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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리브에 남긴 발자욱

[읽기자료] 서평작업과 윤리의식


도 서 명 : 서평작업과 윤리의식
원 저 자 : 제11집 1993년 가을
집 필 자 : 이태동

<< 내용 >>
우리 『서평문화』가 허위적인 “권위주의 시대의 청산”과 추상적인
이념의 붕괴를 가져온 격동기를 거쳐 뒤이어 찾아온 “자유”라는
이름의 가치관의 혼돈으로 인한 “전환기 시대”에 민족의 의식개혁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출판 및 독서 문화의 올바른 길잡이가 되기 위해,
계간 서평전문지로서 그 첫 발걸음을 내디딘지도 벌써 3년 가까운
세월이 흐르고 있다.

그동안 우리는 예산 부족과 비매품이라는 두개의 질곡 때문에, 그
운신의 폭이 지극히 제한되어 있었지만, 온갖 어려움을 극복하고
제2의 도약을 위해 11집을 발간하게 되었으니, 더없이 반갑고 고마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우리는 그동안 『서평문화』를 10집까지 내면서, 그렇게 많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결코 적다고만 할 수 없는 수의 양서에 대해
국내 그 어느곳 보다 더욱 견실하고 균형있는 서평작업을 펼쳐왔다.
사실 우리 주변 그 어느곳을 돌아보아도, 우리의 『서평문화』만큼
균형있는 시각으로 우리사회 전반에 걸쳐 발간되는 책들을 그렇게
폭 넓고 심도있게 다루고 있는 곳은 아직까지 드물다. 일간지 및
『출판저널』과 같은 일급 출판 전문지가 있으나, '서평지'라기 보다는
출판 정보지에 가깝다. 이를테면, 그것은 출판 정보에 대해서는 우리
『서평문화』보다 그 진폭이 넓고 다양하지만, 훌륭한 새책 한권
한권에 대한 “서평”을 위해서는 우리만큼 풍부한 지면을 할애하지
못하고 있다. 또 일반 월간지와 계간지등이 있으나, 편집상의 제약
때문에, 시간이 갈수록 서평대상의 책의 수를 제한을 가해야만 하는
상황에 놓여 있다.

물론 우리는 『서평문화』를 시작하면서, 우리의 작업이 단순히
공익단체에 의해서 이루어 진다는 사실 그 하나만으로 해서, 억압된
정치구조 속에 살았던 사람들의 지나친 편견에 의해, 알 수 없는
사시의 대상이 되지나 않을까 하는 염려스러움이 없지 않았다.
그러나 우리는 그동안 정직한 길을 돌다리를 두드리듯 착실히 걸어왔기
때문에, 문민정부의 탄생과 더불어 우리의 『서평문화」는 이제 책과
출판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있는 독자들이나 전문적인 지식인들 사이에
훌륭한 의사표시의 장이 될뿐만 아니라, 서평전문지로서 그 독특한
개성과 권위를 착실히 쌓아가고 있다.

이렇게 우리 『서평문화』는 책을 쓴 사람들이나 책을 펴 내는
출판사들, 그리고 독자들 사이에서 중요한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기
때문에, 제11집인 이번호 부터는 그동안 출판과 독서문화에 관한
일반적인 지식과 정보의 전달을 위해 마련했던 특집지면을 서평지면
으로 완전히 활용해서 이른바 명실상부한 완전한 서평전문지로서
그 면모를 새롭게 했다. 우리 서평문화가 이 만큼 자리잡게 된 것은
오직 뜻있는 지식인들과 독자 여러분들의 특별한 협조와 관심 그리고
격려 덕분이란 것을 우리는 잊지 않는다.

