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일주일이 훌쩍 지났다. 지난 주 금요일(17일) 그 무더운 여름 제주길을 하루 종일 걸었다. 제주올레에 대해 그렇게 많이 들었는데, 사실 직접 올레길을 가 본 것은 처음이다. 1코스부터 시작하지 않고 11코스부터 시작했다. 글쎄 특별한 이유가 있지는 않다. 그냥 바다로 이어진 길들은 가끔씩 가 본 적이 있지만, 11코스나 12코스, 13코스가 있는 제주 서쪽 내륙길은 제대로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그래서 11코스와 12코스를 이어 이틀 걸어볼 요량으로 제주올레를 시작했다. 아침에 좀 여유를 부려 시작한 11코스.. 간략하게 그려진 올레 안내 지도를 보니까 모두 20킬로미터 가량... 산길을 걷는다고 하면 4킬로미터에 1시간 정도를 계산하면 대략 5시간이면 될 것 같다. 안내지에는 6-7시간 정도.. 그리 높은 곳도 없고.. 그저 들판길이나 마을길을 걷는다고 하면.. 그래도 사진도 찍고 여유롭게 걸으면 오후 정도면 목적한 11코스 종점인 무릉리 생태학교까지는 충분히 갈 것이라고 생각하고 여유를 부리면서 천천히 걸었다. 제주올레 홈페이지에서는 이 11코스에 대해서 이렇게 소개하고 있다.
모슬포항(하모체육공원)에서 시작하는 11코스는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길, 근대사와 현대사가 녹아 있는 올레다. 일본이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최대의 공군 병력을 집결시켰던 야욕의 현장인 알뜨르 비행장, 4·3사건 이후 최대의 양민 학살이 자행된 섯알오름, 정마리아 성지는 우리의 아픈 역사를 증언한다. 11코스의 절정인 모슬봉은 이 지역 최대의 공동묘지가 있는 곳으로서, 제주올레는 이곳 정상부로 올라가는 ‘잊혀진 옛길’을 산불감시원의 조언을 얻어 복원했다. 모슬봉에서는 흔들리는 억새 사이로 드넓게 펼쳐진 제주 남서부 일대의 오름과 바다를 한눈에 바라볼 수 있다. 신평-무릉간 곶자왈 올레는 제주올레에 의해 처음 공개된 ‘비밀의 숲’으로 또 다른 감동을 안겨준다.
<코스>
모슬포항(하모체육공원) - 섯알오름 - 백조일손묘 갈림길 - 이교동 상모1리 마을 입구 - 모슬봉 입구 - 정난주 마리아 묘 - 신평마을 입구 - 곶자왈 입구 - 곶자왈 출구 - 인향동 마을 입구 - 무릉2리 제주 자연생태문화 체험골
나중에 들어보니 올레에서 종종 길을 잃어버리기도 한다는데, 그래서 신경을 바짝쓰고 올레길 표시를 잃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초입에서 일부 갈림길 등에서 파란 화살표를 찾아보기도 했지만, 길을 걸어가면서 차츰 느낌으로 길을 찾을 수 있었다.. 어쩌면 예전부터지금까지도 그길을 걸고 있는 제주사람들의 마음이 하늘에 공기처럼 퍼져 있기 때문일까? 설명에서처럼 11코스는 삶과 죽음에 대해서 자연스럽게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길이다... 곳곳에서 아픈 역사를 만나야 했다.. 모슬봉 길은 아예 공동묘지를 한바퀴 돌아 올랐다가 내려오는 길이다.. 모슬봉에서 제주 풍광을 보는 그 시원함이 없다면... 글쎄... 다른 사람들은 어떨까 모르겠다... 그러나 삶과 죽음이 자연스럽게 하나라고 생각하면 글쎄 무성한 풀로 덮인 무덤들을 보면서, 그 땅에 살다간 사람들의 이야기가 궁금해 지기도 하다. 모슬봉을 내려와서는 다시 긴 마을길을 걷는다. 잠시 직선길을 벗어나 무더위를 식힌 정난주 마리아 묘소도 인상적이다. 황석영 백서 사건의 주인공 황석영의 아내이자 다산 정약용의 조카딸인 정난주 마리아가 대정읍에 유배되어 살다가 죽어 묻힌 곳... 너무도 깔끔하게, 너무도 조용하게 대정 땅에서 바람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있다. 