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사 끝부분에 답사를 하시는 이용남 교수님)
9월 27일 토요일 오후4시, 우리나라 도서관계에서 현장과 강단을 아우르며 도서관 발전을 위해 헌신해 오신 이용남 교수님께 정년기념문집을 봉헌하는 귀한 행사가 한성대학교에서 열렸다. 마을문고 운동에 헌신하시다가 1982년인가 한성대학교로 자리를 옮기신 이후에도 여전히 현장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놓지 않으셨다. 현장 뿐 아니라 도서관과 관련된 일이라면 늘 함께 해 주셨다. 내가 난곡에서 후배들이 도서관을 하나 만들고 운영하는 일에 도움을 주십사 부탁드렸을 때에도 흔쾌히 애정을 나누어 주셨다. 그런데 이제 시간이 흘러 정년으로 학교를 떠나시게 되었으니, 세월이 무심하다. 아직도 우리는 할 일이 많고, 그만큼 교수님의 가르침과 손길이 절실한데 말이다. 역사는 선배와 후배가 이어달리는 것이라고 했는데, 이제 누가 교수님이 걸어오신 길을 이어달릴 것인지.. 좀 막막하다. 내가 이용남 교수님께서 정년을 하시면서 후학들이 기념문집을 준비한다고 해서 고마운 마음으로 얼른 내 심정을 쓴 글을 보내드렸더니 오늘 예쁜 책으로 만들어 주셨다. 다른 분들의 글들을 보니, 에구, 이거 참.. 아무튼 개인적으로야 너무 영광이다. 그러나 한 편으로 이제 정말 정년을 하셨다는 것이 실감나면서 너무 아쉽다. 물론 앞으로도 도서관 현장에 대한 애틋한 마음이야 놓지 않으실 것이고, 어찌 생각해 보면 이제 온전히 교수님 손길이 필요한 현장에서 더 자주 뵐 수 있겠다 싶으니, 이제는 더 열심히 부탁드리고 때로는 귀찮게 해 드려야겠다고 마음 먹어본다. 한편으로 우리 도서관계에서 1세대 또는 1.5세대 선배들께서 속속 현장을 떠나시는데, 우리는 그분들의 삶을 제대로 정리하지 못한 채, 역사와 정신에 있어 빈 곳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이건 아니다. 역사와 정신이 없는 현장이나 학문이 어디 있는가.. 이용남 교수님이 걸어오신 그 귀한 삶의 역사를 어찌 한 권의 책으로 다 담을 수 있겠는가.. 근래 나는 우리 도서관 분야에서도 역사 구술을 해서라도 선배들이 겪은 우리의 역사를 기록해 둘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아직 한 발자욱도 앞으로 나가지 못했는데, 오늘 그 마음이 더욱 아득해졌다. 언제 할 수 있을까? (내가 기념문집을 위해 쓴 글을 아래 따로 올려두었다.)
정년은 끝이 아니라 축구로 치면 후반전을 시작하는 것이라는 한성대 총장님께서 말씀하셨는데, 맞다고 생각한다.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이용남 교수님의 활약을 기대한다. 그러나 혹시 이후의 세월을 교수님이 하고 싶은 일을 하신다고 해도, 그래서 도서관 현장에서 좀 멀리 계신다 해도.. 지금까지 보여주신 애정과 헌신만으로도 교수님은 내게 영원히 '오래된 미래'이시다. 늘 평안하시기를 기원한다. 계영배를 드렸다. 늘 그렇게 겸손하게 살아오셨다고 생각한다. 술도 참 좋아하셨는데, 이제는 교수님 당신을 위해 남은 잔을 채워 가시면서 행복하시기를 바란다. 고맙습니다.
(현수막과 행사 순서...)
학부 제자들이 정년을 축하드리는 축가를 부르는 것을 바라보고 계시는 이용남 교수님.. 느낌이 어떠셨을까?
