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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 읽기

쓸쓸함을 가슴에 담고 시대와 함께, 고객과 함께 하는 사서가 되기 위해 길을 나서야

부산을 내려오는 길에 박완서 선생께서 별세하셨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 소식을 듣고는 나는 2003년 11월 순천기적의도서관을 개관한 후 경향신문에 실린 도정일 교수의 칼럼을 떠올렸다. 그 칼럼에는 박완서 선생의 소설 한 자락이 언급되어 있다. 쓸쓸함... 그 칼럼은 이후 내가 자주 언급하는 글이 되었다. 사서로 이 땅에 사는 방식에 대해서 생각할 때 마다 나는 그 '쓸쓸함'이라는 단어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나는 박완서 선생의 깨달음에서 배운다. 이제 박 선생께서는 이 땅을 떠나셨다. 그러나 아직 이 땅에서 살아야 하는 나로서는 내 직업인 사서로서의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지금도 끊임없이 고민하고 실천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이 이야기를 2005년 부산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사서들 앞에서 이야기를 했었다. 인터넷으로 검색을 하다가 내 글을 다시 발견? 했다. 그래서 오늘 그 글을 다서 꺼내 읽는다. 여전히 나는 그 날에서 별로 앞으로 나서지 못한 것 같다... 다시 지금의 나를 돌아보기 위해 여기에 올려둔다. 부산지역대학도서관정보교류회는 아직도 활동하고 있겠지요?

(아래는 도정일 교수의 칼럼 중 앞 부분임)

작가 박완서의 일기체소설‘한 말씀만 하소서’는 사람에게 상실의 고통이 얼마나 견디기 힘든 것인지, 그리고 인간이 고통을 통해서만 발견할 수 있는 진실의 모습들은 어떤 것인지를 보여주는 빼어난 작품이다. 가을 수확을 밤 사이 도둑맞고 빈손으로 들판에 선 농사꾼처럼, 다 큰 아들을 먼저 생의 저편으로 떠나보내고 절망하는 한 어머니가 소설의 주인공이자 화자이다. 구약의 욥이 그랬듯이 이 어머니도 “왜 하필 나에게 이런 불행이?”라는 질문으로부터 놓여나지 못한다. 중편 길이의 소설 한편에 크고 작은 감동적인 이야기의 샘들이 무수하다. 그 감동의 샘들 가운데는 처음 이 소설을 읽었을 때 나를 멍하게 했던 대목이 하나 있다. 그것은 주인공의 아들이 ‘쓸쓸함’에 이끌려 마취과 의사를 지망했었다는 이야기다.

=쓸쓸함에 이끌려 마취과 지망=

대학을 갓 나온 젊은 의사들에게 마취과는 인기있는 전문분야이기 어렵다. 사람들의 눈에 잘 띄지 않는 응달의 부족 비슷한 것이 마취과 의사다. 그런데 소설 주인공의 아들은 그 마취과 전문의가 되기로 작정한다. 세상이 알아주는 분야들을 마다하고 아들이 마취과를 지망하고 나서자 어머니는 좀 실망스럽다. 왜 하필 마취과를?
수술이 진행되는 동안 환자의 생명줄을 쥐고 있는 것이 마취과 의사다. 그는 환자를 마취시키고 다시 깨어나게 하는 사람이다. 목숨 하나가 그의 손에 달려 있다. 그러나 수술이 끝나고 나면 아무도 그 마취과 의사를 기억하지 않는다. 환자도, 환자의 가족도 마취과 의사에게는 고맙다고 인사하지 않는다. 그래서 마취과 의사는 쓸쓸하다. 그런데 자기는 바로 그 쓸쓸함에 이끌려 마취과를 지망했노라고 아들은 말한다. 어느새 훌쩍 커버린 한 인간을 아들에게서 발견한 어머니는 좀더 화려한 선택을 아들에게 기대했던 자신이 슬며시 부끄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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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5년이 더 지난 글을 다시 꺼내 온 것임)

부산지역대학도서관정보교류회 창설 10주년 기념강연

2005.3.26.() 17:20 오마이랜드부산 (부산광역시)

쓸쓸함을 가슴에 담고 시대와 함께, 고객과 함께 하는 사서가 되기 위해 길을 나서야 합니다

이용훈 (한국도서관협회 기획부장, 도서관문화비평가)

blackmt@hitel.net

󰋎

우선 부산지역대학도서관정보교류회 창설 10주년을 축하합니다. 10년 세월을 무던히 견디어 지금까지 발전해 온 것은 그 자체로도 아름답습니다. 특히 우리 도서관계에서는 도서관들 모임이 아닌 사서들의 자발적 모임이 10년을 이어 꾸준히 자기 모습을 가꾸어 온 일이 많지 않기에, 오늘 이 자리가 더욱 의미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동안 여러분들이 지나온 여정이 우리 도서관계에 새로운 길을 열어온 길이었다는 사실에 자부심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축하의 말씀을 드리면서 여러분들도 익히 아실 한시 한 편을 다시금 음미하는 것으로 제 말씀을 시작하겠습니다.

