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성대학교 문헌정보학과에서 지난 8월 정년퇴임하신 이용남 교수님 정년기념문집의 제목은 <끝나지 않는 도서관 戀歌>이다. 문집을 편찬한 간행위원회(위원장 조인숙)는 문집의 제목을 가장 고심했다고 한다. 이용남 교수님의 일생을 고스란히 담아낼 수 있는 제목을 정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도서관 타령 반세기" "도서관 아니면 어디서 뭘 했을까"와 함께 마지막까지 고민한 결과 이 제목으로 결정했다고 한다. 잘 정했다고 생각한다.
이용남 교수님 호는 芸池(운지)이시다. 최근까지도 호가 없으셨는데 스승이신 리재철 교수님께서 이번에 호를 주신 것이다. 문집 맨 앞 부분에 호를 지어주신 일과 그 뜻을 적어주셨는데, 이 芸池(운지)라는 호는 문헌정보학자와 도서관 정보전문가와 독서운동가라는 뜻을 내포하고, 그 분야에서 일인자적 존재가 바로 이용남 교수이기에 스승의 깊은 애정을 담아 호를 수여하신다고 하신다. 여기서 '池'는 고인 물의 뜻이 아니라 저장과 변화와 생성의 뜻을 함축한 말, 즉 전지(電池)에서의 뜻과 같다고 설명하신다. 정말 적절한 발견(?)이자 뜻을 담아 주셨다고 생각한다. 이용남 교수님의 호는 '문헌정보계의 보고적 존재'라는 뜻을 담고 계시고, 정말 교수님의 살아오신 길과 앞으로의 활동에 딱 맞는 호라고 생각한다.
문집에는 축하그림과 사진, 글씨가 수록되어 있는데, 그림은 한성대 회화과 정종해 교수께서 '향원익청(香遠益淸)', 향기가 멀리서 나니 그 맑음이 더하다라는 뜻을 담았다. 표지에 이그림이 쓰였다. 축하사진은 대구가톨릭대학교 도서관학과 정해성 교수께서 '적(跡)'이란 제목의 갯벌을 찍은 사진을 보내주셨다. 살아온 흔적, 모든 생명을 담고 유구한 역사를 이어온 갯벌이 아마도 이용남 교수님의 자취와 겹쳐 사진에 눈길이 오래 간다.. 축하글씨는 오명섭 서예가께서 멋진 글귀를 써 주셨다. '부유불거 시이불거(夫唯不居 是以不去)'. 노자 도덕경 제2장에 있는 글로 '이룬 일에 머무르지 않기 때문에 그 공적은 사라지지 않는다'. 늘 자신의 작은 공도 크게 부풀리고 없는 것도 있는 것처럼 하면서 사는 것이 잘 하는 것인양, 그래야만 뭔가를 할 수 있는양, 그런 허위를 더 인정하는 우리들의 허위를 부끄럽게 하는 이용남 교수님께 딱 맞는 글귀다. 그런 점이 정말 이 시대 스승으로 존경할 만한 점이라고 생각한다.
이 문집은 두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제1부는 교수님을 추억하는 친지들과 교우들, 그리고 대학원과 학부 제자들의 글을 모았다. 제2부는 이용남 교수님의 생각과 주장을 모은 것이다. 그 중에서도 교수님이 직접 쓰신 '남기고 싶은 이야기들'은 우리가 잘 알지 못했던 마을문고 운동의 내면을 볼 수 있는 귀한 글이다. 사실 우리가 오늘날 이 자리에 있기까지는 지난 날들이 있어 가능했을텐데도, 자주 지난 날을 잊고 산다. 오늘날 우리 도서관계의 현실은 그에 대한 평가가 어떠한지를 차치하고, 지난 날, 특히 엄대섭 선생님과 함께 이용남 교수님이 이끌어 오신 마을문고에 빚진 바 크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제 그 때의 이야기를 아는 사람은 드물다. 그런 점에서 직접 그 시대, 그 현장의 중심이 계셨던 이용남 교수님이 직접 그 시절 이야기를 해 주시니 그 생생함에 놀랄 뿐이다. 이 문집에서 제2부 제1장 마을문고의 이야기는 꼭 읽어봐야 한다.
