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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리브에 남긴 발자욱

[퍼온글] 표현의 자유에 관한 토론회 1


검열과 표현의 자유에 관한 자료실(SPIC 11 2) [1301/1197]
제목:[><] 표현의 자유 토론회 발제문
올린이:spic(통신연대) 97.09.06 10:49:20 조회: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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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 표현의 자유는 있는가?
- 표현의 자유 쟁취를 위한 문화예술인 토론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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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제발표 1 : 표현의 자유 탄압과 신자유주의
강내희(중앙대영문학과)
1. 국면의 성격?
우리사회에 문화예술 활동들에 대해 체계적이다 싶은 검열과 탄압의 물결이 밀어
닥치고 있다. 작년에는 소설가 장정일과 김하기가 입건 또는 구속되더니, 두어달
전부터는 음란폭력성 만화를 싣는다고 일간 스포츠지 관련자를 고발하다가 급기
야는 [빨간 마후라] 사건을 계기로 [나쁜 영화]의 일부 장면들을 잘라내고, {천
국의 신화}를 만든 만화가 이현세를 입건하는 등 검열과 탄압이 문화예술계를 강
타하고 있는 것이다. 문화예술 탄압의 사례가 우리사회에 나타난 것은 물론 어제
오늘이 아니다. 문학계에서 {자유부인}의 정비석, {분지}의 남정현, {반노}의 염
재만 등 이외에 김지하, 고은, 한수산 등 많은 작가들이 이런 저런 이유로 입건,
구금, 구속, 기소, 혹은 투옥의 형태로 시달림을 받은 적이 있고, 미술계에서 신
학철이 기소되거나 전국민족미술인연합이 이적단체로 규정되어 홍성담등 그 소속
화가 십수명이 구속되어 형을 집행받은 바 있고, 영화계에서 [파업전야]나 [장산
곶메]를 제작한 영화인들도 탄압 받은 적이 있으며, 음악계에서도 왜색이나 대마
초 흡연 등의 이유로 이미자, 신중현, 송창식, 조용필 등 많은 대중가수들이 판
금조치 당한 적이 있고 정태춘이 오랫동안 투쟁한 적이 있으며, 지금도 시인 박
노해와 진관, 소설가 황석영과 김하기 등 문인들은 감옥에 있다. 그런데 최근 들
어와서 탄압의 양상이 달라지고 있다는 조짐이 보인다. 지금까지 문화예술에 대
한 탄압은 왜색, 퇴폐, 음란 등 '미풍양속' 위해와 사회의 문화적 도덕적 가치관
문란이 발미가 되어 진행된 적도 적지 않았으나, 그래도 '사회의 안녕과 질서를
어지럽힌다'는 정치사상적 이유가 더 큰 작용을 한 편이었다. 예술가들이 걸핏하
면 이적단체를 구성했다느니, 간첩행위를 했다느니 하면서 국가보안법에 의해 구
금되어 사상범으로 분류되었던 것은 그런 이유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의 국면은
사상의 자유 이외에도 표현의 자유에 대한 체계적 탄압이 증가한다는 느낌을 갖
게 한다. 수년전 마광수교수가 구속된 데 이어 작년에 장정일씨가 입건될 때만
하더라도 그런 생각이 들지 않았는데, 시민단체들이 나서서 [음란폭력성조장매체
공동대책협의회]를 구성하고 노골적 성묘사 혹은 폭력 장면을 싣는다는 이유로
스포츠신문의 만화가들과 신문사간부들을 고발한 데 이어 [빨간 마후라] 사건을
계기로 검찰이 만화가들과 간부들을 기소하고, [나쁜 영화]에 대한 검열을 강화
하고, 또 {천국의 신화}를 출간한 만화가 이현세를 소환하는 데에 이르러서는 현
재 국면의 성격이 좀더 분명해졌다는 생각이다. 이제 우리사회의 문화예술에 대
한 탄압이 사상의 자유만이 아니라 표현의 자유도 집중 겨냥하기 시작한 것이다.
최근의 이런 국면은 지난 해 헌법재판소가 영화에 대한 공연윤리위원회의 사전
검열이 위헌이라고 내린 판결로 그동안 문화예술의 창작 활동에 가해지던 검열과
탄압이 줄어들 것으로 기대했던 사람들을 크게 실망시키고 있다. 가수 정태춘을
중심으로 한 음반에 대한 사전 검열 반대 운동은 일부 승리를 얻어내기도 했지만
금년 들어 예술가들에 대한 소환, 입건, 구속 등이 이어지는 것을 보면 그 판결
의 효과는 기대하던 것과는 반대로 나타나는 듯하다. 명목상으로는 사전 검열이
철폐되었으나 개인들, 일부 시민단체, 언론방송계가 '국민 정서' 위배나 '청소년
보호' 등의 명분으로 음란폭력 표현물에 대한 단속과 처벌을 주장함으로써 실질
적인 검열 효과를 가져오는 입건, 구속 등이 자행되고 있다. 이로 인하여 헌법이
명시한 표현의 자유는 유명무실하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이전에는 방송
심의위, 공연윤리위, 간행물윤리위 등이 '알아서 판결을 해주어' 편하다고 여기
던 문화예술 생산업체들이 사후의 책임 추궁으로 더 큰 손해를 볼까봐 두려워 외
려 사전 검열을 강화하기까지 하는 형편이다. 최근의 사태가 우리사회에 표현의
자유를 체계적으로 위축시키게 될 것은 따라서 불문가지인데, 우리사회는 그만큼
기본적 자유를 보장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표현의 자유가 탄압을 받아 위축받게
되면, 사상의 자유마저 위축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사태는 심각하다. 사상은
꼭 표출될 필요가 없다는 점에서 표현과는 무관할 수도 있지만, 표현되지 않은
사상은 무의미하다는 점에서 사상의 자유는 표현의 자유에 의해 완성된다고 할
수 있다. 박노해, 황석영, 진관, 김하기 등의 시인 작가들이 구속된 것은 주로
그들의 사상 때문이지만 그들의 사상이 구체적인 행동으로 표출되거나 그들이 생
산한 표현물로 입증되지 않았다면 문제되지 않았을 것이다. 표현은 이처럼 사상
의 증거물이 되고, 사상의 최종 발현체라는 의미를 가지므로 표현의 자유에 대한
탄압은 결국 사상의 자유에 대해서도 족쇄를 채우는 효과를 낸다. 이런 점에서
최근 국내에서 진행되고 있는 표현의 자유에 대한 탄압은 우리사회의 사상의 자
유마저 억압하는 효과를 낳는다는 점에서 심각한 것이 아닐 수 없다.