踏雪野中去 不須胡亂行 눈 덮힌 들판을 걸어갈 때는 이리 저리 함부로 걷지 마라.

今日我行跡 遂作後人程 오늘 내가 남긴 발자국은 반드시 뒷사람의 길이 되리니.

이 시는 백범 선생께서 남북연석회의를 전후해서 만년에 가장 즐겨 쓴 서산대사의 한시로, 1949626일 오전 암살당하기 직전에도 쓰셨다고 합니다. 그리고 19893월 문익환 목사께서 평양에 가서 도착 성명에서 이 시를 인용하며 뒷사람들의 길을 예비하기도 했습니다. 지금 이 자리에서 거창한 역사적 사실에 담긴 한시 한 편으로 작은 일상에서 잠시 벗어날 수 있으면 바랍니다. 그러면서도 한 편으로 새로운 길을 가는 사람들이 겪어야 하는 아픔과 외로움, 그리고 책임감이 지금 이 때에도 절실하다는 생각에서, 지금까지 10년 세월 무던히 고생스러운 길을 걸어 오셨을 여러분께 앞으로 10, 20년 또 더한 외로움의 길을 가 주십사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여러분들을 따라 여러분들이 걸었던 길을 걸어올 동료들을 한 번쯤은 떠 올려 보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축하의 자리에서 제 스스로 반성하고 또 앞으로 여러분들과 함께 새로운 도서관의 미래를 열어가기 위해 사서로서 어떻게 살아가면 좋을지에 대해 자기고백이라고 해도 좋을 이야기를 해 보고자 합니다. 오늘 제 말씀에 굳이 제목을 쓸쓸함을 가슴에 담고 시대와 함께, 고객과 함께 사서가 되기 위해 길을 나서야 합니다.”로 했습니다. 좀 생뚱맞습니다만, “쓸쓸함” “시대” “고객을 핵심어로 해서 도서관의 역할과 사서로서의 삶에 대해 나름의 생각을 말씀드리겠습니다.

󰋏 쓸쓸함을 가슴에 담고

축하의 마당에서 쓸쓸함을 이야기하는 것이 어울리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최근 우리들은 쓸쓸함을 가슴에 담아낼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2003년 전국을 뜨겁게 달군 한 방송 프로그램이 도서관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을 크게 바꾸었습니다. “기적의 도서관이 그것이죠. 당시 문화방송과 책읽는사회만들기국민운동이라는 시민단체가 함께 만들어 낸 도서관의 기적에 대해서는 개개인의 입장에 따라 달리 평가할 수 있겠지만, 저는 그 무엇보다도 도서관은 책과 사람으로 이루어진 만남과 재미의 공간이라는 점을 사람들에게 알렸다고 점이 가장 뛰어난 성과라고 생각합니다. 그 프로그램 이후 도서관이 독서실이 아니라는 점을 설명하기가 무척 쉬어졌습니다. 그러나 한 편으로는 어린이도서관에 대해 지나친 관심으로 공공도서관이라고 하는 중심이 흔들릴 수도 있다는 사실은 경계해야 할 것입니다. 그 운동에 참여했던 저는 요즘 지난 20031112일 경향신문에 실린 도정일 교수의 컬럼 오 쓸쓸함이여, 스승이여를 다시금 꺼내 읽습니다. 그 칼럼은 작가 박완서의 일기체 소설 한 말씀만 하소서의 한 대목, 쓸쓸함에 이끌려 마취과를 지망한 아들에게서 새로운 지평을 발견한 주인공 이야기로부터 첫 번째로 개관한 순천 기적의 도서관을 설계하고 건설한 사람들에게로 마음을 옮겨갑니다. 그러고는 이렇게 말합니다.