제자들은 마지막으로 '스승의 은혜'를 불렀다.. 목이 메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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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계의 ‘오래된 미래’, 이용남 교수님
이용훈(한국도서관협회 사업진흥부장)
『오래된 미래』라는 책을 만난 후부터 미래는 앞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이미 우리가 살아온 시간 속, 아니면 적어도 지금 이 순간 우리 곁에 있다는 것을 거듭 확인하고 있다. 또한 미래는 반드시 ‘풍요’롭거나 ‘편리’해지는 것이 아니라 사람끼리의 이해와 배려, 신뢰를 더욱 굳게 하는 것이며, ‘내’가 아니라 ‘우리’가 함께 잘 살아가는 방법을 실천하면서 정말 그렇게 사는 것, 어쩌면 가진 것들을 내려놓으면서 편하게 쓸쓸한 인생의 마지막을 향해 담담하게 걸어가는 것이라고 믿게 되었다. 그렇게 생각하고나니 세상 속에서 이미 우리에게 나타난 미래를 찾아보는 버릇(?)아닌 버릇이 생겼다.
내 삶의 터전인 도서관 분야에서는 어떤 미래가 있는 것일까? 물론 미래는 모두가 함께 만들어 가는 것이기도 하겠지만, 우리의 역사 속에서 이미 내재된 것일 수도 있다고 한다면, 나는 단연코 이용남 교수님의 삶의 여정에서 그 미래를 발견할 수 있다고 확신한다. 이 교수님이 걸어오신 세월은 개인이 아니라 한국 도서관계 모두가 함께 걸어온 또는 함께 걸었어야 한 길이었다고 믿기 때문이다.
도서관 사람이라면 도서관이 이 세상 속에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또 도서관 사람으로서 어떤 철학과 신념을 가지고 자신의 역할을 충실하게 수행하면서 개인은 물론 도서관계 전체의 영역을 사회적으로 확장해 왔어야 한다. 물론 각자의 생각에 따라, 배움이나 경험에 따라 수준과 범위, 방법론에서 차이가 있을 수 있겠지만, 의사들에게 히포크라스선서가 있는 것처럼 우리에게도 최소한 ‘랑가가단의 도서관 5법칙’이나 ‘도서관인윤리선언’ 등과 같은 공통의 철학과 신념, 가치가 있다. 따라서 거기에서 출발했다면 결국 같은 목적과 목표를 가진 것이고, 도달하는 곳도 같을 것이라 믿고 있다. 그런 관점에서 볼 때는 이용남 교수님은 우리의 기본 철학과 신념과 가치체계에 가장 가까운 삶을 살고 계신다고 믿는다. 도서관, 특히 가장 핵심적 영역인 공공도서관 분야에서 일생 동안 이론은 물론 구체적 실천의 장에서 한 번도 비켜서 계신 적이 없다는 점에서 지금 우리나라 도서관이 발전한 동력의 상당부분을 감당해 오셨다고 생각한다. 도서관계가 직면했던 발전 또는 위기의 장면마다 빠짐없이 이 교수님이 계셨다. 그것만으로도 나는 이용남 교수님을 존경하고, 또 내 삶의 남은 여정의 표상으로 삼고 있다.
내가 기억하는 이용남 교수님은 늘 도서관 현장과 함께 하는 분이다. 물론 마을문고에서 오래 일하신 적이 있으시니까 그럴 수도 있겠다 싶지만, 그 후 교수생활을 하면서도 늘 도서관 현장을 떠나지 않기는 결코 쉽지 않은 일일텐데, 난 교수님을 강단이나 학계에서보다는 늘 현장에서 더 많이 만나 뵈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일 중 하나는 1980년대 말 서울에서 낙후된 동네 중 하나였던 난곡에 조그마한 도서관을 하나 만들 때 후원금을 모금하는 일을 할 때였는데, 그 때 도와주십사 말씀드리자 흔쾌하게 힘을 보태 주시고 격려해 주셨다. 당시 문헌정보학을 공부한 사서들이 사람들의 삶 속에 살아 숨쉬는 도서관을 하나 만들고자 했는데, 그런 작은 일에도 관심과 애정을 보여주시고, 직접 그 현장을 찾아 격려해 주시던 모습에서 큰 용기를 얻었던 기억이 새롭다. 그때 문을 연 난곡주민도서실은 지금도 그 지역에서 든든한 도서관으로 활동하고 있다. 내가 한국도서관협회에서 일을 시작한 지 얼마 안된 1990년대 말부터 시작된 공공도서관 평가 활동에 참여했었는데, 그 때에도 이 교수님은 이론적 뒷받침은 물론 도서관 평가 과정 전반에서 큰 도움을 주셨다. 그 이후 도서관 평가를 통해 우리나라 도서관 발전 과정에서 이 교수님의 기여는 너무 크다.