현재 상황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 것인가? 문화예술의 표현자유를 보장하라는 헌
법재판소의 결정과 무관하게 탄압이 실질적으로 강화되는 현재의 상황을 '논리적
모순'으로만 생각할 수는 없을 것이다. 현재 표현의 자유에 대한 제재는 영상관
계법, 음반법, 청소년보호법 등의 개정 혹은 신설로 법제화되고 있는데, 이런 변
화는 우리사회의 지배세력이 표현의 자유를 제한해야 할 필요를 느낀 결과일 것
이다. 사상의 자유에 대한 탄압이 주로 '국가 안보'를 명분으로 진행되었다면 표
현의 자유에 대한 탄압은 주로 가족질서, 전통적 가치의 파괴 등 도덕적 이유로
진행되는 특징을 갖는다. 탄압의 대상은 물론 전통적 가치관을 뒤흔드는 비도덕
적 행태를 조장하는 일체의 행위를 말하는데, 문화예술에서 이런 행위는 '도덕적
수치감'을 주는 음란한 성묘사, '비정상적' 성관계라고 규정받는 동성연애, 시
간, 수간 등의 묘사 등을 말하는 것이다. 마광수, 장정일의 소설, 이현세의 만
화, 또 [나쁜 영화] 등이 입건되거나 탄압을 받는 주된 이유는 그 표현물들이 음
란하다는 데 있다. 여기에는 도덕적 판단이 깊이 개재되어 있는데, 현재 진행되
는 국면은 도덕적 이유에 의한 문화탄압이 일시적이고 우연한 것이 아님을 보여
준다고 생각된다. 다시 말해 문화탄압의 정세가 있다는 것인데, 이를 이해하는
것이 이 발제의 주요한 목표이다.

2. '문화전쟁'과 신보수주의
표현의 자유에 대한 탄압을 정세적으로 이해하려면 우리사회의 변동을 살펴보아
야 할 것이다. 우선 1990년대에 접어들어 우리사회에 문화적 자유에 대한 새로운
요청이 일어나고 있다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신세대 네멋대로 하라'는 구
호가 1990년대 초두에 나은 데서 드러나듯 우리사회에는 도발적이거나 심지어는
파괴적이다 싶을 정도로 과거에 보지 못하던 새로운 감수성을 지닌 문화적 형태
들이 등장하였다. 폭주족의 행태에서 보듯 신세대의 삶의 양식은 과거와는 크게
달라졌으며, 성풍속도 역시 획기적인 변화를 보여주고 있어서 [빨간 마후라]는
그런 새로운 성풍속도를 보여주는 흔한 사례일 뿐이다. 청소년에게만 문화적 변
화가 생긴 것도 아니다. 1980년대 중반 이후, '3저호황'을 누리고 1988년 올림픽
을 치루고 난 이후 한국에는 이후 지속된 불경기에도 불구하고 과소비가 체질화
되는 소비사회적 양상이 나타났다. 과거 문화는 일부 계층에게만 허용되는 '고급
문화'적 성격이 강하였으나 소비자본주의의 본격 가동으로 인하여 대중문화가 크
게 발전하였고, 아울러 문화산업도 급격하게 성장하였다. 청소년만이 아니라 여
성의 욕구와 욕망의 표출이 과거에 비해서는 훨씬 더 자유로와지고 아직 소수이
기는 하지만 동성애자들의 공개적 활동도 늘어나고 있는 중이다. 이런 변화들은
우리사회에 새로운 감수성, 새로운 자유 혹은 삶의 방식에 대한 요구가 커져가고
있다는 증거일 것인데 아울러 자유에 대한 이런 요구를 위험으로 간주하고 그 요
구를 한정하거나 통제하고자 하는 보수세력의 노력 또한 커지고 있다. 표현의 자
유에 대한 탄압은 이런 상황에서 일어나는 것으로서 일종의 '문화전쟁'이 아닐까
싶다.
'문화전쟁'은 1980년대 후반부터 미국의 신보수세력이 스스로 '퇴폐하고 타락한'
아방가르드 예술가들이라고 규정한 세력에 대해 벌이고 있는 '성전'이다. 선진자
본주의에서 보수세력은 1960년대 진보세력의 약진에 의하여 수세에 몰리다가
1979년 영국에서 마가렛 새처가, 1980년에 미국에서 로널드 레이건이 정권을 잡
는 것과 함께 지배세력으로 부상하였다. 오늘날 미국에서 신보수세력은 주로 복
음파로 구성되는 종교적 근본주의자들, 시민군운동을 벌이는 호전적인 반정부인
민주의, 신나치 등 다양한 세력들을 포괄하는데 '풀뿌리'정치를 지향하는 강경우
파 혹은 극우세력이다. 최근 오클라호마 연방정부 건물을 폭파한 맥베이와 같은
자를 배출하고 있는 이들 신보수세력은 모럴 머조리티와 같은 도덕재무장을 운동
을 벌이기도 하고, 로버트슨 목사와 패트릭 뷰캐넌과 같이 공화당 대통령 후보
예비선거에 나서기도 하고, 윌리엄 베넷처럼 레이건 행정부의 교육장관 및 부시
행정부의 '전국약물통제정책국'(Office for National Drug Control Policy) 대표
를 지내기도 하는 등 미국의 지배층을 이루기도 한다. 이들은 제씨 홈즈나 깅그
리치와 같은 강력한 대변자를 하원과 상원에 가지고 있으며, 공화당의 경우 50개
주 중 10개주를 장악하며, 지방자치체를 장악하고 있는 경우는 더 많다. 신보수
는 1987년 이래 미국의 '전통가치'를 수호하자는 운동을 벌여왔다. 패트릭 뷰캐
넌이 1992년(?) 공화당의 대통령후보 예비선거에서 '타락한' 진보주의자들로부터
'미국을 도로 찾자'는 구호를 외치며 지지를 호소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이들
은 일부 문화계의 엘리트들이 미국의 전통적 가치를 파괴하고 있다며, 하나님의
집을 다시 짓기 위해 가부장제를 회복해야 한다거나, 유색 인간말종들을 내쫓고
백인들만의 국가를 건설해야 한다거나, 혹은 가족의 신성함을 짓밟는 동성애자들
을 추방해야 한다는 따위의 주장을 한다. 시민적 덕목을 강조하는 세속 휴머니스
트, 성차별 중단을 요구하는 페미니스트, 인종차별에 항의하는 소수민족들, 반인
간적 행위에 대한 비판적 활동을 하는 사람들에 적의를 나타내는 것도 신보수세
력이다. 이들은 자신의 광신적 신앙, 서구 혹은 백일 우월주의 등을 비판하거나
여성 및 동성애자의 인권을 옹호하는 예술적 표현물을 생산하는 예술가들에 대해
서 깊은 적개심을 드러내는 것으로 유명하다. 상업방송과는 달리 공익적 성격을
많이 담고 있는 NPR(공영 라디오)와 PBS(공영TV방송), 그리고 예술가들을 지원하
고 있는 NEA(예술지원기금) 등이 일반 시민들의 이익보다는 반미국적, 반전통적
가치들을 전파하는 데 열중한다며 예산을 삭감하는 데 앞장 서고 있는 것도 이들
이다. 이들 문화전쟁 세력은 정치권내에 있는 깅그리치 하원의장 같은 사람들만
이 아니라 미국의 풀뿌리 보수 집단의 지원도 받고 있다.