지난 10일 순천에서 이른바 기적의 도서관이라는 이름의 어린이 전용도서관 개관식이 있던 날, 건물 설계를 맡았던 건축가 정기용은 사람들이 다 떠난 뒤에도 저녁 늦은 시간까지 열람실 한쪽 구석에 오랫동안 앉아 있었다. (중략) 그날 오래도록 자리를 뜨지 못한 설계자 정기용의 마음을 나는 안다. 개관과 함께 설계자는 건물을 넘겨주고 떠나야 한다. 지난 몇 달 턱없이 적은 경비와 시간제약 속에서 설계 아이디어를 살려내기 위해 밤새우며 작업해온 현장소장, 시공자, 관리자들도 떠나야 한다. 그들의 땀과 노심초사를 사람들은 기억해줄까? 그들이 장차 도서관에 들렀을 때 직원들은 누구시죠?”라고 묻지 않을까? “개관식 때 우리는 참 쓸쓸합니다.” 시공회사 유탑엔지니어링의 모득풍 현장소장의 말이다. 쓸쓸했을 사람들이 어찌 그뿐이랴. 쓸쓸한 사람들이여, 쓸쓸함에 이끌려라. 삶은 결국 쓸쓸함의 길이가 아닐 것인가? 오오 쓸쓸함이여, 그대도 삶의 진실 하나를 보게 하는구나.

한참을 잊고 있다가 이 칼럼을 다시 떠올린 이유는 우리 사서들도 바로 마취과를 택한 아들처럼, 그리고 건물을 지어놓고 슬그머니 화려한 개관식 뒤에 숨어야 하는 사람들처럼 존재함 그 자체에 담긴 쓸쓸함을 제대로 보아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게 된 때문입니다. 누구나 다른 사람을 위해 일해야 하는 사람들은 화려함이 아니라 바로 그 쓸쓸함을 제대로 가슴에 담을 줄 알아야만 제대로의 길을 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래야만 우리는 우리의 현실에서 좌절하지 않고 성공과 실패의 경계에서 흔들리지 않을 것 같습니다. 화려한 개막식의 주인공이 우리는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는 개막식의 화려함의 근원이 될 수 는 있습니다. 단상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연설을 하거나 칭찬을 받는 일은 애당초 우리의 목적도 아니고, 또 우리가 즐겨할 이유도 없는 방식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건 세상에서의 성공을 포기하거나 무기력하게 밀려난 사람이기 때문이 아니라 세상을 제대로 바라보고 살아갈 수 있는 용기와 의지를 가진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삶의 선택이고 태도이고 방식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사서는 바로 그런 사람이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종종 사서로 일하면서 세상 사람들이 안 알아준다거나 큰 부를 가지지 못하는 것을 두고 불평을 하는 경우를 만납니다. 그러나 그건 뭔가 잘못된 일입니다. 그런 것을 원한다면 다른 길을 가야 합니다. 스스로 다른 마당에 와서 왜 이 마당은 화려하지 않느냐고 따지는 것은 엉뚱할 뿐입니다. 세상은 바로 이렇게 화려함 뒤에서 쓸쓸함을 감내하는 사람들에 의해 그래도 살만하지 않나 싶습니다.

얼마 전 건축가 한 분을 만난 적이 있습니다. 그 건축가 말씀이 건축가들이 설계를 하고 건물을 지면서 제대로 되지 않았을 경우 늘 변명할 수 있는 여지가 몇 가지 있다고 합니다. 예를 들면 예산이 부족하다, 시공이 잘못되었다, 사용자가 잘못 사용하고 있다 등등. 실제로 건물을 지으면서 늘 그런 한계가 생각한 대로 건물을 짓고 사용하지 못하게 만들 수 있겠다 싶습니다. 그러나 그 건축가는 그 자체를 한계가 아니라 조건으로 생각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저는 그 말을 듣고 우리 도서관계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우리도 일하면서 늘 예산이 부족하다, 인력이 부족하다, 이용자들이 우리들의 수고를 모른다, 등등 많은 핑계거리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건 어쩌면 우리들이 감당해야 할 조건은 아닐까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와 같은 전문가가 필요한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역량에 따라 도서관의 성과가 달라질 수 있는 것이 아닐까요? 돈이 충분하다면, 시설과 인력이 충분하다면, 그리고 이용자들이 도서관을 잘 이해하고 알아서 잘 이용해 준다면, 굳이 사서가 아니라도 도서관은 도서관답지 않을까요? 그런 점에서 10년 전 여러분들이 함께 협력하기로 하고 모음을 만들어 지금까지 서로 돕고 함께 해 온 것은 어쩌면 놀랍기보다 너무도 당연한 전문가로서의 행동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제는 더 이상 내 자리에서 세상을 보면서 불평과 무기력을 표출하는 것은 의미없는 일입니다. 우리 자신과 일의 본질과 근본조건을 잘 이해하고 스스로 쓸쓸함을 즐길 줄 알 때 우리는 우리 자신을 위해서, 우리 도서관을 위해서, 그리고 나아가 우리의 이웃과 사회, 국가, 민족, 전 세계를 위해 뭔가를 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 합니다.

