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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리브에 남긴 발자욱

][ [정보화] 소프트웨어 정보화(박태견)끝

[2.7차 산업]이라는 하나의 해법

지금 우리경제는 심각한 병에 걸려있다. 당장 내일모레 죽을 급
살병은 아니다. 그러나 장기간 꾸준하게 치료하고 신약을 개발하지
않으면 죽음에 이를지도 모르는 심각한 병을 앓고 있다. 병명은
[선도산업 상실증]이다.
과거 우리경제는 선도산업(Leading Industry)을 갖고 있었다. 경
공업 수출시대에는 섬유와 신발, 가발, 합판이 우리의 선도산업이었
다. 중화학공업 수출시대에는 조선, 철강, 건설, 석유화학, 자동차,
가전제품, 반도체가 그런 역할을 해주었다. 그러나 이제는 국제시장
에 내다팔 물건이 점차 없어지고 있다. 선진국에게는 기술경쟁력에
서 뒤지고, 후발개도국에게는 가격경쟁력에서 처지기 때문이다.
극적 돌파구를 마련하지 못한다면 우리경제의 앞날은 암울하기
짝이 없다. 이때도 해법은 [소프트웨어 정보산업화]이다.
일본굴지의 가전 메이커 도시바(東芝)는 치열한 가격파괴 경쟁에
서 살아남기 위한 방안의 하나로 1995년 7월 한 결단을 내렸다. 장
난꾸러기 토끼 '벅스 바니', 총명한 작은새 '트위티', 심술꾸러기 고
양이 '테츠' 등 미국 타임 워너의 인기 캐릭터들을 사용한 오디오기
기를 생산하기 시작한 것이다. 동남아 메이커들에게 OEM(주문자
상표 부착방식) 하청을 주어 생산한 뒤 미국에서 판매되기 시작한
이 제품들의 원래 판매목표는 연간 10억달러. 그러나 회사도 미처
예상못한 이변이 일어나 목표를 재수정했다. 시판도 하기 전에 시
제품을 본 미국 바이어들이 연간 목표치의 2배인 20억달러어치의
무더기주문을 낸 것이다. 생산이 주문을 따라가지 못할만큼 주문이
쇄도하자 도시바는 이윤율을 매출액의 10%로 높여잡고도 느긋하게
고자세로 물건을 팔 수 있었다. 범세계적인 가전제품 가격파괴 경
쟁때문에 5%의 이윤율을 확보하는데도 쩔쩔매는 다른 메이커들은
부러운 눈으로 도시바의 대약진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소프트웨어 정보산업화란 이처럼 간단한 것이다. 기존의 제조산
업에 무형의 고부가가치를 부여하는 것이다.
도시바의 성공담은 최근 '제조업 몰락론'이 팽배하고 있는 일본경
제계에게 새로운 생존의 가능성을 보여준 사례로 받아들여지고 있
다. 일본 재계의 대원로인 세키모토 다다히로(關本忠弘) NEC회장
이 일본의 살길로 제시한 [2.7차 산업론]에 딱 맞아떨어지는 사례
라는 것이다.
"일본 앞에는 어떤 세상이 펼쳐지고 있는가. 우선 미국은 컴퓨터,
비디오보다는 소프트웨어 선진국답게 고도통신기반을 활용한 정보
초고속도로 구상을 발표하고 있다. 일본에게 커다란 영향을 주는
아시아에서는 한국, 대만 등의 신흥공업국이 10∼15년 후에는 성숙
공업국가가 될 것이고, 중국도 21세기 초엽에는 공업사회로 편입될
전망이다. 이 와중에 일본은 무엇을 해야 할까. 21세기에는 제조업
이 더 이상 부가가치산업이 되지 못할 게 확실한 만큼 장차 2.7차
산업이 중핵이 돼야 한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과거 자동차는 디자인 개발과 컴퓨터에 의한 생산성 고양, 철강
은 프로그램 생산이라는 2차산업과 3차산업을 결합한 2.5차 산업화
를 통해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러나 문제는 지금부터이다.
2.5차 산업화도 더 이상 대안이 못된다. 멀티미디어 중심의 산업구
조가 만들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정보분야에서도 멀티미디어로 무
장한 제품들의 중요성이 증대할 것이다. 정보, 지식, 서비스로 인해
보다 부가가치가 높아지는 산업이 바로 2.7차 산업이다."
세키모토 회장이 말하는 2.7차 산업의 실체는 무엇인가. 그는 농
어업 1차, 제조업 2차, 서비스업 3차로 구분하던 콜린 클라크의 고
전적 산업분류방식은 지금같은 정보화사회에는 더 이상 적절한 잣
대가 못된다고 말한다. 따라서 그는 종전의 애매모호한 3차산업 개
념을 보다 세분화해 상업, 금융, 보험, 수송, 유흥업 등 기존의 3차
산업을 제외한 정보, 오락, 취미, 교육, 패션, 의료 등을 4차산업으
로 재분류하고 있다. 당연히 캐릭터 비즈니스도 4차산업의 범주에
속하는 산업부문이다. 요컨대 도시바는 더 이상 부가가치를 낳지
못할 것이라고 평가받던 2차산업 사양상품인 오디오 가전제품에 캐
릭터를 부착함으로써 고부가가치 2.7차산업의 길을 연 것이다.
2.7차 산업화란 방향성은 선도산업 상실증에 걸린 우리에게도 많
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화두이다.