한국에서는 미국의 보수세력이 전개하는 문화전쟁과 같은 신보수주의 운동이 명
시적으로 드러나 있지는 않다. 보수적 종교인, 학자, 혹은 시민대표가 정당 후보
로 나서거나 동맹을 이루어 발언하는 경우는 별로 없으며, 오히려 진보적 인사들
이 정치적 활동가 역할을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런 현상은 한국에서는 진
보세력이든 보수세력이든 자신의 입장을 명시적으로 밝히면서 하는 담론정치가
발전해 있지 않기 때문에 드러나는 경향일 뿐, 우리 주변에 '문화전쟁'과 유사한
보수적인 움직임이 없는 것은 아니다. 강지원검사나 손봉호교수와 같은 중요한
발언자들이 있고, 이들을 도덕적으로 집단 지원하는 시민단체들이 있으며, 이들
의 요구와 발언을 법제화한 영상관계법, 음반법, 청소년보호법 등의 장치가 있
고, 공연윤리위원회나 방송심의위원회 등의 준국가장치들이 있으며, 나아가서 보
수적 언론이 있기 때문이다. 이들 사이에는 명시적 연계는 아니나 일종의 암묵적
협조체계 같은 것이 있어 보이며 최근 표현의 자유에 가해지는 실질적 검열과 탄
압도 그런 협조체계의 결과가 아닐까 싶다. 이런 양상은 군사독재 시절의 국면
에서 문화예술에 대한 탄압이 유도되던 것과는 다르다. 과거에도 장발, 미니스커
트 착용, 약물복용 등의 행위나 '퇴폐' 문화를 미풍양속을 위반하는 것으로 간주
하여 거리에서 일제 단속을 벌이거나 방송 출연을 금지한 경우가 많았으나 단속
과 탄압이 독재자나 그의 지휘하에 있는 국가기구의 직접 명령과 집행의 형태였
다면, 지금은 여성단체, 시민단체와 같은 비국가단체들의 요구와 그에 대한 부응
의 형식을 띠고 있는 것이다. 1980년대말부터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하여 조직
폭력배나 마약 거래에 대한 단속 등의 형태로 국가장치가 직접 나선 데 따른 호
응의 성격도 있겠으나, 그보다는 1990년대에 들어와 신세대의 새로운 감수성 출
현, 학교교육의 공동화, 유흥업의 거대 산업화, 인신매매 증가 및 포르노문화의
확산과 청소년의 대거 가출 현상 등에 대해 주부 나 일반 시민의 우려가 커져가
는데도 경찰 등 정부기관의 대응이 부진함에 따라 불신이 겹쳐져 시민들의 목소
리가 더 커지는 것으로 봐야 할 것이다. 이런 양상이 생기는 것은 물론 우리사회
의 보수선회와 깊은 관련을 맺고 있다. 한국은 1960년의 4월 혁명 이후 진보세력
의 상승세가 이어져오다가 1980년대에 이르러 사회변혁에 대한 폭발적 관심을 일
으켰으나 1989년 구소련의 붕괴와 함께 20세기 진보의 전범을 제공하던 현실사회
주의가 괴멸함으로써 진보세력은 그때까지 강하게 품어오던 변혁의 전망을 많이
상실하여 큰 타격을 입었다. 군사정권에 대한 국민적 저항을 끌어 모으던 힘도
1992년 김영삼의 문민정부가 들어섬으로써 분산되었다. 게다가 선진자본주의 국
가들에서 신자유/신보수 세력이 득세함으로써, 그리고 국내의 군사정권이 적어도
형식상으로는 종결됨으로써 한국사회는 전반적으로 보수화되고 있다. 진보세력의
발언이 사회적 파장을 더 많이 일으키던 1970년대와 80년대와는 달리 지금은 보
수세력이 더 큰 발언권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3. 신자유주의 사회의 모순
신보수주의 경향은 주로 도덕과 감성의 영역, 즉 정치와 문화의 영역에서 일어나
고 있지만 아울러 이해관계 영역인 경제영역과도 긴밀한 관련을 맺고 있다. 정치
와 문화에서 신보수주의를 지지하는 세력은 경제적으로는 신자유주의 운동을 지
지한다. 신자유주의는 19세기 자유주의의 후예로서 20세기에 들어와 자유주의가
사회주의 운동의 저항에 직면하자 사회진보세력과 타협 끝에 도달한 케인즈주의
적 수정을 다시 과거의 자유주의로 되돌리려는 운동이다. 신자유주의가 본격적으
로 등장한 것은 19세기 자유주의의 전횡에 맞선 사회주의 운동의 도전에 직면하
여 자유주의가 타협안으로 내세운 케인즈주의적 처방이 그 약효를 잃게 된 1970
년대 초 이후로서 이때 자본은 포디즘적 축적 전략을 일부 수정하여 '포스트포디
즘' 혹은 '유연적 축적'(flexible accumulation)을 지향하였다. 유연적 축적이란
예컨대 과거의 경직된 기업 조직을 재구조화하여 일용직, 임시직 혹은 하청 고용
을 늘이고 기업을 감량화하며, 컴퓨터기술의 도입으로 생산과 소비의 적기화 등
을 시도하고 나아가서 자본의 자유로운 이동을 추진하여 초국적 자본을 지향하는
전술을 구사하는 축적 전략이다. 이 유연적 축적은 과거 포디즘을 통해 국가, 기
업, 노동 간에 형성되었던 타협을 깨고 복지국가의 틀을 해체함으로써 케인즈주
의가 용인한 사회적 화합을 깨는 효과를 낸다. 이 결과 탈규제, 사유화 또는 민
영화, 복지비용의 삭감 등이 대대적으로 이루어지며, 자본의 자유가 최대한 보장
되는 일이 발생한다. 물론 이런 조치들은 민중과 대중의 저항에 직면하게 될 수
밖에 없고, NAFTA 결성에 반대하는 멕시코 농민반란군(자파티스타)의 무장저항,
작년 프랑스의 파업, 금년의 미국의 UPS 파업이 일어난 일이나 금년초에 개악된
노동법에 대한 대대적인 반대 운동이 국내에서 일어난 일은 이런 맥락에서 이해
된다. 그러나 1980년대 이후 선진자본주의 국가들의 예에서 보듯이 신자유주의
세력의 상승은 이어지고 있으며, 이는 최근 미국, 영국, 프랑스 등지에서 민주
당, 노동당, 사회당 등이 집권하고 있는 국면에서도 1980년대에 구축된 대처주
의, 레이거노믹스의 전통이 여전히 지속되고 있는 데서도 확인된다.
