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침 드디어 김영민 교수의 책을 다 읽었습니다. 오랜만에 많은 줄을
그어 가면서 읽은 책입니다. 평소 내가 생각하고 있던 점들을 지적하는 곳
에서는 자신있게 밑줄을 그었고, 잘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나 몰랐던 점을
적고 있는 부분에서는 조금은 머뭇거리면 밑줄을 그어가면 읽었습니다. 그
중 이런 말은 정말 그렇다고 동감하는 점이었습니다. "적용되지 못하는 이
론이 이론이 아니듯이, 내 땅 남의 가릴 것 없이 적용만 된다면 문제없다
는 식의 발상도 무조건 탓할 수만은 없다. 그러나 내가 정작 문제삼는 것
은 적용 가능성 그 자체보다는 적용의 방식과 적용을 둘러싼 제반 역학
에 있다"(192쪽) 정말 이 지적은 매우 중요한 점을 언급하고 있다고 생각합
니다. 내가 이 구절 옆에 이렇게 적어 두었습니다. '최근 도서관계의 전자도
서관 도입에 있어서 적용해 볼 만하다' 몇 몇 사람들의 중요한 지적과 현장
의 보고에도 불구하고 이제 우리 도서관계를 지배하는 담론은 전자도서관이
우리 도서관의 새로운 미래를 가져다 줄 것이라는 믿음을 담고 있는 것 같
습니다. 그래서 많은 도서관에서 어떻게 하면 빨리, 그리고 정확하게 전자도
서관을 만들 수 있는가 하는 점에 고심하고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
다. 그러나 한 번만 가만히 생각해 보면 정말 그런가 하는 점에 대해 심각
한 회의를 가질 수 밖에 없습니다. 전자도서관 담론을 지탱해 주는 이론적,
기술적 배경에는 문제가 없을 수도 있습니다. 주로 정보통신 기술과 컴퓨터
공학의 발달, 다양한 기능을 수행할 수 있는 강력한 소프트웨어 등은 이미
어느 정도 수준에 도달해 있다고 생각됩니다. 우리가 전자도서관을 이야기
함에 있어 이런 부분의 발달이 중요한 전제가 되는 것이 사실입니다. 이 점
이 바로 전자도서관을 이야기하는데 있어 가장 취약한 부분이 될 수도 있습
니다. 우린 이러한 과학기술의 발달이 정확하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지 못
합니다. 그리고 실제로 어떤 능력을 발휘하게 될런지도 잘 모릅니다. 막연히
기술자들이 설명하는 것을 듣고 그대로 인정할 수 밖에 없습니다. (물론 우
리 중에서도 그러한 기술적 문제를 스스로 다룰 수 있는 분들이 있으리라고
믿습니다만, 문제는 도서관계 대부분의 수준을 고려할 때, 도서관계는 아직
기술적 문제에서 주도적 위치를 점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따라
서 우리가 전자도서관 문제를 이야기할 때 기본으로 삼고 있는 기술적 전제
가 어떻게 될는지 정확하게 알 수 없는 상황에서 그러한 예측을 기반으로
논의를 전개한다는 것은 다소 위험성이 있습니다. 또 다른 중요한 문제는
우리는 사람을 상대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사람은 과학기술과 달리 예측이
어렵고 또한 변화가 심합니다. 우리가 이용자라는 더 예측이 어려운 대중집
단을 상대로 서비스를 제공하는, 그리고 제공하는 서비스가 물질적인 부분
이 아니라 정신적 부분인 점을 감안한다면, 과연 우리가 추진하고 있는 이
전자도서관이 그러한 인간적 부분을 제대로 고려하고 추진되는가 하는 점에
대해 회의적일 수 밖에 없습니다. 위 인용문에서 좀 더 발전을 해 보면, 전
자도서관은 매우 비용이 많이 드는 작업입니다. 따라서 당연히 비용을 어떻
게 조달하는가 하는 문제가 발생합니다. 현장에서는 바로 이 점에서 실제적
인 문제점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많은 경우 기본장서도 제대로 충당할 수
없는 상황에서 많은 비용을 들여 전자자료를 입수하고 하드웨어를 사들이
고, 기술적인 문제 해결에 인원을 충당하고 있는 상황이 과연 바람직한가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전자도서관 문제는 제 생각이지만 개방성을
전제로 하고 추진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점에서 보면 그동안 도서
관 간의 상호협력이 거의 없던 상황에서 갑작스레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고
개방적인 도서관 시스템으로 변화할 수 있을까 하는 점도 의문시 됩니다.
