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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 읽기

어린이에게 기적이 아닌 일상의 꿈과 기쁨을!

이용훈 / 도서관문화비평가,책읽는사회만들기국민운동 운영위원 blackmt@hitel.net


2001년 말 시작한 MBC 의 ''책,책,책, 책을 읽읍시다'' 코너는 방송이 되자마자 우리 사회에 많은 논란을 불러왔다. 그리고 소개되는 책마다 소위 ''대박''을 터뜨리자 급기야는 베스트셀러 목록에서 느낌표 선정도서는 제외하는 일도 벌어졌다. 반면에 삼성경제연구소에서는 2002년 10대 히트상품으로 이 프로그램을 선정하기도 했다. 독서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찬반논쟁이 뜨거웠다. 그러나 2001년 3월 KBS에서 방영한 와 그 이후 주간 독서프로그램으로 만들어져 지금까지 방영되고 있는 것과 함께 우리 사회의 문화적 변화의 중요한 계기와 추동력이 되고 있다는 점에서는 이 프로그램의 공과(功過)를 떠나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싶다. 나름대로 우리 사회에서 지식정보시대 책과 독서의 의미를 진지하게 짚어보게 했으며 깊이 있는 논쟁을 이끌어 냈다는 점은 높이 사야할 것이다. 2002년 말 문화관광부와 (재)한국출판연구소가 함께 조사한 국민독서실태 조사에서도 이들 텔레비전의 독서 프로그램에 대해 국민들은 대다수(성인 82.7%, 학생 84.6%)가 호의적인 평가를 내렸다는 사실에서도 이러한 프로그램의 성과를 확인할 수 있다. 특히 이들 프로그램으로 인해 독서습관이 형성되어 소개된 책 이외의 다른 책도 찾아 있게 되었다는 답변도 상당수(성인 38.6%, 학생 49.5%)로 조사된 것은 매우 의미 있는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책 읽기는 오늘날과 같이 다양한 미디어가 범람하는 사회에서 주관적이고 주체적인 지식과 정보 습득 능력을 키워주며 창의성을 향상시킨다. 따라서 독서 분위기 조성을 위한 사회적, 문화적 노력이 매우 필요한 시점에서 독서운동단체, 출판계, 도서관계 등은 이들 텔레비전의 참여에 대해 보다 적극적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 중 가 올 해 ''기적의 도서관''이라는 새로운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물론 너무 거창해서 일견 부담스럽기도 하고 거부감이 생길 수도 있다. 이 프로젝트는 선정된 책의 판매이익을 모아 전국 곳곳에 어린이도서관을 건립해 아이들에게 주는 것이 골자이다. 이것을 방송에서는 ''기적''이라고 말하고 있다. 기적? 이 프로젝트의 실무를 맡고 있는 시민단체 ''책읽는사회만들기국민운동'' 도정일 대표는 어린이에게 도서관을 만들어 주어 ''사람답게 성숙할 기회를 주는 것이 이 나라에서는 기적으로 여겨져야 하는가?''라고 탄식하기도 했지만, 아무튼 우리는 이렇게 해서라도 그런 기적이 일어나기를 바라고 있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이미 3곳의 지역이 선정되어 건립작업이 시작되었고 앞으로도 더 많은 지역에 어린이도서관이 건립되어질 것이다. 그러한 작업들이 아이들에게는 ''꿈과 상상력의 공간''이며 어른들에게는 주체적 삶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지혜와 구체적 지식과 정보를 제공하는 곳인 도서관에 대한 그 동안 무관심했던 분위기를 바꾸어 우리 사회의 핵심적이고 문화적 의제로 만들어 갈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게 한다. 다만 이 일의 추진을 지켜보면서 중요한 한 가지 문제를 함께 생각해 보았으면 한다.

