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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리브에 남긴 발자욱

** 한국의 도서관문제에 대하여 - 5


3.4. 그럼 예산만 있으면 자료는 갖추어질 수 있는가. 아니다.
예산확보는 기초적인 조건일 뿐이다. 정작 도서관의 자료를 구
성하는 실제적인 책임은 도서관 사서에게 있다. 어느 도서관이
든 충분한 예산으로 원하는 자료를 전부 갖출 수는 없다. 당연
히 일정부분 한계를 가진다. 수많은 자료 중에서 어느 것을 도
서관에 소장할 것인가 하는 것은 전적으로 사서가 결정할 사항
이다. 자료의 선택. 이것이 도서관을 도서관답게 만들 수 있는
첫번째 열쇠이며 도서관에서는 사서만이 할 수 있는 전문영역
의 일이다. 앞에서 브리태티커 백과사전의 도서관 정의에서 보
면 '자료를 수집,정리,분석'한다고 했다. 그동안 우리 도서관현장
에서 절대적으로 부족했던 것은 도서관자료에 대한 선택과 분
석을 사서가 주도적으로 하지 못한 것이다. 도서관의 혈액과도
같은 자료를 수집하는 과정에서 전문적인 선택과정도 없이 대
충 입수되어 구성된 장서로 도서관이 제대로 기능을 수행하기
를 기대하는 것 자체가 무리다. 보통 도서관에는 <자료선정위
원회>라는 것이 있다. 이 기구는 도서관의 장서구성을 객관적
이고 합리적으로 하기 위한 기구이지만, 사실 결코 객관적이지
도 않고 책임있는 기관도 아니라고 생각되낟. 오히려 전문가인
사서들이 해야할 일을 비전문가들에게 양도하고 나서, 적당히
서로 편리함에 안주하도록 해주는 기구일 뿐이다. 매일같이 자
료를 만지고 열어보고 따져보며 이용자들의 구체적 요구를 직
접 접하는 사서가 자료선택의 주도적 위치를 차지해야 한다는
것은 단지 도서관 사서들의 이기적인 주장이 아니다. 병원에서
의사가 병을 진단하고 치료하지 않고 원무과직원이나 환자들에
게 진단과 치료를 맡기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다. 그러면서 왜
도서관에서 가장 전문적인 일 중 하나인 자료선택을 사서들이
하지 못하는가. 객관을 빙자해서 도서관의 중요업무를 직접적인
책임을 질 필요가 없는 비전문가들에게 넘겨놓고 적당히 편안
함을 추구하는 태도일 뿐이다. 이제라도 사서들은 적당히 타협
해 왔던 과거에서 벗어나 좀 고민을 해야한다. 자료를 앞에 두
고 읽어보고 따져보고 과연 도서관에 소장해도 좋을지 심각하
게 고민하는 사서가 되어야 한다. 더이상 이러한 현상을 타개할
노력을 하지 않는다면 도서관은 언제나 자료의 부족에서 헤메
이게 될 것이다. 그러면 이용자들은 다른 정보원을 찾아 나설
것이다.

3.5.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별 도서관은 자료의 근본적인 부족문
제를 완전히 해결할 수는 없다. 그다음으로 제시되는 방안은 누
구나 다 아는 방식이다. 분담수서와 상호대차. 많이 들어본 단
어지만 어디고 그것을 실천하는 도서관은 없다. 왜 그럴까. 개
개 도서관이 자신의 이용자들의 요구 때문에 서로 주요 자료의
분담이 쉽지 않을 것이다. 상호대차 또한 일부 큰 도서관들이
혹시 이용자들이 자신들에게 몰려올까 하여 꺼려하는 것으로
알려져있다. 그러나 이러한 우려는 극복되어야 한다. 보다 작은
지역단위로 서로 자료를 나누어 소장하고 또 수시로 공동이용
을 가능하게 한다면 개별 도서관에 주어지는 자료에 대한 압박
은 많이 줄어들 수 있을 것이다. 사서들이 적극 나서서 그러한
지역 도서관 협력망을 구축하는 일은 매우 시급하다. 안일과 이
기적 생각을 버린다면 충분히 가능하다고 믿는다.

