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통모에서 퍼온 글입니다. (go barun)
김기백 (kgb21 )
온라인성희롱과 Public Access(공적 접근권 05/19 22:35 179 line
진보 메일링리스트를 통해 들어온 글입니다
발신일시 : 97/05/18 14:44
발 신 인 : 인터넷 (jinbo-..)
수신/참조: 수신
제 목 : 온라인성희롱과 Public Access
From:jinbo-owner@ns.sing-kr.org
Subject: 온라인성희롱과 Public Access
Date: Sun, 18 May 1997 14:40:25 +0900
페미니스트 저널 'IF' 창간호에 기고한 글입니다.
온라인 성희롱을 Public Access의 관점에서 바라본 짧은 글입니다.
---------------------------------------------------------------------
■ 가상의 전복을 현실의 전복으로, 세상 속으로.
억압받는 자들에게 새로운 사회에 대한 소문은 가슴을 들뜨게 한다. 정보
사회는 3F, 즉 여성(Feminine), 감성(Feeling), 가상(Fiction)의 시대라고
한다. 얼마나 신나는 일인가!
하지만 전복을 꿈꾸는 이 지면에서 소문은 소문으로만 취급하자. 의심이
가득찬 눈초리로 펄럭이는 플랙카드를 째려보면서 수레바퀴를 굴리는 것은
결국 우리라는 것을 전제로 삼자. '어떤' 정보사회인가는, 결국 싸움으로
결정날 것이다. 이 싸움은 그간 지리하게 계속되어 온 이백년 싸움의 지속
이기도 하고, 동시에 낯설은, 새로운 시비거리에 대한 것이기도 할 것이
다.
인터넷과 초고속정보고속도로 - 컴퓨터 통신에 대한 호들갑이 요란하다.
'정보'가 모든 것인 시대에, 컴퓨터 통신 공간에서는 손끝만 대면 무궁무
진한 정보가 쏟아진다. 사이버스페이스에서 다양한 화제들과 다양한 사람
들을 접하며 다양한 관심사를 키우는 것이 얼마든지 가능하다. 여성과 장
애인과 같이 활동범위가 비교적 좁은 계층에게 컴퓨터 통신은 '복음'인 셈
이다. 한술 더 떠 언론과 기업은 여성들이 하루빨리 소비주체로서 스스로
를 자각하여 온라인 쇼핑이 활성화되기를, 그래서 국가경쟁력이 강화되기
를 학수고대하고 있다.
그러나, 이 모든 법석에도 불구하고 컴퓨터 통신 공간에서 여성들의 활동
은 별로 활발한 편이 아니다. 일단 양적인 면에서, 국내외, 인터넷 할 것
없이 여성 이용자는 전체 이용자의 20%를 넘지 않는다. 적을 두고 있는 여
성들도 소극적으로 활동하는 경향이 있다. 아니, 대체 왜 여성들은 이 가
능성의 영역에 과감히 뛰어들지 못하고 있는가?
사실 컴퓨터 통신 공간은, 사용환경의 특성으로 인하여 다소 극단적인 문
화 형태가 나타나긴 해도, 대체로 현실 사회의 모습을 그대로 반영한다.
특히 현실의 부조리와 모순을 정확하게 재생산한다. 그런 의미에서 컴퓨터
통신 공간은 인간 육체의 긍정적 확장이 아니라, 현실의 불평등이 확장되
는 공간이다. 정보사회의 핵심이 이와 같은 컴퓨터 통신망이라는 점에서
이건 우울한 현실이다.