󰋐 이 시대와 함께

이제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를 생각해 보았으면 합니다. 우리는 지금 어느 시대를 살고 있는가? 수많은 말로 정의할 수 있겠습니다만, 그 어떤 경우라도 ‘2005년 대한민국이라는 시대적 한계 속에서 살고 있는 것을 부인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도서관과 사서는 사회적 요구 속에서 존재하는 영역입니다. 따라서 이 시대, 이 시대 사람들이 도서관과 사서들에게 요구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잘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과연 무엇을 요구하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구체적 요구는 다양할 것이나 중요한 것은 그 요구들에 대해 당당하게 대면하고자 하는 우리들의 노력과 능력입니다. 끊임없이 우리 사회가 무엇을 요구하고 있는지,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찾고자 애쓰고, 그것을 위해 도서관과 사서들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해야 하는지를 고민하는 속에서 우리들은 비로소 이 시대의 중심에 설 수 있을 것입니다.

예를 들어, 지금 온 국민이 분노하고 있는 독도 문제에 대해 우리는 지금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우리가 볼 때에는 이 문제는 국가 간 분쟁이 될 수 없는 명백한 역사적 근거가 있는 사안입니다. 그러나 일본은 물론 다른 나라 사람들은 그러한 사실을 잘 모르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래서 정확하게 판단하기 이전에 국제정치적 지형에 따라 자신의 입장을 가질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정확한 근거를 제시하고 국제적으로 올바른 사실을 알게 해야 합니다. 그럴 때 도서관과 사서들도 뭔가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실 우리가 근거로 삼는 많은 증거들은 외국의 도서관이나 기록관 등에서 구한 것들입니다. 우리 도서관들은 과연 이처럼 중대한 사안에 대한 물증을 제대로 가지고는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있다면 얼마나 적극적으로 그것들을 알리고 활용했는지 모르겠습니다. 독도에 관한 책과 자료가 수 백 건이 넘습니다. 혹시 여러분들의 도서관에서는 얼마나 가지고 있습니다. 최근 그 자료들을 어떻게 활용했습니까? 국회도서관에서는 자료전시회를 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적어도 뭔가는 할 수 있지 않습니까? 자료목록이라도 만들 수 있지 않을까요? 이 같은 싸움은 냉정한 이성과 철저한 근거를 가진 쪽이 이깁니다. 다른 나라 도서관에 정확한 내용을 담은 책을 보낼 수도 있을 것입니다. 2006년 국제도서관협회연맹 모임이 서울에서 열리는데(2006 서울 WLIC), 그 때에 차분하게 이 문제를 제기해서 세계 모든 도서관에서 적어도 정확한 내지는 균형 잡힌 자료를 갖추도록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다른 나라 사람들도 보다 정확한 이해와 입장을 가질 수 있는 계기는 마련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도서관과 사서는 자신들의 역할 수행에 있어 반드시 이 시대의 문제를 가장 중시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시대의 문제를 연구하고, 그 문제의 해결에 기여할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해야 합니다. 이제 도서관의 울타리를 넘어 시대의 중심으로 나가야 합니다. 그럴 때 사람들은 도서관과 사서를 인식하기 시작할 것입니다. 솔직히 말해서 우리 사회에서 도서관과 사서는 주목받지 못했습니다. 그 이유에 대해서 좀 더 냉정하게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그것은 우리가 사람들의 관심사에 주목하지 않은 때문이지 않을까요? 그래서 이제는 우리가 이 시대, 우리 사회가 주목하는 내용에 집중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특히 도서관과 사서는 우리 사회의 정보현상에 전문적으로 개입해야 합니다. 도서관이 일종의 사회적 커뮤니케이션이 일어나는 공간이 되도록 해야 합니다. 수없이 많은 지식과 정보가 생산되어 마음대로 흘러 다니고 있는 시대에 이를 꼼꼼하게 분석하고 선별하여 정말 이 사회에 필요한 것들만 걸러 필요한 사람들에게 필요한 때 적절하게 제공하는 것이 도서관과 사서의 일차적 책무가 아닐까요. 그 일로 우리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한 구성원으로 자리할 수 있을 것입니다.

