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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대로

김수영 시인의 `풀`을 읽다, 오늘은 10월 26일이다.

풀이 눕는다.
비를 몰아오는 동풍에 나부껴
풀은 눕고
드디어 울었다.
날이 흐려서 더 울다가
다시 누웠다.

풀이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


날이 흐리고 풀이 눕는다.
발목까지
발밑까지 눕는다.
바람보다 늦게 누워도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고
바람보다 늦게 울어도
바람보다 먼저 웃는다.
날이 흐리고 풀뿌리가 눕는다.

김수영 시인의 시 '풀'. 1968년 <창작과비평>에 유고시로 실린 것인데, 그 이후 끈질긴 민중들의 생명력을 말하는 시로 자주 읽혀지고 있다. 오늘은 특별하게 이 시가 떠 올랐다. 어제는 날이 무척 흐렸는데, 오늘 10월 26일 아침엔 너무도 맑은 가을날씨다. 거친 비바람의 시간을 견디어 온 풀들에게 오늘은 화사한 하루이다. 물론 또 언제 세찬 바람이 불지, 거센 비가 내릴지, 묵직한 눈이 들판을 덮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런 날이 와도 풀은 또 먼저 눕는다. 그러나 또 비바람, 눈발이 지나고 나면 따사로운 태양과 함께 먼저 맑음을 즐기고 노래할 것이다. 어느 책에서 본 것인데, "강해서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살아남아서 강하다." 정말 그렇다고 생각한다. 역사는 강한 사람을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끈질기게 살아 남은 사람들을 기억하기 시작했다. 이제 누구나 자기의 이야기를 기록할 수 있고, 자기의 생각을 말하고 동의를 구할 수 있고, 또 세상 거대한 흐름에 당당하게 참여할 수도 있다. 그래서 세상을 바꿀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젠 누구나 풀처럼 질긴 생명력의 놀라움이 자신에게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오늘은 10.26이다. 거의 30년 전 우리는 거센 비바람이 부는 시대를 살았다. 그래서 김수영 시인은 풀을 이야기했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그런 시인의 격려를 버팀삼아 그 시대를 살아가고 있었다. 그런데 10.26이 시대의 흐름에 거대한 반전을 가져왔다. 물론 그 이후 세상이 또 제대로 간 것은 아니었지만,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풀처럼 먼저 누웠다가도 먼저 일어나, 당당하게 세상에 웃음을 던졌다. 그런 생명력에 고마움 마음 금할 길 없다. 지금이 잠시의 따스한 아침일지 몰라도, 조금 후에 어떤 비바람이 불지 몰라도, 지금 이 따사로움을 즐기면 좋겠다.

그런데 오늘 엠파스에서 '10.26'으로 검색을 해보니까 10.26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발견되지 않는다. 최신뉴스에서 그 사건은 우선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왜 그럴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