3,6, 자료문제에 있어 미래에는 가장 강력한 대안이 제시될 것
이다, 그것은 바로 전자도서관이다. 모든 자료를 전자화해서 누
구나 어디서나 컴퓨터통신망을 이용해서 쉽고 빠르게 구해볼
수 있도록 한다는 이 구상은 이미 상당부분 진척되어 있다. 현
재 우리나라에서 가장 먼저 전자도서관을 구축할 것으로 전망
되는 모 기업의 도서관은 이미 기초작업에 착수하여 조만간 일
반이용자들에게 전자도서관 서비스를 제공할 것이라고 한다. 또
한 인터넷 상에서 이미 전자도서관을 접해본 사람들은 그 막강
한 기능성에 놀란다. 그리고 그렇게 가야한다고 굳게 믿게 된
다. 하긴 미국의회도서관은 '아메리칸 메모리 프로젝트'를 통해
년간 1백만점의 자료를 전자화한다고 한다.(가만히 계산해보니
까 자료가 1억점 쯤 되니까 1백년이나 걸릴 일이다). 이렇게 세
계는 지금 전자도서관으로 전면적인 이행을 실현하고 있다. 우
리도 그렇게 갈 것이고 그러면 자료공유는 무리없이 이루어질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그러나 좀더 현실적으로 생각해보자.
그러한 미래는 그냥 뜬구름처럼 오는 것이 아니다. 전자화 하고
싶어도 할 마땅한 자료가 없다면 전자화에 따른 기술의 발달은
별 의미가 없다. 자료를 충실하게 갖추고 나서야 전자도서관을
생각할 일이다. 위의 모 기업도서관 담당자의 지적이 적절하다
고 생각된다. 그 담당자는 현재 추진하고 있는 전자도서관은 엄
밀하게 말해 전자도서관이 아니다. 기존의 자료를 우선 광화일
로 저장하여 팩시밀리로 보내주는 것인만큼 완전한 전자도서관
이 되려면 아직도 여러 가지 조건이 미비되어 있다는 것이다.
전자출판이 보편화되기 전에는 전자도서관은 아직 완벽하게 구
축될 수 없는 도서관 형태이다. 그러나 전자도서관은 하나의 흐
름이고 현실화되고 있으므로 그 방향성을 거부할 수는 없다. 이
제부터라도 전자화할 좋은 자료를 찾아 모으고 개발하고 정리
해서 진정한 전자도서관의 기반을 마련할 일이다.

3.7. 도서관 자료문제의 마지막은 폐기문제가 될 것이다. 자료는
사람몸의 피와 같아서 항상 새로운 것이 보충되어야 한다. 도서
관은 이용을 우선으로 하는 기관인 만큼 항상 새로운 정보로
가득차게 해야 한다. 그렇지 못했기 때문에 도서관의 매력이 상
실되었던 것이다. 앞에서 제시한대로 예산도 확보되고 계속해서
자료를 보충할 수 있으며 전자도서관으로 전환한다고 하더라도,
항상 남는 문제는 낡은 자료(정보)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하
는 것이다. 간단하다. 낡은 것은 버려야 한다. 이용되지도 않는
낡은 자료를 계속 소장하는 것은 경제적으로도 손해다. 보관비
용은 계속 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도서관활동은 일정한 공간 안
에서 이루어지는 활동이기 때문에 새로운 자료가 들어오는 만
큼 낡은 자료를 빼내지 않으면 언젠가는 동맥경화에 걸려 도서
관의 생명이 위협받게 된다. 버리자. 요즘 같은 정보화사회에서
는 낡은 자료를 버리는 것이 새로운 자료를 보강하는 것 만큼
이나 중요한 시대이다. 한가지 문제가 있기는 하다. 도서관자료
는 일회성 물건은 아니다. 책은 언젠가는 중요한 역사적 자료로
될 수도 있다. 그리고 책 자체는 하나의 문화재이다. 따라서 비
록 그 내용은 낡았다 하더라도 책 그 자체로는 생명력이 더 강
해지는 경우도 많다. 따라서 책이라면 그냥 버리기는 어렵다.
그래서 필자는 보존도서관을 만들 것을 제안하고자 한다. 각 도
서관에서 폐기한 자료들을 모아 다시 선별하고 정리해서 오랫
동안 보관할 수 있는 시설을 갖춘 보존도서관에서 보관한다면
그것은 그대로 우리의 역사적 문화재로 축적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현재 국립중앙도서관이나 국회도서관 등에 부가
된 문화유산 보존이라는 무거운 책무는 벗어버리고 홀가분하게
이용중심의 도서관으로 변모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다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