또한 많은 경우 사서들이 주도적으로 이러한 비용의 문제나 도입과정에서의
기술적, 이론적 문제 해결을 주도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고 이러한 문제는
대체로 도서관이 속한 전체 구조의 역학관계에 따라 결정되다는 점은 누구
나 인정하는 바입니다. 따라서 정말 제대로 전자도서관을 구축하고 이를 우
리의 미래모습으로 상정하고자 한다면 기존의 도서관 상황에서도 사서들이
도서관 운영의 주도권을 쥐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수서에서 부터 열
람에 이르기 까지 일관된 작업과정에서 과연 얼마나 사서들이 주도적인 역
할을 수행하고 있는가, 이용자들과의 만남은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가 등
등의 숱한 문제점들에 대한 조사와 점검, 그리고 정비가 이루어지지 않고서
는 단순히 변형된 자료나 유통방식의 변화를 도입해서 도서관 상황을 개선
할 수는 없습니다. 오히려 이러한 변화의 이면에는 아예 도서관을 새로이
자본주의 체제에 편입시켜 이전에는 누구나 쉽게 구해볼 수 있는 자료들까
지도 비용을 청구하고, 자료나 정보에 가격을 매김으로써 자연스럽게 자본
의 논리에 적합한 자료나 정보들만을 남겨두고 나머지는 사장시켜 버리려는
정치적 의도까지도 예상할 수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새로운 변화를 받아들
임에 있어 주도면밀한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급할수록 더디가라고 하는
말도 있듯이 차분하게, 그리고 이제는 관종과 도서관의 크기, 지역에 상관없
이 서로 협력해서 공동의 문제를 풀어가는 협력의 자세도 또한 필요합니다.
모든 일에 있어 순수함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나는 순수하게 생각하고 좋은
측면으로 생각해서 일을 하더라도 전체적인 구도에서 보면 전혀 의도하지
않은, 그러나 누군가는 의도한 방향으로 끌려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무슨 일을 하고자 한다면 주도권을 쥐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제반 역학
관계를 잘 파악하는 것이 그래서 중요하지요. 그러나 여전히 도서관이 독
자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면 완벽하게 주도권을 쥘 수는 없습니다. 그럴 때
우리에게는 새로운 전술과 전략이 필요합니다. 이 점에 대해서는 또 이런
인용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거짓말은 답변의 <내용>이기 이전에 답변
자의 태도나 성품을 일부 들어낼 수 있는 답변의 <방식>에 대한 문제이기
도 하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302쪽)는 지적을 보면, 역시 대부분은 방식
의 문제라는 생각이 듭니다. 요즘 같은 시절엔 더 그런 것이 아닐까 합니다.
유명한 '이방인'에서 뫼르소는 <태양에 눈이 부셔서> 아랍인을 죽였다고 하
지만 법정의 배심원들은 이 말을 그대로 믿지 않는다는 것을 풀어서 설명하
고 있는 저자가 뫼르소가 '미친 놈'이라는 비난을 면하기 위해 변명을 해야
하는데 그가 하는 변명, 즉 거짓말이란 것도 사실은 그 내용이 문제가 아니
라 하나의 방식의 문제라는 점을 언급하고 있는 것입니다. 왜 이 이야기를
여기서 인용하고 있는 것일까? 우린 혹시 우리가 지금 도달하고자 하는 어
떤 목표점이 사실 정직한 목표점이 아닌 것은 아닌가 하는 점에 대해 정말
솔직한가 하는 점을 생각해 보았으면 합니다. 정말 우리는 우리 도서관의
그 많은 문제점과 우리가 일하면서 느꼈던 그 숱한 회의와 좌절의 감정이
전자도서관이 되면 해결될 수 있다고 믿는 것일까? 정말 그렇게 믿기 때문
에, 마치 확신범처럼 누가 뭐라고 하든 상관하지 않고 나의 갈길을 간다는
심정으로 밤낮없이 그 문제에 매여 있는 것일까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내
게 묻는다면 나는 전자도서관이라는 방식으로는 우리가 당면한 문제들을 해