그것은 어린이도서관 건립과 관련해서 마치 어린이들을 위한 도서관은 꼭 독립된 건물이 필요한 것으로만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는 점이다. 방송의 특성과 일의 성격상 ''기적의 도서관'' 프로젝트는 최선을 다해 몇 개의 어린이 전용 도서관을 건립할 것이다. 어린이를 위한 도서관 활동이 크게 부족한 우리나라 사정에서는 이 프로젝트를 통해 건립되는 도서관이 우리가 지향해야 할 도서관의 어린이 서비스의 바람직한 모습을 제시할 것이라 정도로 의미를 두어야 할 것이다. 그 보다 더 신경을 써야 하는 것은 우리 주변에 있는 450여 공공도서관과 그 밖의 문고 등 여러 독서지원 시설의 개선 노력이다. 공공도서관이 수행하는 서비스 가운데 핵심적인 것이 바로 어린이를 위한 서비스이다. 그래서 운영 중인 대부분의 도서관은 이미 어린이실 또는 모자열람실 등의 이름으로 어린이를 위한 공간과 장서, 전문인력 등을 배치해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문제는 여전히 도서관이 부족하고 어린이실 상황도 개선할 점이 많다는 것이다. 따라서 어린이도서관 건립과 함께 우리는 이미 우리 주변에 있는 공공도서관의 어린이 서비스를 개선하는 일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시설도 어린이들이 편안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바꾸고, 어린이를 잘 알고 진심으로 사랑하는 전문사서를 배치해서 아이들과 친구가 되게 하고, 무엇보다도 어린이들에게 좋은 책을 많이 비치하도록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도서관 관계자 그리고 지역주민들 모두가 함께 노력해야 한다. 이러한 일은 ''기적의 도서관'' 프로젝트와는 별도로 마땅히 지역단위 운동으로서만 가능한 일이다. 이제 이 같은 주체적 지역운동이 만들어지고 이를 통해 지역의 변화가 만들어져야 할 것이다. 또한 이미 운영 중인 사립 어린이도서관에 대한 정부나 지방자치단체의 지원을 이끌어 내야 한다. 다행스럽게도 이번 프로젝트 시작 이후 경기도가 10개의 어린이도서관 건립계획을 발표한 것은 고무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전국의 초등학교에 있는 도서관들도 잘 꾸미고 책도 많이 갖추도록 해야 한다. 또한 청소년을 위해서도 중·고등학교에 도서관을 설치, 운영하는 등 청소년이 이용할 수 있는 도서관도 많이 확보해야 한다. 이렇듯 이번 어린이도서관 건립 프로젝트를 계기로 우리 사회가 도서관을 해야 할 일이 적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또한 나름대로 해결방안이 있음을 확인하게 된 점을 더욱 중요하게 생각했으면 한다. 방송에서 시작해서가 아니라도 우리 아이들에게 기적이 아닌 일상의 꿈과 기쁨을 주기 위해서 어린이도서관과 도서관의 어린이 서비스는 꼭 필요한 일이다.

그렇기에 방송이 우리의 바람을 해결해 주지 못한다 하더라도, 이 일은 우리 자신이 나서서 해결해야 할 과제이다. 그래서 이번 ''기적의 도서관'' 프로젝트를 계기로 각자 자신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차분히 생각하고 실천했으면 한다. 이제 정부와 정부대로, 지방자치단체는 지방자치단체 나름으로, 지역 주민들은 주민들대로 해야 할 일을 성실하게 수행해야 한다. 방송은 방송 나름의 역할을 진지하게 수행해야 하면 될 것이다. 물론 가장 우선되어야 할 것은 이미 운영 중인 도서관들의 서비스 활성화이고 자기개혁 노력이다. 또한 이러한 노력들이 새로운 지역문화 나아가 우리 사회의 문화적 변혁의 힘이 되도록 엮어내는 실무자들의 지혜와 인내도 필요하다. 이런 모든 것들이 어우러져 ''어린이도서관으로 인한 기적''을 만들어지기를 기대한다.

사진 : 시사저널

출처 : 문화사회 제26호

2003-02-23 18:31: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