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1997년 5월 도서관계에 실릴 글입니다.
실제로는 다소 수정이 있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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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인의 책읽기. 1997년 5월호>
책읽기, 세상을 보는 눈
이제까지 세 번에 걸쳐 도서관인의 책읽기에 대한 나름의 생각을
펼쳐 보았다. 이번에도 원고 마감일이 다가오자 이번에는 무슨 이야기
를 써야 할까 고민하다가 어느 책에 쓰여진 작가의 말에서 실마리를
찾았다. "... 이집트는 해독할 수 없는 상형문자만큼이나 난해한 텍스트
였다. 그러나 도처에서 마주쳤던 상형문자들과 고대의 유적들은 우선
그 도저한 아름다움으로 나를 매혹시켰다. 그리고 내가 그 매혹에 취
하여 발걸음을 옮기는 사이에 이집트는 수천 년의 시간 동안 쌓아 올
리고 간직해 온 역사와 문화와 예술의 경이로운 세계를 내게 서서히
열어 주었다" (최수철, 『사막에 묻힌 태양』, 학고재, 1997). 그렇다.
우리 주변의 모든 자연과 문화유산이 그렇듯이 책도 읽는 사람에게 경
이로운 세계를 열어 보여주는 세상을 향해 열리는 창문이다. 따라서
책읽기는 이렇듯 세상을 볼 수 있는 눈(目)이며 그 세상을 보는 행위
라고 할 수 있다.
오래지 않은 기억에 우린 책을 볼 때 책표지를 싸서 보곤 했다. 물
론 그 이유가 어렵던 시절 책이 귀해서 잘 읽고 보관하기 위해서 그랬
을 것이라고 짐작되고 실제로 책표지를 싸는 것이 책 보관에 큰 도움
이 된다는 것은 인정할 수 있다. 그러나 필자는 좀 다르게 생각한다.
만일 집에서만 책을 본다면 굳이 책표지를 싸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거리를 다니며, 차에서, 공공장소에서 책을 보는 경우에는 책표지를 싸
서 남들에게 자신이 무엇을 읽고 있는가를 드러내지 않으려 한 것이라
고 생각한다. 왜 자신이 무슨 책을 읽고 있는가를 드러내고 싶지 않았
을까? 그 이유가 멋있게 보이려고 했든, 남들이 보면 뭐라 할 정도의
창피한 수준의 책이라서 그랬든, 아니면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는 책을
읽고 있는 중이라서 그런 것이든, 책표지를 싸는 행위는 결국 세상과
일정한 거리를 두고자 하는 심리 때문일 것이다. 그것은 우리 사회의
분위기와 무관하지 않았다. 자신의 입장이나 생각, 심지어는 선호까지
도 함부로 드러낼 수 없었던 때에는 자기가 무슨 책을 읽고 있는가 하
는 것까지도 남들이 알아서는 안될 것 같은 강박관념에 젖어 있었던
것이었다고 믿는다. 이제 세상이 많이 바뀌고 의식도 변화해서 지금은
책표지를 싸는 경우를 보기 힘들다. 예전에는 당연히 표지를 싸주던
서점도 이제는 환경보호나 경비절감의 이유로 이를 없앴고, 사람들도
굳이 감추려 하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이제는 자신을 그대로 드러내
는 것이 더 자연스러운 시대임을 반영하듯 강박관념은 극복한 것으로
생각된다. 소위 검찰에서 이적성이 짙다고 한 장편소설『태백산맥』이
베스트셀러가 되고 사람들도 당당히 들고 다니는 것을 보면 변해도 많
이 변했다는 생각이 든다. 『태백산맥』의 예에서 보듯이 어떤 책을
선택해서 그 책을 읽는다는 것은 그 사람의 입장을 드러내는 행위라고
이해할 수 있다. 장정일의 소설을 보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대체
로 장정일의 문학적 입장에 동의한다고 생각해도 좋을 것이다. 이렇듯
책을 읽는 것은 단순한 오락이나 소일거리가 아니라 한 사람의 주관이
고 태도라는 점을 깨달아야 한다. 특히 수많은 사람의 이용자들에게
읽을 거리를 제공해 주어야 하는 도서관에서 일하는 우리들은 책읽기
의 본질에 더욱 민감해야 한다. 우리는 책에 관한 한 私人인 동시에
사회적으로 일정한 책임을 부여받은 公人이라는 점에서 우리의 책읽기
는 더욱 공개적이면서도 시류에 휩쓸리지 않고 나름의 확고한 입장을
가지는 것이 필요하다. 도서관인들은 사회적 책무를 스스로 깨닫고 자
기의 개인적인 선호를 넘어서서 과연 도서관을 둘러싸고 있는 다양한
사람들의 책읽기는 어떠한가 하는 것에까지 관심을 확장시켜야 하며,
자신이 어떤 책읽기를 통해 세상을 만나고 있는가를 확실하게 드러내
보여야 한다. 이런 방식으로 도서관을 둘러싼 사람이나 조직들과 만남
으로써 도서관활동은 역동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며, 도서관이
이 사회에서 어떠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으며, 향후 어떤 방식으로 존
재해 나가야 하는가를 생각하고 논의할 계기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이
다.
