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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리브에 남긴 발자욱

[도서관미래] 허풍떠는 인터넷 중에서

도서관의 통신망화?

전화는 편지 쓰기를 몰아내고, 텔리비젼은 동네 극장의 관객을 감소시켰
다. MTV와 슈퍼스타들은 아마추어 음악가들과 지방 음악가들의 활동영역
을 축소시켰다. 자동차는 도심의 전차시스템을 파괴했다. 고소도로는 철도
의 객차 운행을 감소시켰다. 비행기는 여객선을 밀어냈다. 그러면 광역 통
신망으로부터 가장 큰 위협을 받는 것은 무엇일까?
도서관이다.
통신망 세계의 약속 가운데 하나가 엄청난 양의 정보에 신속하게 접근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인터넷 지지자들은 책없는 도서관 시대가 오면 모든 출
판물을 통신망을 통해 얻게 될 것이라고 한다. 따라서 우리들은 워크스테
이션을 통해 어떠한 문서라도 읽을 수 있으며, 서적들은 전자화되어 배포될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책없는 도서관은 통신망 중독자들, 통신망 초보자 또는 도서관 자
동화를 추진하는 사람들의 환상에 불과하다.
앨 고어는 "우리가 정보고속도로를 갖게 되면 학생들은 궁금할 때마다 매일
오후 의회도서관에 접속하여 해당분야를 넘나들며 지식의 세계를 여행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한다. 그런 꿈은 도서관 서적들이 모두 디지털화
되어 컴퓨터로 검색할 수 있다는 것이 전제되어야 한다.
그것은 현재는 물론 앞으로도 불가능하다.
오늘날 인터넷을 통해 50군데 주요 도서관의 도서목록을 검색할 수 있
다. telnet locis.loc.gov라고 치기만 하면 의회 도서관에 어떤 책들이 있는
지를 알 수 있다. 책을 찾기에 아주 편한 방법이다.
그러나 책은 하나하나 책장을 넘겨가며 훑어봐야 내용을 알 수 있다. 목
록검색으로는 제목,저자, 핵심단어 몇개, 전체 쪽수 정도를 알 수 있을 뿐이
다. 통신망 목록이라는 것은 식당의 차림표와 같아서 겉으로는 솔깃해 보
여도 만족스러운 경우는 별로 없다.

도서관이 통신망화될 수 없다고 생각하는 또다른 이유가 있다. 전자매체는
기록 보관용이 아니기 때문이다.
기술자들은 물론 거기에 동의하지 않을 수도 있다. 시디롬의 수명은 수백
년까지는 안되도 수십년 정도는 된다. 그러나 문제는 물리적인 매체가 아
니라 읽는 방법이다. 어제 백업해놓은 테이프가 백년 후에도 일혀질 수 있
을지 의심할 수 밖에 없다. 오늘날의 정보는 단순한 자기테이프에 새겨진
자기장이나 가느다란 플라스틱 원판 위의 점에 불과한 것이 아니다. 자료
수조는 대단히 중요하다. 거기에 따라 한 파일이 읽혀지거나 오류를 발생
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은 쓰이지 않는 비지캘크(Visicalc)프로그램으
로 작성한 파일을 담은 디스크는 완벽하게 읽혀질 수도 있다. 그러나 오
늘날의 표 계산 프로그램은 그것을 해석하지 못한다. 아미크로소프트사의
최신 워드 프로그램은 버전 1.0으로 작성된 파일도 읽을 수 있다. 그러나
가정용 컴퓨터에 쓰인 최초의 워드 프로세서인 '전기 연필'로 작성된 파일
은 누구도 읽지 못한다.
그렇다면 지금 쓰이는 워드 프로세서나 데이터 베이스 프로그램으로 작성
된 파일이 50년 후에도 읽혀질까? 오늘날 월드 와이드 웹, 모자이크, 링크
스, 그밖의 다른 모든 인터넷 프로그램에서 사용되는 하이퍼택스트 마크
업 언어를 그때에도 이해할 수 있을까?
"그러면 좀더 현대화된 구조로 디지털 정보를 복사해 놓으면 된다"고 말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좋은 해결방법이다. 20년 내지 30년마다 그 엄청난 양
의 자료를 모두 복사하면 되니까. 요는 돈이 문제다.

