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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리브에 남긴 발자욱

][ [서평] 기세춘, `주체철학 노트`

번호 : 2/10 입력일 : 97/03/07 14:09:30 자료량 :64줄

제 목 : 화제의 책-제3의 길 모색하는 『주체철학 노트』

기세춘 편저

홍근수ㆍ향린교회 담임목사

주체철학 노트 는 근래에 보기 드문 ‘대작’으로 크게 주목받
을 책이다. 4ㆍ6배판의 6백여 쪽에 달하는 이 책의 부피 때문에
만 하는 말이 아니다. 오히려 서양 철학자들에 대한 저자의 해박
함과 이 책이 포괄하는 방대한 내용 때문이다. 저자가 헤겔ㆍ마
르크스ㆍ니체ㆍ프로이드ㆍ베르그송ㆍ로크ㆍ루소 등 많은 근대 서
구 철학자들의 주체에 관한 사상을 광범하게 조사ㆍ연구하고, 그
풍성한 결과를 우리에게 소개하고 있는 것이 놀랍다.

저자가 이 저서에서 관심한 문제는 우리 모두에게 ‘긴급한 화
두’인 ‘주체’이다. 저자가 이해하는 대로 주체란 “자유를 요
구하며 사회체제와 지배이념에 저항하고 세계를 개조하려는 자주
적인 행위자”이기 때문에 현대인들에게는 물론 분단 반세기를
넘긴 우리 민족에게 그야말로 긴급한 화두라 하겠다.

그러나 이 책의 제목만 언뜻 보고서는 일반인들이 다소 혼동을
일으킬 소지가 없지 않다. 주체철학이 곧 주체사상이라고 등식화
하는 것이 보통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둘은 별개다. 저자가 말
하는 주체철학은 ‘인간의 해방과 세계변혁과 자주의 행위자에
관한 근대 철학적 담론을 묶어 말한 것’인 반면 주체사상은 물
론 북한의 김일성 혁명사상을 가리키는 것이다.

전자는 이 책의 전반부의 총론에서, 후자는 후반부의 각론과 결
론에서 각각 다루고 있다. 저자는 각론 부분에서 주체철학과 주
체사상을 구체적으로 운명관ㆍ역사관ㆍ생명관ㆍ종교관이란 항목
으로 나누어 일별하고 있고 결론부분에서는 주체사상에 대한 해
설과 요약, 그리고 비판을 담고 있다.

이 책의 후반부는 지금까지 나온 맹목적 찬양이나 부정적 비판
이라는 편견적 관점에서 쓰여진 주체사상 해설서들이나 비판서들
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훌륭한 주체사상의 풀이다. 저자는 “김일
성이 아니라 묵자ㆍ예수ㆍ마르크스를 선호함으로 이들에게서 자
유롭지 못하다”고 스스로의 당파적 입장을 자인하면서도 냉정한
사상가로서 주체사상에 공정하게 접근하고 있다.

매우 역설적인 점은 동양철학자이면서 서양의 근대 주체철학적
관점에서, 종교인이 아니면서 종교의 관점에서 주체사상을 비판
하고 있다는 것이다.

주체사상의 지도이념과 북한의 민족자주 원칙 등에 대해서 동의
하는 저자이지만, 사상과 과학의 대상으로서의 주체사상에 대한
저자의 비판은 결코 피상적이거나 주변적이 아니라 보다 본질적
이다. 저자의 비판은 북한이 주체사상을 ‘김일성의 유일사상화
’함으로써 이를 ‘국교’로 만든 것, ‘민중의 종교가 아니라
지배자의 종교’로 전락시킨 것, 주체사상을 ‘교조화ㆍ권력화’
하여 ‘인간의 해방사상이 아니라 지배자를 위한 교리’가 되게
했다는 것 등이다.

만일 주체사상이 그렇다면 저자의 ‘가혹한’ 비판은 ‘이유 있
는’ 비판이 아니라고 하기 어려울 것 같다.
저자는 이 책에서 저술 동기를 “주체사상과 자본주의를 모두
지양하고 제3의 길을 모색하기 위한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그
러나 서구의 개인적 주체철학과 북한의 집단적 주체철학에 대해
‘요약과 비평’하는 것을 그의 사명으로 국한하면서 ‘새로운
대안’을 제시하는 것은 독자의 몫으로 돌리고 있다.
<도서출판 세훈 펴냄 59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