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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책 이야기

9월 `독서의 달`을 보내며..

오늘이 9월 30일.. 한 달 간 신났을(?) "독서의 달"도 오늘로 끝이 난다. 그렇다고 책읽기가 끝나는 것은 아닐테지만, 9월 한 달 동안 과연 우리 국민들이, 우리 나라가 책 읽기의 즐거움에 풍덩 빠져 보았을까 되돌아보면.. 글쎄 경제위기 등등으로 이 한 달이 책 읽기를 하는 시간이라는 것도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다. 그렇게 나만의 아쉬움 속에 2008년 "독서의 달"은 간다. 물론 나 자신도 이런저런 핑계로 책을 몇 권 읽지는 못했다. 그래도 좀 가벼운 쪽으로 선택해서 무려(!!!) 4권이나 읽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하도 잘 잊고 살아서 무슨 책을 읽었는지 짧게 기록을 해 두고 있다). 이 정도면 좀 선방을 한 것이라 자부해도 되겠지? 오늘 아침에 메일함을 열어보니 다산연구소가 보내준 메일이 "컴퓨터 시대에 웬 책?"이라는 제목으로 민병욱 한국간행물윤리위원장이 쓴 글이었다. 앗, 너무 적절하다.민 위원장은 도서벽지 어린이들에게 책을 전해주는 일을 하던 중들은 공무원 이야기로 글을 시작했다. 요즘같은 컴퓨터 시대에 무슨 책이냐..종이책 대신 CD로 구어주면 돈도 적게들고 훨씬효율적이라는 '국민독서와 출판업무'를 담당하는 공무원 이야기에 놀라신 것 같다. 사실 나도 그런 이야기를 자주 듣는다. 책 읽기에 경제논리를 적용하는 것이 너무도 당연하고,출판은 대부분 처세술에대한 것들에 관심이 많은 것이 현실이니 종이책보다 디지털 형태로 주는것이 더 좋지 않느냐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인식처럼 보인다. 그러나 책은단지 내용만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라 하나의 물리적 관념까지도 같이 가지고 있다. 한 권의 책이 가지는 물리적무게는 내용에 더해 책 그자체다. 그래서 컴퓨터 시대에도 책은 의미를 가진다. 우리가 이 시대에도 여전히 먹고 마시고 춤을 추고 사람을 만나 대화하는 것과 같다. '독서문화진흥법'에 따라 국가차원의 독서진흥 정책을 고민하기 위해 만들어졌던(이젠 과거형으로 써야 하는가 보다) '독서문화진흥위원회'가 이번 정부의 위원회 정비 정책 때문에 겨우 2번 상견레만 하고는 사라져 버린 것에 대해서도 지적하고 있다. 처음부터 위원회가 무슨 대단한 일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 사람도 많지 않겠지만, 그만큼 없어져도 별로 관심도 없는 것 같다. 제발 책을 읽지 않아도 좋으니 '컴퓨터 시대에 왠 종이책'이라고는 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수 천 년 이어져온 책의 역사를 쉽게 무시하지는 말았으면 좋겠다. 화려한 디지털 텔레비전 시대에도 라디오도 필요하지 않은가. 그저 서로 다를 뿐이라고 생각하고 종이책을 만들고 유통시키고 사서 읽고 대화하는 사람들도 있어야 한다는 정도만이라도, 큰 도움은 아니더라도 그렇게 인정해 주기만 해도 좋겠다. "독서의 달"을 보내면서 민병욱 한국간행물윤리위원장의 글로 마무리하고자 한다. (다산연구소에서는 메일로 보내준 글을 나중에 홈페이제에 올려두는데, 오늘 것은 며칠 후에 올려지는 것 같아서 부득이 여기에 옮겼다. 다른 분들의 글을 인용하거나 옮길 때 늘 저작권 문제에 고민하게 된다. 다산연구소와 민 위원장께서 이해해 주시기를 바란다. 나중에 다산연구소 홈페이지에 글이 올려지면 그 때는 여기서 글을 빼고 링크해서 연결할 예정이다.)

* 다산연구소는 "위대한 사상가이자 경세가(經世家) 인 다산 (茶山) 정약용(丁若鏞) 선생의 개혁정신과 인간 사랑의 정신, 실사구시(實事求是 ) 철학을 오늘의 시대정신으로 승화시켜 보다 밝고 깨끗한 세상을 만드는데 이바지하고자 태동"된 단체로 홈페이지에서는 다산에 대한 좋은 자료들이 많이 올려져 있다. 가입을 하면 여러 분들이 쓴 다양한 분야의 글을 메일로 보내준다. 그 글을 읽는 것만으로도 즐겁고 큰 공부가 된다.

“컴퓨터 시대에 웬 책?


