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통신에 이어 오늘도 김영민 교수의 책을 인용합니다. 김영민 교수는
어찌 보면 독설가 같은 부분이 있습니다. 사실 '잡된 글쓰기'를 주장하면서
현장에 근거한 읽히는 글쓰기를 주장하는 글에서도 저의 짧은 철학적 훈련
이나 지식으로는 쉽게 알아듣지 못할 단어나 개념들이 있는 것은 사실입니
다. 그러나 대체로 이제까지 읽어 본 인문학 관련 서적들에 비하면, 특히 철
학 관련 서적들에 비하면 무척 쉬운 편이지요. 쉽게 쓸 수 있다는 것이 얼
마나 어려운 것인지, 이번에 다시 한 번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브리태니커연
감에 실을 영문 원고를 번역하다 보니까 정말 간단한 단어 하나도 제대로
번역하는 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그 원문 중에서 'Cybrarian'이라는 단어가
나오는데, 뭐라 번역할 것인지 거짓말 안 보태고 몇 시간은 고민했고, 또 몇
번을 고쳐 적었습니다. 우리 나라 논문 어디선가에서도 본 기억은 나지만,
뭐라 번역을 했는지 정확하지가 않았습니다. 아마도 그냥 '싸이브라이언'이
라고 한 것 같기도 하고.... 아무튼 그것을 '가상사서'라고 번역할 수는 없을
것 같아 가능한 일반 대중을 위해 쉽게 쓰라는 편집자의 요청을 고려해서 '
가상공간에서 활동하는 사서'라는 의미로 풀어썼습니다. 그리고는 나중에 편
집자에게 알아서 쓰라고 했지요. 'Knowledge Navigator'라는 단어도 나와
있더군요. 그것도 대충 '지식을 찾아다니는 사람들을 돕는 항해사' 정도로
번역을 해 버렸습니다. 그 외에도 많은 부분에서 난점이 있었지요. 그런 고
생을 한 후에 김영민 교수 책에서 찔리는 구절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그러
나 단언하건대 지금 우리 인문학계에서 필요한 작업은 결코 번역이 아니다.
오히려 번역 문화의 원칙을 포함해서, 인문학의 배움과 글쓰기를 근본적으
로 반성하는 일이 급선무다. 읽어도 읽어도 끝이 없이 번역되어 쏟아져 나
오는 서구의 책들. 원전(原典)의 땅에 대한 근거 없는 강박과 외경에 휩싸
여, 읽고 번역하고 베끼고, 또 읽고 번역하고 베끼면서 평생 단 한 번도 자
신의 체험을 자신의 말로 진지하고 힘있게 내뱉지 못한 채 기껏 정년퇴임기
념논문집이나 한 권 얻어 미지근한 미소를 품은 채 무덤 속으로 입장하고
마는 삶을 <학문>이라고 부를 수는 없다..... 수입되어 들어온 이론들을
비교적으로 평가해 볼 수 있는 자신의 전통과 잣대가 없는 상태에서의 번역
은 거의 폭력에 가깝다." (199쪽) 사실 우린 번역다운 번역이 된 책 한 권
제대로 보기 힘든 상황에서 이런 말은 오히려 우리들의 의지를 꺾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앞으로 정말 중요한 원전만이라도 제대로 된 번역으로 읽
어 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오래 전 랑가나단의 책조차 번역된 적이 없는
우리 도서관계의 철학적 기반 빈곤의 현실에 대해 안타까운 심정을 토로한
적이 있습니다만, 아직도 우린 정말 우리 마당의 기본 도서들마저 우리 글
로 읽어 볼 수 없는 실정입니다. 대학에서 2년 내지 4년, 나아가 더 많은 시
간을 문헌정보학을 배우고 나온 그 많은 사서들이 현장에서 숱하게 고생하
면서 일터를 넓혀 나가면서도 정작 서로 쉽게 읽어 볼 만한 글쓰기의 결과
물들은 보기 힘든 현실에 대해 이 책을 읽으면서 뼈저리게 동감하며, 가슴
아프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말로만 이러는 것도 이상하기는 하지만...