이에 대응하여 제기되고 있는 개념이 바로 공적 접근권(Public Access)이
다. 공적 접근권은 정보망이 사회의 공공 이해에 부합하도록 구성되고 사
용되어 누구나 정보에 대하여 자유롭고 평등한 접근을 보장받아야 한다는
권리의 개념이며, 이 접근권은 경제적 조건, 성차, 신체적 장애, 지역, 인
종, 종교 등 어떤 사회적 권리에 의해서도 제한받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
다. 전화는 이미 기본권의 대상(Universal Service)으로 규정되어 수익성
과는 별개로 여러가지 사회적 조건에도 평등하게 접근할 수 있도록 사회적
으로 배려되고 있다. 철도와 전기가 또한 그러하며, 사회기간시설 뿐 아니
라 도서관과 같은 정보공간도 자유롭고 평등한 접근이 보장되어야 한다고
말해진다. 컴퓨터 통신망이 우리 생활에서 꼭 필요한 도구가 된다면, 전화
만큼 누구나 쓸 수 있으며, 쓰기 쉬워야 한다.
그러나 현재 진행되고 있는 정보화 과정에는 이러한 권리의 개념이 배제된
채 일방적인 산업중흥의 목소리만 드높다.("산업화는 늦었지만 정보화는
앞서가자"라는 한 신문의 캐치프레이즈는 정보화가 우리에게 어떤 의미로
'던져'졌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우리에게 현재 '정보화'란, 로보트를
하인으로 부리는 미래생활의 환상에 등떠밀려 당장 컴퓨터를 사고, 회사에
서 살아남기 위하여 컴퓨터를 배우고, 왜인지도 모르고 인터넷을 헤매는
것을 의미한다. 일터는 컴퓨터망으로 촘촘히 통제되며, 정보통신기술에 노
동력이 대체되어 가고, 전자주민카드로 내 생활의 족적이 모두 전산망에
기록되고 있다. 이것이 국가와 자본의 '정보화'이다. 그래서 '인간의 얼굴
을 한 정보사회'를 주장하는 이들은 시민노동자가 공적 접근권의 개념을
시급히 사회화하고 국가와 자본을 상대로 싸움을 시작해야 한다고 주장한
다.
여성들도 별로 새롭지 않은 새로운 시대에서 또하나의 싸움을 시작해야 할
것 같다. [국가정보화백서(한국전산원 발간)]에서 보장하고 있는 것처럼
정보화가 여성에게 '가져다 줄 가장 큰 혜택은 가사노동의 자동화'라면 차
라리 거부를 해버리고 싶다. 아쉽게도 자본은 사활을 걸고 용을 쓰는 중이
다. 그래서 이 정보화를 정말 우리의 것으로 만들기 위하여, 반여성적인
정보화가 아니라 '모든' 인간에게 기여를 하는 미래를 위하여 싸움의 채비
를 갖추자. 평등하고 자유로운 정보에 대한 접근 요구가 바로 그 출발이
다.
불행히도 여성이 정보에 접근하기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여성은 채
가상공간에 들어서기도 전에, 혹은 막 들어선 순간에, 수많은 장벽들과 맞
닥뜨린다 - 컴퓨터와 기술이 낯설고 심지어 겁도 난다 / 컴퓨터는 남자 가
족이 쓰는 물건이다 / 막상 해볼 용기를 내더라도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
지 막막하다 / 컴퓨터 통신 요금을 부담하기에는 내 월급이 좀 뻑뻑하다 /
컴퓨터 통신을 사용한다고 해서 뭐 특별히 달라질 게 있을까? ... 물론,
이런 문제들을 개인적으로 극복하고 컴퓨터 통신 공간에 진입한 여성들도
있다. 하지만 자매들은 가상공간에 진입한 후에도 역시 여기저기 쌓여 있
는 장애물에 걸려 넘어지기 일쑤인데, 대표적인 장애물이 바로 '온라인 성
희롱'이다.
