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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 읽기

새 정부 도서관 정책에 대해 기대를 가지며

이용훈 / 도서관문화비평가, 책읽는사회만들기국민운동 운영위원

새 정부를 참여정부라고 한다. 참여정부가 표방한 문화정책에 있어서의 참여의 방식을 새 문화관광부장관의 인사말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이창동 장관은 "오늘날의 현대사회에서 ''소통''이란 그 사회의 성격과 질을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로 규정했다. 그러면서 "지금까지 한국사회는 정치적 제도는 민주화되었으면서도 그 소통의 방식은 전혀 민주화되지 않"은 채 "청와대와 행정부, 국회와 정당에 이르기까지 의사소통의 사회적 기능을 맡은 공적조직은 권위주의와 관료주의에 눌려 마비되고 왜곡되어 기형화되어 있었다"고 지적하고 문화의 역할은 바로 이 같은 사회적 소통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또한 새 장관은 "문화가 새로운 세기를 이끌어 나갈 것이라는 것은 어떤 특정한 문화상품들이 중요해진다는 뜻이 아니라 문화적 형식과 관점, 문화적 자율성과 창조성이 모든 영역에서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의미"라고 강조하고, 앞으로의 문화정책은 이러한 관점을 기반으로 "우리 사회의 각 영역에서 문화적 창조성과 자율성의 불씨를 불어 일으키도록 환경을 만들고 틀을 짜도록 하는 것이 정책의 방향이 되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그 첫 번째 과제로 "문화예술, 체육, 관광 등의 각 분야에 자율성을 부여하는 것"이라고 단정짓고 있다. 즉, "각 분야에서 스스로 고민하고, 의견을 모으고, 자신들에게 필요한 정책을 만들어 집행하도록 하며 정부는 지원만 할 뿐 민간에 권한과 책임을 대폭 넘겨주는 것으로 제도를 바꾸는 것"을 목표로 제시하였다. 자율과 창조가 생명인 문화를 정부관료들이 책상에서 정책을 만들어 현장에 내려보내는 방식은 더 이상 안된다는 사실을 확실하게 인식하고 있다. 장관의 발언이 그 동안 우리 문화계가 가지고 있는 문제의식을 상당부분 공유하고 있는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와 같은 일들이 실제 문화정책 전반에서 실현되기를 학수고대한다. 특히 정부는 지원만 하고 민간에게 권학과 책임, 즉 정책의 입안과 집행을 맡기는 필요한 구체적 제도화 노력이 시급히 가시화되기를 바란다. 우리 문화계는 그러한 문화관광부의 정책변화 의지를 믿고 구체적인 방안들을 마련하고 적극적으로 협의하여 함께 실효성있는 정책수단을 확보할 수 있어야 한다. 그 과정에서 만나게 될 많은 문제점들은 문화계도 주체라는 의식을 가지고 적극 해결에 앞장서야 한다.

도서관 정책이 문화관광부의 소관이 된 지도 십 년이 넘었다. 그 동안 교육의 한 수단으로서의 도서관에 대한 이미지를 개선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지난 시간이 그러한 이미지 개선에 전력을 기울였다면, 이제 새로운 시대의 도서관 정책은 구체적으로 새로운 패러다임에 맞도록 개별 도서관 현장의 전면적 개혁을 이끌어 낼 수 있는 일을 만들어 가는 것에 집중해야 한다. 우선적으로 현재 구성되어 있는 국가도서관정책자문위원회를 자문위원회에서 실행기구로 전환할 것을 제안한다. 도서관박물관과 담당공무원과 도서관 전문가를 실무인력으로 확보하고, 정부의 도서관 관련 재원을 기반으로 효율적인 정책입안과 집행을 책임지도록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그렇게 할 수 있다면 기왕의 조직과 인력, 재정을 그대로 활용하면서도 재정의 유연한 집행과 현장의 사정을 충분히 반영한 세밀하고 세분된 정책입안과 집행이 가능해져 도서관 정책 효과는 더욱 커질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이 위원회의 위상을 적어도 각 부처간 이해와 정책조정이 가능한 수준으로 격상시키는 것도 고려되어야 한다. 정책의 입안과 집행기능을 가진 조직으로서 적절한 능력을 갖추려면 국무총리 또는 교육인적자원부총리 산하조직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물론 도서관정책을 담당하는 문화관광부가 위원회 활동을 민간 전문가와 함께 주도적으로 이끌어갈 수 있도록 명시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자칫 또 다시 도서관 업무에 관한 소관부처 논쟁이 벌어지고 다시금 도서관의 공부방 역할이 중요하고 성인교육을 하는 기관이라는 인식으로 회귀하는 일이 벌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도서관은 지역사회의 핵심적 문화기반시설이라는 사실이 더 이상 도전받는 일은 없어야 한다.