이 책 202쪽에는 이런 말도 있더군요. "요컨대 인문학은 <인간에 의한, 인
간을 통한, 인간의 변화>이다" 전 이 말을 이렇게 다시 해석해 보았습니다.
"요컨대 문헌정보학은 <사서에 의한, 도서관(자료)를 통한, 인간(이용자)의
변화>이다." 그럴 듯 해 보입니까? 이렇게 해석을 하고 보니, 제가 배운 문
헌정보학(제가 학교 다닐 때에는 도서관학이었습니다)을 되돌아보면 과연
이러한 해석에 적합한 내용으로 채워져 있었던가 하는 회의가 듭니다. 결국
사서와 도서관과 이용자 세 측면에 대한 고른 배움이 있었어야 하는데, 정
작 기억나는 것은 도서관 운영에 있어서의 아주 기술적인 부분에 대한 것뿐
입니다. 물론 제가 공부를 안 한 것은 인정하고 생각해 보아도, 별로 차이가
나지는 않는다고 생각됩니다. 도서관은 사서와 이용자가 만나는 마당입니다.
도서관을 운영하는 원칙은 바로 이러한 만남을 어떻게 하면 더욱 쉽게 그리
고 좋은 분위기에서 만남의 목적을 제대로 이루도록 하기 위한 측면에서 생
각되어져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배움에서는 사서가 무엇을 해야 하는
사람인지에 대해서도 명확한 인식을 가지지 못하였습니다. 물론 사서는 이
런저런 사람이라고 하는 말은 많이 들었고 기억은 나지만, 지금 생각해도
그런 조건을 다 만족시키기 위해서는 성인군자들만이 사서를 할 수밖에 없
다는 점이 문제가 아닐까 합니다. 한 인간으로서 이 시대에, 우리 도서관 현
장에서 필요로 하는 사서는 과연 어떤 사람이어야 하는가.... 아직도 이런 질
문에 선뜻 자신 있게 대답하지 못하는 것이 스스로에게도 미안할 뿐입니다.
어찌 보면 독설가 같은 부분이 있습니다. 사실 '잡된 글쓰기'를 주장하면서
현장에 근거한 읽히는 글쓰기를 주장하는 글에서도 저의 짧은 철학적 훈련
이나 지식으로는 쉽게 알아듣지 못할 단어나 개념들이 있는 것은 사실입니
다. 그러나 대체로 이제까지 읽어 본 인문학 관련 서적들에 비하면, 특히 철
학 관련 서적들에 비하면 무척 쉬운 편이지요. 쉽게 쓸 수 있다는 것이 얼
마나 어려운 것인지, 이번에 다시 한 번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브리태니커연
감에 실을 영문 원고를 번역하다 보니까 정말 간단한 단어 하나도 제대로
번역하는 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그 원문 중에서 'Cybrarian'이라는 단어가
나오는데, 뭐라 번역할 것인지 거짓말 안 보태고 몇 시간은 고민했고, 또 몇
번을 고쳐 적었습니다. 우리 나라 논문 어디선가에서도 본 기억은 나지만,
뭐라 번역을 했는지 정확하지가 않았습니다. 아마도 그냥 '싸이브라이언'이
라고 한 것 같기도 하고.... 아무튼 그것을 '가상사서'라고 번역할 수는 없을
것 같아 가능한 일반 대중을 위해 쉽게 쓰라는 편집자의 요청을 고려해서 '
가상공간에서 활동하는 사서'라는 의미로 풀어썼습니다. 그리고는 나중에 편
집자에게 알아서 쓰라고 했지요. 'Knowledge Navigator'라는 단어도 나와
있더군요. 그것도 대충 '지식을 찾아다니는 사람들을 돕는 항해사' 정도로
번역을 해 버렸습니다. 그 외에도 많은 부분에서 난점이 있었지요. 그런 고
생을 한 후에 김영민 교수 책에서 찔리는 구절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그러
나 단언하건대 지금 우리 인문학계에서 필요한 작업은 결코 번역이 아니다.