한국의 국가와 자본 역시 신자유주의 경제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고 봐야 할 것이
다. 한국은 1970년대 초에 세계적으로 벌어지던 구조조정과 산업재편이 일어나던
시기에 중공업을 중심으로 '주변부 포드주의'를 구축함으로써 세계자본주의 체제
에 편입되었다. 한국의 자본주의는 그동안 급성장을 이루었지만 1980년대 말 불
경기를 맞음으로써 이후 구조조정에 들어가 기업조직을 유연화하는 조치들을 취
하기 시작하였는데, 최근에 기업의 '군살빼기'로 조기퇴직 유도, 정리해고제도
도입 시도가 일어나는 것은 그 증거이다. 이 결과 핵심요원들 이외에는 일용직,
임시직 또는 하청고용으로 전락하는 일이 발생한다. 최근 통계에 따르면 전체 노
동인구 1300만명중 45%에 해당하는 600만명이 일용직 혹은 임시직이라고 하는데,
이런 사실은 한국도 다수 노동력의 주변부화가 구조적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통계
적 증명이다. 노동력이 이처럼 핵심과 주변부로 이원화함에 따라서 우리사회는
과거에 비하여 사회적 동질감의 와해가 훨씬 더 심각하게 진행되고 있다. 앞서
신세대의 등장과 소비문화의 성장에 따른 여성인구의 새로운 욕구 성장을 언급하
였는데, 그런 변화로 인해 생기는 새로운 정체성들과 달리 노동인구의 분화로 말
미암아 더 많은 주변적 집단들이 양산되고 있는 실정이다. 결국 이것은 우리 사
회에 '낙오자인구'가 증대함을 의미하는데, 이들은 안정된 직업을 가지지 못하는
만큼 부동하는 사회세력이 될 가능성이 크고, 주변부문화, 하위문화, 소수문화를
이룸으로써 노동자문화와 같은 대문화의 동질성을 무너뜨리는 역할을 하기도 한
다. 이 이외에도 한국에는 교육모순으로 인한 학생 및 청소년 인구의 문제화라는
현상이 있다. 그동안 자본주의적 발전을 위해 한국은 대중교육을 강화해왔는데,
이 대중교육의 근본 기능이 자본의 안정된 축적과 증식을 위한 노동력 과잉공급
에 있었던 만큼 교육의 근본적 개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노동력 과잉공급을 위
해서는 학생인구의 폭발적 증가를 꾀했지만 노동시장의 위계화 필요로 인해 학생
인구 내부에 극심한 경쟁을 유발함으로써 '문제학생들'을 집단적으로 양산하는
식이었다. 이렇게 볼 때 현재 기존의 노동자인구든 예비노동자인 학생인구든 인
구의 거의 전층위가 핵심과 주변부로 양분되고 있는 셈이다.
신자유주의 사회는 이 양분으로 인해 민중과 대중의 삶이 갈수록 열악해지는 경
향을 보이고 있지만 바로 신자유주의라는 성격 때문에 그것을 방치할 뿐 근본적
인 대책을 세울 수가 없다. 한국이 사회복지에 대해서는 별다른 대책을 세우고
있지 않고 있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한국은 지금 교역수지 12위, GDP 규모
11위에 해당하고, 국민 일인당 소득이 1만불을 넘어선 발전한 나라로 치부되어
이 '성장'을 바탕으로 최근 OECD에도 가입하였다. 그러나 이런 성장의 과실금이
제대로 분배되지 않았고, 사회복지에 대한 투자는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 김영
삼 정권은 수년전 문화복지를 표방하며 삶의 질을 높이겠노라고 나서기도 했지만
이는 사회복지를 포기하기 위한 호도책일 뿐 실제로 추진되는 것은 삶의 질과는
무관한 '민영화' 뿐이다. '민영화'는 복지국가가 그런대로 완성된 국가들에서 찾
아볼 수 있는 신자유주의적 조치들인데, 한국에서도 이런 경향은 드러난다. 이결
과 거의 모든 인간관계, 사회관계가 상품관계로 전환되며, 우정, 사랑, 자연환경
과 같이 과거 '공짜'로 즐기던 인간관계나 자원들이 이윤 축적의 수단이 됨으로
써 삶의 실질적 궁핍화가 진행되고 있다. 조기퇴직, 대량해고, 임시직 및 일용직
이 증가함에 따라서 사회복지가 증대해야 할 필요는 더욱 커져가지만 신자유주의
는 유연적 축적 전략을 통해 오히려 작은 국가를 지향하며, 복지비용을 축소한
다. 사회복지가 줄어드는 상황에서는 사교육비, 의료비, 주택비용 등은 갈수록
개인에게 그 부담이 전가된다. 대중교육을 통한 청소년 인구의 체계적 방치 속에
서 학생들 개인 간의 경쟁으로 사교육비는 급증하게 되고, 의료 비용도 복지국가
의 틀이 형성되어 있지 않은 상황에서는 대체로 개인 부담이 크며, 특히 주택은
거의 전적으로 개인 부담이 되는 것이다.