예를 들어, 도서관인으로서 베스트셀러에 대해 어떤 입장을 가질
것인가 하는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 우선 수십만, 수백만의 사람들이
'같은' 책을 보고 같은 생각을 하게 된다면 이는 끔찍한 일이다. 이 지
점에서 도서관인들은 그 대상이 되는 책을 두고 전문가적 안목을 동원
해 분석하고 따져보고 그 평가를 공개함으로써 한 시대, 한 사회의 문
화적 흐름 형성에 적극 개입해야 한다. 그 동안은 이용자가 원하면 그
것을 구비해 주어야 한다는 견해가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꼭 그래야
하는가? 도서관인들이 판단해 보아 도서관장서로 부적합하다면 그것을
장서로 받아들이는 것을 거부할 수 있어야 한다. 어느 도서관은 베스
트셀러가 된 문학작품은 즉각 소장하지 않고 시간을 두고 본 후, 그
가치를 검증 받은 다음에 소장여부를 결정한다고 한다. 이렇듯 도서관
인들은 도서관을 통한 자신들의 역할 수행에 관련해서 보다 당당하고
공개적이어야 한다. 이것은 결국 도서관인 각자의 책읽기에서 많은 영
향을 받게 된다. 따라서 도서관인들에 있어 책읽기는 다른 사람들보다
도 더 중요하고 세상을 바라보는 눈으로서의 역할이 강조되어야 한다.
이렇게 이야기하고 나니 이런 의문이 생길 수 있다. 도서관은 不偏
不黨해야 한다고 배웠다. 사실 맞는 말이다. 공공의 이익을 위해 일을
해야 하는 공공도서관의 경우는 절대적으로 不偏不黨해야 한다. 그러
나 不偏不黨해야 한다고 해서 입장이 없어야 한다는 것은 아닐 것이
다. 도서관이 가져야 하는 입장은 이제 전문가로서의 良識과 職業倫
理, 그리고 이용자들에 대한 愛情과 關心에서 도출되어야 한다. 필자가
보기에 그 동안 대부분 도서관은 이러한 기본원칙에 근거하지 않은 채
항상 母機關의 입장에 맹목적이었다고 생각한다. 공공도서관의 경우는
이제 도서관의 주체가 누구인가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보아야 한다. 도
서관을 찾는 시민들에게 어떤 봉사를 제공해야 하는가 하는 점을 먼저
생각하는 자세를 갖추었다면, 무엇보다도 도서관이 확실하게 입장을
밝히고 그 입장에 대해 끊임없이 이용자들과 토론하고 협의하고 조정
해 나가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 우선적으로 도서관인들부터 부단히
의미 있는 책읽기를 통해 스스로 세상을 보는 눈을 길러야 한다. 이용
자들과의 만남에서 비굴하지 않으면서도 거만하지 않고, 편협하지 않
으면서 전문적이고, 가볍지 않으면서 대중적이고자 한다면, 도서관인들
은 이용자들보다 더 폭넓고 깊은 책읽기를 통해 바르게 세상을 이해하
고 앞날에 대한 확고한 입장을 가져야 한다. 이러한 바탕이 있을 때
비로소 도서관인들은 전문가다운 태도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앞으
로 세상은 더욱 복잡해지고 다양해지며 수많은 입장과 견해들이 제 목
소리를 높일 것이다. 그런 와중에 도서관이라는 제한된 영역 속에서
또한 무수한 입장을 가지고 봉사를 요구해 오는 사람들에게 적절한 봉
사를 제공하기 위해서는 도서관인들이 이러한 기반을 마련하는 것이
시급하게 요구된다. 우리 모두는 한정된 시간과 공간에서 극히 부분의
세상만을 만나면서 살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한순간 순간 그럭저럭
흘러 보내는 것은 무모하다. 도서관인들은 그 한정된 영역 속에서도
자신과 자신의 도서관이 특색을 갖추도록 노력해야 하고, 그러한 방편
중 하나가 조직화된 책읽기를 통한 세상 바르게 보기라고 생각한다.