오히려 번역 문화의 원칙을 포함해서, 인문학의 배움과 글쓰기를 근본적으
로 반성하는 일이 급선무다. 읽어도 읽어도 끝이 없이 번역되어 쏟아져 나
오는 서구의 책들. 원전(原典)의 땅에 대한 근거 없는 강박과 외경에 휩싸
여, 읽고 번역하고 베끼고, 또 읽고 번역하고 베끼면서 평생 단 한 번도 자
신의 체험을 자신의 말로 진지하고 힘있게 내뱉지 못한 채 기껏 정년퇴임기
념논문집이나 한 권 얻어 미지근한 미소를 품은 채 무덤 속으로 입장하고
마는 삶을 <학문>이라고 부를 수는 없다..... 수입되어 들어온 이론들을
비교적으로 평가해 볼 수 있는 자신의 전통과 잣대가 없는 상태에서의 번역
은 거의 폭력에 가깝다." (199쪽) 사실 우린 번역다운 번역이 된 책 한 권
제대로 보기 힘든 상황에서 이런 말은 오히려 우리들의 의지를 꺾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앞으로 정말 중요한 원전만이라도 제대로 된 번역으로 읽
어 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오래 전 랑가나단의 책조차 번역된 적이 없는
우리 도서관계의 철학적 기반 빈곤의 현실에 대해 안타까운 심정을 토로한
적이 있습니다만, 아직도 우린 정말 우리 마당의 기본 도서들마저 우리 글
로 읽어 볼 수 없는 실정입니다. 대학에서 2년 내지 4년, 나아가 더 많은 시
간을 문헌정보학을 배우고 나온 그 많은 사서들이 현장에서 숱하게 고생하
면서 일터를 넓혀 나가면서도 정작 서로 쉽게 읽어 볼 만한 글쓰기의 결과
물들은 보기 힘든 현실에 대해 이 책을 읽으면서 뼈저리게 동감하며, 가슴
아프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말로만 이러는 것도 이상하기는 하지만...
이 책 202쪽에는 이런 말도 있더군요. "요컨대 인문학은 <인간에 의한, 인
간을 통한, 인간의 변화>이다" 전 이 말을 이렇게 다시 해석해 보았습니다.
"요컨대 문헌정보학은 <사서에 의한, 도서관(자료)를 통한, 인간(이용자)의
변화>이다." 그럴 듯 해 보입니까? 이렇게 해석을 하고 보니, 제가 배운 문
헌정보학(제가 학교 다닐 때에는 도서관학이었습니다)을 되돌아보면 과연
이러한 해석에 적합한 내용으로 채워져 있었던가 하는 회의가 듭니다. 결국
사서와 도서관과 이용자 세 측면에 대한 고른 배움이 있었어야 하는데, 정
작 기억나는 것은 도서관 운영에 있어서의 아주 기술적인 부분에 대한 것뿐
입니다. 물론 제가 공부를 안 한 것은 인정하고 생각해 보아도, 별로 차이가
나지는 않는다고 생각됩니다. 도서관은 사서와 이용자가 만나는 마당입니다.
도서관을 운영하는 원칙은 바로 이러한 만남을 어떻게 하면 더욱 쉽게 그리
고 좋은 분위기에서 만남의 목적을 제대로 이루도록 하기 위한 측면에서 생
각되어져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배움에서는 사서가 무엇을 해야 하는
사람인지에 대해서도 명확한 인식을 가지지 못하였습니다. 물론 사서는 이
런저런 사람이라고 하는 말은 많이 들었고 기억은 나지만, 지금 생각해도
그런 조건을 다 만족시키기 위해서는 성인군자들만이 사서를 할 수밖에 없
다는 점이 문제가 아닐까 합니다. 한 인간으로서 이 시대에, 우리 도서관 현
장에서 필요로 하는 사서는 과연 어떤 사람이어야 하는가.... 아직도 이런 질
문에 선뜻 자신 있게 대답하지 못하는 것이 스스로에게도 미안할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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