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다닐 때 미술시간이 즐거웠던가? 글쎄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래도 중학교 때에는 좀 그림을 그릴 줄 알았던 것 같다. 그 때 내 작품(?)을 지금 볼 수는 없으니 순전히 내 편의적 기억에 의존하면 학교에서 나름대로 꽤 그림을 그릴 줄 아는 학생이 아니었을까 한다. 믿거나 말거나.. 고등학교에 가서도 1학년 때에는 미술반에 들어갔었다. 이 기억은 좀 더 확실하다. 그러나 당시 고등학교는 병영과 같이 선후배가 확실하고 뭔가 검은 교복 뒤에서 미술이라는 놈이 숨어 있는 것도 같으면서도 영 그 얼굴을 보기 어려웠다. 지도해 주시는 분이 그림을 그리는 것을 지켜 보는 것으로 아마도 길지 않은 미술반 생활을 마쳤던 것 같다. 물론 당시로서는 그림 그리는데 돈이 좀 필요하기도 했고.. 결정적으로는 그림이 아니라 전통과 학년에 중시되는 분위기를 좋아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래서 문학반으로 옮겼고, 물론 문학반이라고 해서 뭐 더 나은 것은 없었으나 그래도 뭔가 가을이 되면 학교 축제 때 여학생들 앞에서 폼을 잡을 수도 있고(지나고 보니 미술반에서도 그럴 수 있지 않았을까? 아무튼..)... 그렇게 학교 시절 미술과의 단편적 관계를 기억해 볼 수 있다. 그러고 보니 미술교과서 이야기를 하고자 했었는데.. 지금 그때 미술교과서가 있으면 다시 펼쳐보겠지만, 그렇지는 못하겠지만, 아무튼 갱지같은 종이에 어렵게 만든 것이었으리라.. 지금은 그래도 사정이 많이 좋아졌다고 생각한다. 그러나미술이 '교과서'의 틀 안에 갇혀 있는 것은 여전한 것 같다. 그런데 이번에 문화연대에서 대안의 미술교과서를 새롭게 만들어 냈다는 소식을 접했다. 내일(11/1) 출판기념회를 한다고 한다. 아직 책을 보지 못했으니 기대한다. 어제인가 역사교과서 개정 문제가 우리사회의 거친 역사의식을 그대로 들어내면서 큰 생채기를 냈는데, 미술 교과서 부문에서는 어떻지? 미술은 도대체 학교에서 어떻게 배워야 하는 것일까? 그림은 도 대체 살아가는데 있어 뭐냐.. 도시는 온통 제멋대로 서로에 대한 최소한의 배려도 없이 자기가 하고 싶은 것만을 거칠게 드러내고 있는 상황에서 학교 안에서의 미술 교육, 그리고 그 교육의 이념과 내용을 담아내는 교과서는 또 어떻게 개혁되어야 하는지.. 그런 것들을 생각해 보면, 이 새로운 대안으로서의 미술교과서는 이제 새로운 미술 교육, 교육으로서의 미술이 아니라 삶 그 자체를 위한 미술을 스스로 확장해 나가게 하는데 큰 기여를 할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해 본다. 그나저나 내일 출판기념회는 다른 일정으로 못 간다. 요즘 이렇게 가야 할 곳, 가 보면 즐거울 곳에 갈 수 없는 때가 많으니, 아쉽다. 이런 상황을 미술로 표현한다면 어떻게 할 수 있을까? 새로운 미술교과서 출판을 환영한다.
* 아래의 내용은 문화연대에서 보내온 메일을 그대로 가져온 것임.
시각문화교육 관점에서 쓴 미술교과서
대안의 미술교육을 위한 교과서이다.
미술교육을 원점에서 검토하고,
미술교육을 처음부터 다시 그렸다.
1. 미술교육을 처음부터 다시 그렸다
이 책은 대안의 미술교육을 위한 교과서이다. 미술교육을 원점에서 검토하고, 그 대안으로 시각문화교육으로의 확대를 말한다. 그림, 미디어, 풍경, 공간 등 우리가 보는 모든 것들을 미술교육의 대상으로 삼아 비판적으로 바라보고, 무엇을 그리는가보다 무엇을 체험하고 표현하는가를 미술교육의 가치로 두었다.
