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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책 이야기

`세계 책과 저작권의 날`을 보낸 후

4월 23일은 유네스코가 제정한 '세계 책과 저작권의 날'이다. 우리나라도 수 년 전부터 이 날을 기념해서 대대적인 행사를 하면서 책을 다시금 생각한다. 올해도 어김없이 그 날에 포스터도 제작하고 출판과 서점 분야에서는 다양한 관련 행사도 가졌다. 도서관들도 여러 곳에서 관련 행사를 진행한다. 문화부도 나서서 소외계층분들과 책을 나누는 행사도 가졌다. 나도 사무실 직원들에게 책 한 권씩을 선물했다. 

그런데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 민병욱 위원장이 다산연구소 '다산포럼'에 기고한 글에서 '책의 날'에 대한 유감을 표명했다. 그 글을 접하고.. 전적으로 동감하게 된다. 민 위원장은 묻는다. 우리나라에도 책의 날이 있다, 그 날이 언제인지 아는가? 답은 10월 11일이다. 대한출판문화협회가 정한 날이다. 기념식도 한다. 그러나 세계 책의 날에 비하면 초라한 것도 사실이다. 세계 인쇄, 출판문화를 앞서 선도했던 우리나라라는 점을 상기하면서그래서 민 위원장은 이렇게 말한다. 
" 이런 우리가 이젠 거꾸로 서양의 기념일을 빌어 책에 대한 열기를 끌어올린다고 부산하다. 젊은이들은 앞선 우리 문화엔 깜깜인 채 카탈루냐 사람처럼 책과 장미를 주고받으며 즐거워한다. 대한출판문화협회는 1987년, 팔만대장경이 나온 1251년 10월11일(양력 환산)을 기려 책의 날로 봉정했지만 아무도 그날은 기억하지 않는다. 협회조차 유공자 표창 정도 행사만 하고 지나간다. 이러니 한국에서 책의 날은 누가 뭐래도 4월23일로 굳어졌다.
지식과 문화를 습득하고 이어가는 최고 수단인 독서를 고취하자는데 국적을 따지는 건 소아병적이란 지적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내가 정한 날, 내가 가진 역사, 남보다 뛰어난 기록이 엄연히 있는데도 그건 놔둔 채 남의 풍습, 남의 기념일을 무비판적으로 따라하는 것도 분명 좋은 건 아니다.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요, 배알조차 없다고 핀잔을 들어도 할 말이 없게 돼 있다."

그러고 보니 정말 그렇다. 우리가 우리 것에 관심을 두지 않고 그저 세계적인 것, 국제적인 것에만 매몰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국제적인 관점과 감각도 발전시켜야 하지만, 그와 같이 우리 자신의 고유함과 긍지도 지켜나가야 한다. 출판에 있어서는 우리에게도 자랑거리가 적지 않고, 한 편으로 과제도 무척 많다. 좀 더 다양하고 긍정적인 마음으로 우리 자신의 것을 보듬고 일상 속으로 끌어내야 할 것 같다. 올해부터는 도서관계가 출판계와 협력해서 10월 11일 우리나라 책의 날을 좀 더 활기차게 만들면 좋겠다...  뭘 할 수 있을까 지금부터 생각해서 차분히 준비해 가면 좋겠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생각해 볼 것은 이 날이 책만을 위한 날이 아니라 '저작권'의 날이기도 하다는 점이다. 굳이 저작권 문제를 이야기하지 않는 것인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인지는 모르겠다. 이번에 한국출판인회의가 만든 포스터에도 보면 그냥 '세계 책의 날'이다. 물론 저작권을 중요하게 생각하리라 생각하지만, 그래도 이제는 책과 저작권 문제도 같이 묶어 생각해야 한다. 그렇다면 저작권 단체들도 이 날을 좀 활용할 수도 있지 않을까? 이미 저작권 문제야 말로 가장 국제적인 문제이고, 그래서 이 문제에 대한 국제적인 이슈나 우리와의 관계, 우리들의 문제인식과 대응방안 등을 제시하는 등 저작권 문제를 깊이 고민해 보는 그런 날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한다. 


 한국출판인회의 포스터


* 한국출판인회의 세계 책의 날 홈페이지에 가면 2002년부터 올해까지의 포스터를 역대 행사 게시판에서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