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올레 둘째날, 7월 18일 토요일...... 전날 밤 일찍 쉰 탓인지 새벽에 일찍 일어났다. 오늘은 12코스를 걷고 밤에 다시 집으로 가야하기 때문에 아침에 서두르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짐을 다 챙긴 후에 촌장님을 찾아서 선물을 몇 가지 샀다.. 올레 곰 인형도 있고, 수건과 두건도 각각 몇 개를 샀다.. 그리고나서 12코스에 대해서 자세한 설명을 들었다. 촌장님께서 길을 대부분 개척하셨다고 한다. 코스 끝부분에 있는 '생이기정' 길은 그 이름도 촌장님께서 붙이셨다고 한다. 직접 길을 개척하신 분 이야기를 들으니 머리 속에 길이 살아 움직인다... 전체 코스 길이는 약 18킬로미터 쯤 되고, 시간은 5-6시간 정도가 걸릴 것이라고 한다. 어제보다는 좀 수월하겠지만... 그래도 피곤한 다리를 이끌고 쉽지는 않을 것 같다.. 시원한 아침길을 시작한다. 막상 걷기 시작하니까 또 걷게 된다... 평지길을 걸어 마을들을 지난다... 여전히 길을 안내하는 표식은 반갑다. 특히 12코스는 최근에 만들어진 길이라서 그런지 마을을 지날 때마다, 그리고 길에 12코스가 열린 것을 축하하는 깃발과 현수막들이 새롭다. 그래서 더 마음이 편안해 진다. 자칫 길을 걸으면서 마주치는 동네와 동네사람들이 이렇게 길을 걷는 외지사람들을 반기지 않으면 얼마나 마음이 불편할 것인가.. 그런데, 올레꾼들을 환영하는 현수막은 그런 우려를 씻어준다. 앞으로는 깃발과 현수막 뿐 아니라 동네사람들과의 진정한 소통이 걷는 내내 바람으로 올레꾼들을 시원하게 만들어 줄 것 같다. 아무튼... 또 열심히 걷는다. 여전히 사람들은 밭일을 하면서 일상을 일구고 있다..
* 제주올레 홈페이지에 소개된 12코스 안내
해안을 따라 서귀포시 전역을 잇고 제주시로 올라가는 첫 올레. 무릉 2리부터 용수포구 절부암까지 들과 바다, 오름을 따라 이어지는 아름다운 길이다. 드넓은 들에서 보는 지평선은 아스라하고, 깊은 바다는 옥빛으로 일렁인다. 신도 앞바다에 거대한 도구리(돌이나 나무를 파서 소나 돼지의 먹이통으로 사용한 넓적한 그릇)들이 바닷물과 해초를 가득 머금은 채 연못처럼 놓인 모습이 신비롭다. 거센 바람이 몰아치는 날, 이 도구리에 파도가 덮치는 모습은 그야말로 장관이라고. 7코스 ‘일강정 바당올레’를 만든 강정 돌챙이들이 서귀포시청의 도움을 받아 신도 앞바다 역시 걷기 좋은 멋진 길로 재탄생시켰다.
차귀도를 바라보며 수월봉과 엉알길을 지나 당산봉을 넘고 나면 '생이기정 바당길(새가 많은 절벽이라는 뜻으로 제주올레가 붙인 이름)'로 접어든다. 눈 밑에서 갈매기가 나는 신비로운 경험을 하게 될 이 구간은 제주올레에 의해 개척되었다.
<코스>
무릉2리 제주자연생태문화체험골 - 평지교회 - 신도연못 - 녹낭봉 - (구)신도초교 - 고인돌 - 도원횟집 - 신도 앞 바다 - 수월봉 - 엉알길 - 자구내포구 - 당산봉 - 생이기정 바당길 - 용수포구(절부암)
그런데... 이 날 정말 많이 뜨거웠다. 육지는 비가 오시고 하는 것 같은데... 제주는 무더웠다. 제주시 쪽은 폭염주의보가 내렸다고 하는 것 같고.. 그런 날 아무 것도 가릴 것 없는 길을 걷다니... 걷는 내내 미쳤다, 미쳤다... 하면서 걸었다. 그나마 제주 풍광이 없었다면 정말 중간에 포기했을지도 모른다. 들판 길을 벗어나 드디어 바닷가에 도착했다. 이정표에 기록된 도원횟집에서 아침과 점심을 겸한 식사를 했다. 시원한 한치물회, 맛있었다. 밥으로 기운을 채운 후 바닷가 길로 내려섰다. 바람이 좀 세다. 부서지는 파도... 시원한 하늘... 그 풍광도 시원하다. 다만그저 바다만 바라보고 걸어야 한다. 신도포구에서 다시 들판 길로 접어들었다. 수월봉은 예전에도 한 번 가 본 적이 있지만, 이렇게 올레로 다시 만나니 또 새롭다. 이쯤 오니까 관광 온 사람들도 꽤 된다. 그런 가운데 배낭 메고 땀 뻘뻘 흘리면서 길을 걷는 우리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그냥 에어콘 나오는 시원한 차를 타고 다녀도 좋은 제주를 걸어서 다니는 이유는? 글쎄.. 그러고 보니 지난 밤에 생태학교에서 미국 버지니아테크에서 관광학을 공부하는 연구자가 올레를 주제로 박사학위 논문을 쓴다면서 올레꾼에게 설문을 요청했다고 해서 설문을 했는데, 그 중에서 왜 올레를 오게 되었냐는 질문이 있었다... 