마을문고는 1980년대 들어서면서 우여곡절 끝에 10월 1일자로 새마을운동중앙본부의 회원단체로 통합되어 새마을문고로 지금까지 그 역사를 이어오고 있다. 새마을문고중앙회는 2001년 '새마을文庫運動40年史 : 1961-2000'을 펴낸 바 있다. 즉 1961년 시작된 마을문고 시절부터 새마을문고 역사로 보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 40년사 편찬에도 이용남 교수께서 편찬위원장으로 큰 역할을 하셨다. 공식적인 마을문고 역사는 이 책을 보아야 할 것이다. 그 책에서 이용남 교수는 편찬의 경과를 보고하는 글에서 "전국 수만 개소의 방대한 지역에 설치되었던 새마을문고는,바람직한 운영으로 소기의 성과를 거두었던 곳에서부터 허울뿐인 유명무실하였던 곳에 이르기까지, 그 숫자만큼이나 운영 수준은 천차만별이었으며, 운동추진 조직 역시 천고만신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러나 새마을문고의 역사에 있어서는 영광스러운 역사뿐만 아니라, 실패와 질고의 역사도 중요한 의미가 있다는 믿음입니다. 또한 독서운동.문화운동 등의 정신적인 사회운동에서는 '결과'만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성공이든 실패이든 간에 그러한 결과까지의 '과정'에서도 커다란 역사적 의미가 있으며, 어떤 면에서는 이러한 과정이 후세에 더욱 귀감이 된다는 자세로 역사를 인식하고자 하였습니다."라고 말씀하신다. 실패한 역사도 소중하게 인식하는 것이 바른 역사인식이다. 그 실패는 오늘과 내일의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을 수 있도록 하는데 있어 더욱 소중하다. 그런 점에서 마을문고 역사는 지금 이 시대, 소위 1980년대 도서원운동이나 1990년대 생활도서관 운동, 그리고 2000년 들어와 어린이도서관이나 작은도서관 운동 등 도서관 주변에서 본질을 향해 질문을 던지고 있는 도서관 운동들의 부침에 있어 그 의미를 되짚어 생각하는데 있어 매우 소중한 ㅇ겨사가 아닐 수 없다. 마을문고 운동은 단순히 마을에 작은 문고 하나씩을 설치하는 운동이 아니라 도서관운동 그 본령이었고, 장차는 공공도서관과 연계해서 공공도서관 서비스로 발전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는 점은 도서관에 대한 인식도 부족하고 실제 공공도서관도 많지 않았던 시대, 마을문고를 운영하시던 분들의 혜안이었다고 생각한다. 이용남 교수께서도 새마을문고로 편입되고 오래되지 않은 시점에 학교(한성대학교) 교수직으로 자리를 옮기시던 때의 기록에서운동현장을 떠나학교로 가는결정의 불가피성의 첫번째 이유로 "문고운동에 대한 정체성 문제에 대한 회의"를 들었다. "엄대섭 창설자나 나는 문고운동을 도서관운동의 일환으로 생각하여, 문고는 장차 공공도서관의 서비스포인트로 체계화하던가 분관으로 편입하는 것을 궁극의 이상으로 생각하여 왔다. 그러나 새마을운동은 농촌이나 지역사회중심의 공동체운동인 만큼, 이에 맞춘 문고운동은 도서관 귀신이 되고 싶은 나로선느 적응하기 어렵다"고 설명한다.(문집 273쪽) 이러한 인식은 지금 오늘날 소위 도서관운동을 한다는 사람들은 깊이 고민해야 할 지적이고 정체성에 대한 입장이라고 생각한다.
학계이든 현장이든 한 번의 고개를 넘어 다른 일상으로 접어드는 길에 이처럼 삶의 이야기를 잘 정리해 두는 것은 중요하다. 이용남 교수님 문집은 그런 점에서 소중하다. 참, 또 한 분의 자서전이 떠오른다. 이 교수님 문집 255쪽에도 언급되어 있는데. 이화여자대학교에서 은퇴하신 이봉순 교수님 자서전 '도서관할머니 이야기'가 그것이다. 이 책도 도서관 현장과 운동에 있어 소중한 이야기들을 담고 있다. 그런데 원래 이봉순 교수께서는 자서전을 쓸 생각이 없었는데, 마을문고 창설자이시자 한국도서관협회 사무국장을 역임하신 엄대섭 선생께서 자서선을 쓰시기를 강권하다시피 하셨다는 것이다. 자서전 책머리에 의하면 "교수님이 자서전을 쓰셔야 하는 것은 개인사적인 의미가 아니라, 우리나라 근대 도서관 발전과 문헌정보학 도입과정의 역사적 기록으로서 의미가 크다는 판단에서 권해드리는 것"이었고, 그래서 결국 귀중한 자서전이 발행되었다. 다시 그 책을 꺼내 볼 요량이다. 이렇듯 한 시대를 살고 그 자리를 비켜서시는 분들은 정말 개인사적인 이유와 함께 반드시 시대에 대한 책임과 책무(이렇게 불러도 좋을 것 같다)로라도 당신이 살았던 현장의 이야기를, 진솔하게 풀어 냄으로써 역사를 이어가는데 마지막 책임을 다해야 할 것이다. 물론 은퇴 이후에라도 언제든 그래야 할 것이다. 더 많은 자서전이나 문집을 기대해 본다..
'도서관 읽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도서관정보정책기획단, 2009년도 도서관 R&D 기술과제 발굴에 활용될 기술수요조사 (0) | 2008.10.04 |
---|---|
김해시, 책읽는도시김해 선포1주년 보고회 개최 (10월 6일) (0) | 2008.10.04 |
더 이상 도서관을 파괴하지 말아야.. 이라크 아르빌에 도서관을 선물하다 (0) | 2008.09.30 |
전문도서관 하나가 또 태어났다는 소식이 반갑다 (1) | 2008.09.30 |
민간부문 도서관 활동의 한 사례 : 농부네 텃밭도서관 (0) | 2008.09.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