따라서 오늘날 우리 삶의 주요 모순은 신자유주의에 따른 공공영역의 축소와 또
그에 따른 사회적 요구의 증가 사이에서 발생한다고 하겠다. 현재 한국은 거의
모든 영역이 자본주의 생산양식에 포섭됨으로써 사적 자본의 지배하에 들어가 있
으며, 삶은 예외없이 상품관계 아래에 놓이게 되었다. 신자유주의는 이처럼 과거
어느 때보다도 사회를 자본주의 생산양식의 전일적 지배하에 두고 모든 삶의 영
역을 상품관계가 지배하도록 하면서 다시 문화영역에서는 그것을 부정하려는 시
도를 하고 있다. 여기서 탈구가 생겨난다. 탈구는 사회구성체가 복합적인 구조를
가지고 있을 때 사회의 한 층위가 다른 층위의 논리와 그대로 일치하지 않는 것
을 가리키는 말이다. 현재 이런 탈구가 경제적 신자유주의와 정치문화적 신보수
주의 사이에 일어나고 있다. 신자유주의는 대중을 지배하고 종속시키며, 배제하
는 전략을 구사함에 따라서 노동자, 학생, 여성, 소수자들, 농민들의 투쟁에 직
면할 수밖에 없다. 신자유주의는 이들의 차이들을 수입, 인종, 성차, 종족성의
처지에 따른 적대로 전환함으로써 이들 집단들을 약화시키려고 한다. 신자유주의
는 이에따라 신보수주의적 공공정책을 펼쳐 중산층을 붕괴시키고 그들의 몰락에
대한 공포를 임금 위계의 더 아래에 속한 사람들에게 향하게 한다. 국가에 의한
폭력과 개인의 일탈에 대한 규제가 강화된다. 이는 정부기구의 '축소'가 복지 시
행을 위한 장치들의 제거로 인한 축소이지 결코 통치와 위력의 축소가 아님을 의
미한다. 신자유주의는 따라서 통치를 오히려 강화하고 있으며, 이에따라 신보수
주의적 문화정책을 펼친다. 국가가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국민에 대한 감
시를 강화하고, 길거리에 무장 병력을 상주시키는 것은 이런 것과 무관하지 않
다. 최근 국내에 전자주민카드제도를 도입하고자 주민등록법을 개정하려는 시도
가 있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결국 신자유주의는 국가의 책무를 줄이
려 들고, 신보수주의는 사회적 통제를 늘이려는 것이다. 문화적 도덕적 신보수주
의 전략, 즉 문화전쟁이 필요해지는 것은 이런 맥락에서다.

4. 신자유주의의 문화적 대응
신자유주의 축적논리가 지배적인 논리가 되면서 정치경제는 유연적 축적의 논리
가 판을 치고, 이에 따라서 노동력의 유연화가 일어나며, 고용의 유연화를 통한
통제의 강화가 발생하지만 유연적 축적은 다시 기획의 중요성이나 기타 다른 창
조적 힘을 풀어놓기도 한다. 1980년대말 이후 소위 포스트모던한 문화적 상황이
전개되고 있는 것은 이런 유연적 축적이 풀어놓은 새로운 창조적 능력이 문화적
과정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과 깊은 연관을 맺고 있다. 데이빗 하비가 분석하는
바에 따르면, 유연적 축적이 만연하는 사회는 즉흥성(volatility)과 순간성
(ephemrality)이 지배하게 된다. 유연적 축적은 자본의 회수기간을 단축하기 위
한 전략으로서 가능한 한 '눈깜짝할 사이'에 이윤을 창출하는 활동 쪽으로 자본
을 이전하려고 한다. 이에 따라서 장기계획보다는 단기계획 위주로 사업을 전개
하게 되고, 단기적 이익을 노리는 기술 개발에 치중하게 되는 경향이 있다(관리
자의 평균 근속 연수가 격감하고 재능있는 사람들의 수행능력을 마비시키고, 장
기간의 독감과 같은 증세를 낳는 심리적 스트레스 상태인 '여피증후군'이 나오는
것은 이런 맥락에서다). 또한 즉흥성의 생산을 적극 관리하거나 그것에 개입하기
위해 취향과 의견을 조작하려는 노력이 극대화한다. 새로운 기호체계와 이미지체
계를 창출하는 것이 중요해지고 광고와 미디어 이미지가 문화적 실천에서 훨씬
더 큰 통합 역할을 맡게 되고 자본 축적의 동학에 더 중요한 기여를 하게 되는
것은 이 때문이다.(하비, {포스트모더니티의 조건}, 한울, 350-1쪽) 유연적 축적
이 일어나는 시기에는 따라서 문화적 생산에 대한 자본의 집중으로 문화가 산업
화되고, 삶의 전영역이 상품생산과 이윤창출을 위한 영역으로 전환하게 된다. 예
술의 상품화, 성의 상품화가 발생하여, 섹스, 화폐, 권력의 상호관련 현상도 더
빈번하게 발생한다. 자유로운 성문화는 대중의 새로운 감수성의 증가로 나타나지
만 동시에 성의 상품화로 성이 화폐관계에 들어오면서 발생하는 현상이기도 하
다. 이런 상황에서 문화 안에 자유주의적 경향이 나타나는 것은 당연하다.