우리 간행물윤리위원회가 『서평문화』에 이렇게 각별한 관심과
노력을 기울이는 것은, 올바른 서평작업이 출판물의 윤리문제를
가장 바람직하게 정착시킬 수 있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윤리의식이
상대적이고 무질서한 현상 가운데서 보다 나은 절대적인 질서를
찾거나 혹은, 그것을 지키는 일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면, 서평작업은



이러한 윤리의식을 보다 전문적이면서도 구체적으로 실천하는 가장
이성적인 지적 작업이다. 이러한 시각에서 볼때, 비록 아직 지극히
제한된 공간이지만, 깨어있고 의식있는 비평적 서평작업은 지금
문민정부가 실시하고 있는 개혁정책과도 크게 걸맞거나 일치된다고
할 수 있겠다.

그래서 우리는 이렇게 서평작업을 벌여오고 있지만, 이것만으로
항상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보다 많은 부분에서 서평작업과도 같은
'자기 정화 의 노력이 있기를 희망한다.

'책의 해'를 맞이해서 정부와 출판문화협회는 거의 1년 가까이
한 목소리가 되어 뒤늦게나마 독서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책읽기를
위한 캠페인을 열심히 벌여왔다. 그러나 그 동안 만이라도 우리
출판계는 정말 건강한 독서 운동을 양심에 거리낌없이 펼쳐왔던가
한번 반성해 볼 필요가 있다. 정직하게 말해서, '책의 해'의 독서
캠페인에 적극적으로 동참한 이들은 주체측인 문화부와 몇몇 뜻있는
언론기관에 제한되지 않았던가. 실제로 책을 만들어내는 대부분의
출판사들은 독자들에게 독서를 건강하게 유도하기보다는 무분별한
판매활동만을 벌여오지는 않았던가. 혹시 그들은 건강한 독서보다는
상업적인 목적으로만 독자들을 유혹하지는 않았던가 한번 살펴볼
일이다.

이미 어느 누가 지적한 바와같이, 근래 우리 독서계와 출판계에는
건강한 독서를 권장하는 양식있는 비평작업이나 서평작업은 없고,
독자의 감각적인 시각만을 자극하는 광고밖에 없는 듯한 출판풍경을
일부 출판사들은 앞다투어 만들어온것 만은 사실이었다. 우리나라의
책 광고의 크기는 세계의 어느나라에서도 찾아볼 수 없을 듯 하다.
모든 정보가 값비싼 대형 광고를 통해서만 전달이 되니, 책값은
오르지 않을 수 없었다. 책값의 상승만큼이나 지적인 여과없이
이루어진 상업광고 때문에, 독자들이 책을 선택할 수 있는 폭 역시
그만큼 좁아지는 결과를 가져온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러한 현상은 잘 팔리는 책과 잘 팔리지 않는 책 사이의 격차를
시간이 갈수록 무섭게 벌려놓고 있다. 사실, 잘 팔리지 않는 책이
양서이고 잘 팔리는 책이 악서라는 등식은 없다. 아마 그 반대가
될수도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무겁고 깊은 사색을 요구하는
책들은 잘 팔리지 않는 것이 보통이다. 아무튼 출판사와 저자들이
잘 팔리지 않는 양서는 내지 않게 되고, 오직 상업적인 목적만을 위해
그 반대의 행위만을 되풀이 한다면, 그 사회는 정신적인 뿌리를 잃게
되어 문화적으로 그만큼 취약하게 되고 말것이다. 문화적인 층이
약하면, 그 사회는 그만큼 기반이 약해 조그마한 충격에도 쉽게
무너지게 될 것이다.

양서는 희생이 없으면 출간될 수 없는 것이다. 제일 좋은 방법은
선진국처럼 대학 출판부가 수익성은 적지만 훌륭하고 학문적인
가치가 있는 도서를 출판하는 것일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경우,
대학의 출판부가 자립할 수 없을 정도로 취약하고 그것이 출판하는
책의 수가 지극히 제한되어 있다. 그러므로 상업 출판사에서 밀물처럼
쏟아져 나오는 책에 대해 엄격한 서평작업이 어김없이 이루어져야
할것이다. 이와 아울러 훌륭한 책이지만 경제적인 이유로 해서 소외
받거나 묻혀있는 곳이 있다면, 그곳을 즐겨 찾아야 할것이다.

