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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리브에 남긴 발자욱

[북리뷰#2] 자유종 - 세기초 소설로 세기말

제목 : <서평>자유종 - 세기초 소설로 세기말 이해
날짜 : 97년 01월 22일

林熒澤<성균관대 교수·한문학> 이제 겨우 4년 밖에 남지않은 20세기,
그 들머리에서 우리민족은 ‘변혁’과 ‘자주’라는 주제에 부닥쳤다. ‘변
혁’그리고 ‘자주’는 근대 국민국가의 수립이라는 역사적 과제와 맞물려
제기된 개념이다. 이 시기의 정신사는 계몽주의로 가지 않을 수 없었다. 중
세의 고루한 틀을 깨뜨리고 위기에 당면한 주권을 수호하자면 무엇보다 인
간 개개인의 자각과 결속-‘국민’으로 거듭나기 위한 계몽이성이 간절히
요망되었기 때문이다. 시대의 절박한 요구를 반영하여 이 단계의 문학사는
‘東國時界革命(동국시계혁명)’을 불러일으킨 한편, 신소설을 등장시킨 것
이다.
신소설은 구소설에 대응해서 붙여진 이름인데 계몽주의가 만들어낸 양식이
며, 과도기적인 것이었다. 계몽이란 말뜻이 지식이나 문물이 몽매한 상태를
전제하고 있는바 ‘근대’의 문을 두드리는 과정에서의 어두움이다. 말하
자면 동트는 새벽에 갑자기 느끼는 캄캄이랄까. 신소설은 구태에 찌든 머리
를 쇄신하기 위하여 고안된 처방이지만 구태에 찌든 머리에 용이하게 받아
들여진, 그네들에게 친숙한 구형식을 원용할 필요가 있었다. 그렇기에 신소
설은 문자 그대로 새것이 되지 못하고 신구가 뒤섞인 어쭙잖은 모습을 띠고
말았다. 동국시계혁명이 구래의 시가형식을 전면적으로 동원하여 거기에
신사상·신문물을 주입하였듯, 신소설 역시 시대정신을 대변한 변혁의 실험
장이었으나 구소설과의 연계고리가 뒤엉킨 상태였다.
이번에 이해조 소설선이 최원식교수의 교주로 간행을 보게 되었다. 표제의
‘자유종’과 ‘구마검’ ‘산천초목’을 수록하고 있다. 이들 3편은 신소
설의 정체성을 감지하기 좋은 재료다.
李海朝(이해조.1867∼1927)는 신소설작가로서 李人稙(이인직)과 쌍벽을 이
룬 존재다. 그런데 한국 근대문학사는 종래 이인직에서 이광수로 이어지는
계보를 중심축에다 놓았다. 이해조는 중심축에서 비켜나서 2류로 평가절하
되었다. 최남선의 신체시가 현대시의 원조로 대서특필된 것과도 일맥상통하
는 논리다.
이인직과 이해조의 문학사적 위상은 각기 어떻게 자리매김 되어야 적당한
가. 근대문학사의 전체 구도와 직결되며,나아가서 우리 근대의 향방과도 연
관이 있는 사안이다. 임화는 일찍이 이인직과 이해조의 비교론을 펼친바 있
었다.“이인직은 순수한 현대작가요, 이해조는 전통적 작가요,최찬식은 대
중작가라 부를 수 있다” 문학적 성향이 서로 다르므로 문학사적 역할도 다
른 것으로 임화는 인식하여, “현대소설의 건설자인 이광수가 계보적으로
연결되는 사람은 이해조도 아니요, 최찬식도 아니요, 이인직이 된다”고 판
정을 내린 것이다. 이인직이 ‘현대적’, 이해조가 ‘전통적’인 것으로 규
정된 경향을 어떻게 평가하느냐는 점은 따져볼 문제다.
‘구마검’을 들어보자. 驅魔劍(구마검)이란 제목은 이책에 적절히 풀이되
어 있듯, “마귀를 쫓는 칼이란 뜻으로 중세 비합리주의에 대한 근대 계몽
이성의 승리를 상징”하는 것이다. 계몽적 성격이 가장 선명하다. 소설은
서울의 한 중인가문이 무속과 풍수설에 빠진 나머지 파멸에 직면한다. 이
난경을 어떻게 해결하고 있는가. 소설이란 원래 갈등구조다.갈등이 막다른
지경에서 해결하는 방식으로 소설의 성격을 가늠해 볼수도 있다. 고소설에
서는 허다히 초월적인 무엇에 의해 사태가 역전되는 방식을 취한다. ‘흥부
전’에서 제비가 물어다 준 박씨가 흥하게 하고 망하게 하듯. 그에 비해 외
적개입을 배제한 소설 자체의 논리구조(현실적 전개)로 완결되는 것이 근대
소설의 한 징표다.
‘구마검’의 경우 파멸에 이른 가문을 일으켜 세운 것은 門長(문장)이 주
재하는 宗中會議(종중회의)다. 종중회의의 현명한 판단과 처사에 의해 가문
이 바로잡히는 것이다.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근대적 제도로 도입된 사법부
의 재판에 의해 악이 제거되는 것으로 결말이 지어진다.
그런데 이인직의 ‘혈의루’를 보면 고난의 구원자는 일본사람으로 설정되
고 있다. 그리고 주인공이 미국 유학을 갔다가 개화의 선구자로 돌아오는
데서 결말이 온다. 이는 이광수의 ‘무정’으로 이어진 구조다. ‘혈의루’
와 ‘구마검’은 외적개입을 허용하는 점에서 구형식으로부터 자유롭지 못
했음을 보는 터이나 ‘혈의루’는 감각이 제법 국제화되는데 반해 ‘구마검
’은 보수성을 못 면하고 있다. 이인직의 ‘현대적’, 이해조의 ‘전통적’
의 차이가 여지없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이인직의 친일적,비주체적인 개화
주의와 이해조의 애국적, 주체적 민족주의는 그들이 남긴 작품들이 증명하
고 있다. 이해조의 소설을 읽노라면 위로 판소리계소설, 아래로 채만식·이
문구 등으로 이어지는 민중적 입담을 만나게 된다. 뿐아니라, 전통적인 가
운데서 새로운 의미를 발견하게도 된다. ‘자유종’은 政論(정론)적 성격의
과잉이 소설형식을 부정해버린 셈이지만 형식의 측면에서 실학의 걸작 홍
대용의 ‘醫山問答’(의산문답)을 계승하였는데 페미니즘의 현대적 목소리
가 울려온다. ‘산천초목’에서는 외적개입이 청산된 소설구조의 진전을 흥
미롭게 읽을 수 있다.
20세기초 신소설에서 이인직적 성향과 이해조적 성향은 세계화를 추구하는
지금에 있어서도 다툼이 큰 문제다. 일반독자를 위한 교양물로 이해조의
소설이 나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 책에 붙여진 자상하고 충실한 교주
에는 실로 만만찮은 노고가 담겨있을 터이다. 그래서 독서대중에게 과거를
돌아보고 현재를 사고하는 데 안성맞춤이 되었다.
… 평자의 주요논문으로는 ‘현실주의적 세계관과 금오신화’가 있으며 저
서로 ‘한국문학사의 시각’‘이조시대의 서사시’(이상 창작과 비평사)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