란 거지.
내 말이 아니야. 자네 말 계속해 보게.
교수A : '전통주의자', '반동' . 자네들 좋을 대로 명명하게나.
그러나 그다지 반갑게 들리는 칭호는 아닐세. 기어이 내게 어떤 타
이틀을 하나 붙이겠다면 나야말로 '본질주의자'라고 할 수 있지.
첨단이기 때문에 따라가야 하고 서양이기 때문에 따라가야 하는
건 아니잖아. 일의 본질을 따라가야 하는 것 아니겠나.
그럼 자네가 운을 뗀 대로 21세기 도서관 이야기로 넘
어갈까.
기술광신주의자(technolust)라는 말이 있지. 이들은 가장
최신의 것에 대한 과도한 환상과 새로운 것에 대한 터무니없는 확
신을 그 특징으로 하는 사람들이야. 도서관에서의 기술광신주의자
들은 전자매체는 인쇄매체보다 우위에 있으며, 과학기술 자료가 인
문사회과학 자료보다 더 고급의 지위를 가지는 것으로 인식하는
사람들이야. 이러한 인식은 도서관의 예산결정에 영향을 미칠 뿐
아니라 그 강한 위력으로 사려 깊고 경험 많은 도서관인들까지도
압도하여 그들로 하여금 미래에 대해 지나치게 단순화 해 버리는
우를 범하도록 만들지. 앞에서 자네에게 소개한 크로포드와 고어먼
의 책에 보면 기술광신주의가 문제되는 이유들이 설명되어 있지.
첫째, 미래의 새로운 기술과 현존하는 기술의 도래에 대해 아주 극
단적인 예측을 하며, 그 결과로 합리적인 계획을 어렵게 만든다.
둘째, 다른 관점에는 귀를 쉽게 기울이지 않는다. 다른 관점은 낡
고 퇴보된 것으로 간단히 처리해 버린다. 셋째, 실제 사회의 경제
를 잘 이해하지 못한다. 넷째, 기술이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고 믿으며, 새로운 기술에 뒤떨어지지 않고 따라가는데 아주 능숙
하다. 그러나 일상의 문제를 처리하기 위하여 그러한 기술을 사용
하는 데는 그다지 능숙하지 않다. 이런 것들이야. 21세기의 도서관
이 이들에 의해 주도된다면 그야말로 큰일이지.
크로포드와 고어먼은 같은 책에서 '도서관의 적들'이
라는 표현도 사용하고 있어. 인쇄매체는 부적절하고 소멸될 것이라
고 여기는 미래론자들, 도서관직을 평가절하시키는 도서관 내부의
사서들과 문헌정보학 교육자들, 그리고 사서를 정보전문가로 바꾸
려는 사람들-사서를 정보전문가로 부르는 것은 정보제공이 사서들
의 유일한 기능이란 것을 암시한다-이 바로 그들이라는 거야. 현
재 도서관과 사서가 장서와 관련하여 직면해 있는 복잡한 문제를
하나의 문제로 뭉뚱그려 단일의 거대해법을 제시하는 식의 입장을
취하는 사람들도 여기에 포함된다네.
내가 너무 막말을 하는 건지도 몰라. 그런 점이 있다면
용서하게나. 내 보기에는 우리 한국의 도서관인들 속에도 이미 '기
술광신주의자'라든가 '도서관의 적들'이 많이 나타나 있는 것 같
애. 나타났다는 정도가 아니라 아주 득세를 하고 있는 것 같아. 그
래서 그들은 가뜩이나 어려운 도서관문제를 더욱 어렵게 하고 있
는 것 같아. 그들의 사보타지 현상이 이만 저만이 아닌 것으로 보
여. 가뜩이나 어려운 처지에 있는 현장사서들의 힘이나 빼고 말이
야.
내 결론은 이러하다네. 성공적인 21세기 도서관을 바란
다면 인간과 지역사회를 위한 인간적인 봉사가 도서관이 존재하는
근본이유라는 점과 데이터와 정보가 아닌 지식과 이해가 도서관의
주된 관심사라는 점을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이네. 이용자들은 지
금이나 그 때나 단순한 정보와 사실에 대한 전달이 아니라, 사서의
자상한 도움을 필요로 한다고 보네.
교수B : 자꾸 듣다 보니 자네 이야기에도 일리가 있어 보이네.
깊이도 느껴지고 말이야. 그럼 결론적으로 자네식대로라면 미래의
도서관에도 실물장서(physical collection)가 가득차 있을 것이다 그
런 말씀이지?
교수A : 미래의 도서관과 실물장서에 관한 한 내 말보다도 코로
포드와 고어먼의 발언이 압권이야. 그대로 인용해 볼 터이니 자네
한번 들어보겠나?
'거의 모든 도서관들은 특수한 영역을 제외하고는 이용
자의 긴요한 필요에 응하기 위하여 인쇄물과 다른 매체로 구성된
튼튼한 장서를 지속적으로 유지하게 될 것이며 또한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튼튼한 실물장서는 현재와 미래를 위한 중요
한 자원일 뿐아니라 엄청난 경제적 가치를 지닌다. 성공적인 미래
도서관들은 원격자원에 대한 접근과 연계하여 도서관 이용자의 실
수요를 충족시키며 모든 종류의 커뮤니케이션 수단을 수용하는 실
물장서를 구축하게 될 것이다. 도서관은 소장하고 있지 않은 실물
자료(그리고 비실물의 정보)에 대해서는 접근에 많이 의존하게 될
것이며 또한 그렇게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서로
접근을 활용하는 데 따르는 위험부담, 비용, 혜택을 공유하는 방법
을 찾아내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사서들과 도서관을 재정적으로
후원하는 사람들은 도서관의 자료와 자원을 공급하는 문제에 있어
서 어느 한가지의 획일적인 해결책에 만족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
들은 특히 모든 도서관자원은 전자형태로 이용할 수 있게 될 것이
라는 따위의 우스꽝스러운 생각은 단호히 배격해야 할 것이다. 미
래는 소장과 접근의 공존시대인 것이다." 이상일세.
교수B : 그 그럴듯한 말이네. 미국에도 좋은 사람 많구만. 내 오
늘 자네한테 붙들려 교양 많이 쌓았네. 면무식이 조금은 되는 듯
하네.
교수A : 자네가 그렇게 말하니 내가 오히려 부끄럽네. 내 오늘
자네한테 문자를 너무 많이 써서 미안하네. 그동안 내 마음에 무엇
이 잔뜩 쌓여 있었던 것 같아. 그것들이 자네의 자극을 받자 그만
한꺼번에 와르르 .
저 시간봐. 벌써 점심시간이 지났네. 이거 모처럼만인데
내 오늘 자네한테 점심 한 그릇 사면 어떨까?


<계속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