상대적으로 고립된 커뮤니케이션 상황과 다소 제한적일지언정 익명성을 보
장받는 것으로 인해 컴퓨터 통신 공간은 이미 '성'에 대한 담론이 넘쳐나
고 있다. 이것이 실제 생활에 대해서도 공개적인 성담론이라는 문화적 해
방으로 이어질 지에 대해서는 의문이지만, 여성들도 막혔던 언로를 뚫고
바야흐로 성담론에 적극적으로 뛰어들기 시작했다. 이런 상황일수록 성에
관한 여성 자신의 의사가 중요하다. 그런데 온라인 성희롱은 성에 대한 여
성의 의사를 우습게 여기고 여성의 자기 성에 대한 권리를 야만적으로 박
탈한다. 무엇보다 이 '사소한' 문제가, 기분 상하게 하는 것으로부터 시작
해서 모욕하고 위협하고 겁을 주어 드디어 여성들을 이 해방의 공간으로부
터 멀어지게 한다. 사이버스페이스는 남성들만의 공간이 되는 것이다.(그
래서 어떤 이는 온라인 성희롱이야말로 남성들이 자신들의 영역인 '기계의
공간'을 침입자, 즉 여성으로부터 지키려는 전략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물론 '온라인 성희롱'이 접속 자체를 못하게 하는 물리적인 장애는 아니지
만, 소외당하고 모욕받은 경험은 당연히 나를 주저하게 한다.
인터넷에 'Babes on the Web'라는 사이트가 있었다. 이 사이트의 주인은
수많은 여성들의 홈페이지를 자기 홈페이지에 연결시켜 놓고, 여성들의 홈
페이지 사진을 기준으로 순위를 매기고 품평을 해 놓았다. 여성들의 항의
는 무시되었고 모욕적인 비아냥이 이어졌다. "나는 내 입맛과 기분에 따라
순위를 매긴다. 이게 싫거든 NOW(전미여성연합)에 가서 징징거려라. 무엇
이 되었건 난 신경쓰지 않는다... 만일 내 순위가 맘에 들지 않으면 홈페
이지 사진을 더 나은 것으로 바꾸어라." 이 홈페이지는 네티즌의 대표적인
잡지 <와이어드>에 소개되었고, 그는 더욱 의기양양해졌다. 결국 여성들은
자신의 홈페이지에서 사진을 제거했다. 이런 상황은 당연히 여성들이 홈페
이지에 (남성들에게는 아무런 거리낌이 없는) 사진 한장 달아놓는 것조차
주저하게 하며, 자신이 여성임을 드러내는 이름이나 신상명세를 공개하는
데 피해의식을 가지게 한다.
지난해 11월, 국내 통신 공간에서 온라인 성희롱이 공개적으로 문제화되었
다. 한 남성 이용자가 여성의 분명한 거절의사에도 불구하고 전자우편과
채팅 등을 동원하여 일방적인 구애(?)를 계속하였다. 편지를 읽지 않고 채
팅에 응하지 않자 다소 일방적인 메모와 쪽지 공세까지 시작한다. 결국 실
제 신변의 위협까지 느끼게 된 여성은 공개 게시판을 통하여 사건을 공개
하였고, 이는 통신 공간에 많은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그러나 여성들이
함께 분노하고 자신의 불쾌했던 경험에 대해서도 고백한 반면, 남성들은
'속좁은 여자들'에 대하여 비아냥과 더 큰 모욕을 보냈다. 이를 주제로 한
토론실도 개설되었지만, 남성 이용자들의 전투적인(!) 대응으로 인하여 별
소득 없이 문을 닫았다. 우조교의 패소를 통해 전사회적으로 보장되어 있
는 우리의 성희롱 문화를 볼 수 있다. 이는 '가상' 공간으로도 이어져 많
은 여성들이 원치 않는 접근과 모욕에 시달리고 있다.