결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우린 기계를 상대하거나 단순히 책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근거로 이용자라는 특별한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직업
이며 책임이며, 그 사람이라는 대상은 거의 모두 개별화되어 있고, 어느 정
도는 욕심에 근거한 목적의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라서 그들의 관점과
목표점이 뚜렷하고, 따라서 그것에 부합되지 않는다는 것은 어떤 것이든 불
만을 토로할 것이며, 설사 만족한다 하더라도 여전히 중간매개의 역할을 담
당하고 있는 우리 사서들에 대해서는 별반 고마움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 보
편적 현상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전자매체를 통한 소위 사이브라리안
(Cybrarian)으로 존재를 옮겨간다면 우린 더더욱 이용자를 만날 수 있는 공
간이 좁아지고, 또 우리가 개입할 여지가 점점 더 줄어들어, 결국 우리의 존
재가치를 증명할 별다른 지지기반을 만들어 내지 못할 것입니다. 따라서 우
린 이제 거짓말을 해야 할 지도 모릅니다. 또 해야하지요, 우리를 둘러싼 역
학구조, 돈을 대는 사람들, 직접 우리들의 업무를 관장하는 책임을 가졌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내부의 동료들, 다양한 형태로 계층화되어 있고, 개별화
되어있는 이용자들.... 그런 구조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우린 장미빛 그림을
그려 보여야 한다는 것은 어쩌면 생존의 문제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정작
우리에게는 생존의 문제일런지는 몰라도 지금 현재 전자정보사회를 구축해
나가는 주도 세력에게는 이런 우리의 고민이 제대로 이해되지 않아 보입니
다. 그런 점에서 아직 우리의 '거짓말'은 그럴 듯 하게 보이지는 않는가 봅
니다. 하긴 거짓말이 사실이 되려면 정작 말하는 사람이 스스로 그것이 사
실이라고 확신해야 다른 사람도 그 확신을 따라 믿게 되는 것이 아닐까 합
니다. 그럼 우리에게 어떤 식으로든 방식이 잘못된 것은 아닐까 하는 반성
을 해 보아야 하지 않을까요?
낙골 재두루미~~
그어 가면서 읽은 책입니다. 평소 내가 생각하고 있던 점들을 지적하는 곳
에서는 자신있게 밑줄을 그었고, 잘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나 몰랐던 점을
적고 있는 부분에서는 조금은 머뭇거리면 밑줄을 그어가면 읽었습니다. 그
중 이런 말은 정말 그렇다고 동감하는 점이었습니다. "적용되지 못하는 이
론이 이론이 아니듯이, 내 땅 남의 가릴 것 없이 적용만 된다면 문제없다
는 식의 발상도 무조건 탓할 수만은 없다. 그러나 내가 정작 문제삼는 것
은 적용 가능성 그 자체보다는 적용의 방식과 적용을 둘러싼 제반 역학
에 있다"(192쪽) 정말 이 지적은 매우 중요한 점을 언급하고 있다고 생각합
니다. 내가 이 구절 옆에 이렇게 적어 두었습니다. '최근 도서관계의 전자도
서관 도입에 있어서 적용해 볼 만하다' 몇 몇 사람들의 중요한 지적과 현장
의 보고에도 불구하고 이제 우리 도서관계를 지배하는 담론은 전자도서관이
우리 도서관의 새로운 미래를 가져다 줄 것이라는 믿음을 담고 있는 것 같
습니다. 그래서 많은 도서관에서 어떻게 하면 빨리, 그리고 정확하게 전자도
서관을 만들 수 있는가 하는 점에 고심하고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
다. 그러나 한 번만 가만히 생각해 보면 정말 그런가 하는 점에 대해 심각
한 회의를 가질 수 밖에 없습니다. 전자도서관 담론을 지탱해 주는 이론적,
기술적 배경에는 문제가 없을 수도 있습니다. 주로 정보통신 기술과 컴퓨터
공학의 발달, 다양한 기능을 수행할 수 있는 강력한 소프트웨어 등은 이미
어느 정도 수준에 도달해 있다고 생각됩니다. 우리가 전자도서관을 이야기
함에 있어 이런 부분의 발달이 중요한 전제가 되는 것이 사실입니다. 이 점