유연적 축적을 구사하는 신자유주의 세력은 따라서 문화영역에서 새로운 문제를
안게 된다. 한편으로 유연적 축적 전략이 사회에 만연함에 따라서 신자유주의적
과실금을 따게 되는 대중도 생기는데 이들이 여피족이다. 이들은 신자유주의 경
제정책이 펼쳐지는 과정에서 특히 금융부문이나 문화생산 영역에서 새로운 이윤
창출의 기회가 늘어남에 따라서 성장하는 세력으로 '문화대중'(cultural masses)
이라고도 불리는데, 문화적 자유주의 경향을 띠지만 정치적으로는 거의 보수적인
성향을 나타내게 된다. 다른 한편 유연적 축적은 위에서 분석한 대로 주변부로
밀려나는 인구를 대량 생산하고, 이들 중 상당수는 문제아 혹은 낙오자들이 되면
서 '펑크적' 경향을 띠는데, 우리사회에는 지존파나 막가파가 아니면 폭주족, 봉
다리족 같은 양상으로 나타난다고 할 수 있다. 중요한 점은 문화적으로는 여피든
펑크든 금욕주의나 경건주의보다는 향락주의 혹은 우상파괴주의 등 자유주의적
양상을 띠는 경향이 크다는 점이다. 문화에서 자유주의는 전반적으로 볼 때 이성
애든 동성애든 자유로운 성관계를 추구하거나 포르노그라피와 같은 성표현의 자
유화를 요구하고 가부장적 질서의 해체를 꾀하는 등 기존의 문화적 가치나 정체
성의 틀을 깨는 양상으로 나타나기 쉽다. 신자유주의와 신보수주의가 문화의 이
런 자유주의를 방치하려 하지 않으려는 것은 당연하다. 대중의 감성이나 행동방
식이 경제적 생산력 증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되거나, 예술적 실험들이
사회적 복지를 필요로 할 때 문화의 자유주의는 대체로 억압되거나 선별적으로만
허용되게 된다. 이는 신자유주의가 개인의 자유를 옹호한다는 주장에도 불구하고
특정한 개인의 자유만 허용함을, 신자유주의가 추구하는 자유가 인간 모두에게
허용되는 자유가 아님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신자유주의는 자유를 평등하게 보장
하기보다는 독점하려는 입장이며, 따라서 문화적 자유에 대한 차별 정책을 펼치
게 된다. 문화의 자유가 여피와 같은 일부 문화대중에게만 허용될 뿐, 여피와 동
시대적으로 나타나는 펑크의 경우는 감시와 처벌의 대상으로 전락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최근 국내에 등장하고 있는 폭주족처럼 일탈적 행동을 추구하는 집단
들에 대한 기성세대, 경찰 당국, 언론, 방송 등의 반응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러나 폭주족과 같은 '문제아', '빗나간' 청소년들은 신자유주
의 정치경제가 주조해낸 새로운 인간형의 하나이다. 문제아, 가출 청소년들, 폭
력학생 등은 자본주의 교육이 수행하는 인구정책에 의해서 발생하는 문제로서 늘
감시와 통제와 처벌의 대상이 되고 있지만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이런 정
체성을 위험하게 여기는 지배세력은 이들의 출현이 우리사회의 구조적 성격 때문
에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대신 도덕적으로 재단하며 일부의 음란폭력물 생산자에
게 있다고 우긴다.
따라서 신자유주의는 새롭게 나타나는 사회적 문화적 양상들을 통제하고 조절하
지 않으면 안된다. 신자유주의로 인해 추동되는 자유주의적 경향들의 대중화를
조절하고 통제하기 위한 새로운 가치들을 형성하려는 노력이 광범위하게 벌어지
는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이때 등장하는 것은 가족을 삶의 최종적 안식처로
만들고자 하는 가족이데올로기([나홀로 집에]), 결혼을 신성시하는 결혼이데올로
기([사랑과 영혼]), 개인보다는 국가의 안위가 더 중요하다는 국가이데올로기([
람보], [인디펜던스데이]) 등이며 필요에 따라서 도덕재무장과 같은 운동이 벌어
질 수도 있다. 최근 국내에서 청소년보호법을 제정하여 시행에 들어간 것은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일일 것이다. 그런데 이런 모든 보수적 노력들은 '전통적 가치'
를 지킨다는 명분으로 통합될 수 있기 때문에 '민족문화' 기획과 같은 사회통합
정책으로 수렴되기도 한다. 영국에서 1979년에 정권을 잡은 마가렛 새처의 교육
장관 케네쓰 베이커(Kenneth Baker)가 한편으로는 신직업주의 교육을 표방하면서
전통적으로 복지국가적 혜택을 받던 인문학(the Humanities)에 대한 지원을 철회
하고 기업의 생산성에 직접 도움이 되지 않는 교육과정 대신 직업교육을 강화하
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영국인의 영국인다움을 강화하기 위한 '국민 교과과
정'(the National Curriculum)을 강화하려 한 것이 그 예이다. 미국의 레이건 행
정부 교육부장관을 지낸 윌리엄 베넷(William Bennett)이 '문화전쟁'(the
Culture Wars)을 지지하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사회에 일어나고 있는 표현의 자유에 대한 억압은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장기
적으로 지속할 것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최근에는 새로운 통신 및 정보
자본의 등장으로 문화에서 자유주의를 강화할 소지가 나타나서 국면이 바뀔 가능
성도 없지는 않다. 빌 게이츠같은 새로운 자본가들은 인터넷과 같은 자유로운 통
신의 전세계 확산을 필요로 하므로 문화적으로도 자유주의를 지원할 가능성이 있
으며, 이는 소위 '사이버문화'가 자유주의적 '캘리포니아 이데올로기'를 지지하
는 데서도 확인되는 바이다. 그러나 자유주의적 '사이버문화'와 '가상계
급'(virtual class)과 등장한 미국에서 문화전쟁의 바람이 거세게 불어닥치고 있
는 것을 보면 신보수주의의 자유 통제는 쉽게 중단될 것 같지 않다. 이런 점에서
현재 진행되는 표현의 자유와 같은 인간의 근본적 권리에 대한 통제와 억압은 신
자유주의적 사회적 모순이 존속되는 한 지속될 것으로 보아야 할 듯싶다.

5. 대응의 방향 모색
표현과 예술의 자유에 대한 공안당국과 공윤등 보수세력의 탄압 혹은 검열에 맞
서기 위해 우리사회 진보진영은 어떤 대응을 할 필요가 있는지 방안을 제시할 차
례가 되었는데 사실 걱정이 앞선다. 몇가지 방안을 모색해야 하겠지만 이 발제문
의 한계로 문제의 현황 파악도 제대로 하지 못한 처지라서 제시하는 방안이 내부
토론을 위한 가안 정도의 성격 이상이 될 것 같지는 않다. 다만 현 탄압국면에
대해 나름대로 제시한 정세 분석이 어느 정도 유효하다면 일단 대응은 신자유주
의적 축적 논리와 그 문화적 탈구 현상에 대한 대응이어야 할 것임은 분명하다.