보통 전자메일, 게시판, 채팅실을 통해서 나타나는 온라인 성희롱은 종종
아이디 해킹이나 데이트 강간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그래서 미국의
WHOA(Woman Halting Online Abuse)나 CyberAngel과 같은 온라인 성희롱 반
대단체들은 다음과 같은 대응지침을 알리고 있다. 일단계, 확실히 성희롱
인지를 확인할 것. '성희롱'의 개념은 성적인 내용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혹은 성적인 내용이라고 모두 성희롱은 아니다. 성희롱의 특성은 나의 거
부의사를 무시하고 계속된다는 데 있다. 그래서 자신의 거부의사를 분명히
밝히는 것이 좋다. 단, 이 때 직접 대면을 하는 것은 대단히 위험할 수 있
으므로 현명하지 못하다. 이단계, 그래도 그만두지 않는다면 사건을 공개
화하고 사회적인 해결방안을 모색할 것. 사건을 공개화하는 것은 다른 여
성들에게 경고가 되고, 남성들에게는 이런 불쾌함이 존재한다는 교육의 효
과를 줄 수 있다. 또한 네티즌(netizen, 가상공간의 시민)들의 도움을 받
을 수 있다. 그래서 가해 남성이 온라인 사회의 압력으로 스스로 행동을
그만두고 사과를 한다면 가장 좋다. 하지만 상습적일 경우 그가 소속해 있
는 통신회사에 항의하여 모종의 조치를 취하도록 압력을 가할 필요가 있
다. 이런 행동이 여성 이용자들의 통신 생활을 억압하기 때문이다. (WHOA
의 경우 가해남성의 추적이나 이런 압력활동을 지원해준다.)
주목할 점은, 이들이 '법적인 대응'은 자제하도록 권고하고 있다는 사실이
다. 이는 일단 실정법이 온라인 성희롱을 충분히 포용하지 못하기 때문이
다.(실제로 국내에 일어난 위 사건의 경우, 경찰 관계자에 따르면 "이런
구애는 성폭력에 해당이 안된다"고 한다.) 또한 국경이 없는 인터넷의 특
성상 법적 효력이 미치지 못하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무엇보다도 온라인
성희롱 등에 대한 여성 보호나 청소년 보호를 빌미로 가상공간에 대한 검
열이 강화되고 표현의 자유가 억압되는 사태가 가장 우려스러운 일이다.
여성들도 다 생각과 경험이 틀리니 일괄적인 온라인 성희롱의 개념을 규정
한다는 것 자체가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여성들이 직접 가상공간의 자치 규율을 만들어가는 데
참가하는 것이다. 지속적으로 가상공간에 온라인 성희롱의 개념을 알려나
가는 일이나 여성의 입장이 반영된 네티켓(netiquette, 네티즌의 예절)을
수립해가는 것. 기술이 여성의 입장에서 쓰일 수 있도록 노력하며(예를 들
어 원치 않는 이용자가 보낸 메일이나 원치 않는 단어가 포함된 메일을 거
부하는 프로그램 같은 것들이 개발되고 있다), 이런 기술이나 정책이 실제
로 적용되도록 통신회사측에 요구할 수도 있다.
온라인 성희롱에 대한 기본적인 시각 하나는, 여성들이 온라인 성희롱으로
인해 자유롭고 즐거운 통신생활을 제한받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거기서 더 나아가, 온라인 성희롱이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여성 전체의 문
제이고, 무엇보다 여성에게서 다가올 미래에 대한 권리를 박탈하는 반여성
적 정보화의 일면이라는 것을 통찰해야 한다. 씩씩한 여성전사들이 가상
공간에서 아무리 애를 써도, 다른 여성들이 가상공간에 들어오지도 못한다
면 그들은 외로운 소수일 수 밖에 없다. 즉, 온라인 성희롱은 공적 접근권
의 문제이며, 온라인-오프라인의 연대를 통하여 전체적으로 여성에게 평등
한 기회가 열려 있는 가상공간, 그리고 정보사회를 만들어 나가야 하는 것
이다.
최근 하이텔, 나우누리, 천리안의 여성동호회들이 온라인 성희롱 방지를
위한 공동대책 마련에 노력하기 시작했다는 소식이나, 여성단체에서 온라
인 성희롱 고발센타를 구상 중이라는 소식은 그래서 매우 반갑다.
싸움은 여기서부터 출발할 수 있다. 바야흐로 가상의 전복을 현실의 전복
으로, 세상 속으로 끌어낼 시점이다.