이 바로 전자도서관을 이야기하는데 있어 가장 취약한 부분이 될 수도 있습
니다. 우린 이러한 과학기술의 발달이 정확하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지 못
합니다. 그리고 실제로 어떤 능력을 발휘하게 될런지도 잘 모릅니다. 막연히
기술자들이 설명하는 것을 듣고 그대로 인정할 수 밖에 없습니다. (물론 우
리 중에서도 그러한 기술적 문제를 스스로 다룰 수 있는 분들이 있으리라고
믿습니다만, 문제는 도서관계 대부분의 수준을 고려할 때, 도서관계는 아직
기술적 문제에서 주도적 위치를 점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따라
서 우리가 전자도서관 문제를 이야기할 때 기본으로 삼고 있는 기술적 전제
가 어떻게 될는지 정확하게 알 수 없는 상황에서 그러한 예측을 기반으로
논의를 전개한다는 것은 다소 위험성이 있습니다. 또 다른 중요한 문제는
우리는 사람을 상대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사람은 과학기술과 달리 예측이
어렵고 또한 변화가 심합니다. 우리가 이용자라는 더 예측이 어려운 대중집
단을 상대로 서비스를 제공하는, 그리고 제공하는 서비스가 물질적인 부분
이 아니라 정신적 부분인 점을 감안한다면, 과연 우리가 추진하고 있는 이
전자도서관이 그러한 인간적 부분을 제대로 고려하고 추진되는가 하는 점에
대해 회의적일 수 밖에 없습니다. 위 인용문에서 좀 더 발전을 해 보면, 전
자도서관은 매우 비용이 많이 드는 작업입니다. 따라서 당연히 비용을 어떻
게 조달하는가 하는 문제가 발생합니다. 현장에서는 바로 이 점에서 실제적
인 문제점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많은 경우 기본장서도 제대로 충당할 수
없는 상황에서 많은 비용을 들여 전자자료를 입수하고 하드웨어를 사들이
고, 기술적인 문제 해결에 인원을 충당하고 있는 상황이 과연 바람직한가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전자도서관 문제는 제 생각이지만 개방성을
전제로 하고 추진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점에서 보면 그동안 도서
관 간의 상호협력이 거의 없던 상황에서 갑작스레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고
개방적인 도서관 시스템으로 변화할 수 있을까 하는 점도 의문시 됩니다.
또한 많은 경우 사서들이 주도적으로 이러한 비용의 문제나 도입과정에서의
기술적, 이론적 문제 해결을 주도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고 이러한 문제는
대체로 도서관이 속한 전체 구조의 역학관계에 따라 결정되다는 점은 누구
나 인정하는 바입니다. 따라서 정말 제대로 전자도서관을 구축하고 이를 우
리의 미래모습으로 상정하고자 한다면 기존의 도서관 상황에서도 사서들이
도서관 운영의 주도권을 쥐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수서에서 부터 열
람에 이르기 까지 일관된 작업과정에서 과연 얼마나 사서들이 주도적인 역
할을 수행하고 있는가, 이용자들과의 만남은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가 등
등의 숱한 문제점들에 대한 조사와 점검, 그리고 정비가 이루어지지 않고서
는 단순히 변형된 자료나 유통방식의 변화를 도입해서 도서관 상황을 개선
할 수는 없습니다. 오히려 이러한 변화의 이면에는 아예 도서관을 새로이
자본주의 체제에 편입시켜 이전에는 누구나 쉽게 구해볼 수 있는 자료들까
지도 비용을 청구하고, 자료나 정보에 가격을 매김으로써 자연스럽게 자본
의 논리에 적합한 자료나 정보들만을 남겨두고 나머지는 사장시켜 버리려는
정치적 의도까지도 예상할 수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새로운 변화를 받아들
임에 있어 주도면밀한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급할수록 더디가라고 하는
말도 있듯이 차분하게, 그리고 이제는 관종과 도서관의 크기, 지역에 상관없
이 서로 협력해서 공동의 문제를 풀어가는 협력의 자세도 또한 필요합니다.