편의주의 - 인터넷을 움직이는 추진력

통신망 도서관이 성공할 수 없는 이유가 또 있다. 역설적으로 이것은 통
신망 도서관이 번성할 수 있는 이유가 될 수도 있다. 의회도서관의 토마스
만은 그것을 '최소한 노력의 원칙'이라고 한다. 그에 따르면 대부분의 연구
원들은, 심지어 상당한 수준의 학자들도, 저질이라도 보다 쉽게 이용할 수
있는 정보를 선택한다. 연구원들은 일반적으로 좀더 좋은 정보를 찾는 데
더 많은 노력을 쏟기보다는 수월하게 찾을 수 있는 것에 만족한다고 한다.
정보과학의 선구자인 조지 지프는 그것을 좀 다른 방법으로 설명한다. 여
러가지 해결책이 있으며 사람들은 일을 가장 적게 하는 방법을 선택한다
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사람은 게으르다. 정확한 것보다 편리함이 더 중요하게 생각한
다. 어떤 것이든 통신망에 올려놓아 보라. 그러면 연구원들이 그것을 애용
할 것이다. 옳건 그르건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이것은 어떤 면에서 보면 통신망 도서관을, 어쩌면 인터넷 자체를 움직
이는 추진력이기도 하다. 어떤 답변도 안하는 것보다는 낫다는 생각이 널
리 펴져있다. 그것이 틀릴 수도, 불완전할 수도, 심지어 오도할 수도 있지
만 무답보다는 좋다는 것이다. 수많은 책을 힘들여 읽는 대신 파이켄바움
교수의 지식 프로세서로 편하게 일하고 해답도 얻는다.
나는 마술을 믿지 않는다. 훌륭한 예술작품이나 좋은 요리, 훌륭한 가르침,
그밖의 훌륭한 모든 것과 마찬가지로 훌륭한 연구에는 인내심, 창조력, 다
양한 조사, 시간, 노력이 요구된다.
쉽고 따분한 질문에는 단순한 대답만 있을 뿐이다. 태양까지의 거리가 얼
마인가에 대한 해답은, 생각보다 그리 쉽지는 않겠지만, 인터넷에서 찾을 수
있다. 그러나 태양까지의 거리를 어떻게 재는가? 어떤 방법으로 잰 수치
가 정확한가? 그것이 정확한지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이런 질문은 좀더 어
렵다. 시간에 따라 태양과의 거리를 특정한 수치가 어떻게 변해왔는가>
기후는 측정방법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가? 이것은 멋진 질문이다. 그에
대한 명확한 해답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을 것이다.
필요한 정보를 쉽게 얻을 수 있다는 꿈, 모든 정보를 무료로 얻을 수 있
다는 꿈은 영원한 꿈으로 남을 것이다.

