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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리브에 남긴 발자욱

[기사] 일상성의 문제와 그 중요성 (시사저

\위의 글은 나우누리 민예총 방에서 구해온 것입니다.


[115] 제목 : 일상성의 문제와 그 중요성 [시사저널]
올린이 : pac1 (민예총 ) 95/05/21 03:27 읽음 : 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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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제공시각 : 04/05 00:00
제목 : [문화] ‘일상’은 희망인가 절망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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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인의 삶에 대한 탐구 활발…“대중이 변해야 세계가 변한다”

횡단보도에서 손목시계를 한번 더 보고, 지하로 달려 내려가 승차권을
자동 개찰구에 넣으면 삼각 막대가 돌아간다. 도심으로 들어가는
자격을 획득한 것이다. 7시 40분, 마음은 벌써 회사로 가 있다.
스케줄이 일렬로 늘어선다. 회의, 상담, 계약, 마감…. 몸은 만원
지하철 속에 있지만 마음은 벌써 저녁의 접대 자리에까지 가 있다
(‘내가 존재하지 않는 곳에서 나는 생각하고 내가 생각하지 않는
곳에서 나는 존재한다’라고 프랑스의 대표적인 정신분석학자이자
사상가인 자크 라캉은 말한 바 있다).

출근 시간의 지하철 내부는 이상할 정도로 고요하다. 사람은
짐짝처럼 채워져 있지만 기침소리와 신문 넘기는 소리밖에 없다.
라디오 소리도 없다. 밖으로 눈 둘 데도 없다. 차창에 비친 자기
모습이 그리 달갑지 않다. 지하철을 탄 사람들 모두가 그렇게 보인다.
무표정한 얼굴들. 피곤에 지쳐 조는 사람들.

‘지금·여기’ 알아야 현대 사회 이해

출근길 지하철은 ‘너는 절대 앞지를 수 없다’와 ‘너는 그리 잘난
사람이 아니다’를 가르치는 것 같다. 지하철 역사를 빠져 나갈 때나
환승역 통로를 걸어갈 때, 앞 사람을 추월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그
속도와 흐름에 온전하게 몸을 맡겨야 한다. 또한 터져 나가려는 지하철
안에서 공동체의 미덕이나 인간의 존엄을 떠올리기란 어려운 일이다.
‘정시 도착’이라는 이유 하나 때문에 오늘도 대중은 지하철을 타러
내려간다.

도시 대중은 ‘아, 여기서 벗어날 수만 있다면’하고 중얼거리지만,
불가능하다. 불가능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더 중얼거린다. 밖으로,
과거로, 혹은 미래로 벗어나 버리고 싶다고. 그러나 대중은 한편으로는
지금·여기서 낙오할까봐 전전긍긍한다. 그 ‘지금·여기’가 바로
일상, 일상성이다.

일찍이 2차대전 직후부터 현대 사회에 대한 이해는 일상성에 대한
정확한 인식없이는 불가능하다며 일상성 이론을 주창해온 프랑스의
좌파 사회학자 앙리 르페브르의 <현대 세계의 일상성>(<세계일보>)을
우리말로 옮긴 박정자 교수(상명여대·불어교육과)는 “현대성과
동전의 양면을 이루는 일상성이란 단순한 일상의 반복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고도로 발달한 현대 산업 사회의 도시적 특징”이라고 밝혔다.

최근 주경철 교수(서울대·서양사학과)가 아날 학파의 거두 페르낭
브로델의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Ⅰ-1 일상생활의 구조>(상·하,
‘까치’ 펴냄·아래 상자 기사 참조)를 출간한 것을 계기로 일상성에
대한 관심이 새삼 증폭되고 있다.

물론 브로델의 책이 나오기 전부터 일상성 연구는 있어 왔다. 지난
84년 국내에 처음으로 일상 생활에 대한 사회학적 논의를 제기한
박재환 교수(부산대·사회학과)를 필두로 92년 <문화과학>이 창간되고
뒤이어 출판사 ‘현실문화연구’의 시리즈물이 속간되는 한편,
<상상>과 <리뷰> 같은 계간지와 관련 학술 서적(번역) 출간이
잇따르면서 이 문화론은 가장 진보적인 이론 가운데 하나로 자리잡기
시작했다.