김기백 (kgb21 )
온라인성희롱과 Public Access(공적 접근권 05/19 22:35 179 line
진보 메일링리스트를 통해 들어온 글입니다
발신일시 : 97/05/18 14:44
발 신 인 : 인터넷 (jinbo-..)
수신/참조: 수신
제 목 : 온라인성희롱과 Public Access
From:jinbo-owner@ns.sing-kr.org
Subject: 온라인성희롱과 Public Access
Date: Sun, 18 May 1997 14:40:25 +0900
페미니스트 저널 'IF' 창간호에 기고한 글입니다.
온라인 성희롱을 Public Access의 관점에서 바라본 짧은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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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상의 전복을 현실의 전복으로, 세상 속으로.
억압받는 자들에게 새로운 사회에 대한 소문은 가슴을 들뜨게 한다. 정보
사회는 3F, 즉 여성(Feminine), 감성(Feeling), 가상(Fiction)의 시대라고
한다. 얼마나 신나는 일인가!
하지만 전복을 꿈꾸는 이 지면에서 소문은 소문으로만 취급하자. 의심이
가득찬 눈초리로 펄럭이는 플랙카드를 째려보면서 수레바퀴를 굴리는 것은
결국 우리라는 것을 전제로 삼자. '어떤' 정보사회인가는, 결국 싸움으로
결정날 것이다. 이 싸움은 그간 지리하게 계속되어 온 이백년 싸움의 지속
이기도 하고, 동시에 낯설은, 새로운 시비거리에 대한 것이기도 할 것이
다.
인터넷과 초고속정보고속도로 - 컴퓨터 통신에 대한 호들갑이 요란하다.
'정보'가 모든 것인 시대에, 컴퓨터 통신 공간에서는 손끝만 대면 무궁무
진한 정보가 쏟아진다. 사이버스페이스에서 다양한 화제들과 다양한 사람
들을 접하며 다양한 관심사를 키우는 것이 얼마든지 가능하다. 여성과 장
애인과 같이 활동범위가 비교적 좁은 계층에게 컴퓨터 통신은 '복음'인 셈
이다. 한술 더 떠 언론과 기업은 여성들이 하루빨리 소비주체로서 스스로
를 자각하여 온라인 쇼핑이 활성화되기를, 그래서 국가경쟁력이 강화되기
를 학수고대하고 있다.
그러나, 이 모든 법석에도 불구하고 컴퓨터 통신 공간에서 여성들의 활동
은 별로 활발한 편이 아니다. 일단 양적인 면에서, 국내외, 인터넷 할 것
없이 여성 이용자는 전체 이용자의 20%를 넘지 않는다. 적을 두고 있는 여
성들도 소극적으로 활동하는 경향이 있다. 아니, 대체 왜 여성들은 이 가
능성의 영역에 과감히 뛰어들지 못하고 있는가?
사실 컴퓨터 통신 공간은, 사용환경의 특성으로 인하여 다소 극단적인 문
화 형태가 나타나긴 해도, 대체로 현실 사회의 모습을 그대로 반영한다.
특히 현실의 부조리와 모순을 정확하게 재생산한다. 그런 의미에서 컴퓨터
통신 공간은 인간 육체의 긍정적 확장이 아니라, 현실의 불평등이 확장되
는 공간이다. 정보사회의 핵심이 이와 같은 컴퓨터 통신망이라는 점에서
이건 우울한 현실이다.