모든 일에 있어 순수함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나는 순수하게 생각하고 좋은
측면으로 생각해서 일을 하더라도 전체적인 구도에서 보면 전혀 의도하지
않은, 그러나 누군가는 의도한 방향으로 끌려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무슨 일을 하고자 한다면 주도권을 쥐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제반 역학
관계를 잘 파악하는 것이 그래서 중요하지요. 그러나 여전히 도서관이 독
자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면 완벽하게 주도권을 쥘 수는 없습니다. 그럴 때
우리에게는 새로운 전술과 전략이 필요합니다. 이 점에 대해서는 또 이런
인용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거짓말은 답변의 <내용>이기 이전에 답변
자의 태도나 성품을 일부 들어낼 수 있는 답변의 <방식>에 대한 문제이기
도 하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302쪽)는 지적을 보면, 역시 대부분은 방식
의 문제라는 생각이 듭니다. 요즘 같은 시절엔 더 그런 것이 아닐까 합니다.
유명한 '이방인'에서 뫼르소는 <태양에 눈이 부셔서> 아랍인을 죽였다고 하
지만 법정의 배심원들은 이 말을 그대로 믿지 않는다는 것을 풀어서 설명하
고 있는 저자가 뫼르소가 '미친 놈'이라는 비난을 면하기 위해 변명을 해야
하는데 그가 하는 변명, 즉 거짓말이란 것도 사실은 그 내용이 문제가 아니
라 하나의 방식의 문제라는 점을 언급하고 있는 것입니다. 왜 이 이야기를
여기서 인용하고 있는 것일까? 우린 혹시 우리가 지금 도달하고자 하는 어
떤 목표점이 사실 정직한 목표점이 아닌 것은 아닌가 하는 점에 대해 정말
솔직한가 하는 점을 생각해 보았으면 합니다. 정말 우리는 우리 도서관의
그 많은 문제점과 우리가 일하면서 느꼈던 그 숱한 회의와 좌절의 감정이
전자도서관이 되면 해결될 수 있다고 믿는 것일까? 정말 그렇게 믿기 때문
에, 마치 확신범처럼 누가 뭐라고 하든 상관하지 않고 나의 갈길을 간다는
심정으로 밤낮없이 그 문제에 매여 있는 것일까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내
게 묻는다면 나는 전자도서관이라는 방식으로는 우리가 당면한 문제들을 해
결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우린 기계를 상대하거나 단순히 책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근거로 이용자라는 특별한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직업
이며 책임이며, 그 사람이라는 대상은 거의 모두 개별화되어 있고, 어느 정
도는 욕심에 근거한 목적의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라서 그들의 관점과
목표점이 뚜렷하고, 따라서 그것에 부합되지 않는다는 것은 어떤 것이든 불
만을 토로할 것이며, 설사 만족한다 하더라도 여전히 중간매개의 역할을 담
당하고 있는 우리 사서들에 대해서는 별반 고마움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 보
편적 현상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전자매체를 통한 소위 사이브라리안
(Cybrarian)으로 존재를 옮겨간다면 우린 더더욱 이용자를 만날 수 있는 공
간이 좁아지고, 또 우리가 개입할 여지가 점점 더 줄어들어, 결국 우리의 존
재가치를 증명할 별다른 지지기반을 만들어 내지 못할 것입니다. 따라서 우
린 이제 거짓말을 해야 할 지도 모릅니다. 또 해야하지요, 우리를 둘러싼 역
학구조, 돈을 대는 사람들, 직접 우리들의 업무를 관장하는 책임을 가졌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내부의 동료들, 다양한 형태로 계층화되어 있고, 개별화
되어있는 이용자들.... 그런 구조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우린 장미빛 그림을
그려 보여야 한다는 것은 어쩌면 생존의 문제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정작
우리에게는 생존의 문제일런지는 몰라도 지금 현재 전자정보사회를 구축해
나가는 주도 세력에게는 이런 우리의 고민이 제대로 이해되지 않아 보입니
다. 그런 점에서 아직 우리의 '거짓말'은 그럴 듯 하게 보이지는 않는가 봅
니다. 하긴 거짓말이 사실이 되려면 정작 말하는 사람이 스스로 그것이 사
실이라고 확신해야 다른 사람도 그 확신을 따라 믿게 되는 것이 아닐까 합
니다. 그럼 우리에게 어떤 식으로든 방식이 잘못된 것은 아닐까 하는 반성
을 해 보아야 하지 않을까요?
낙골 재두루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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