민 병 욱(한국간행물윤리위원장)

도서벽지 어린이들에겐 학교공부 외에 TV보기가 문화생활의 거의 전부다. 바로 그런 어린이들을 위해 ‘책 잔치’를 벌이다 난감한 일을 겪었다. 아이들에게 한 권씩 책 선물을 주는 걸 보고 젊은 공무원이 정색하며 “(종이)책 대신 CD로 구워 주면 돈도 적게 들고 훨씬 효율적”이라고 한마디 한 것이다. ‘어쩌면 이 한 권이 벽지 아이들에겐 생애 처음 가져보는 자기 책일 수 있다’고 하자 그는 “요즘은 컴퓨터 세상입니다”며 말을 막았다. 지금은 자리를 옮겼지만 명색이 국민독서와 출판 관련 업무를 담당하던 이의 그런 인식이 마음에 걸렸다.

주당 독서시간, 2005 30개 조사대상국 중 꼴찌


우리 국민 독서율이 세계 최하위권이고 성인 10명 중 2-3명은 1년에 한권도 책을 안 본다는 지적은 이제 식상할 정도다. 2005년 다국적 여론조사기관 NOP월드가 세계 30개국 3만 여명을 심층 면접한 결과 우리국민이 책과 잡지 등 활자매체를 읽는데 쓴 시간은 주당 3.1시간, 조사대상국 중 꼴찌였다. 당시 30개국 평균은 6.5시간이었으니 그 절반에도 못 미친 것이다. 1년으로 환산하면 우리는 1인당 170시간, 4천만 국민으로는 68억 시간을 ‘세계인들보다 깜깜히’ 활자와 담 쌓고 지낸 셈이다. 책으로 얻어지는 지적능력과 창의력, 감성이 그만큼 떨어질 것이란 우려가 나오지 않을 수 없다.

어려서부터 읽기 습관을 들여 주자는 운동은 그래서 펼쳐졌다. 책은 재미있고 유익한 평생 친구라는 생각에다 책과 관련한 아름다운 추억도 심어주고자 북 쇼우 등 잔치를 벌이고 ‘책 기차여행’도 했다. 교과서 밖에 책이라곤 못 보던 산골, 낙도의 가난한 아이들에게 책 한 권의 따스함을 전달하면 언제나 초롱초롱한 눈망울을 빛내며 화답해왔다. 보물처럼 책을 안고 기뻐하는 아이들에게서 미래의 ‘책상양반(冊床兩班)’을 보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선생님들도 “책 한 권이 이렇게 우리 아이들을 행복하게 해줄 줄 몰랐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그런데 공무원께선 “컴퓨터 시대에 웬 책이냐”니….

정부의 책과 독서에 대한 인식이 문제다. 독서문화를 진작시키기 위한 제대로 된 법조차 없다가 겨우 독립법이 제정 시행된 게 작년 4월이다. 그전에는 ‘도서관 및 독서진흥법’의 한 장에 독서조항이 뭉뚱그려져 있었다. 도서관법과 떨어져 ‘독서문화 진흥법’이란 독립법이 생겼다고 정부의 활동과 지원이 좋아진 것도 아니다. 국민 독서문화 진흥을 위한 년 예산이 20억 원대에 불과하다. 예산당국은 그것마저 깎아보려고 문화부를 닦달한다. 그뿐인가. 새 법에 따라 작년 12월 발족했던 ‘독서진흥위원회’는 지난 5월 정부의 위원회 통폐합 방침에 따라 자동 소멸해버렸다. 회의라곤 상견례 포함 2번 밖에 열리지 않았으니 실적이란 게 있을 리도 없다. 한 위원은 “만나자 이별이라더니 정부가 이렇게 책과 이별하자는 건가”고 불만을 터뜨렸다.

5개월 반짝 있다 사라진 독서진흥위원회


독서진흥 실상이 이러니 출판계에도 찬바람이 쌩쌩 인다. 등록 출판사는 3만개에 이르지만 한 달에 한 종이라도 책을 내는 곳은 4,5백 곳에 불과하다. 개점휴업 출판사는 갈수록 늘고 있다. 웬만한 책은 발행부수가 백 단위로 내려앉았다. 간판이라도 걸고 있겠다며 사람을 자르는 출판사 괴담도 흉흉하다. 어느 출판사 사장은 직원 인건비라도 벌려고 야간 대리운전에 나섰다는 이야기까지 들린다(922일자 매일경제). 출판사 불경기는 자연 서점과 인쇄소 제본소의 불황으로 번져 총 문화산업의 36%(매출액)~47%(종사자수·2005년 추산)에 이르는 책 산업의 추락이 끝없이 이어지고 있다.

9,10
월 독서의 계절을 맞아 전국 곳곳에서 책 축제가 열리고 있다. 지식을 사랑하는 이들의 맑고 밝은 표정이 그곳엔 있다. 책을 즐기고 나누고 토론하고 아끼는 사람들은 그러나 축제장, 그 화려한 분위기에서도 일말의 불안을 감추지 못한다. “컴퓨터 세상이라니, 앞으로 얼마 안 가 ‘책 축제’도 사이버 장에서 열리는 것 아냐?”… 도서 벽지 어린이들에게 책 한 권을 전하는 따스한 마음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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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민병욱
· 한국간행물윤리위원장
· 경원대 초빙교수
· 전() 동아일보 정치부장 논설위원 출판국장
· 저서: <들꽃길 달빛에 젖어>(나남출판, 2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