정보산업의 꽃, 만화파생산업

그러나 일본과 달리 우리는 2.7차 산업화를 추진하는 데 결정적
약점을 갖고 있다. 일본 역시 4차산업이 뒤지기란 우리와 마찬가지
이다. 그러나 일본은 4차산업중 한부문에서는 세계최강의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다. 애니메이션산업 및 여기서 가지친 게임과 캐릭터등
이른바 만화파생산업이다.
일본은 지난 50년대에 데스카 오사무라는 거인이 만화계에 출현
해 아톰, 레오, 리본기사 등 수많은 TV애니메이션을 생산해내는등
장편 TV애니메이션에 타켓을 맞춰 만화산업 발전을 주도한 결과,
오늘에 와서는 전세계 TV애니메이션시장의 65%를 장악하고 게임
시장의 95%를 싹쓸이한 세계최대 만화왕국이 될 수 있었다. 만화
산업은 어린 시절에 만화를 보고 자란 이들이 경제력을 가진 학부
모가 되면서 갈수록 발전속도가 빨라지고 있다. 오늘날에 이르러서
는 만화 캐릭터를 붙인 상품이 어린이 산업부문에서는 말할 것도
없고, 전세계적으로 가장 왕성한 구매력을 갖고 있는 것으로 평가
되는 [글로벌 10대], 더나아가서는 직장인 X세대들 사이에서도 캐
릭터산업등 만화파생산업이 가공스런 확장세를 과시하고 있다. 일
종의 캐릭터 빅뱅이다. 일본 만화산업은 최근 그동안 미국의 월트
디즈니사가 절대아성을 쌓고 있던 극장용 만화영화 부문까지 넘볼
정도로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만화산업이야말로 21세기 일본의 등
대인 셈이다.
그러나 우리사회에서는 아직도 만화가 음성문화이다. 만화가는
'망가쟁이'라 불리고 있다. 만화산업이란 30년동안 일본의 하청생산
공장 수준에 멈춰 있다. 최근 들어 국내만화산업을 미국과 일본에
버금가는 수준으로 키우겠다는 정부방침이 발표되고 서울국제만화
페스티벌등 관련행사가 열리고, 극장용 만화영화 제작도 활기를 띠
고 있으나, 아직도 만화는 뒷골목 음성문화 또는 코흘리개 돈이나
노리는 3류산업이라는 인식이 사회적으로 일반화돼 있다.
이런 그릇된 인식이 존재하는한 만화산업의 도약적 발전은 기대
할 수 없다. 또한 정부가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고 한두가지 행사를
개최하며, 만화계가 극장용 만화영화 몇편을 만드는 정도 갖고서
[만화 르네상스]의 도래를 기대한다는 것은 과욕이다. 21세기 황금
산업인 만화산업은 그렇게 간단한 산업이 아니다. 정확한 정책방향
의 설정과 사회인식의 전환, 재원 집중, 창의적 두뇌 발굴 등의 범
사회적 노력이 집중될 때에만 그 결실을 기대할 수 있는 산업이다.
디즈니는 {만화산업은 전 사회가 갓난아이를 기르는 정성을 쏟을
때에만 성장할 수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우리의 만화산업 잠재력은 그 어느 나라보다 대단하다. 비록 하
청생산이란 한계가 있기는 하나 1만여명의 숙련인력이 세계만화생
산의 절반을 담당하고 있다. 캐릭터 디자인과 스토리 구성, 컴퓨터
그래픽 등의 창의적 두뇌와 고숙련 기술이 부족할 뿐이다. 또 보다
