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좀 바쁘고, 몸도 피곤할 때에는 무거운 책을 읽기가 어렵다. 그래서 무겁지 않으면서도 마음에 생각의 여백을 줄 수 있는 책을 찾게 된다. 그럴 때 예술 분야 책들이 도움이 된다. 요즘에는 사진책을 많이 보게 된다. 요 며칠 강운구 작가의 '自然記行'이란 책을 읽었다. 워낙 좋은 사진들을 찍는 작가는 글도 사진처럼 매력적이다. 사진과 글은 때로는 멀리 떨어진 것처럼 느껴지다가도, 글이 사진이 되고, 사진이 글이 되고, 어떤 장면에서는 사진과 글이 한데 어울려 흘러가는 듯 하다. 책에 담긴 꽃들은 여전히 피어 그 자태를 뽐낸다. 쉽게 포착하기 어려운 아름다움을 사진은 보여주고 있다. 그래서 이 사진을 보지 않았다면 내가 이 꽃들을 제대로 볼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해 본다. 특히 우리 산천에서 뿌리를 내리고 살고 있는 우리 꽃들과 다른 곳에서 왔지만 여기서 나름대로 살아가려고 애쓰고 있는 꽃들을 애정으로 바라보고, 그 느낌을 짧지만 강렬한 글로 표현하고 있다. 책을 덮어도 꽃과 산천이 자꾸 손을 잡아 끈다. 읽었어도 다 읽은 것이 아니다.
나는 개인적으로 할미꽃을 좋아한다. 그런데 그 꽃을 집에서는 살릴 수가 없었다. 몇 번 시도했지만, 그 친구는 도시 아파트 베란다에서는 생을 이어갈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래서 포기했다. 이 책에서 사진으로나마 그 멋진 모습을 보니 또 마음이 두근거린다. 그런데 할미꽃을 설명한 강운구 작가의 글 첫머리는 꽃보다 더 강하다. "봄은 마치 문민정부 들어선 뒤의 도심 같다. 억눌려 있던 목소리들이 한꺼번에 시위대의 외침으로 터지듯이 온갖 꽃들이 갖가지 빛깔로 터지며 빛을 내붐는다.아니, 그런 게 아니라 시위가 봄꽃을 닮았을 것이다. 추위에 억눌려서 움츠렸던 식물들이 또 다시 추위가 오기 전에 씨를 맺으려고 한꺼번에 서두르고 한꺼번에 꽃피운다." "할미꽃, 새봄에 갓 피었으나 나이 든 이름을 가진 그 꽃은 조숙한 천재와 같다. 다른 꽃들이 아직 꿈에 잠겨 있을 때 할미꽃은 이미 백발을 날리며 세상에 초연한 듯이 서 있다." "할미꽃은 그러다 다 여문 뒤에는 더는 겸손해할 필요가 없다는 듯이 꼿꼿하게 머리를 들고 백발을 휘날린다. 그것은 조금이라도 더 바람을 자아 조금이라도 더 멀리 씨앗을 날려 보내려는 거룩한 본능 때문이다." 할미꽃, 보고 싶다...
강운구 글/사진, 까치, 2008년 7월. 15000원. 287쪽. ISBN-13 : 9788972914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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