문제는 신자유주의는 적극적 전략을 구사하고 있는 데 반해 탄압받는 당사자는
정세 분석을 게을리하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의 양상을 보면 문화예술에 대한 탄
압 국면이 생길 때 현안문제에 대해 장르별로 투쟁하는 방식이 주종을 이루고 있
다. 탄압을 받는 당사자가 가장 강력하게 대응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투쟁의 성과
를 쌓기 위해서는 전체 국면과 정세적 효과에 대한 분석에 기반을 둔 새로운 방
식의 대응이 필요할 것이다. 예컨대 음반법에 대해서는 일부 검열을 막아내는 성
과를 거두었다지만, 매체영향력이 적은 '오디오'는 풀어주는 대신, 영향력이 큰
'비디오'는 옥죄고 있다는 분석도 가능하다. 이런 점에서 '전선'의 형성이 어떻
게 이루어지고 있는지 정세분석 능력을 기를 필요가 있다고 본다. 제대로 분석이
되지 않으면 공조틀 구축이 어렵다. 그래서 문화예술의 관점에서 보면 통신검열
의 문제는 남의 문제로 보이고, 전자주민카드 제도에 대한 관심은 거의 생기지
않게 된다. 그러나 21세기로 넘어가는 시점에 컴퓨터 혁명이 삶의 전반에 대한
지배력 강화하게 되고, 전자 감시체제를 구축하려는 전지구적 경향들이 커지고
있는 시점에 전자주민카드 제도의 도입은 오늘 이 토론회가 다루고 있는 표현의
자유 문제와 긴밀한 관련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이런 관점에서 예술의 장르들,
문화적 실천의 부문들이 개별화, 파편화하여 움직이기만 해서는 안될 것으로 본
다. 물론 그렇다고하여 과거처럼 전국적 조직을 건설하자고 제안하는 것은 아니
며 문제의 복잡성과 복합성을 인식하여 대응의 적절한 네트워크를 형성하자는 것
이다. 이 발제에서는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못하였지만 현재 진행되는 탄압에 가
담하는 세력을 분석할 필요도 있다. 현재 간행윤리위, 공연윤리위, 방송심의위
등에 참여하고 있는 사람들은 누구이며 이들의 주장은 어떤 것이며, 그 정치경제
적 배경은 무엇인가? 이들은 어떤 사회적 계급들의 이익을 대변하는가? 이들은
개인들일 뿐인가 아니면 대중의 암묵적 지지를 받고 있는가? 영국과 미국의 경우
를 보면 신보수주의 세력이 소수 개인들에 국한되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소
위 '풀뿌리' 정치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공윤 등의 '심의관'들은 우
리사회의 도덕적 감수성을 어떻게 대변하고 있는가?
표현의 자유를 탄압하는 논리에 대응할 논리를 개발하는 것도 필요하다.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쪽이 표현의 자유 자체를 부정하는 경우는 없어 보인다. 강지원
검사처럼 표현의 자유가 있다면 표현물을 보지 않을 권리, 거부할 권리도 있다는
논리를 펼치므로 남의 권리를 짓밟으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권리를 지키려 할
뿐이라는 입장을 펼치는 것이다. 이에따르면 표현의 자유를 구가하려는 측과 음
란물을 보지 않을 권리를 추구하는 측 사이에 타협이 있어야 하고, 따라서 표현
의 자유에 어떤 경계선이 설정되어야 한다는 논리가 성립한다. 여기서 쟁점은 표
현의 자유라는 권리와 거부의 권리 간의 경계선을 어떻게 그을 것인가로 축소된
다. '등급선' 문제가 나오는 것은 이런 까닭이며, 만화 등의 유통 통제를 해야
한다느니 하면 어떻게 해야 한다느니 식의 논란이 벌어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문제의 초점은 경계선을 왜 인정해야 하느냐에 있을 것이다. 성적 흥분을
초래하면 음란물로 처벌을 받게 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서 성적으로 흥분하게
하는 것이 왜 처벌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지 따지는 식의 대응이 필요하지 않을
까? 나아가서 또다른 쟁점은 성적 흥분, 혹은 수치심에 대한 판단을 누가 내릴
것인가라는 점이다. 수치심은 누구의 판단인가, 개인의 판단인가, 집단의 판단인
가? 이런 문제를 어떻게 재단할 것인지 우리사회는 아직 논란을 제대로 벌인 적
도, 합의에 도달한 적도 없다. 하지만 표현의 자유에 대한 사회적 탄압은 이미
시작되었다. 외설 여부를 판정함에 있어서 사회적 합의에 쉽게 이르지 못하게 하
는 쟁점들이 산적해 있다면 사회적 합의 자체의 정당성 여부에 대한 문제제기를
포함하여 최대한 논쟁을 거치면서 문제와 쟁점들이 다뤄져야 한다. 그런데도 현
재 우리사회는 공윤이나 방송심의위 등이 사전 혹은 사후 결정과 처벌의 위협으
로 영화, 책, 음반 등에 대한 탄압을 진행하고 있는 중이다. 이는 시민사회에서
갑론을박이 진행되고 있는 사안에 대해 국가가 시민사회의 일방에 손을 들어주고
있다는 말이다. 우리는 공격이 정세적으로 규정됨을 이 발제를 통하여 살펴본 셈
인데, 그렇다고하여 논리적인 투쟁을 포기해서는 안될 것이다. 표현의 자유에 대
한 탄압은 논쟁의 종식이며, 이는 곧 사회에 허용되어야 할 비평의 자유를 축소
하는 셈이 된다. 이 과정에서 어떤 큰 자유가, 혹은 원리가 침해받거나 무시당하
는지 따지는 작업이 필요할 것이다. 우리사회에서 문화예술의 표현자유에 대한
논의는 아직 제대로 시작되지도 않은 만큼 탄압을 시작하는 것은 사회의 비판적
능력을 축소하는 것이 되고 말 것이다.