이 책은, 미술교육에 대한 비판에서부터 시작됐다. 기존의 미술시간은 청소년들이 즐거워하지도 않고 별다른 의미를 두지도 않아 왔다. 사실적으로 그리기 중심의 기능 수업은 특출난 몇몇 학생을 위한 것처럼 느껴지고, 변화하는 시각 문화 환경을 반영하지 못한 채 명화 감상에 머무는 수준이었다.
이에 대한 답은 간단하다. 재미도 있고 의미도 있는 미술교육을 만들어 가는 것이다. 이를 위해 이 책은 새로운 이야기들을 꺼낸다. 먼저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이미지 모두에 의문을 던진다. 그리고 이 의문은 일단 본다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시각’에 절대적으로 의존하며 보는 것이 옳은 것인지, 그렇다면 다르게 보는 방법이 무엇인지 묻는다. 더 나아가 그림에서 여성의 몸이 그려지는 방식, 학교 공간이 권위적으로 만들어진 구조, 그밖에 이미지 뒤에 그려진 힘의 관계 등에 대해 얘기한다. 그와 더불어 자신이 말하고 싶은 걸 이미지로 표현하라고 요구한다. 청소년들에게 조금 어려워 보이지만 스스로의 이야기를 만들고 이미지 뒤에 가려진 이미지의 진짜 이야기를 하는 것은 오히려 즐거운 과정이 될 수 있다.
이 책은 어려운 질문을 던지고 있지만. 풀어가는 방식은 유쾌하다. 미술시간을 다시 그리는 것이다. 그림을 못 그리는 학생들도 그림에 관심 없는 학생들도 소외되지 않는 미술시간이 그것이다. 사실적으로 그리기 대신에 온몸으로 체험하고 느낀 것을 말하는 시간, 명화들의 이름을 외우는 대신에 학교와 거리에서 매일 접하는 이미지들에 대해 배우는 시간이다. ‘나’가 중심이 되고 일상의 삶에서 활용할 수 있는 것을 배우는 미술시간, 그래서 재밌는 미술시간을 만드는 것이 이 책이 말하는 새로운 미술교육의 핵심이다.
이 과정에는 6년의 시간이 걸렸다. 미술교육에 문제의식을 지닌 미술교사로 시작해, 미술교수, 작가, 학부모, 시민단체 활동가들이 모여 토론과 연구, 집필에만 쏟은 시간이다. 미술교육을 원점에 놓고 교육체계와 가치를 완전히 새롭게 만드는 작업이었기 때문이다. 동시에 실제 교육현장에서 실현될 수 있도록 수업 연구를 반복해 수업사례를 담는데도 적잖은 시간이 걸렸다. 즉 이 책은 미술 교육의 가치를 다시 세울 뿐 아니라, 그 가치가 미술교육의 현장에서 실현될 수 있도록 연구되고 만들어져 왔다.
미술은 오랫동안 감성적인 측면에서 전인적인 인간을 기르는 데 매우 소중한 것으로 여겨져 왔다. 특히 창의력 향상에 있어서 미술의 역할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학교 교육에서 미술교육의 의미와 존재는 점차 퇴색되고 희미해지고 있다. 학교에서 배우는 미술에 대해 좋지 않은 기억을 가진 사람들이 많다는 것 또한 놀라운 일이 아니다. 그것은 아주 해묵은 문제이기도 하다.
이처럼 미술교육의 존재와 가치가 점점 과소평가되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우리는 오랫동안 그 문제에 대해 골몰해 왔다. 이 책은 그 고민의 한가운데를 가로지르고 있다. 우리는 미술교육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이미지의 홍수 속에서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올바른 시각 교육이 필요하다는 사실에 주목하였다. 그리고 오랜 노력과 진통 끝에 이제야 결실을 맺었다.
- 머리말 중에서(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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