이에 대응하여 제기되고 있는 개념이 바로 공적 접근권(Public Access)이
다. 공적 접근권은 정보망이 사회의 공공 이해에 부합하도록 구성되고 사
용되어 누구나 정보에 대하여 자유롭고 평등한 접근을 보장받아야 한다는
권리의 개념이며, 이 접근권은 경제적 조건, 성차, 신체적 장애, 지역, 인
종, 종교 등 어떤 사회적 권리에 의해서도 제한받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
다. 전화는 이미 기본권의 대상(Universal Service)으로 규정되어 수익성
과는 별개로 여러가지 사회적 조건에도 평등하게 접근할 수 있도록 사회적
으로 배려되고 있다. 철도와 전기가 또한 그러하며, 사회기간시설 뿐 아니
라 도서관과 같은 정보공간도 자유롭고 평등한 접근이 보장되어야 한다고
말해진다. 컴퓨터 통신망이 우리 생활에서 꼭 필요한 도구가 된다면, 전화
만큼 누구나 쓸 수 있으며, 쓰기 쉬워야 한다.
그러나 현재 진행되고 있는 정보화 과정에는 이러한 권리의 개념이 배제된
채 일방적인 산업중흥의 목소리만 드높다.("산업화는 늦었지만 정보화는
앞서가자"라는 한 신문의 캐치프레이즈는 정보화가 우리에게 어떤 의미로
'던져'졌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우리에게 현재 '정보화'란, 로보트를
하인으로 부리는 미래생활의 환상에 등떠밀려 당장 컴퓨터를 사고, 회사에
서 살아남기 위하여 컴퓨터를 배우고, 왜인지도 모르고 인터넷을 헤매는
것을 의미한다. 일터는 컴퓨터망으로 촘촘히 통제되며, 정보통신기술에 노
동력이 대체되어 가고, 전자주민카드로 내 생활의 족적이 모두 전산망에
기록되고 있다. 이것이 국가와 자본의 '정보화'이다. 그래서 '인간의 얼굴
을 한 정보사회'를 주장하는 이들은 시민노동자가 공적 접근권의 개념을
시급히 사회화하고 국가와 자본을 상대로 싸움을 시작해야 한다고 주장한
다.
여성들도 별로 새롭지 않은 새로운 시대에서 또하나의 싸움을 시작해야 할
것 같다. [국가정보화백서(한국전산원 발간)]에서 보장하고 있는 것처럼
정보화가 여성에게 '가져다 줄 가장 큰 혜택은 가사노동의 자동화'라면 차
라리 거부를 해버리고 싶다. 아쉽게도 자본은 사활을 걸고 용을 쓰는 중이
다. 그래서 이 정보화를 정말 우리의 것으로 만들기 위하여, 반여성적인
정보화가 아니라 '모든' 인간에게 기여를 하는 미래를 위하여 싸움의 채비
를 갖추자. 평등하고 자유로운 정보에 대한 접근 요구가 바로 그 출발이
다.
불행히도 여성이 정보에 접근하기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여성은 채
가상공간에 들어서기도 전에, 혹은 막 들어선 순간에, 수많은 장벽들과 맞
닥뜨린다 - 컴퓨터와 기술이 낯설고 심지어 겁도 난다 / 컴퓨터는 남자 가
족이 쓰는 물건이다 / 막상 해볼 용기를 내더라도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
지 막막하다 / 컴퓨터 통신 요금을 부담하기에는 내 월급이 좀 뻑뻑하다 /
컴퓨터 통신을 사용한다고 해서 뭐 특별히 달라질 게 있을까? ... 물론,
이런 문제들을 개인적으로 극복하고 컴퓨터 통신 공간에 진입한 여성들도
있다. 하지만 자매들은 가상공간에 진입한 후에도 역시 여기저기 쌓여 있
는 장애물에 걸려 넘어지기 일쑤인데, 대표적인 장애물이 바로 '온라인 성
희롱'이다.
