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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리브에 남긴 발자욱

[문학] 꽁트 - 아내의 미소

[문학] 꽁트 - 아내의 미소

<꽁트> 아내의 미소

구보씨는 피곤하지만 컴퓨터 앞에 앉았다. 며칠전부터 아내에게 컴퓨터
통신을 통해 필요한 자료를 구해 주겠다고 큰소리 친 것을 오늘은 해
주어야 했기 때문이다. 저녁을 먹으면서 아내는 장담을 하고도 며칠이
지나도록 해 주지 않는 구보씨를 빈정댔다.

"컴퓨터에 모뎀만 달아주면 뭐든지 척척 해 준다고 하더니 별거 아
닌가봐요, 며칠이 지나도 손에 들어오는 것이 없는걸 보면... 괜히 돈
만 들인거 아니예요?"

모뎀을 사기 위해 아내에게 온갖 꿈같은 소리를 한 것은 사실이다. 그
래서 결국 10만원도 더 들여 고속모뎀을 척 달았다. 첫날 겨우겨우 하
이텔에 접속일 해서 키만 누르면 척 하니 정보들이 나오는 화면을 보여
주며 자랑을 했다. 일단 2400bps에 비하면 정말 꿈같은 속도다. 내심
쾌재를 부르면서 이제 통신을 자주해야지, 속도가 빨라졌으니 그만큼 요금도
적게 나오갰지... 그러나 접속은 쉽지 않았고 또 바쁜 일들로 컴퓨터 앞에는
앉지도 못했다. 아내가 보고서 내야 하는 날이 가가와 오자 드디어 구
보씨에게 결과를 요구하기 시작했다. 더 이상 지체할 수 없게 된 구보
씨가 드디어 큰 마음먹고 저녁을 먹자 마자 컴퓨터를 켜고 통신을 시도
한 것이다. 문제는 거기서부터 시작되었다. 전화기가 먹통인 것이다.

"여보, 왜 우리 전화기가 먹통이지?"
"글쎄요, 전화줄 다시 한번 잘 보세요."

평소에 연결한 전화선이 잘 풀어진 까닭에 이번에도 그려러니 하고 전
화선을 점검했지만 이상이 없었다. 그래도 몇번을 시도해도 접속을 할
수가 없었다. 하는 수 없이 복잡한 방에서 컴퓨터를 꺼내 이리저리 만
져보고 연결된 전화선을 다시 이어도 보고 해도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혹시나 해서 안방에 있는 전화기를 들어보니, 아니 그 전화기도 먹통인
것이다.

"이 전화도 먹통이잖아? 뭐가 잘못된 거지?"
"그럴리가 없는데요,.... 정말 전화가 안되네, 어찌된 일은��박혀있는 �BR>О瘙湄掠沮�다 뜯어
보았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전화는 무심하게도 이어지지 않았다.
전화국에 확인을 해 볼 염두도 못내고 씩씩거리며 흘러내리는 땀을 닦
아내면서 한숨만 쉴 수 밖에 없었다. 전화가 되지 않으니까 갑작스레
외딴 섬에 온 기분까지 들었다. 그래도 아내가 위로를 해 주었다.

"여보, 무슨 문제가 있는거겠지요. 더운데 그만하고 잡시다. 아직
시간이 있으니까 자료는 나중에 찾아 주시구요. 가서 샤워나 하세요."

구보씨는 샤워를 하면서도 내내 왜 전화가 안되고 있는 것일까를 생각
하면서 통신을 할 수 없는 것이 못내 아쉬었다.

다음날. 출근하자 마자 전화국에 전화를 했다. 고장신고전화를 해서는
왜 전화가 되지 않는 것인지를 물었다. 잠시 후 전화국 직원이 이유를
말해주었다.