동시에 국내 진보진영에서 이런 문제에 대해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점도 없지 않
은지 반성해야 한다고 본다. 정치경제적 진보와 문화적 진보의 공통점 혹은 차이
가 무엇인지에 대한 진보진영 내부의 공감대 형성 혹은 입장 차이의 확인을 위하
여 토론을 활성화할 필요가 있다. 예컨대 사상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를 어떻게
다룰 것인가? 황석영, 박노해, 진관, 김하기 등의 투옥과 장정일의 구속 등에 대
해서 우리는 어떤 판단을 내릴 것인가? 차이들을 어떻게 가늠하며, 어떤 잣대로
재단할 것인가? 장정일의 구속에 대해 사석에서 "당해도 싸다"고 말하는 진보적
비평가가 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는데 이런 다양한 반응들이 있다면 우리는 어
떤 방식으로 싸울 것이며, 어떻게 연대해야 할지가 쟁점이 될 수밖에 없다. 이런
점에서 문화에서 어떤 태도가 진보인지에 대한 논의가 본격화할 필요가 있다. 개
인생각으로는 국내 진보진영은 엄숙주의와 경건주의적 경향이 아주 강한 구진보
적 성격이 크다. 구진보는 사회주의국가의 당국가가 내세우는 헌신적 영웅주의를
이상화하며 기율을 존종하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구진보의 감수성은 현재 새로
운 감수성에 의해서 드러나는 성의 자유나, 기존 사회주의, 민족주의, 자유주의
에 대해 나타나는 '버릇없는' 반응들에 대해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는 것으로 보
인다. 민족주의 혹은 도덕주의를 지향함으로써 새로운 감수성에 따른 실험적 삶
의 방식, 전통적 가족관계의 틀에 벗어나는 것으로 보이는 페미니스트, 혹은 동
성애자들의 행동방식을 이해하거나 납득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신보
수적 탄압이 일어날 경우 진보진영 내부의 분란으로 인하여 대응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일이 자주 발생할 것은 당연하다. [빨간 마후라]나 [나쁜 영화] 등이 탄
압을 받거나, 혹은 [천국의 신화]가 입건되는 것은 이런 관점에서 보면 우리사회
의 진보진영이 가진 문화예술적 감수성 문제를 쟁점으로 떠올리는 계기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이는 곧 '차이의 정치'가 우리사회에 현안으로 떠올랐다는 말
이 아닐까? 문화예술적 감수성이 쟁점으로 떠오른다는 것은 '다르게 살기' 문제
가 사회적 문제가 되었음을 보여준다. 문화적 다양성에 대한 요구가 증대하면서
다양한 형태의 표현의 욕구가 분출하고, 혹자는 음란하고 퇴폐적으로 볼지 모르
나 성적 표현들이 다양하게 일어나는 것은 자연스럼 흐름이다. 하지만 이런 표현
이 도덕적으로 지탄을 받게 된다면 당위와 욕망, 절제와 쾌락 사이의 간극에서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할 것인가? 그 간극을 최대한 긴장되게 벌여놓는 것이 좋겠
는가, 혹은 간극을 최대로 축소해야 할 것인가? 또 표현의 어떤 수준까지가 개인
적 권리의 표출이고 어디에 이르면 범죄가 구성되는가? 우리사회와 진보진영은
이런 질문을 화두로 삼는 것을 두려워하였거나 혹은 그런 질문을 하찮은 것으로
치부하였지만 더 이상 침묵으로 일관할 수는 없다.

6. 결어
이 발제는 현단계 문화예술계에 몰아닥치고 있는 표현의 자유에 대한 탄압을 이
해하기 위하여 부족하나마 정치경제학적 정세 분석을 시도한 셈이다. 신자유주의
와 신보수주의 경향이 쉬 사라질 것 같지 않다고 보는 이 발제의 분석에 일리가
있다면 문화예술적 활동에 대한 지원은 줄어들면서 동시에 통제는 늘어날 것이
분명하다. 최근 건축물 미술장식품 설치의무조항(일명 1%법)을 폐지해야한다는
건의가 정부규제개혁추진회의에 의해 나왔다가 취소된 것만 보더라도 이런 추세
를 알 수 있을 것이다. 미술장식품 설치의무는 겨우 존속되었지만 현행 규제대로
라면 연면적 1만평방미터 이상의 건물이 모두 1%법의 대상이 되던 것이 이제는
연면적 2만평방미터 이하 건물은 건축비의 1%에서 0.7%로 하향 조정되었고, 2만
평방미터 이상 건물은 2만평방미터까지는 0.7%, 초과분에 대해서는 0.5%로 더 낮
추어졌기 때문에 지원 규모는 크게 줄렀다고 할 수 있다. 신자유주의 공세가 계
속되는 한 이런 식의 규제 철회나 축소 조치는 갈수록 늘어날 것이다. 현재 진행
되고 있는 EBS 노조의 파업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노조가 파
업을 하는 이유는 방송국이 예산 지원 없이 위성과외방송을 파행 운영하려는 데
대한 항의의 성격이 담겨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비단 방송만이 아니라 공
익성 사업에 대한 지원 부족 현상은 우리사회 어느 부문에나 발견되는 고질병이
다. 이처럼 문화예술에 대한 지원을 줄이는 와중에 문화예술 활동에 대한 탄압이
늘어나는 것은 경제적 신자유주의가 상승하는 데 따른 문화적 결과로서 사회복지
의 축소와 그에따른 사회적 저항을 도덕적으로 처리하려는 전략이기도 하다. 복
지국가의 해체와 유연적 축적의 전략 구사는 부분적으로 여피문화의 가능성과 성
적 자유 등 과거의 기준으로 보면 일탈로 보이는 현상들의 증가를 가져오지만 이
는 오로지 문화의 상업화 혹은 문화산업의 출현에 따른 결과이다. 지배세력은 신
자유주의적 태도가 문화로 이월될 때 선별적인 대응을 하고 있다. 여피문화는 새
로운 가능성으로 수용하지만 펑크적 경향을 띠는 자유주의적 태도는 즉각 공격하
는 것이다. 여기서 신자유주의는 신보수주의적 면모를 띠게 된다. 경제에서 무한
한 자유를 추구하는 세력은 대중의 개인적 문화적 자유를 축소하기 위하여 가족
의 가치나 종교적 권위에 호소하는 식으로 자신을 정당화해야 하기 때문이다. 경
제적 자유는 무한으로 추구하면서 문화적 차이를 추구하는 자유에 대해서 제한과
억압을 가하는 이 세력은 자유를 독점하려는 세력이다. 이 독점에 대해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우리의 과제는 이 질문과 함께 시작될 것이다.(1997.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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