작업여건이 좋은 미국과 일본 등지에서 맹활약중인 정상급 교포 애
니메이터들도 다수 있다. 구슬은 서말이나 있는데 이를 꿰는 재주
가 부족한 것이다.
구슬꿰는 재주를 일본에게서 배워야 한다. 일본은 처음부터 만화
산업의 타켓을 TV애니메이션에 맞추었다. 편당 제작비를 3천만달러
이상 쏟아부어 3천여명의 최정예 애니메이터들이 평균 4년여에 걸
쳐 만들고 전세계 배급망도 장악하고 있는 디즈니의 극장용 만화영
화들과는 애당초 경쟁이 힘들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대신 TV애
니메이션부문은 미국이 관심을 안두고 있어 세계시장 접근이 용이
했다. 이에 일본 만화계는 장편 TV애니메이션 제작에 승부를 걸었
고, TV방송사들도 초기에 손해를 보면서까지 막대한 제작비를 부담
하고 애니메이션 방영시간을 대폭 배정하는등 각종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언론은 만화비평란 배정 등을 통해 만화를 대중문화의 한
장르로 끌어올렸다. 만화산업의 고부가가치를 일찌감치 간파한 기업
들은 리스크를 감수하면서도 거액의 제작비를 투자했다. 정부 역시
정부개발원조(ODA)자금을 동남아등 외국 방송사들이 일본 애니메
이션을 무료로 방영케하는 데 사용하는등 치밀한 만화산업 세계화
정책을 폈다. 이같은 총체적 노력의 결과가 오늘날의 만화강국 일본
이다. 만화산업을 일구기 위해 지금 우리 사회구성체가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가를 보여주는 훌륭한 교과서이다.
정부는 추상적으로 몇 년후 일본 미국 수준으로 만화산업을 키우
겠다는 청사진을 제시하기보다는 {5년후에 현재 일본이 장악중인
세계시장의 3분의 1을 잡겠다}는 식으로 구체적 목표를 설정해야
할 것이다. 아울러 방송사, 만화계, 경제계, 언론 등과 머리를 맞대
고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역할분담을 진지하게 논의해야 한다.
이런 조직적 노력이 진행된다면 아마도 몇 년후 우리 만화산업, 더
나아가 현재 나날이 경쟁력을 상실하고 있는 제조업까지도 새로운
도약과 발전의 활로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소프트웨어 정보화는 저멀리 산너머에 있는 난제가 아니다. 가까
운 곳에서부터 하나씩 하다보면 어느 새 [정보 곳간]은 가득 차게
마련이다. 이때 요구되는 것은 단하나 [발상의 전환]일 뿐이다.


【필자(박태견) 약력】

1959년생
서울대학교 국문학과 졸업
국민일보, 평화방송 기자
현재 문화일보 경제부 기자
[앨 고어 정보초고속도로], [초국가시대로의 초대] 등 다수 집필


이제는 [소프트웨어 정보화]에 힘쓸 때
발 행 인 오 인 환
발 행 처 공 보 처
발 행 일 1996. 10.
인 쇄 처 (주) 계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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