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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리브에 남긴 발자욱

][ [북리뷰#22] 김현준의 재즈파일

문화일보(MHNEWS)

날 짜 : 97/2/26
제목: <서평> '김현준의 재즈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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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준의 재즈파일" 김현준 지음 / 경향신문사 / 373쪽 / 9천원
90년대의 문화에서 특징적인 현상가운데 하나가 이른바 마니아집단의 등장
이다. 특정한 분야에 깊이 빠져들어 전문가 못지않은 정보와 지식을 가지고
즐기는 마니아집단은 왕성한 정보욕구와 수집벽, 나름대로의 감식안을 갖
추고 있으며 때로는 문화시장의 오피니언 리더 역할을 하기도 한다.
마니아의 등장은 문화 전반에서 정치가 가진 규정력이 약화되는 현상과 무
관하지 않다. 사실 대중의 일상에서 문화까지 정치적 구도에 의해 규정받지
않을 수 없었던 80년대에 독특한 취향을 가진 마니아집단이 목소리를 내기
는 어려웠다. 따라서 마니아집단의 등장은 우리 사회 전반에서 어쨌거나 개
방적이고 민주적인 방향으로의 변화가 이루어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현상으
로 이해해도 그리 틀리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마니아집단은 때로 특정한 문화에 대한 지나칠 정도의 집착과 취향
의 폐쇄회로를 보여주기도 한다. 이는 최근 많은 마니아들의 담론에서 공통
적으로 드러나는 ‘잰 체하는’ 경향이나 특정취향에 대한 비판을 참지 못
하는 경향으로 드러난다. 그것은 기본적으로 우리 사회 마니아문화의 ‘뿌
리얕음’을 입증하는 것이겠지만 가끔 그런 담론들은 문화의 흐름과 방향에
서 결정적인 악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몸으로 느껴야할 것을 지식으로 받아들이면서 경쟁적으로 주워섬기는 그런
담론들에 의해 문화시장에는 엉뚱하고 기형적인 거품 현상이 생겨나곤 한
다. 적지 않은 재즈 관련 서적들을 포함한 마니아식 담론의 한계가 바로 그
런 것이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마니아에 의한 마니아적인 글쓰기는 대개 이
런 식이다.
“난 이런 것도 알고 있다. 넌 몰랐지?” 혹은 “난 이렇게 생각해. 남들
이 어떻게 생각하건 난 상관없어” 이 책 ‘김현준의 재즈파일’을 읽으면
서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은 이 책은 적어도 그런 마니아적 글쓰기의 일반
적 문제에서 벗어나 있다는 점이다.
그런 ‘잰 체하는’ 마니아들이 흔히 하는 대로 “재즈는 이런 것이다”라
고 정의하러 들지 않는다. 그 보다는 재즈를 탄생시킨 다양한 문화적 자원
들과 음악 양식들의 흐름을 꼼꼼히 추적하면서 재즈의 복합적이고 다층적인
차원들을 하나씩 열어보인다.
또 그는 “재즈야말로 최고의 음악이며 재즈를 모르는 사람은 인생을 헛사
는 것”이라는 식으로 공연히 목에 힘을 주면서 나처럼 평범한 청중들을 주
눅들게 하지도 않는다. 그 보다는 찬찬히 아주 성실하게 재즈의 미학이 형
성되고 변화한 과정을 짚어준다. 무엇보다도 그는 음악에 대한 전문적인 안
목과 지식을 기반으로 재즈의 다양한 흐름이 가지고 있는 음악적 특징들을
알기 쉽게 설명해 준다.
코드 진행과 음계, 음정과 리듬의 변화까지 악보를 그려가며 친절하게 제
시해주는 그의 설명을 들으며 우리는 자연스럽게 스윙이니 비밥이니 쿨이니
하는 장르의 개념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비록 과문한 처지이기는 하나
재즈의 다양한 갈래와 풍부한 음악적 자원들에 대해 이만큼 명료하고 설득
력있게 설명한 책을 나는 달리 본 적이 없다.
하지만 이 책의 진정한 미덕은 다양한 재즈의 갈래들을 그 음악들이 놓여
있던 사회사적 배경과 예술가들의 생애와의 연관속에서 위치짓고 있다는 점
이다. 이러한 접근법은 그동안 재즈에 관한 담론들이 흔히 범하던 단정적이
고 도식적인 이해 방식, 이를테면 “비밥은 스윙에 반발해 생긴 것”이라는
식의 퀴즈풀이식 이해를 극복할 수 있게 해준다.
내가 이 책에서 특히 재미있게 읽은 부분은 필자가 ‘쉬어가는 페이지’라
고 이름 붙인 글들이다. 필자가 이 글들을 통해 솔직하게 토로한 내용들은
척박한 한국의 풍토에서 음악 마니아의 삶을 이어온 동세대에게 깊은 공감
을 주기에 충분하다.
그리고 또한 이 글들은 최근 우리 사회의 다소 비정상적인 재즈붐에 대해
서도 새삼 돌아보게 해준다. 요즘의 재즈붐은 확실히 깊이 없이 겉만 요란
한 거품의 혐의가 짙다.
찰리 파커나 마일스 데이비스의 이름 정도는 지껄일 수 있어야 하고 그럴
듯한 재즈카페에서 폼잡고 커피 한잔쯤 마셔야 세련된 현대인으로 치부되는
가운데 재즈는 음악이 아니라 ‘키치’가 되어간다. 적어도 이 책은 재즈
가 ‘세련된 실내장식의 카페에서 한껏 폼을 잡으며 잡다한 지식을 자랑하
는’ 그런 종류의 허세와는 무관한 음악임을 알게 해준다.
재즈는 지식으로 이해하는 음악이 아니라 몸으로 느끼는 음악이다. 재즈의
재즈다운(jazzy) 느낌을 몸으로 체득할 수 있으면 되는 것이다.
또 그것을 체득하지 못한다한들 부끄러운 일도 주눅들 일도 아니다. 재즈
만이 유일하게 가치있는 음악일 수는 없기 때문이다. 자신이 재즈를 이해하
는데 가장 많은 영향을 끼친 사람이 길거리의 거지 흑인 할아버지였다는 필
자의 고백은 그런 의미에서 재즈에 관한 지식을 자랑하며 잘난 체 하는 이
땅의 얼치기 마니아들의 허위의식에 먹이는 통렬한 한 방이다.
金昌南(성공회대교수, 문화평론가):평자는 서울대 대학원 신문학과출신의
언론학박사. 대중음악비평가로 활동해 왔으며 ‘삶의 문화, 희망의 노래’
‘대중문화와 문화실천’ ‘TV를 읽읍시다’(공저)외 다수의 저서와 논문을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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