상대적으로 고립된 커뮤니케이션 상황과 다소 제한적일지언정 익명성을 보
장받는 것으로 인해 컴퓨터 통신 공간은 이미 '성'에 대한 담론이 넘쳐나
고 있다. 이것이 실제 생활에 대해서도 공개적인 성담론이라는 문화적 해
방으로 이어질 지에 대해서는 의문이지만, 여성들도 막혔던 언로를 뚫고
바야흐로 성담론에 적극적으로 뛰어들기 시작했다. 이런 상황일수록 성에
관한 여성 자신의 의사가 중요하다. 그런데 온라인 성희롱은 성에 대한 여
성의 의사를 우습게 여기고 여성의 자기 성에 대한 권리를 야만적으로 박
탈한다. 무엇보다 이 '사소한' 문제가, 기분 상하게 하는 것으로부터 시작
해서 모욕하고 위협하고 겁을 주어 드디어 여성들을 이 해방의 공간으로부
터 멀어지게 한다. 사이버스페이스는 남성들만의 공간이 되는 것이다.(그
래서 어떤 이는 온라인 성희롱이야말로 남성들이 자신들의 영역인 '기계의
공간'을 침입자, 즉 여성으로부터 지키려는 전략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물론 '온라인 성희롱'이 접속 자체를 못하게 하는 물리적인 장애는 아니지
만, 소외당하고 모욕받은 경험은 당연히 나를 주저하게 한다.
인터넷에 'Babes on the Web'라는 사이트가 있었다. 이 사이트의 주인은
수많은 여성들의 홈페이지를 자기 홈페이지에 연결시켜 놓고, 여성들의 홈
페이지 사진을 기준으로 순위를 매기고 품평을 해 놓았다. 여성들의 항의
는 무시되었고 모욕적인 비아냥이 이어졌다. "나는 내 입맛과 기분에 따라
순위를 매긴다. 이게 싫거든 NOW(전미여성연합)에 가서 징징거려라. 무엇
이 되었건 난 신경쓰지 않는다... 만일 내 순위가 맘에 들지 않으면 홈페
이지 사진을 더 나은 것으로 바꾸어라." 이 홈페이지는 네티즌의 대표적인
잡지 <와이어드>에 소개되었고, 그는 더욱 의기양양해졌다. 결국 여성들은
자신의 홈페이지에서 사진을 제거했다. 이런 상황은 당연히 여성들이 홈페
이지에 (남성들에게는 아무런 거리낌이 없는) 사진 한장 달아놓는 것조차
주저하게 하며, 자신이 여성임을 드러내는 이름이나 신상명세를 공개하는
데 피해의식을 가지게 한다.
지난해 11월, 국내 통신 공간에서 온라인 성희롱이 공개적으로 문제화되었
다. 한 남성 이용자가 여성의 분명한 거절의사에도 불구하고 전자우편과
채팅 등을 동원하여 일방적인 구애(?)를 계속하였다. 편지를 읽지 않고 채
팅에 응하지 않자 다소 일방적인 메모와 쪽지 공세까지 시작한다. 결국 실
제 신변의 위협까지 느끼게 된 여성은 공개 게시판을 통하여 사건을 공개
하였고, 이는 통신 공간에 많은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그러나 여성들이
함께 분노하고 자신의 불쾌했던 경험에 대해서도 고백한 반면, 남성들은
'속좁은 여자들'에 대하여 비아냥과 더 큰 모욕을 보냈다. 이를 주제로 한
토론실도 개설되었지만, 남성 이용자들의 전투적인(!) 대응으로 인하여 별
소득 없이 문을 닫았다. 우조교의 패소를 통해 전사회적으로 보장되어 있
는 우리의 성희롱 문화를 볼 수 있다. 이는 '가상' 공간으로도 이어져 많
은 여성들이 원치 않는 접근과 모욕에 시달리고 있다.
