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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 읽기

1976년 한국도서관협회 공문서를 입수하다.

올해 2월 결성된 '한국도서관사연구회' 활동을 하면서 느낀 건... 참 도서관계도 자기 역사를 잘 갈무리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안타까움과 약간의 괴로움... 연구회에서 다양한 이야기들을 나누면서 자극도 받고 부끄러움도 느끼고 있다. 일단 기회가 되는대로 이것저것 모으고 찾아보고 있다. 그런 중에 며칠 전 한 경매사이트에서 지금부터 44년 전인 1976년 한국도서관협회가 한 회원에게 보낸 개인회비 납부 공문과 함께 제14회 전국도서관대회(이하 도서관대회), 제2회 전국 도서관인 체육대회(이하 체육대회) 개최 안내 문서를 구했다. 지난 번에 그곳에서 협회 초기 문서철 2개를 경매했는데, 아깝게도 낙찰받지를 못해 너무도 아쉬웠는데, 이번에 이 문서라도 구해서 다행이다. 

편지봉투에 적힌 협회 주소는 서울시 중구 회현동인 것을 보니 이미 1974년 12월 소공동에서 남산위로 올라간 국립중앙도서관에 있던 시절이다. 우편물 발송일자는 1976년 10월 20일(사진 속 푸른색 원 안 참조)인 듯한데.. 도서관대회와 체육대회가 10월 29일~30일 열렸는데, 좀 바쁘게 발송된 듯하다. 그리고 봉투에 인쇄된 주소 말고도 '한국도서관협회'라는 붉은색 도장(사진 붉은 사각형 안 참조)이 찍혀 있는 것도 특이하다. 굳이 왜 찍었을까? 우체국에서 찍은 도장과는 달라 보이니 따로 찍은 것 같은데... 

수취인인 개인회원 성*호 님 (경남 거창군 거창중학교)... 사서교사인지, 사서인지, 아니면?

봉투 안에는 우선 개인회원 회비 납부 독촉 공문이 한 장 들어있다. 회비는 1,200원(2019년으로 화폐가치를 비교해 보면 약 11,000원 정도)다. 6월까지 납부해야 했는데 하지 않아서 다시 10월 23일까지 납부를 요청하는 공문이다. 이 회원께서는 공문을 받고 회비를 납부하셨을까?

또 한 장의 공문은 단체회원과 개인회원에게 보낸 '제14회 전국도서관대회 및 도서관인 체육대회 개최' 안내 공문이다. 공문은 손으로 써서 복사한 것으로 보인다. 누가 썼을까도 궁금한데... 알 길은 없겠지? 대회 참가비는 1,500원(당시 금액)으로 적혀 있다. 

1976년엔 도서관대회와 체육대회가 같이 열렸다는 것은 신기하다. 첫날(10월 29일)은 학술행사를, 둘쨋날(10월 30일)은 체육대회로 진행되었다. 이해 도서관대회는 한국도서관협회 주최, 서강대학교 도서관 주관으로 진행되었다. 그리고 대회 임원 명단도 포함되어 있는 것을 보면 요즘과는 꽤 다른 면이다.  임원 명단을 보니 낮익은 분들의 성함을 발견할 수 있어 재미있기도 하다. 

체육대회는 1975년 처음 실시되었다. 당시 협회 창립 20주년(당시는 한국전쟁 이후 협회를 재건한 1955년 4월 16일을 창립일로 정해 기념하던 때다. 현재는 1945년 8월 30일 조선도서관협회 창립을 기념일로 정하고 있다.)을 기념해서 협회 회원의 단합과 결속을 도모하고 이를 기반으로 도서관 발전의 동력을 만들고자 체육대회를 조직했다. (<도서관문화> 16권 9호(1975년 11월)에 제1회 전국도서관인 체육대회에 대한 결과보고가 실려있다.) 1976년은 두 번째 체육대회였다. 이 체육대회는 1981년 제7회까지 이어졌지만 그 이후는 더 이상 진행되지 않았다. 왜 더 이상 진행하지 않기로 했는지에 대해서는 확인하지 못했다...   

이 행사 진행 결과는 한국도서관협회 기관지 <도협월보> 17권 9호(1976년 11월호)에 실렸다. 참석자는 300여명 규모. 소식에 따르면 이해 대회는 종전의 대회성격과 달리 순수한 학술발표대회로 개최되었다고 한다. 전년도인 1975년도에는 관종별로 분과를 나누어 현장의 이슈를 중심으로 논의하고 이를 결집해 정부에 의견서를 제출하는 등 현장성이 강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1976년에는 연구라는 제목의 발표로 축소되었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해야 할 사정은 무엇이었을까? 나중에 당시 대회 임원을 하셨던 분께 여쭈어 봐야겠다. 

<도협월보>에 실린 대회 결과 보고를 보며 드는 몇 가지 생각... 개회식에서 대회장인 이선근 협회장의 개회사를 이봉순 전무이사께서 대독하셨다. 왜 그랬지? 그리고 이어 문교부장관 격려사와 주관기관인 서강대학교 총장의 환영사도 역시 각각 대독... 그 해 도서관대회 개회식도 대부분 대독으로 진행되었구나... 요즘도 종종 그런 일이 있기는 하다. 그럴 때면 많이 아쉽다. 그런 역사가 짧지 않음을 확인하니 다행인걸까? 


옛 문서 몇 장으로 오래 전 선배들의 활동을 미루어 짐작해 본다. 예전에도 참 많이 어려웠던 것 같다. 그럼에도 열심히 한국도서관협회와 도서관계 역사를 이어주신 것에 감사드린다. 나에게 묻는다... 지금은 정말 선배들보다 잘하고 있는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