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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 읽기

지역의 특성에 맞는 도서관 정책을 마련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용훈 / 도서관문화비평가, 책읽는사회만들기국민운동 운영위원


기획예산처는 지난 9월 16일 보도자료를 통해 ‘지방문화기반시설 건립 사업’의 추진방식을 개편하겠다고 발표했다. 공공도서관이나 박물관, 문예회관 등의 지방 문화기반시설에 대한 지원방식을 바꾸어 앞으로는 지방지와 부지 확보 후 국고를 지원하고, 생활권역 중심에 건립하도록 하는 등의 조치를 통해 중복과 과잉투자를 방지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다른 문화기관은 필자의 영역 밖이므로 제외하고 공공도서관의 경우에 대해서만 말한다면, 이번 기획예산처의 방침과 같이 반드시 생활권역 중심에 도서관을 건립하도록 한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필자는 이미 『월간 문화연대』 2003년 3월호에 “도서관, 어디에 있지?”라는 글을 통해 도서관은 반드시 지역주민들의 생활권 안에 있어야 함을 강조한 바 있다. 문화시설의 활성화의 첫째 조건은 결국 사람들의 접근이 손쉬운 곳에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 동안 그러한 점을 고려하지 않은 채 건립을 해 온 관행의 문제점을 인식하여 접근성 제고를 고려하겠다는 방침은 오히려 뒤늦은 감이 없지 않다.

이 문제와 관련해서 정부는 앞으로 국가의 도서관 정책 목표를 보다 세밀하게 입안하고 집행하여 전국민에게 고른 도서관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몇 가지 조건을 우선 정비해야 한다. 우선은 지방자치단체별로 도서관 중장기 발전계획을 수립하도록 해야 한다. 이미 기획예산처는 문화관광부가 각 시도별로 인구규모나 생활권, 기존 유사시설 등을 고려한 문화기반시설 건립계획을 수립하고 이를 기초로 문화관광부가 전국단위의 종합적인 건립목표를 설정하도록 제시하고 있다. 또한 문화관광부도 이미 2002년 8월에 2011년까지의 중장기 발전계획을 수립하여 여러 가지 정책을 제시한 바 있다. 여기에서도 생활권 중심의 건립이라는 원칙을 제시하였다. 그런 점에서 이번 기획예산처의 방침은 정부의 도서관 정책을 구체화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문제는 과연 지방자치단체에서 얼마나 빠르게, 그리고 정확하게 이와 같은 정책에 부응하여 적합한 정책과 계획을 만들고 집행할 수 있는가이다. 따라서 먼저 문화관광부나 기획예산처는 지금과 같이 건립비나 자료구입비 지원에 국한하지 말고 좀 다양한 방식의 지원방식을 제시하는 것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농촌지역의 도서관은 지역의 특성상 이동도서관을 통해 찾아가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가장 필요하다고 한다면 새로운 도서관 건립비 지원 대신에 이동도서관을 마련하는 비용이나 운영비를 지원하는 것도 필요하다. 도시지역의 경우 주민들의 생활권 중심에 새로 건립이 어려운 경우가 많을 것이다. 그럴 경우에는 기존의 건물의 일부를 임대해서 도서관을 설치?운영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된다. 이러한 경우에도 국고 지원이 가능할 수 있으면 좋을 것이다. 이러한 식으로 먼저 지방자치단체의 현실과 특성을 반영한 도서관 건립과 활성화 정책을 이끌어 낼 수 있는 조건을 사전에 마련해서 제시한다면 지방자치단체가 현실적 정책입안과 집행에 의욕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두 번째로 기획예산처 지침에 따르면 복합문화기반시설 건립이라든가 인접 자치단체가 공동건립 등의 방식도 권장하고 있는데, 이러한 경우에 대비해서 과연 각각의 특성이 그대로 발휘될 수 있으면서도 전체적으로 운영상 상호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는 방안에 대한 조사?연구가 필요하다. 이미 몇 몇 지역에서는 그러한 현상이 나타나고 있으며, 대체로 긍정적 평가를 받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 행정문화 속에서 과연 다른 성격의 문화시설들이 한 공간, 또는 하나의 조직 속에서 여러 가지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그리 쉽지 않다는 점도 사실이다. 따라서 과연 어떻게 하는 것이 각각의 문화시설의 장점을 살리면서 조화롭게 지역주민을 위해 최상의 문화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한 대비가 있어야 할 것이다. 관련 문화기관 전문가들이 함께 이 문제를 검토하는 것도 필요하다.
세 번째로 이번 기획예산처의 문화기반시설 건립 지원 방식을 개편한다는 방침은 앞으로 지방분권과 맞물려 지방자치단체의 문화행정력을 강화하고 지역의 특성에 맞는 문화시설 건립과 운영이 가능하도록 분위기를 조성할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지방자치단체의 문화행정력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우선 각 지방자치단체에 문화부문 전문인력이 더 많이 배치되어야 한다. 앞으로 문화부문의 정책은 시설 중심적 사고에서 프로그램 중심의 사고로 전환되어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역시 그 분야 전문가들이 직접 행정과 지원을 맡는 것이 바람직하다. 따라서 문화관광부는 행정차지부와 협의하여 각 지방자치단체에 적절한 조직과 전문인력 배치가 가능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제도적, 인적 조건을 확보하지 않고는 사실상 새로운 정책의 성공 가능성은 크지 않을 것이다. 이와 관련해서 현재 문화관광부 자체에서 문화기반시설 운영과 관련한 조직을 개편하는 문제가 제기되고 있는데, 현재로서는 담당과(도서관박물관과)를 폐지하고 정책의 대강은 문화정책과나 국립중앙도서관 등으로 이관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 부분은 전체적인 방향성에서는 타당할 수 있으나, 우리 행정의 현실이나 궁극적인 목표라고 보여지는 지방자치단체의 문화행정력 강화라는 측면에서 앞에서 이야기한 보완책이 마련된 후에 추진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다.
끝으로 새로 도서관을 건립하고서도 적절한 자료를 확보하지 못해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는 적절한 수준의 장서를 확보하지 못한 때문이다. 따라서 앞으로 도서관의 경우에는 건립비 산정 단계부터 장서구입비를 반드시 포함하도록 하는 것이 좋겠다. 따라서 이 참에 건립 지원 방식을 개편하는 마당에 건립비에 최소한 초기 장서 확보를 위한 자료구입비는 포함시키도록 하는 정책전환이 필요하다.
물론 새로운 참여정부로서는 해야 할 일도 많고, 그 동안의 관행과 불합리한 부분을 개선해야 할 책임과 의욕을 보이는 것도 타당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이제 개혁은 아무리 작은 부분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라 할 지라도 보다 넓은 관점에서 생각하고 유사 부분과의 연계성을 충분히 검토하고, 무엇보다도 관련 부문의 전문가나 행정가, 일반 국민들의 참여를 통해 협의와 합의를 이끌어 가도록 하는 인내와 열린 행정을 기반으로 정책을 만들고 집행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 한다. 그러기 위해서 문화관광부가 더욱 적극적으로 기획예산처, 행정자치부는 물론 각 지방자치단체, 그리고 도서관 관련 전문단체나 전문가, 일선 도서관 관계자들과 더 많은 대화와 협의 노력을 아끼지 말아야 할 것이다. 모쪼록 이번 기획예산처 방침이 국민들에게 좋은 도서관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지역특성에 맞는 도서관 정책 수립?집행의 좋은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사진 : 월간 문화연대

출처 : 문화사회 제54호

2003-10-04 10:48: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