󰋑 고객과 함께

고객이라고 하면 좀 낯섭니다. 우리에게는 이용자(user)가 익숙한 명칭입니다만, 이제 그 명칭에 대해서도 고민해 볼 때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요즘은 방송까지도 쌍방향성이 중시되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그저 텔레비전을 켜서 보내진 내용만을 일방적으로 보았지만, 이제는 기술의 발전에 힘입어 일방적으로 시청하는 단계를 넘어 서로 대화를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도서관에서의 서비스 대상에 대해서도 그런 변화된 상황을 인정하고, 이제는 단순한 시설이나 서비스를 이용하는 수준이 아니라 도서관 서비스와 서비스를 제공하는 직원과의 관계성을 더욱 강화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는 이제 이용자를 고객(client, patron, customer )으로 인식해야 합니다. 새로운 관계설정을 통해 도서관 서비스의 내용과 수준, 그리고 방법 등을 결정해서 고객만족, 고객행복을 우선 가치로 삼을 수 있어야 합니다. 도서관은 사람들로부터 정보나 자료의 수집과 정리, 활용 등 제반 측면에서 사회적 역할을 위임받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앞에서도 이야기한 것처럼 시대와 고객의 요구와 가치를 잘 알아야 합니다. 이제는 고객을 고려하지 않고 존재할 수는 없습니다. 따라서 이제 도서관과 사서들은 고객과 더 많은 대화를 해야 합니다. 고객 속으로, 고객과 함께 하는 도서관이 지금 우리들의 전략이어야 합니다. 요즘 대부분의 사람들은 상업적 환경 속에서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한 영역에서는 고객만족이 가장 중요한 가치입니다. 그런 환경에 익숙한 사람들은 이제 도서관이 속한 비영리적 영역에까지 고객만족은 중요한 가치가 될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미 행정부서는 물론 많은 공공기관이나 비영리 민간단체들까지도 고객만족은 최대의 경영 목표가 되고 있습니다.

고객은 내부고객과 외부고객이 있을 수 있습니다. 도서관 내 직원이나 다른 도서관 사람들도 고객의 한 부분일 수 있습니다. 동료들과도 충분한 대화와 협력을 통해 내부고객의 만족도를 높일 수 있어야 합니다. 직원 스스로 자기 직장과 일에 대한 자긍심을 가지지 못하고 만족하지 못한다면, 그들이 제공하는 서비스가 결코 만족스러울 수 없습니다. 따라서 내부고객을 감동시키는 것이 외부고객 감동의 시작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직원들 스스로 서로 격려하고 도와가면서 내적 만족을 높여가야 합니다. 물론 이를 위해 도서관 내적 개혁도 요구됩니다. 전문가들은 상하 계층적 관계가 아닌 수평적 동료 관계로 만나야 합니다. 도서관에서도 이제 각자의 영역에서 사서들이 주도적이고 책임 있는 역할을 해야 합니다. 이미 대학도서관들에서는 팀제라든가 전문사서제도 등을 시도하고 있는 줄 압니다. 그러나 그것들이 제대로 정착되지는 못하고 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그 이유가 우리들 자신에게 있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스스로 변화하지 않고 새로움을 만들어 낼 수는 없는 법입니다. 도서관에서의 내부고객 만족을 위해 어떻게 할 것인지 함께 고민할 때입니다.

외부고객 만족은 여러 가지 척도로 측정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이 경우 너무 계량적인 관점에서만 바라보지 않았으면 합니다. 특히 디지털도서관으로 변모해 가면서 자꾸 직원과 고객의 만남이 줄어드는 경향이 있는데, 그것은 결코 도서관 사람들에게 바람직한 현상은 아닙니다. 결코 고객의 요구를 기계적으로 해결할 수는 없습니다. 사서들이 고객과 직접 만나 대화하고 문제를 파악하여 해결책을 제시하고자 하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또 한 가지는 고객은 모두 옳다고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특히 오랫동안 바람직한 모습의 도서관을 접하지 못한 상황에서 고객들이 도서관과 사서들에 요구하는 내용이 틀린 것일 수 있습니다. 그 경우에는 당당히 문제의 본질을 인식하게 하고, 그에 따라 도서관과 고객이 바른 관계를 설정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서는 도서관은 끊임없이 고객의 요구에 흔들려 제 자리를 잡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 자신감이 없이는 고객만족을 추구하기 쉽지 않을 것입니다. 끊임없이 고객의 관점에서 자신을 바라보아야 합니다만, 또한 결코 그릇됨 없이 불편부당하고 정확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균형과 중심을 잃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 새로운 길을 열어야