"그 전화는 2달 전화료를 내지 않아서 끊어진 것입니다"

전화료를 내지 않았다고? 아니 전화료는 은행구좌에서 매달 자동으로
나가도록 했는데, 그리고 지난달치도 냈는데 전화료를 내지 않아서 끊
어진 것이라니? 구보씨는 좀 황당했다. 전화를 끊고 은행통장을 꺼내
확인을 했다. 확인을 해 보니 정말지난 5월과 6월 두달 전화료가 빠져
나간 흔적이 없었다. 그때서야 구보씨는 사태를 눈치챘다. 지난 4월에
전화요금 자동이체 은행을 바꾸었던 것이다. 그동안 A은행을 통해 내던
것을 사정상 B은행으로 옮겼는데 두달동안은 이전 A은행에서 계속 빠져
나간다는 것을 잊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고서는 B은행에서 자연히 빠져
나가리라 믿고는 아무런 의심도 해 보지 않았던 것이다. 아내가 전화를
했기에 그런 사정을 이야기 했더니 아내도 그럴리가 없다고 하면서 그
동안 전화국 보내온 통지서를 확인해 보겠다고 했다. 잠시 후 전화가
다시 왔다.

"여보, 전화국 말이 맞네요. 영수증 칸에 보니까 영수요금란에 *표
만 있는데요. 그러고 보니 돈을 내지 않은 것이 맞는가 봐요. 어쩌죠?"

구보씨는 하는 수 없이 다시 전화국에 전화를 해서 얼마나 내, 너무 걱정마
세요. 보고서 내는 날짜가 뒤로 늦추어졌으니까
아직도 시간 많아요. 천천히 해 주셔도 돼요. 그러니까 마음 푹 놓으세
요. 이제 전화도 다시 됐으니까 됐지요, 뭘."

아내가 푸짐한 밥상을 차린 것은 그제 밤 땀 흘리며 쩔쩔매는 구보씨가
불쌍해 보였다고 한다. 그래서 오늘은 전화가 다시 통하는 기념으로 술
까지 한잔 곁들인 저녁을 먹게 된 것이다. 저녁을 다 먹고난 구보씨,
약간은 취한 김에 기분좋게 전화기를 들었다.

"어머니 저 둘쨉니다. 별일 없으시죠? 왠 일이냐구요? 아니 그냥 전
화드린 겁니다. 저희는 잘 지내고 있습니다. 그곳은 어떠세요? 무척 더
우시지요? 아버지도 평안하시구요? ......."

"장모님이세요? 저 이서방입니다. 그동안 별고 없으셨지요? 예. 저
흰 잘 지냅니다. 처남들도 잘 지내지요? 가까이 있는데도 자주 찾아뵙
지 못해 죄송합니다. 전화란게 뭔지 이렇게 전화로만 안부를 여쭙는 것
을 용서씨는 컴퓨터를 켜고 하이텔에 접속을 했다.
그리고는 아내가 필요하다는 자료들을 찾아 다운을 받아 프린트를 해서
는 아직 버리지 않은 생일케익 쌌던 끈으로 묶어 사랑한다는 말을 적은
편지와 함께 아내의 머리맡에 두고 출근을 했다. 이용자들이 많이 찾아
와 바쁘게 일하던 구보씨는 전화가 왔다는 소리에 수화기를 들었다.

"여보 고마워요, 당신 덕분에 보고서 잘 쓰고 있어요. 저도 사랑해
요."

구보씨는 옆에 사람들이 없었다면 "나도 사랑해요" 라고 큰소리 치고
싶었다. 오후 사람들이 뜸한 시간 구보씨는 직원휴게실에 있는 전화기
로 달려가서는 집으로 전화를 했다. 아직 아내가 돌아올 시간은 아니
다. 자동응답기가 대답을 한다.

"여기는 김설향과 이구보가 함께 사는 집입니다. 지금 둘다 외출 중
입니다. 남기실 말씀이...."

삐 소리가 나고나서 구보씨는 혼자 주절주절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여보, 나예요. 나도 고마워요. 잘 참아주는 당신이 언제나 가 잘 안나와
서 말로 표현하지 못했소,
이제는 잘 할테니까, 전화요금 안 빼먹고 잘 내고, ........"

구보씨가 좋아하는 해물탕 거리를 사가지고 퇴근해 들어온 아내는 자동
응답기에 녹음되어 있는 구보씨의 목소리를 들었다.

"여보, 나예요. 나도 고마워요. 잘 참아주는 당신이 언제나 고마우
면서도 마주 ......."

저녁노을이 비집고 들어서는 방안에는 아내의 행복한 미소가 가득했다.
<끝>

이용훈 (blackm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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