나름 긴 안식과 같은 휴식을 가졌다. 그런 연후에 나선 길... 중간에 참 힘들었다. 아침도 먹지 않고 나선 길, 상모1리 마을회관 지나 만난 올레상점에서 컵라면 하나를 아내와 나누어 먹고, 맥주 한 잔 하고, 몇 시간을 걸어서였을까? 잠시 지쳐 헤멨다. 올레상점에서 동네 아주머니가 주신 물외(오이)와 간식을 먹고 정신을 차리고, 11코스의 백미라고 할 수 있는 곶자왈을 향했다. 알고보니 곶자왈은 제주도 전역에 여러 곳에 분포되어 있다. 곶자왈이란 제주도 말로 "화산폭발 때 용암이 크고 작은 암괴로 쪼개지면서 요철지형을 이룬 곳에 나무와 덩굴 따위가 마구 엉클어져 자연림을 이룬 지역’을 뜻한다고 한다. 이런 곶자왈은 제주도의 지형적 특성 때문에 생겨난 곳인가 보다. 즉, "제주도 하부 깊은 땅속의 암석이 높은 지열에 녹아 반액체 상태로 된 암석 물질인 마그마는 오름을 잉태하였고 오름은 곶자왈을 만들었다"고 한다. 이번에 11코스에 포함된 신평-무릉간 곶자왈은 언젠가 아름다운 숲길로도 선정된 곳이라고 기억한다. 그 곶자왈이 이번에 제주올레에 의해 처음 공개되었다고 한다.내가 11코스부터 시작하고자 했던 이유 중 하나는 바로 이 곶자왈 때문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기운을 좀 챙기고 들어선 곶자왈은 날씨가 좋고 낮이어서 그렇지... 너무 울창한 숲속이라서 혼자서라면 정말 외로웠을 것 같다. 전화도 끊어진 길을 제법 길게 걸었다.. 달리 뭐라 말로는 못하겠고.. 그냥 그 속에서 사람의 시간을 잊어버렸다... 곶자왈을 벗어나니.. 또 다른 세상같다. 11코스를 마무리하는 마음으로 인양동 마을까지 오니까 식당이 있었다. 늦은 점심을 먹고 푹 쉬다.. 그리고 남은 얼마간의 길을 걸어서 11코스 종점이자 하루를 묵어가기로 한 무릉2리 생태학교에 도착했다. 커피도 한 잔 마시고, 마당에 있는 소와 노닐면서 잠시 학교를 비운 촌장님을 기다렸다. 금요일이라서 그런지 사람이 거의 없었다. 샤워도 하고... 피곤한 다리를 쉬면서 그냥 시간을 보낸다. 그래도 좋다... 해가 지고, 바람이 방을 비집고 들어설 때 쯤, 라면을 끓여 먹었다. 출발 때 슈퍼에서 산 소주도 마시고 올레 첫 밤을 보냈다. "다리야.. 네가 고생했다"...
* 하모해수욕장을 찾던 길에 바로 하모체육공원에 붙어 있는 11코스 시작 안내판을 발견했다. 바로 왼쪽으로 길을 잡다...
* 하모해수욕장에서 시작해서 섯알오름 가는 길에 만난 제주 들녘...
* 길가에 핀 예쁜 꽃 사이로 멀리 산방산이 보인다. 구름이 많이 끼어 정상은 모자를 쓴 것 같았다..
* 멀리 모슬봉이 보이는 들판. 밭벼가 바람에 크게 흔들렸다..
* 알뜨르 비행장과 산방산이 한 눈에 보인다... 아픈 역사는 지금 이렇게 말없이 이곳에서 세월을 보내고 있는 것일까?
* 섯알오름 못 미친 길에서 만났다...
* 한국전쟁 때의 아름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섯알오름 희생자 추모비.... 올레길이 왼쪽으로 올라가면 바로 이어지지만, 길 안내는 오른쪽으로 올라주변을 쭉 한 바퀴 돌아 가도록 되어 있다. 절대 그냥 빠르게 왼쪽 계단으로 오르지 말아야 할 것이다.
* 섯알오름을 지나 상모리 가는 길... 길은 결코 막힘없이 서두르지도 않고, 끝없이 이어져 있다. 걸을 것인가 말 것인가는 걷는 내 결정과 실천에 달려 있을 뿐이다... 가야 한다.
* 상모1리 마을회관 지나서 곧 만나는 올레상점... 잠시 쉬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도 나눌 수 있었다. 거기서 컵라면 하나 사 먹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시원한 맥주 한 캔.. 라면을 부탁하니까 주인 아주머니께서 맛있는 김치와 오이무침도 주셔서 제법 아침 한 상 잘 받았다...