지난해 가을에 나온 <일상 생활의 사회학>(한울 아카데미)에서
박재환 교수는 끊임없이 되풀이되는 일상적 활동이 없다면 어떤
사건이나 역사도 일어나지 못한다고 지적하면서 ‘일상 생활의
사회학’은 일상이라는 토대를 새롭게 조명하는 사회학이라고 적고
있다.

그동안 일상 생활은 철학·사상·역사· 사회학 등 모든 학문들이
거들떠보지도 않던 사각 지대였다. 일상 생활의 사회학은 (아날 학파가
기존 역사학에 대하여 그러했던 것처럼) 기존 사회학에 대한
반성이었다. 박교수에 의하면 지금까지의 사회학은 거창한 사건이나
구조에 지나친 관심을 가진 결과 구체적 현실과 삶을 조명하지 못했다.
역사학이나 마르크스주의에서 발원한 비판 이론도 일상성에 무심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일상 생활의 사회학과 문화론 사이에 걸쳐 있는 이론가가 앙리
르페브르이다. 그는 사회학 쪽에서는 미셸 마페졸리(프랑스 소르본
대학 사회학과 교수)와, 문화론에서는 알튀세르와 자주 비교된다.
르페브르는 일상성과 소외 문제에 주목하면서 변화의 가능성을
포착하려고 하는 반면, 마페졸리는 일체의 이데올로기적 선입견을
배제하고 대중에게 신뢰를 표현한다. 마페졸리에 따르면, 진보
이데올로기는 그 정점에서 흔들리기 시작했고, 대중은 이데올로기의
요구에 대하여 ‘단호한 무반응’과 ‘적극적 수동성’을 보인다.
마페졸리는 일상성에 대한 인정과 그 구체적 조명에 관심을 둔 것이다.

문학 평론가 도정일 교수(경희대·영문과)에 의하면, 르페브르는
알튀세르와 함께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졌다. 명백한 모순과 위기에도
불구하고 왜 자본주의는 지속적으로 성장하는가. 어째서 생산력 발전이
자본주의의 생산 관계를 소멸시키지 못했는가. 그들은 두 문제에 대한
나름의 해결책을 제시했다. 그것이 60년대 프랑스에서 대두한
르페브르의 일상성 이론과 알튀세르의 이데올로기론이다. 알튀세르는,
자본주의가 그 생산과 지배의 체제를 끊임없이 정당화하고 재생산하는
능력을 문화의 층위(이데올로기)에서 확보하는 것은 아닌가라는
인식에서 출발했다.

일상성에 대한 사회학 쪽의 연구는 아직 형성 단계이지만 크게 보아
△일상에 대한 인식론적 고찰 △하루 24시간에 대한 접근 △일상
생활의 각종 의식에 관한 탐구 △사회 전체의 일상적 구조에 대한 조명
△일상성의 특징을 인간 존재의 내면적 반성과 연결하는 방법론 등으로
나뉜다.

포스트모더니스트들 또한 도시 일상과 현대성에 큰 관심을 가져 왔다.
미국 존스 홉킨스 대학 지리학과 교수인 데이비드 하비는
<포스트모더니티의 조건>(구동회·박영민 옮김, 한울 펴냄)에서 도시
일상과 대중의 인식 변화를 가져온 근본 원인은 시간과 공간의 압축
때문이라고 보았다. 자본의 회전 시간이 점점 빨라지면서 즉흥성과
순간성이 강조되고 공간과 장소가 급속하게 달라졌다는 것이다.

대중은 자발적으로 예속당한 존재

역사가 미래로 가는 직선적 시간이라면 일상은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시간 구조라고 <일상 생활의 사회학>은 말한다. 현대 도시 대중의 삶은
일상이라는 시간과 공간 안에서 이루어진다. 그리하여 일상은 대중이
그러하듯이 그 성격이 복잡하고 모호하고 또 모순적이다. 대중을
매체로 규정한 바 있는 김진석 교수(인하대·철학과)는 “일상이라는
나른한 문화를 살아가는 대중은 자발적인 예속 상태에 빠져 있다”면서
일상성 못지 않게 대중의 자발적 예속의 속성을 밝혀내는 일도
중요하다고 보았다.

무관심과 망각으로 인하여 전 지구가 당면한 위기와 비극을
추상적으로 받아들이게 하는 현대적 제도로서의 일상성은, 인간을 위한
변혁을 갈망하는 진영에게는 수렁이고 절망이다. 일상성에 관한 논의
가운데 지금까지 가장 확실한 것은 일상과 대중이 변하지 않는 한
달라지는 것은 없다는 사실이다.

李文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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