오래 전 신문에서 본 내용이다. 미국 어느 공공도서관에서 소위 '플
레이보이'지를 일반인들이 자유롭게 꺼내볼 수 있는 곳에 비치해 두었
더니 청소년들이 더 많이 보았다고 한다. 그래서 지역주민들이 그 잡
지를 청소년들이 볼 수 없는 곳으로 옮기라고 도서관측에 강력히 요구
했다. 그랬더니 관장이 답변하기를, 그곳에 비치한 것은 도서관에서 공
식적인 절차를 거쳐 결정했던 것이기 때문에 비록 요구가 있다 하더라
도 함부로 다른 곳으로 옮길 수 없고, 도서관운영위원회 같은 곳에서
어떤 결정이 나기까지는 그대로 두겠다고 했다고 한다. 그 관장은 어
떻게 그렇게 주민들의 요구에 당당할 수 있었을까? 그것은 도서관인들
의 전문가로서의 자긍심과 자기 나름의 확고한, 그러나 공정한 세계관
이 있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짐작해 본다. 우리 도서관계에서도 이러
한 당당함이 보편적으로 자리잡는 날이 오기를 기대해 본다. 그러기
위해 우리 모든 도서관인들이 보다 의식적으로 확고한 입장을 세우기
위한 고된 책읽기를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가끔 후배나 동료 도
서관인들에게서 무슨 책을 읽는 것이 도서관인으로서의 일을 함에 있
어 도움이 될까 하는 질문을 받았었다. 이제 다음 달부터는 어떤 책들
을 읽는 것이 좋을까 하는 것을 함께 생각해 보고자 한다. 이제 이 시
대의 도서관인으로서 나의 책읽기가 단순히 나의 시간 메우기나 지적
만족을 위해서가 아니라 한 시대, 한 사회의 공공문화를 제대로 만들
어가기 위한 요구와 의무에 의해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점만은 꼭 다시
한번 확인했으면 한다. 책읽기, 그것은 세상이 나를 보고, 내가 세상을
보는 눈(目)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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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골 재두루미~~
실제로는 다소 수정이 있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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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인의 책읽기. 1997년 5월호>
책읽기, 세상을 보는 눈
이제까지 세 번에 걸쳐 도서관인의 책읽기에 대한 나름의 생각을
펼쳐 보았다. 이번에도 원고 마감일이 다가오자 이번에는 무슨 이야기
를 써야 할까 고민하다가 어느 책에 쓰여진 작가의 말에서 실마리를
찾았다. "... 이집트는 해독할 수 없는 상형문자만큼이나 난해한 텍스트
였다. 그러나 도처에서 마주쳤던 상형문자들과 고대의 유적들은 우선
그 도저한 아름다움으로 나를 매혹시켰다. 그리고 내가 그 매혹에 취
하여 발걸음을 옮기는 사이에 이집트는 수천 년의 시간 동안 쌓아 올
리고 간직해 온 역사와 문화와 예술의 경이로운 세계를 내게 서서히
열어 주었다" (최수철, 『사막에 묻힌 태양』, 학고재, 1997). 그렇다.
우리 주변의 모든 자연과 문화유산이 그렇듯이 책도 읽는 사람에게 경
이로운 세계를 열어 보여주는 세상을 향해 열리는 창문이다. 따라서
책읽기는 이렇듯 세상을 볼 수 있는 눈(目)이며 그 세상을 보는 행위
라고 할 수 있다.
오래지 않은 기억에 우린 책을 볼 때 책표지를 싸서 보곤 했다. 물
론 그 이유가 어렵던 시절 책이 귀해서 잘 읽고 보관하기 위해서 그랬
을 것이라고 짐작되고 실제로 책표지를 싸는 것이 책 보관에 큰 도움
이 된다는 것은 인정할 수 있다. 그러나 필자는 좀 다르게 생각한다.