* 모슬봉입구 주유소 건너편 쪽... 여기서도 주유소에서 길을 바로 건너면 모슬봉으로 오를 수 있지만... 건널목이 없는 찻길이고 차들도 제법 많아 그냥 건너는 것은 위험하다. 그래서 역시 올레길 걷기의 한 원칙처럼, 돌아가기.. 쉬어가기.. 주유소 왼편으로 조금 더 내려가서 있는 건널목까지 가서 길을 건넌 후에 다시 주유소 있는 곳까지 거슬러 올라와 모슬봉으로 오르기 시작해야 한다. 조바심 내지 말고, 서두르지 말고... 천천히.. 주어진 길을 따라 걷기...
* 모슬봉 오르다가 뒤를 돌아본다. 제주 남서부 일대가 훤히 보인다... 저기가 바다다.... 지나온 길들이 아련히 내려다 보인다. 거기에 걸어온 내 흔적은 이제 바람에 실려 사라졌겠지... 그런 것이 올레길이리라...
* 모슬봉으로 가는 길을 알려주는 표지판과 올레 표식.. 곳곳에 이렇게 알려주는 표식이 있어 길을 걷기가 좋았다.
* 모슬봉 정상(사실 정상이라고 할 수 없다. 정상은 다른 시설이 자리잡고 있어 그저 정상 바로 아래 철책을 따라 돌아 내려와야 한다)에서 다시 내려다 본 풍광... 멀리 여전히 구름을 이고 선 삼방산이 보인다..
* 모슬봉을 내려와서 정난주 성지를 가는 도중에 길에서 뱀을 보았다. 차에 치었을까? 죽은 새를 먹으려다가 실패를 했는지 입 주변에 새털을 달고는 길을 벗어나고 있었다... 방금 공동묘지 길을 돌아 내려왔는데... 이곳에서도 삶과 죽음이 적나라하게 한 순간에 펼쳐져 있었다...
* 신평리 가기 전에 만나는 정난주 마리아 성지... 너무 조용하고 아름다운 곳이다. 더위를 식히면서... 잠시, 하늘을 보다.
* 신평리 사거리를 지나 곶자왈 입구 못 미친 길에서 꽃을 피운 선인장을 만나다. 꽃을 사진에 담다...
* 사진을 보니 좀 밝게 나왔지만, 실제로 볼 때는 대낮임에도 어둑어둑할 정도로 숲이 울창하다.
* 신평에서 무릉리로 가는 곶자왈 입구 표지판... 주의사항이 적혀 있다. 길을 잃지 않도록 하라고 한다. 실제로 들어가 보면 글쎄 조금만 주의하면 어렵지 않게 길을 찾을 수는 있을 것 같다.. 다만 절대 주변에 한 눈 팔고 숲 속으로 들어가지는 말아야 할 듯... 곶자왈 길은 정말 오랫동안 사람들이 조심조심 다녀 생긴 길이라고 생각된다. 그 길에서 벗어나 새 길을 만드는 일은 나같은 올레꾼이 할 일은 아닌 듯....
* 곶자왈 길 곳곳에 이렇게 파랗고 노란 색 올레 표식이 걸려 있다. 바람처럼 그 표식을 따라 가면 길은 이어진다..
* 곶자왈 길에서 만난 여러 풍경들....
* 이 길이 2008년인가 아름다운 숲길 가운데 하나로 선정되었다는 안내판이 숲길을 나서니 서 있었다. 이 즈음에서 우리 소리에 놀란 노루 한 마리가 풀쩍 뛰어 숲으로 사라졌다. 그리고는 한 동안 자기 영역에 들어온 나에게 빨리 나가라는 듯 컹컹 울어댔다... 미안하다...
* 곶자왈을 나서서 인향동 마을을 지나 도착한 11코스 종점이자 12코스 시작점인 무릉2리 생태학교. 이 학교는 제주 자연생태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곳이다. 폐교를 리모델링한 곳으로소와 송아지도 한 마리 있고, 늘어진 토끼 한 마리, 몇 마리의 개들..꽃과 선사체험 공간, 다친 새들의 쉼터... 그리고 사라진 아이들의 웃음소리를 간직하고 있을 것 같은 너른 잔디마당... 그곳에서 하루 걷기를 끝내고, 지친 몸을 내려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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