도서관 현장 뿐 아니라 내가 일하고 있는 한국도서관협회 일에도 많은 도움을 주셨다. 협회가 무엇을 고민하든 이 교수님은 그 고민에 좋은 대답을 가지고 계시는 듯 했다. 협회의 친구가 되어 같이 고민하고 같이 웃고 행복해 하고, 문제를 풀어가는데 함께 해 주셨다. 입장과 방안의 충돌이 있으면 어려운 중재자 역할도 마다하지 않으셨다. 또 일의 성취에 따른 공과에 있어서는 늘 다른 사람에게 공을 돌리는 모습에서 정말 이 땅의 도서관을 위해 태어나신 분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 교수님의 모습에서 때로 분노하고, 좌절하고, 공과에 흔들리던 나 자신을 반성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내가 이용남 교수님과 함께 동시대를 살았다는 것은 무한한 영광이다. 우리의 스승이자 동지이자, 친구이고 중재자이셨던 교수님께서 정년퇴임을 하신 후에도 지금까지처럼 우리 곁에 계시면 좋겠다. 그러나 언제까지 그럴 수 있을까 생각하면 너무 아쉽고, 또 걱정도 된다. 교수님께서 무슨 대책이 있으실지 궁금하다. 정년퇴임하신다고 우리를 버려두시지는 않으시겠지.
그러나 회자정리(會者定離)라, 어쩌면 이제 떠나시는 교수님께서 이제 그동안의 짐을 내려놓으시고 평안한 이후 일상을 즐기시도록 해드리는 것이 후배의 도리가 아닐까 싶다. 나는 교수님께서 이제 번잡한 일상을 떠나시면 그동안 살아오신 격동의 우리나라 도서관 역사를 정리해 주시면 좋겠다. 지금까지 많은 선배들이 도서관 현장을 떠나셨지만 우리는 떠나는 선배들의 삶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거나 기리지 못한 것은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이렇게 한 번 짧은 아쉬움의 글을 남기는 것으로가 아니라, 선배의 삶 전체를 우리가 이어받기 위해 교수님께서 새로운 일을 해 주시기를 감히 부탁드리고 싶다. 역사는 선배와 후배의 이어달리기라고 한다. 그래서 이번에도 염치없게 떠나시는 이 교수님께 교수님의 삶을 이어달릴 우리 후배들에게 귀한 바통을 넘겨주시기를 부탁드린다.
끝으로 내가 자주 교수님 성함을 이용한 것을 고백한다. “도서관계 4대 거물이 있다. 첫 번째 거물은 이용남 교수님, 두 번째는 이용훈, 세 번째는 이**, 그리고 네 번째는 이용자다.” 내가 감히 교수님 다음의 거물노릇을 한 죄에 대한 벌은 앞으로 계속해서 갚아갈 것이다. 그러나 정말 교수님처럼 되고 싶었다는 사실만큼은 이제 밝혀두어도 되겠지. 그런데 어째 교수님이 퇴임하시는데 내가 더 마음이 혼란한 것은 왜일까? 혹시 내가 ‘오래된 미래’를 잃어버리는 것은 아닐까 걱정이 되어서일까?
그래도 떠나시는 교수님께 존경과 축하의 말씀을 드린다. 교수님은 저의 첫 번째 ‘거물’이십니다. 저와 우리나라 도서관계의 ‘오래된 미래’로 영원히 남아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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