나는 자기 연구를 도와달라는 어떤 사람으로부터 급한 전갈을 받은 적이
있다. 그는 응용과학의 사회과학적 의의에 관한 석사학위 논문을 준비중이
다. 학기는 다 끝나가고 논문제출 기간은 임박해 있었다. 당연히 나는 그에
게 도서관을 가르켰다. 거기에는 그 주제에 관한 책이 수없이 많이 있다.
그러나 그가 기대했던 대답은 그게 아니었다. "저는 지금 급합니다." 그가
말했다. "다음 주에 지도교수님을 만나기로 되어 있는데, 그 자리에서 상당
한 진전이 있었다는 것을 보여드려야 해요." 그렇다면 더욱 도서관으로가야
했다. 그러나 그는 더 빠른 것을 원했다. "인터넷에서 정보를 얻게 해주실
수 있으세요?" 물론, 할 수 있다. 그러나 큰 도움은 못될 것이다. 나는 그
에게 베로니카를 권하며 키워드 검색방법을 가르쳐주었다. 대부분의 통신
망 서버가 만원이었다. 몇번을 반복하다가 기다렸다. 기다리면서 나는 그
에게 최근 몇년간의 정보만 검색할 수 있다고 일러주었다. "괜찮아요" 그가
대답했다. "저는 최근 논문만 필요해요. 오래된 자료는 중요하지 않아요."
이 친구는 통신망에 올라와 있지 않는 그 어떤 것도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
하고 있었다. 하루는 고사하고 당장 몇분 안에 자료를 구하지 못하면 만사
가 허탕인데도 통신망만 고집하고 있는 것이다.
그가 무엇을 반견하든 실제로는 그다지 가치가 없을 수도 있다는 말을 어떻
게 해야 할까? 찾았다는 것이 고작 몇권의 책과 논문에 대한 간단한 언급
뿐일지도 모른다. 거기에 없는 것이 무엇인가. 사실상 모든 것은 인쇄되어
있다. 아무 생각없이 컴퓨터 앞으로 감으로써 그는 자기 시야를 엄청나게
좁혀놓았다. 그의 연구는 아주 피상적일 것이다. 아니, 아예 없다고 할 수
도 있다.
자료를 우연히 발견하는 능력, 이것은 연구에 있어서 중요한 부분이다. 서가
에 가서 직접 뒤져보라. 원하는 책에 거의 가까운 것을 찾을지도 모른다.
서가에서 다른 정보를 일러주는 참고문헌목록이 있는 책을 발견할 좋은
기회가 있다. 이것은 우연히 생기는 기회가 아니다. 도서관은 이런 즐거운
발견을 부추기기 위해서 세워졌기 때문이다.

정보는 지식도 지혜도 아니다.

50톤의 시멘트가 고층 건물이 아니듯 데이터가 정보는 아니다. 일련의 비
트가 두 국가간 조약의 초안을 나타낼 수도, 록 비디오의 한 장면일 수도,
파이를 1,000자리까지 계산한 것일 수도, 아니면 소음일 수도 있다. 데이터
는 단지 비트와 바이트일 뿐이다...... 이것은 콘크리트없는 모래알갱이에
지나지 않는다. 정보는 유용성을 가지고 있고 의미가 있어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정보가 지식이 아니라는 점이다. 내 컴퓨터는 스위스
분자생물학 보관소에 연결될 수 있다. 그러나 나는 아직 DNA복제에 대해
서는 문외한이다. 모든 사람들이 뉴욕 증권거래소 주가 정보시스템에 연
결되어 있다해도 내일 어떻게 될지 누가 예측을 할 수 있겠는가? 목성의
최근 사진을 갖고 있다해서 행성의 대기권까지 이해할 수는 없다.
데이터,정보,지식,이해, 그리고 지혜들은 서로 관계가 있다.
통신망은 데이터로 가득차 있다. 그 중에 약간의 정보도 있다. 그 가운데 아
주 미세한 양만이 지식이다. 여기에 사고를 곁들이면 이들 중 일부를 실
제로 이용할 수 있다. 경험, 전후상황, 열정, 훈련, 유머감각, 인내, 인간미,
그리고 지식을 잘 섞으면 비로소 지혜가 된다.
두뇌는 정보가 아니라 아이디어로 생각한다. 어떤 데이터, 대역폭 또는 처리
능력도 영감에 이끌린 사고를 대신할 수 없다.
우리는 컴퓨터와 통신이론에 홀려 경험이 비트와 바이트에 무참히 파괴될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해야 한다. 가장 중요한 정보를 갖는 사람들이 가장
막강한 힘을 갖게 된다는 것은 망상이다. 거대한 디지털 쓰레기 처리장인
인터넷은 권력도, 번영도, 통찰력도 제공하지 못한다.

출처 : 클리포드 스톨이 지은 <허풍떠는 인터넷> (한경훈 옮김, 세종서
적)에서 주요한 부분을 옮긴 '녹색평론'제28호 (1996.5-6월호) 51-56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