요즘 시대는 유목민의 시대라고 합니다. 디지털 시대, 정보화 시대의 특징은 이동성에 있습니다. 늘 떠돌아다닐 줄 아는 사람들의 시대입니다. 그런데 도서관은 전통적으로 특정한 공간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요즘 디지털도서관 부문의 발전으로 도서관은 에 뿌리를 내리고 있으면서도 하늘을 자유자대로 날아다닐 수 있게 되었습니다. 다만 여기에서 우리가 생각해 보아야 하는 것은 유목민의 시대, 디지털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전략이 과연 옳은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한 때 디지털도서관 시대가 활짝 열리면 도서관은 이전의 그늘진 구석에서 나와 화려한 중심으로 진입할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정작 우리는 예전보다 더 많은 제한과 경쟁자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활동 영역의 확장이 더 많은 경쟁을 야기한 것입니다. 그래서 요즘은 예전보다 더 큰 위기감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앞으로 어떻게 우리의 영역을 지키고, 확장시켜 나갈 것인가 고민하고 계시리라 생각합니다. 이럴 때에는 새로운 전략이 필요합니다. 새로운 전략의 핵심은 협력과 연대입니다.

우선 협력을 위해서는 역할분담과 단위 도서관 발전이 우선되어야 합니다. 디지털 시대는 집중이 심화됩니다. 따라서 요즘에는 1등이나 2등이 아니면 필요 없다는 말을 당연시 합니다. 물론 무한 경쟁이 이루어지는 기업에서는 그 말이 사실인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면서 이제는 비영리기관에까지도 그런 방식을 강요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가만히 살펴보면 기업들도 경쟁보다는 협력이 더 중요합니다. 예를 들면 자동차회사가 모든 것을 혼자 만들 수는 없습니다. 뛰어난 기술을 가진 수많은 분야의 중소기업이 없이 자동차산업은 이룩될 수 없습니다. 그 어떤 분야도 그렇습니다. 도서관도 마찬가지입니다. 혼자 고객의 모든 요구를 해결할 수는 없습니다. 요즘 자칫 몇 몇 대형도서관들만 있으면 다 해결될 것 같은 분위기가 있습니다만, 그것은 결국 함께 소멸될 수도 있는 위험에 이르는 길입니다. 서로 적절하게 역할을 나누어 작은 단위에서 충실을 기할 때, 비로소 전체 도서관계가 단단해 질 수 있을 것입니다. “지구적으로 생각하고 지역적으로 행동하라라는 말이 있는데, 이처럼 생각은 전체 도서관 입장에서 하고, 행동은 자기 도서관에서 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대체로 현실은 거꾸로 아닐까 합니다. 이처럼 역할분담과 단위 도서관 발전을 다졌다면 반드시 도서관간 협력 활동을 수행해야 합니다. 도서관 협력은 여유로울 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일을 통해 여유로워지고 함께 존립하고 성장할 수 있는 것입니다. 자관 이기주의를 넘어서야 합니다. 모든 도서관들은 연결되어 하나의 도서관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개별 도서관들은 전체 도서관의 입장에 서서 자기에게 적합한 역할을 찾아 수행해야 합니다. 그럴 때 단위 도서관들에서 이루어지는 서비스나 사업 등은 모두 과연 그 일이 단위 도서관을 강화시키면서 도서관계 전체에 이익이 되는가를 판단의 기준으로 삼아야 합니다. 물론 지금 많은 도서관들이 협력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다른 도서관을 돕는 일, 즉 자기 도서관의 역량을 다른 도서관에 나누어 주는 일이야말로 자기 도서관을 살리는 길입니다. 다른 도서관의 것을 쓰면 되겠지 하면서 자기 도서관 역량을 키우는 일에 소홀해서는 안 됩니다. 오래 전부터 협력을 이야기하면서도 성과를 거두지 못했던 것은 협력의 방향과 방법이 잘못된 때문입니다. 스스로 정보 발신기지가 되지 않으면 그 도서관은 결국 일시적 소비지일 뿐입니다. 특히 디지털 시대 도서관이 새로운 미래를 여는 활동에 있어서는 이 같은 점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독불장군처럼 혼자서 갈 수 있는 도서관은 없습니다.