다른 또 하나의 바람이 있다면 이제 문화정책이 지역을 중심으로 기획되고 입안되고 집행되었으면 하는 것이다. 도서관이 문화기반시설의 중요한 한 부분이라고 하지만 정작 지역단위에 가면 각각의 문화시설들이 서로 유기적으로 연계되지 못하는 것을 자주 볼 수 있다. 따라서 이제 중앙정부에서 지방자치단체의 문화정책이 개별 문화시설이나 활동 중심이 아니라 지역단위 문화 전반을 고려하는 종합적 안목과 기반을 가지고 개별 문화시설이나 활동에 대한 계획을 수립하고 집행하는 것으로 바꾸어갈 수 있도록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고 구체적 개혁이 되도록 당분간 이끌어 가야 할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도서관도 지역단위에서 비로소 제 자리를 찾고 지역 문화시설로서의 역할을 충실하게 수행할 수 있는 계기를 맞을 수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문화정책 전반에서 도서관 좀 끼워달라는 말이다. 문화관광부부터 문화 전반에 관한 각종 위원회와 활동에 도서관 분야 전문가와 실무자들을 참여시켜야 한다. 그러한 과정을 통해 도서관도 문화의 한 부문으로서의 자기역할을 새롭게 인식하고 문화발전에 적극 기여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다음으로는 정책에 있어 사람의 문제에 대한 새로운 시각과 대안이 필요하다. 특히 문화시설 운영에 있어 전문가의 중요성은 매우 크다는 점을 생각할 때, 도서관 운영도 이제는 전문가에게 맡긴다는 사실을 더욱 확실히 해야 한다. 현재로서는 도서관 전문가인 사서들이 공무원 조직에서는 일반직의 행정직군의 10개 직렬 중 하나로 되어 있다. 물론 그 안에서는 4급까지만 승진할 수 있어 실제 3급 이상이 관장으로 되어 있는 도서관은 원천적으로 전문가에 의한 운영이 불가능하다. 따라서 문화시설로서의 도서관 운영에 전문가들이 실질적인 책임을 지고 운영을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인사 시스템 정비라는 측면을 고려할 때, 연구직의 학예직군처럼 독립적인 직군으로 만들어 전문성을 더욱 잘 발휘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좋겠다. 그리고 지방직의 경우 기초자치단체 소속 사서직 공무원의 경우 인사의 폭이 너무 적어 적절한 훈련기회를 가지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따라서 좀 더 넓은 범위, 즉 광역자치단위로 사서직을 운영하는 방안도 고려해 볼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이처럼 전문성에 기초한 인사제도의 확립은 전국적으로 고르고 수준높은 도서관 서비스 제공의 기반을 마련하는데 확실한 기여를 할 것으로 생각한다.

이 외에도 많은 정책과제들이 있다. 이러한 것들은 이미 2002년 8월 문화관광부가 발표한 ''도서관 종합발전계획''이나 한국문화정책개발원(현 한국문화관광정책연구원)이 작성한 ''도서관 중장기 발전계획'' 보고서에 상세하게 제시되어 있다. 새 문화정책은 차분하게, 그러면서도 현장의 개혁을 지원할 수 있는 구체적 대안을 바탕으로 민관 협력 시스템을 통해 추진되면 좋겠다. 그럴 것으로 기대하고 함께 도서관 발전을 책임질 각오를 다져본다.

출처 : 문화사회 제30호

2003-03-23 18:21: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