만일 집에서만 책을 본다면 굳이 책표지를 싸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거리를 다니며, 차에서, 공공장소에서 책을 보는 경우에는 책표지를 싸
서 남들에게 자신이 무엇을 읽고 있는가를 드러내지 않으려 한 것이라
고 생각한다. 왜 자신이 무슨 책을 읽고 있는가를 드러내고 싶지 않았
을까? 그 이유가 멋있게 보이려고 했든, 남들이 보면 뭐라 할 정도의
창피한 수준의 책이라서 그랬든, 아니면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는 책을
읽고 있는 중이라서 그런 것이든, 책표지를 싸는 행위는 결국 세상과
일정한 거리를 두고자 하는 심리 때문일 것이다. 그것은 우리 사회의
분위기와 무관하지 않았다. 자신의 입장이나 생각, 심지어는 선호까지
도 함부로 드러낼 수 없었던 때에는 자기가 무슨 책을 읽고 있는가 하
는 것까지도 남들이 알아서는 안될 것 같은 강박관념에 젖어 있었던
것이었다고 믿는다. 이제 세상이 많이 바뀌고 의식도 변화해서 지금은
책표지를 싸는 경우를 보기 힘들다. 예전에는 당연히 표지를 싸주던
서점도 이제는 환경보호나 경비절감의 이유로 이를 없앴고, 사람들도
굳이 감추려 하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이제는 자신을 그대로 드러내
는 것이 더 자연스러운 시대임을 반영하듯 강박관념은 극복한 것으로
생각된다. 소위 검찰에서 이적성이 짙다고 한 장편소설『태백산맥』이
베스트셀러가 되고 사람들도 당당히 들고 다니는 것을 보면 변해도 많
이 변했다는 생각이 든다. 『태백산맥』의 예에서 보듯이 어떤 책을
선택해서 그 책을 읽는다는 것은 그 사람의 입장을 드러내는 행위라고
이해할 수 있다. 장정일의 소설을 보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대체
로 장정일의 문학적 입장에 동의한다고 생각해도 좋을 것이다. 이렇듯
책을 읽는 것은 단순한 오락이나 소일거리가 아니라 한 사람의 주관이
고 태도라는 점을 깨달아야 한다. 특히 수많은 사람의 이용자들에게
읽을 거리를 제공해 주어야 하는 도서관에서 일하는 우리들은 책읽기
의 본질에 더욱 민감해야 한다. 우리는 책에 관한 한 私人인 동시에
사회적으로 일정한 책임을 부여받은 公人이라는 점에서 우리의 책읽기
는 더욱 공개적이면서도 시류에 휩쓸리지 않고 나름의 확고한 입장을
가지는 것이 필요하다. 도서관인들은 사회적 책무를 스스로 깨닫고 자
기의 개인적인 선호를 넘어서서 과연 도서관을 둘러싸고 있는 다양한
사람들의 책읽기는 어떠한가 하는 것에까지 관심을 확장시켜야 하며,
자신이 어떤 책읽기를 통해 세상을 만나고 있는가를 확실하게 드러내
보여야 한다. 이런 방식으로 도서관을 둘러싼 사람이나 조직들과 만남
으로써 도서관활동은 역동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며, 도서관이
이 사회에서 어떠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으며, 향후 어떤 방식으로 존
재해 나가야 하는가를 생각하고 논의할 계기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이
다.
예를 들어, 도서관인으로서 베스트셀러에 대해 어떤 입장을 가질
것인가 하는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 우선 수십만, 수백만의 사람들이
'같은' 책을 보고 같은 생각을 하게 된다면 이는 끔찍한 일이다. 이 지
점에서 도서관인들은 그 대상이 되는 책을 두고 전문가적 안목을 동원
해 분석하고 따져보고 그 평가를 공개함으로써 한 시대, 한 사회의 문
화적 흐름 형성에 적극 개입해야 한다. 그 동안은 이용자가 원하면 그
것을 구비해 주어야 한다는 견해가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꼭 그래야
하는가? 도서관인들이 판단해 보아 도서관장서로 부적합하다면 그것을
장서로 받아들이는 것을 거부할 수 있어야 한다. 어느 도서관은 베스
트셀러가 된 문학작품은 즉각 소장하지 않고 시간을 두고 본 후, 그
가치를 검증 받은 다음에 소장여부를 결정한다고 한다. 이렇듯 도서관
인들은 도서관을 통한 자신들의 역할 수행에 관련해서 보다 당당하고
공개적이어야 한다. 이것은 결국 도서관인 각자의 책읽기에서 많은 영
향을 받게 된다. 따라서 도서관인들에 있어 책읽기는 다른 사람들보다
도 더 중요하고 세상을 바라보는 눈으로서의 역할이 강조되어야 한다.