협력과 함께 필요한 것은 연대입니다. 협력이 도서관 내부의 전략적 연결방식이라면 연대는 도서관 외부에 대한 도서관계 공동의 대응방식입니다. 도서관을 둘러싼 환경은 급격하게 변화하면서 도서관에 대한 수없는 도전을 제기합니다. 이에 대해 단위 도서관 단독 대응은 불가능합니다. 따라서 도서관들 간 연대는 절대적인 과제입니다. 예를 들어 저작권을 둘러싼 환경 변화는 도서관 활동에 심각한 고민거리를 던져주었습니다. 이와 같은 문제에 대해서는 분명한 공동대응이 필요합니다. 때로는 인권의 문제에 대해서(예를 들어 도서관내에 CCTV 설치 문제 등), 때로는 신규 기술의 도입 문제에 대해서(RFID 도입 문제 등), 때로는 도서관을 둘러싼 정치적 지형의 변화에 대해서(예를 들어 국가보안법 문제 등), 때로는 도서관과 사서의 사회적 위상을 강화하기 위한 노력에 있어서(사서자격제도 문제 등), 때로는 도서관 이미지 변경 노력에 있어(도서관을 독서실이 아닌 지식과 정보의 광장이라는 것을 알리기 위해) 도서관들의 연대는 필수적입니다.

협력과 연대를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내적 결속이 중요합니다. 특히 어떤 외부적 과제를 풀어나감에 있어 내적 입장 통일이 우선되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 끊임없이 애정을 가지고 내부토론과 합의도출, 그리고 그에 따른 통일된 행동이 중요합니다. 이러한 내적 통일성 확보는 바로 오늘 모인 여러분들이 속한 지역단위 작은 모임에서부터 한국도서관협회와 같은 전국적 단위까지 활발한 활동의 결과로 얻어질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쉽게도 도서관계는 바로 이러한 점이 취약한 것이 사실입니다. 그런 점에서 여러분들의 모임은 너무도 소중한 역량입니다. 더욱 발전하시기를 바랍니다. 한 편 일제강점기를 지나 60년의 도서관 역사를 잘 살펴보고 왜 오늘날까지도 제 자리를 잡지 못했는가를 파악하고 잘못을 되풀이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제 생각으로는 그건 우리 스스로도 도서관의 사회적 가치와 역할을 모르지는 않았는지, 알았다 하더라도 그의 실현에 헌신하지 못한 것은 아닌지, 그런 노력을 위해 개인 또는 자관을 넘어 서로 협력하고 연대 구조를 세우고 키우는 일에 소홀한 때문은 아닌지 돌아보아야 할 것입니다.

도서관들 간 연대는 한편으로 다른 문화단체나 사회단체와의 연대로 확장되어야 합니다. 이미 도서관이 도서관 활동 안에서만 존재할 수 없는 사회가 되었습니다. , 도서관 문제가 도서관만의 문제가 아니라 더 큰 영역의 문제로 존재합니다. 따라서 도서관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결국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것입니다. 대학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 대학도서관의 문제가 해결될 수는 없습니다. 사회의 민주주의 수준이 높아지지 않고서는 공공도서관은 시민사회의 중심적 위치로 나설 수 없습니다. 학교도서관은 교육문제, 특히 대학입시에 매몰된 우리 학교교육의 문제를 극복하지 않고서는 결코 제 자리를 찾을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도서관 문제를 해결하고자 한다면 문제의 근원적 해결을 위해 노력하는 제반 사회 또는 문화단체들과 연대해야 합니다. 우리는 물론 그들도 또 다른 미래를 꿈꾸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함께 할 이유는 충분할 것입니다. 이 같은 폭넓은 연대를 통해 사회적, 정치적 역량을 키우고, 도서관 문제를 사회의제로 만들어 갈 수 있을 것입니다. 외롭지 않으려면 나부터 사람들 속으로 나설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사람들은 내가 있음을 알고, 손을 마주 잡을 수 있는 기회가 생길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우리의 제한된 영역 속에서 제한된 운동방식과 역량으로 우리만의 문제를 풀어보고자 했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도서관 문제의 근원은 우리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사회적 역할을 맡긴 사회 속에 있고 따라서 이제 도서관 문제의 해결은 사회적 과제 해결에 의해서 가능하기도 하고, 거꾸로 도서관 문제 해결이 사회적 과제 해결의 실마리가 되기도 할 것입니다.