나는 왜 올레를 왔을까? 그냥 아직은 뭐라 답할 이유는 없겠다... 수월봉에서 내려와 엉알길을 걷다. 낙석 위험이 있어 잘 개방되지 않은 길인가 보다. 이 길에서는 제주 사람들이 낚시도 하고, 물질도 하면서 일상을 즐기는 풍경이 많다.. 솔직히 부럽다... 자구내 포구에 있는 공원에서 만난 한 그룹의 초대(!)를 받아서 막 잡은 고기 회에 소주도 몇 잔 얻어 마셨다. 아, 맛있다... 얼려 온 물도 한 병 얻었다. 그 친절함에 더위를 잊고 남은 길을 걷다.. 차귀도가 보이는 고잔 자구내 포구에서는 막 물질을 마치고 오시는 해녀분들을 만나다. 한 해녀께서우럭 1마리에 1만원이라고 하시는데...아,거기에하룻밤 묵는 길이라면 당장 사서 잘 먹었을텐데... 아쉬움을 뒤로 하고당산봉을 넘어 생이기정에 올랐다. 지금은 새들이 다 떠나가서 '새가 많은 절벽'이라는 이름이 좀 무색했지만, 그래도 거기서 바라보는 차귀도는 멋지다. 나중에 12코스를 오면 아무래도 이곳 자구내 포구에서 하루를 묵어야 겠다. 여긴 일몰이 멋있다고 하는데, 해가쨍쨍한 날 걸으니 그 맛이 좀 떨어지기는 했다. 그래도 생이기정에서부터 쭉 차귀도를 보면서 걸으면서 아쉬움을 달랜다. 용수 절부암에 도착했다. 드디어 12코스를 마치다. 그런데 아침에 촌장님께 들은대로 13코스의 앞 부분을 마저 걸었다. 충혼묘지 사거리에서 어차피 차를 타기 위해 길로 나서려면 1킬로미터 쯤 길을 따라 나와야 하는데, 그럴 바에는 약 1.5킬로미터 쯤 13코스 초입길을 걸으면 같은 곳에서 만나니까 그리로 가라고 했었다. 그러면 나중에 13코스를 이어 하더라도 그 충혼묘지 사거리에서부터 시작하면 된다고 했다. 그 길도 괜찮다.. 마저 길을 걸어 충혼묘지 사거리에서 제주시로 가는 버스를 탔다. 차가 시원했다... 드디어! 첫번째 제주올레를, 너무 더워서 힘들었지만, 무사히, 행복하게, 즐겁게 마쳤다....
* 사진은 몇 번에 나누어 올리려고 한다.
* 생태학교에서 기념품을 샀다... 사실 여행지에서 기념품은 매우 중요한 요소인데, 우리나라에서 그 여행지를 기억하게 하는 좋은 기념품을 만나기는 쉽지 않다. 그래도 생각지도 않았는데, 생태학교에서 이런 기념품을 팔고 있어 다행이다.
* 무릉2리 주민들이 세운 12코스 개설을 축하하는 깃발... 길 내내 이 깃발을 볼 수 있었다.
* 마을에 있는 비석들... 만나는 마을마다 이런 비석들이 있었다. 이렇게 시대를 이어 마을과 사람들의 삶을 이어가는 것은 매우 중요하지 않을까?...
* 나무가지에서 바람을 타고 하늘을 향해 날아오르는 올레 표식... 그렇게 이 걷는 일도 하늘을 향해 가는 것이면 좋겠다...
* 일을 마치고 마셨을 물과 맥주... 여전히 그곳에서 남은 일을 기다리고 있는 것일까?
* 밭은 조 익은 냄새가 가득하다..
* 바람은 밭벼 사이를 춤추며 지나간다.. 길을 걷는 내내 이렇게 제주바람을 보았다...
* 새 생명을 키워내기 위해 비워진 밭... 제주는 이렇게 생명을 이어가고 있겠지...
* 신도연못... 주변이 제법 정리가 되어 있었다... 이런 습지들이 있어 주변 땅에서 생명이 자랄 수 있겠지...
* 신도연못 지나 녹남봉 가는 길은 밭을 가로질러야 한다... 오른쪽으로 가라는 올레 화살표시..
* 녹남봉 입구를 알려주는 표식. 높지 않은 봉우리지만, 평지 위에 있어 제법 산같이 보인다...
* 녹남봉 오르는 길은 이 숲 안에 있다...
* 녹남봉 정상... 노란 표식이 철봉에 매달려 바람으로 이곳이 정상임을 보여주고 있다.
* 녹남봉에서 그동안 걸어온 쪽을 바라본 풍경...
* 녹남봉에서 내려다 본 신도리 마을 풍경... 멀리 바다에 큰 배 한 척 지나간다... 어디 가는 배일까?
* 신도리 마을 흙은 붉은 색이다. 어제 11코스 길에서 만난 흙들은 검었다..
* 예전 신도초교는 이제 아이들 대신 도예 작업장이 되었다. 여기서 도예 교실 같은 프로그램도 하는가 보다..
* 도예 작업장에 있는 가마... 언젠가 이곳에 불이 지펴지고, 그 안에서 아름다운 도자기들이 태어나겠지...
(나머지 사진들이 다음 글에 이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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