이렇게 이야기하고 나니 이런 의문이 생길 수 있다. 도서관은 不偏
不黨해야 한다고 배웠다. 사실 맞는 말이다. 공공의 이익을 위해 일을
해야 하는 공공도서관의 경우는 절대적으로 不偏不黨해야 한다. 그러
나 不偏不黨해야 한다고 해서 입장이 없어야 한다는 것은 아닐 것이
다. 도서관이 가져야 하는 입장은 이제 전문가로서의 良識과 職業倫
理, 그리고 이용자들에 대한 愛情과 關心에서 도출되어야 한다. 필자가
보기에 그 동안 대부분 도서관은 이러한 기본원칙에 근거하지 않은 채
항상 母機關의 입장에 맹목적이었다고 생각한다. 공공도서관의 경우는
이제 도서관의 주체가 누구인가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보아야 한다. 도
서관을 찾는 시민들에게 어떤 봉사를 제공해야 하는가 하는 점을 먼저
생각하는 자세를 갖추었다면, 무엇보다도 도서관이 확실하게 입장을
밝히고 그 입장에 대해 끊임없이 이용자들과 토론하고 협의하고 조정
해 나가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 우선적으로 도서관인들부터 부단히
의미 있는 책읽기를 통해 스스로 세상을 보는 눈을 길러야 한다. 이용
자들과의 만남에서 비굴하지 않으면서도 거만하지 않고, 편협하지 않
으면서 전문적이고, 가볍지 않으면서 대중적이고자 한다면, 도서관인들
은 이용자들보다 더 폭넓고 깊은 책읽기를 통해 바르게 세상을 이해하
고 앞날에 대한 확고한 입장을 가져야 한다. 이러한 바탕이 있을 때
비로소 도서관인들은 전문가다운 태도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앞으
로 세상은 더욱 복잡해지고 다양해지며 수많은 입장과 견해들이 제 목
소리를 높일 것이다. 그런 와중에 도서관이라는 제한된 영역 속에서
또한 무수한 입장을 가지고 봉사를 요구해 오는 사람들에게 적절한 봉
사를 제공하기 위해서는 도서관인들이 이러한 기반을 마련하는 것이
시급하게 요구된다. 우리 모두는 한정된 시간과 공간에서 극히 부분의
세상만을 만나면서 살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한순간 순간 그럭저럭
흘러 보내는 것은 무모하다. 도서관인들은 그 한정된 영역 속에서도
자신과 자신의 도서관이 특색을 갖추도록 노력해야 하고, 그러한 방편
중 하나가 조직화된 책읽기를 통한 세상 바르게 보기라고 생각한다.
오래 전 신문에서 본 내용이다. 미국 어느 공공도서관에서 소위 '플
레이보이'지를 일반인들이 자유롭게 꺼내볼 수 있는 곳에 비치해 두었
더니 청소년들이 더 많이 보았다고 한다. 그래서 지역주민들이 그 잡
지를 청소년들이 볼 수 없는 곳으로 옮기라고 도서관측에 강력히 요구
했다. 그랬더니 관장이 답변하기를, 그곳에 비치한 것은 도서관에서 공
식적인 절차를 거쳐 결정했던 것이기 때문에 비록 요구가 있다 하더라
도 함부로 다른 곳으로 옮길 수 없고, 도서관운영위원회 같은 곳에서
어떤 결정이 나기까지는 그대로 두겠다고 했다고 한다. 그 관장은 어
떻게 그렇게 주민들의 요구에 당당할 수 있었을까? 그것은 도서관인들
의 전문가로서의 자긍심과 자기 나름의 확고한, 그러나 공정한 세계관
이 있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짐작해 본다. 우리 도서관계에서도 이러
한 당당함이 보편적으로 자리잡는 날이 오기를 기대해 본다. 그러기
위해 우리 모든 도서관인들이 보다 의식적으로 확고한 입장을 세우기
위한 고된 책읽기를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가끔 후배나 동료 도
서관인들에게서 무슨 책을 읽는 것이 도서관인으로서의 일을 함에 있
어 도움이 될까 하는 질문을 받았었다. 이제 다음 달부터는 어떤 책들
을 읽는 것이 좋을까 하는 것을 함께 생각해 보고자 한다. 이제 이 시
대의 도서관인으로서 나의 책읽기가 단순히 나의 시간 메우기나 지적
만족을 위해서가 아니라 한 시대, 한 사회의 공공문화를 제대로 만들
어가기 위한 요구와 의무에 의해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점만은 꼭 다시
한번 확인했으면 한다. 책읽기, 그것은 세상이 나를 보고, 내가 세상을
보는 눈(目)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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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골 재두루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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