다시말해, 양서가 나와서 광고가 되지않더라도, 우리는 지식의
파수꾼으로서 그것에 대한 적극적인 서평작업을 벌여서 뜻있고 양식
있는 독자들에게 그 내용을 정확히 알려줄 필요가 있다. 철저한



서평작업이 없으면, 독서계 마저도 악서가 양서를 구축하는 그레샴
법칙과 같은 현상이 일어나 국민정서와 감정교육에 크나큰 상처를
입히는 결과를 가져 올 지도 모른다.

독서가 인간의식과 인격형성에 끼치는 영향이 얼마나 큰것인가는
여기서 새삼스럽게 밝힐 필요가 없겠다. 책의 성격과 내용에 따라
다르겠지만, 사람이 책을 한권 더 읽으면 얼굴색이 달라진다는 말이
있는 것은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니다. 또 미국의 독립전쟁은 링컨
대통령이 스토우가 쓴 『톰 아저씨의 오두막집』을 읽은데서 부터
시작되었고, 러시아 혁명은 레닌이 톨스토이와 도스토예프스키를
읽은데서 시작되었다는 풍문도 전해오고 있다. 그래서 서평작업은
어디까지나 단순한 어떤 특정 출판사 혹은 어떤 유파 혹은 어느
특정한 사람의 인쇄물에 대한 시녀의 역할을 하지 않고, 그것이
해야만 할 일을 올바르게 수행해야 하겠다.

서평자는 단순히 어떤 책을 서평하는 것이 아니라, 독자들을 위해
홍수처럼 밀려오는 출판물 속에서 양서를 선택해서 그것을 독자들로
하여금 읽도록 해야만한다. 그래서 서평을 위한 책의 선택은 자기
자신을 위한 책의 선택만이 아니라, 독자를 대신하는 책의 선택이기
때문에, 우리는 책의 선택 문제에 있어서 편견과 경도된 시각이
없도록 신중에 신중을 기하고 있다.

이렇게 우리는 매호마다 서평의 사명과 그 중요성을 잊지 않고
있으며, 우리의 이 작업이 끊임없이 계속될 것으로 기대한다. 우리는
비록 제한된 공간이지만,우리가 이곳에서 벌인 서평작업이 시금석이
되어 우리 출판계와 독서계에 뿐만 아니라, 우리의 의식 세계에도
소리없는 충격을 주어 그 파장이 멀리멀리 번져 갈 수 있기를 기대
한다. 사실, 독자들이 여기에서 서평한 책들만이라도 빠짐없이 읽으면
시대에 뒤떨어지지 않고 정신적인 부를 적지않게 축적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이번 호에서는 문학분야는 물론 과학과 철학 경영학
등에서 새로이 전개되는 지적 현상을 담은 신간서적을 친절하면서도
심도있게 분석한 여러 권위있는 전문가들의 서평을 실었다.

끝으로 여기 『서평문화』제11집에 다루어진 작품들이나 저서들은
위에서 언급한 바와같은 엄격하고 균형있는 서평기준에 바탕을 두고
선택한 책들이란 것과 그동안 쉬고 있었던 쟁점도서에 대한 토론의
장을 이번호 부터 다시 부활시키기로 한 점을 다시금 밝히고 싶다.
많은 독자들의 관심이 있기를 바란다 

그런데 우리는 여기서 취급한 책들이외에도 서평의 대상이 될 수
있는 많은 책들이 있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안다. 지면관계로 다 수용
하지 못한것을 지극히 유감스럽게 생각한다. 그러나 양서들 가운데
일부가 다음호에 다시 심의를 거쳐 서평도서로 선정될 수 있기를
희망한다.

바쁘신 가운데에서도 우리의 『서평문화』를 위해 집필해주신 여러
선생님들에게 감사한다. 아울러 뜻있는 독자 여러분들과 강호제현의
계속적인 관심과 성원이 있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