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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대로

김현승 '이상'

김현승 '이상'




지난 해 12/26 책읽는사회만들기국민운동이 만든 시 낭송 자리에서 이 시를 읽었다. 오래 전부터 머릿 속에 단 한 구절이 맴돌았다. "오르는 산은 오르지 않는 산보다 언제나 높다"라는... 시낭송에서 읽을 시를 고를 때 이 구절이 떠 올랐고, 그래서 인터넷에서 검색을 해 봤더니 어렵지 않게 다시 원래 시를 찾을 수 있었다. 시제가 '이상'이었구나.. 난 그걸 왜 '절대고득'으로 기억했다. 그 시도 역시 김현승 시인께서 쓰신 것인데.. 기억은 이렇게 오락가락 제 멋대로다. 아무튼 자주 머릿 속에서만 맴돌던 시를 다시 찾았는데.. 아이쿠, 단 한 구절 기억하고 있는 구절도 틀렸다. 왜 나는 오르는 산은 오르지 않는 산보다 '더 높다'를 '언제나 높다'라고 기억하고 있었을까? 아마도 내가 삶을 살아가면서 스스로에게 어떤 한계를 설정해 두고 있는 건 아니었을까? 아니 어쩌면 절대적인 핑계를 만들었던 것은 아닐까? 그냥 내가 오르는 산은 오르지 않는 산보다 높다고 느껴질 수 있는 것을 '언제나 높다'고 함으로써 내 삶은 늘 다른 사람이 살고 있는 삶보다 힘들다는 핑계를 구한 것은 아니었을까?... 좀 더 편안하게 객관적일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는 나이가 된 것일까? 이젠 '언제나 높다'보다 그냥 '더 높다'라는 시어를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다.. 참, 왜 시를 읽으며 한 해를 보내는 시간에 나는 이 시를 읽어야겠다고 생각했지? 아마도 다시 또 산을 오르듯 하루하루를 살아야 할 시대가 되어서일까? 그동안 슬슬 산을 내려오고 있었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산을 오르듯 살아야 한다면.. 그 산은 또 오르지 않는 산보다 높을 것이기에, 그럴 것 같아서 걱정이 되었기 때문일까... 참, 시를 읽을 때 양희은 씨의 '한계령'을 틀었다. 둘은 어울렸을까? 내 시 낭송을 듣었던 분들에게는 이 시와 음악, 그리고 내 목소리에 담긴 내 마음이 제대로 전달되었을까?... (어릴 적 시를 낭송하면 은쟁반에 옥구슬 굴러가는 것 같다는 평을 받았었는데.. 내가 봐도 요즘은 그냥 나무바닥에 돌멩이 굴러가는 소리 같다.. 에그...)




理想 

                                   김현승 


오르는 산은 

오르지 않는 산보다 더 높다. 

하늘의 순결한 눈으로 덮이고 

구름으로 머얼리 浪漫을 두르면서…… 


天使들은 어리석은 우리를 위하여 

언제나 그곳에 살아 날고, 

낮은 흙에서는 더욱 아름답게 드높은 

太陽이 뜨는 곳—그 위에 머리를 둔 

빛나는 산 위의 산. 


그 높이로 우리의 名譽를 재고 

그 아득함으로 우리에게 쉼을 주지 않으면서, 


푸른 하늘에 깊이 심은 

영원의 뿌리—그 뿌리에서 

생명의 강줄기가 뻗고 

슬픔과 기쁨의 작은 시내들이 흘러간다. 


그 시내와 시내의 가지 사이에 

마을들이 모여 

사랑을 나누고 뜻을 같이하되, 

티끌과 안개 속에 빠지지 않고 

구름에 빠진 詩人들을 부르지 않는다. 


한 손발의 피는 

심장으로 모이고 

또 심장에서 퍼져나가듯, 

한 時代의 높은 산마루도 

하늘에서 땅으로 물구나무 서지 않는다! 


오르지 않는 산은 

오르는 산보다도 가파롭지 않은 것, 

그러나 물 없는 저 산에 

노를 저어 오르는 이만이, 

더 높은 눈으로 더 높은 산을 

산 위에 바라볼 것이다.



1970년 10월 <시문학> 

김현승, <마지막 지상에서>, 창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