보통 전자메일, 게시판, 채팅실을 통해서 나타나는 온라인 성희롱은 종종
아이디 해킹이나 데이트 강간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그래서 미국의
WHOA(Woman Halting Online Abuse)나 CyberAngel과 같은 온라인 성희롱 반
대단체들은 다음과 같은 대응지침을 알리고 있다. 일단계, 확실히 성희롱
인지를 확인할 것. '성희롱'의 개념은 성적인 내용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혹은 성적인 내용이라고 모두 성희롱은 아니다. 성희롱의 특성은 나의 거
부의사를 무시하고 계속된다는 데 있다. 그래서 자신의 거부의사를 분명히
밝히는 것이 좋다. 단, 이 때 직접 대면을 하는 것은 대단히 위험할 수 있
으므로 현명하지 못하다. 이단계, 그래도 그만두지 않는다면 사건을 공개
화하고 사회적인 해결방안을 모색할 것. 사건을 공개화하는 것은 다른 여
성들에게 경고가 되고, 남성들에게는 이런 불쾌함이 존재한다는 교육의 효
과를 줄 수 있다. 또한 네티즌(netizen, 가상공간의 시민)들의 도움을 받
을 수 있다. 그래서 가해 남성이 온라인 사회의 압력으로 스스로 행동을
그만두고 사과를 한다면 가장 좋다. 하지만 상습적일 경우 그가 소속해 있
는 통신회사에 항의하여 모종의 조치를 취하도록 압력을 가할 필요가 있
다. 이런 행동이 여성 이용자들의 통신 생활을 억압하기 때문이다. (WHOA
의 경우 가해남성의 추적이나 이런 압력활동을 지원해준다.)
주목할 점은, 이들이 '법적인 대응'은 자제하도록 권고하고 있다는 사실이
다. 이는 일단 실정법이 온라인 성희롱을 충분히 포용하지 못하기 때문이
다.(실제로 국내에 일어난 위 사건의 경우, 경찰 관계자에 따르면 "이런
구애는 성폭력에 해당이 안된다"고 한다.) 또한 국경이 없는 인터넷의 특
성상 법적 효력이 미치지 못하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무엇보다도 온라인
성희롱 등에 대한 여성 보호나 청소년 보호를 빌미로 가상공간에 대한 검
열이 강화되고 표현의 자유가 억압되는 사태가 가장 우려스러운 일이다.
여성들도 다 생각과 경험이 틀리니 일괄적인 온라인 성희롱의 개념을 규정
한다는 것 자체가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여성들이 직접 가상공간의 자치 규율을 만들어가는 데
참가하는 것이다. 지속적으로 가상공간에 온라인 성희롱의 개념을 알려나
가는 일이나 여성의 입장이 반영된 네티켓(netiquette, 네티즌의 예절)을
수립해가는 것. 기술이 여성의 입장에서 쓰일 수 있도록 노력하며(예를 들
어 원치 않는 이용자가 보낸 메일이나 원치 않는 단어가 포함된 메일을 거
부하는 프로그램 같은 것들이 개발되고 있다), 이런 기술이나 정책이 실제
로 적용되도록 통신회사측에 요구할 수도 있다.
온라인 성희롱에 대한 기본적인 시각 하나는, 여성들이 온라인 성희롱으로
인해 자유롭고 즐거운 통신생활을 제한받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거기서 더 나아가, 온라인 성희롱이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여성 전체의 문
제이고, 무엇보다 여성에게서 다가올 미래에 대한 권리를 박탈하는 반여성
적 정보화의 일면이라는 것을 통찰해야 한다. 씩씩한 여성전사들이 가상
공간에서 아무리 애를 써도, 다른 여성들이 가상공간에 들어오지도 못한다
면 그들은 외로운 소수일 수 밖에 없다. 즉, 온라인 성희롱은 공적 접근권
의 문제이며, 온라인-오프라인의 연대를 통하여 전체적으로 여성에게 평등
한 기회가 열려 있는 가상공간, 그리고 정보사회를 만들어 나가야 하는 것
이다.
최근 하이텔, 나우누리, 천리안의 여성동호회들이 온라인 성희롱 방지를
위한 공동대책 마련에 노력하기 시작했다는 소식이나, 여성단체에서 온라
인 성희롱 고발센타를 구상 중이라는 소식은 그래서 매우 반갑다.
싸움은 여기서부터 출발할 수 있다. 바야흐로 가상의 전복을 현실의 전복
으로, 세상 속으로 끌어낼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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