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코스는 길지 않다. 그러나 나는 그 코스를 두 번에 나누어, 이틀에 걸쳐 걸었다.
8월 13일 맑고 뜨거운 날, 5코스를 마치고 아직 시간과 몸에 여유가 있어 쇠소깍에서 더 걷기로 하다. 그래서 서귀포칼호텔까지, 6코스 전체의 반 정도의 거리... 해가 서쪽으로 지는 것을 따라 걷다보니 햇살이 얼굴을 직접 때린다... 바람과 함께 얼굴을 때리는 햇살이 그리 싫지는 않다. 아니 걸으면서 햇살을 싫어할 수는 없겠지... 보목항에서 힘들어 걷기를 포기하고 버스를 타고 숙소로 갈까도 생각했다. 맥주 한 잔 마시면서 마침 가게에 계신 할머니와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왜 걷냐고.. 힘들게 걷지 말고 버스타고 가라고... 그러시면서도 아내 말은 잘 들어야 한다고 하시니.. 그래서 계속 걸었다. 다만 버스가 떠나고 나서, 에이, 타고 갈 버스가 없네... 핑계를 대고... 몸은 스스로 알아서 걷는다. 마음은 지치고 피곤해도 몸은 묵묵히 자기가 가야할 만큼은 끝까지 간다.. 그래서 사실 제대로 살려면 몸을 쓰고 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식과 생각만으로 사는 것보다는 몸을 더 써야 할텐데... 걷다보면 그런 생각이 든다. 너무 몸을 안 쓰고 살고 있다고... 그래서 쉽게 지치고, 쉽게 포기하고, 쉽게 마음까지도 흔들리는 것이라고... 몸은 그런 것들을 넘어 그냥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느끼게 해 준다... 보목항을 떠나 또 짧지만 긴 길을 걸었다. 드디어 아직 해가 남아 있는 오후 서귀포칼호텔에 도착했다. 몇 번 도서관 관계 행사 때문에 호텔은 이용해 봤지만 이렇게 걸어서 가 보기는 처음이다. 며칠 길을 걷다가 호텔에 들어가 보니 좀 낯설다. 로비 커피숍에서 시원한 커피빙수와 흑맥주 시켜 먹고 쉬다... 창 밖으로 하늘과 바다가 여전히 아름답다... 호텔을 나오는데 노을진 하늘이 마음을 흔든다...버스를 타고 남원읍 숙소로 돌아오다. 아침에 들렸지만 준비가 안되었다고 해서 먹어보지 못한 순대국을 먹어볼까 했는데, 역시 범일분식은 문을 닫았다. 일찍 순대가 다 팔팔려나 보다. 그래서 바로 근처에 있는 마당갈비집(이곳도 올레 책자에 소개된 유명한 곳이다)에서 오겹살에 소주 한 잔.. 그리고 책에 실린 돼지고기국을 먹다. 돼지고기국은 시원한 맛이다. 사실하루종일 너무 땀도 많이 흘리고 또 갑작스럽게 찬물도 많이 마시고 해서 그런지... 돌아오는 길에 배탈이 났다. 그래서 병원에 들려서 진찰받고 약도사 먹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먹고 싶은 것은 먹어야지... 잘 먹고 나니 좀좋다... 저녁 먹고 남원포구 해변을 걷는 것으로 하루를 마감했다...
제주 올레 홈페이지에서 소개한 6코스는 다음과 같다.
쇠소깍을 출발하여 서귀포 시내를 통과, 이중섭거리와 천지연폭포 위 산책로를 거쳐 외돌개까지 이어지는 해안·도심 올레다. 해안가의 정취를 느낄 수 있는 소금막과 삶과 문화가 숨쉬는 서귀포 시내, 난대림과 천연기념물 5종이 서식하는 천지연폭포 위 산책로를 걸으며 서귀포의 문화와 생태를 접할 수 있다. 누구나 힘 들이지 않고 걸을 수 있는 길이다.
코스 경로(총 14.4km, 4시간30분~5시간)
쇠소깍 - 소금막 - 제지기오름 - 보목항구 - 구두미포구 - 서귀포 보목하수처리장 - 서귀포KAL호텔 - 파라다이스호텔 - 소정방폭포/소라의 성 - 서귀포초등학교 - 이중섭 화백 거주지 - 솔동산 사거리 - 천지연 기정길 - 천지연폭포 생태공원 - 남성리 마을회관 앞 공원 - 남성리 삼거리 - 삼매봉 - 외돌개 찻집 솔빛바다
(이 사진들은 8월 13일 뜨거운 하루 걸었던 6코스 전반부다..)
* 쇠소깍을 벗어난 길에서 밭을 만나다. 파를 뽑고 있는 중이다. 너머 한라산이 구름을 이고 선 모습이 넉넉하다..
* 바다는 꽃과 함께 있어 아름답다... 이름을 알든 모르든, 그건 내 문제일 뿐이지. 걸으면서 수없이 많은 꽃들을 만났다. 꽃들은 그냥 그 풍경 속에서 그 자체가 풍경이 되고 있었다...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고 하는데, 때론 꽃이 사람보다 아름답다.
* 서귀포시에 가까워지니까 공사하는 곳이 많아진다. 뭔가 새롭게 만들고 있다. 길.... 길을 내고 있었다. 혹시 올레 때문에? 올레 때문에 새로 만들어 진 길들도 있다고 하는데, 길을 만들면서 이전 것들이 사라지고 있으니, 그것은 아픈 일일텐데... 길은 포크레인이 아니라 사람들 발길로 만들어 지는 것이 아닐까?
* 해가 서쪽으로 지면서 바다 위에 다시 반짝이는 물결을 남기고 있다...
* 서귀포칼호텔이 가까이 보이는 바닷가에 활터가 있었다. 백록정... 바다 건너로 활을 쏠 수 있는 유일한 곳이라고 설명이 쓰여 있다. 마침 활 쏘기를 배우는 학생들이 있기에 슬쩍 들어가 봤다... 활을 쏘는 곳에서 과녁까지 거리가 140여 미터 쯤 된다고 한다. 화살이과연 과녁까지 날아갈까? 충분히 날아간다고 한다. 활을 건네주어서 살짝 시위를 당겨봤더니 팽팽하다... 긴장된다... 화살이 정말 바다를 건너 과녁으로 날아갔다... 자전거를 타고 화살을 찾으러 간다...
* 칼호텔 로비 커피숍에서 바라다 본 풍경... 멀리 보이는 섬은 섶섬인가 보다...
* 칼호텔에서 나오니 저녁 노을이 아름답다... 하루를 풍성하게 보내서일까, 저녁 노을이 더 화려하게 느껴진다.
* 서귀포시에서 버스를 타고 남원읍으로 돌아왔다... 남원읍도 밤이 시작되고 있다...
* 저녁을 먹고 남원포구 해변을 걸어 숙소로 갔다. 가는 길에 고기를 잡으러 바다로 나간 배들이 먼 바다에서 불을 켜고 있는 것을 보다... 밤새 고기를 잡고 나면 새벽 다시 포구로 돌아오겠지... 그 고기들을 내려 놓으면 포구는 다시 하루를 싱싱하게 시작하리라... 나는 그저 이 밤, 고기잡이 배들이 켜 놓은 불빛을 사진에 담아둘 수밖에... 그러고 보니 아침 포구를 보지 못했다.. 언제 기회가 되면 이른 아침 포구를 가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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