󰋓 현실을 넘어 또 다른 세상으로

요즘 우리 도서관계는 여러 가지 도전에 직면해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속한 대학 도서관도 예외는 아닐 것입니다. 다 열거할 수는 없으니 그 중 한 두 가지만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우선 도서관법 개정 문제가 있습니다. 주로 국가차원의 도서관 체계와 공공도서관을 중심으로 새로운 모델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또한 학교도서관진흥법도 이미 국회에 상정되어 있습니다. 저작권법 개정 문제라든가 최근 논의가 시작된 독서진흥법(가칭) 등도 우리 도서관 환경에 일정한 영향을 줄 수 있는 중요한 부분입니다. 문제는 과연 법 개정이 도서관 개혁의 선제 조건인가 하는 것입니다. 법이 바뀐다고 곧바로 현실이 바뀌지는 않습니다. 또한 법 개정은 현실의 개혁 의지가 충만할 때 가능할 것입니다. 호주제도 개선 노력에 따른 가족법 개정이라든가 국민들의 양심의 자유 추구의 염원에 따른 국가보안법 폐지 가능성 등이 그렇습니다. 물론 그렇지 않고서도 몇 몇 사람들의 의지와 희망으로 가능한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경우 그 법은 유명무실해 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렇다면 우리 도서관법은 어떻게 될까요. 법과 관련해서 가장 많이 요청받는 것이 시설 또는 장서, 직원 기준을 법에 명시해 달라는 것입니다. 장서 폐기에 대해서도 도서관계 요구가 많습니다. 물론 법에 필요한 기준은 명확하게 제시되어야겠습니다만,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볼 때 법적 기준이 없어 우리가 발전하지 못한 것은 아닐 것 같습니다. 자율 의지와 역량이 더 우선되어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그러기 위해 도서관 전문가인 사서들의 역량과 강력한 참여가 절대로 필요합니다. 내 문제는 내가 스스로 해결하겠다는 강력한 의지가 있다면 우리는 현재의 법적 한계 속에서도 새로운 영역을 만들어 나갈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다음으로는 도서관의 내용(콘텐츠) 구축과 관련한 도전이 있습니다. 지금 세상에는 도서관이 아니더라도 지식과 정보를 제공하는 기관이나 개인은 넘쳐 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서관이 중요한 이유를 우리는 증명할 수 있어야 합니다. , 수많은 지식과 정보자원 속에서 과연 도서관이라고 하는 사회적 기관이 수집하고 정리보존하여 활용하고 전승해야 할 내용은 무엇인가에 집중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 자원을 분석하고 평가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고, 이를 관리할 수 있는 기술 습득도 필요합니다. 그러나 혹시 요즘 우리는 내용이 아닌 수단과 기술에만 집착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 합니다. 이미 앞서 이야기한 바 있습니다만, ‘이 시대 고객의 관점에서’, 나아가 다음 세대 고객의 관점에서필요한 것을 고르고 정리해서 최대의 만족을 줄 수 있도록 더욱 적극적으로 도서관의 내용을 채워가야 합니다. 기술주의에 매몰되지 말고 내용과 사람에 집중해야 할 것입니다.

오늘의 현실은 내일의 과거일 뿐입니다. 내일은 오늘을 사는 우리가 현실을 바탕으로 만들어 낼 수 있는 새로운 현실일 뿐입니다. 우리가 어떤 꿈을 꾸고 있는지에 따라 우리의 내일은 달라질 것입니다. 현실에 매몰되지 않고 새로운 현실을 만들어 내겠다는 의지만 있다면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바를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이제 제 말씀을 마치면서 또 다른 세상은 가능하다라는 믿음을 가지고 협력과 연대의 전략으로 새로운 도서관 시대를 열어갈 걸음을 함께 걸어 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물론 이미 여러분들은 새로운 길을 나섰기에 그 발걸음에 더욱 힘이 붙기를 바랍니다. 부산이라는 지역을 넘어 다른 지역 사서들에게 힘과 용기를 불러일으키는 봄기운 가득한 바람이 되리라 믿습니다. 더욱 힘내십시오. 한시로 시작했으니 한시로 마치겠습니다.

聞說早梅發 不辭山路長 때 이른 매화 피었다는 말 듣고 먼 산길 마다않고 나섰네.

雪裏看難辯 風來忽有香 아직 눈 속이라 앞길 분간하기 어려운데

바람결에 문득 매화 향기 실려 오네

霽湖 梁慶遇 선생의 시입니다. 멀리 부산에서 벌써 매화 꽃 피었다고 한 소식을 들은 지 벌써 10년이나 되었습니다. 매화 꽃 보러 뒤늦게 길을 나섰다가 아직 눈 속에서 헤매고 있는데, 홀연히 매화 향기 가득한 바람을 만났습니다. 그 기쁨을 어찌 다 표현하겠습니까. 여러분과 동 시대를 살고 있다는 사실에, 여러분과 도서관이라는 영역에서 동지로 함께 할 수 있다는 사실에 무척 기쁩니다. 늘 한겨울 매화 같은 지조와 향기를 잃지 않으시리라 믿으면서 10년 세월의 연륜에 또 다시 10, 20년 연륜을 잘 쌓아 가시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