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새통> 2008년 10월호에 지난 번실시한"금서"와 "악서"에 대한 설문조사 결과가 정리되어 기획특집으로 실렸다. 신종호 북새통 편집장은 기획특집을 여는 글을 이렇게 쓰고 있다.
모든 책은 잠재적인 금서라 할 수 있습니다. 특정한 시대, 특정한 종교, 특정한 지배 권력에 의해 ‘불온한 생각’을 전파한다는 이유로 서가에서 퇴출당할 운명에 처할 수도 있기 때문이죠. 인류가 존재하는 한 책의 운명은 언제든지 한 집단에 의해 지탄받고 외면당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금서의 역사는 인류 정신사의 진보와 관련된 ‘사상 투쟁’의 보편적 과정을 반영한다고 할 수 있지요. 진리란 절대적이지 않고, 선과 악의 기준도 상대적이기에 ‘절대적’인 금서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금서가 고전이 되어 다시 읽혀지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습니다. 한 시대를 지배하는 보편적 진리를 넘어서서 새로운 담론을 제시하는 책들은 당대 사람들에게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지요. 갈릴레이의 지동설이 그러한 대표적인 예이죠. 새로운 사상을 전파하는 책은 금서가 되기 쉽습니다. 지배층의 권력을 위협하기 때문이죠. ‘악서’도 사람들로부터 배척을 받습니다. 그러나 악서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명확하게 답을 내리지 못합니다. 개인적 취향과 정서가 크게 작용하기 때문이죠.
이번호 기획에서는 ‘금서와 악서’에 대한 설문조사를 했습니다. 가장 많이 읽은 금서, 대표적인 금서, 악서의 기준에 대한 내용을 중심으로 전문가 (이 달의 우수도서 선정위원) 27명, 출판 편집자 15명, 독자 150명을 상대로 온라인 설문조사를 실시했습니다.
모든 책은 잠재적인 금서라고 하는데 대체로 동의한다. 사실 모든 책은 잠재적이 아니라 그 실존 자체가 금서라고도 생각할 수 있다. 책이라고 하면 기본적으로 기존의 사상이나 질서, 방식 등에 대해 조사하고 분석하고 문제를 끄집어 내고 새로운 생각과 방식, 질서 등을 만들어 내는 것이 그 자체가 기존 체제에 대한 반대의 산물이라고 할 것이다. 그렇기에 기본적으로 늘 금지당할 개연성 속에서 책은 탄생하고 일생을 살아가는 것이리라. 지난 번 설문조사 때에는 나는 '금서'나 '악서'에 대해 질문하는 것이 조금은 막연하다고 생각해서 특별히 응답하지 않았다. 그래서 이번 조사결과를 보면서 내 생각과 비교해 볼 수 있어 나름 의미있었다.
가장 많은 전문가들은마광수 교수의 '즐거운 사라'를 읽었다고 했다고 한다. 지금 기억을 해 보면 정말 당시 이 책이 금서로 지정되었다는 소식을 어느날 아침 신문에서 보고는 바로 건물 1층에 있던 서점이 문을 열기를 기다려 가서 그 책을 샀었다.사실 금서라는 말은 판매금지 요청도서라고 해야 정확한데, 아무튼 경찰이나 검찰 등에서 문제를 삼으면 가장 먼저 서점에서 책이 사라졌다. 그래서 얼른 그 책을 사러 갔더니 딱 1권이 남아 있었고, 그래서 얼른 책을 샀었다. 사실 개인적으로는 나는 마광수 교수의 소설을 좋아하지는 않았는데, 일단 권력에 의해 읽기를 금지당한 소설에 대해서는 동지애(?)를 느꼈던 것 같다. 그래서 손에 넣은 그 소설을 읽어보았을 것이다. 마치 얼마 전 국방부에서 부대 내에서의 소지와 읽기를 금지당한 책들의 목록이 공개되자 마자 바로 불티나게 팔리던 현상이 그 당시에도 있었던 것 같다. <북새통> 기사에서도 보면 판매금지를 당하자 오히려 너도나도 구해보는 통에 오히려 '희귀본'이 되었다고 하는데, 그랬다. 그런데 아쉽게도 지금 내 서가에는 그 책이 없다. 1992년 판매금지를 당했는데, 16년이 지난 지금은 헌책방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책이 되었다. 그런 점에서 보면 사실 모든 책은 잠재적으로 금서이기도 하지만, 세월이 지나면 금서로서의 생동감(?)이 사라질 것이기에, 어찌보면 금서냐 악서냐 하는 그런 논쟁은 당대의 목적을 위한 의도된 행위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조정래의 『태백산맥』
사드 백작의 『소돔 120일』
장정일의 『내게 거짓말을 해봐』
로렌스의 『채털리 부인의 연인』
마르크스의 『자본론』과 『공산당 선언』
마키아벨리의 『군주론』
김지하의 담시 「오적」
박노해의 『노동의 새벽』
박지원의 『열하일기』
헨리 밀러의 『북회귀선』
샐린저의 『호밀밭의 파수꾼』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살만 루슈디의 『악마의 시』
조지 오웰의 『1984』
『정감록』
『해방 전후사의 인식』
이영희의 『전환시대의 논리』
『전태일 평전』
공자의 『논어』
『금병매』
『나쁜 사마리아인들』
『삼성왕국의 게릴라들』 등이 목록에 이름을 올렸다.
내가 생각하는 문제는 이러한 '금서'나 '악서'를 공공기관이 도서관에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이다. 사실상 역사 이래로 도서관은 늘 이런 문제에 직면해 때로는 권력에 승복하기도 하고, 때로는 반대하면서 늘 문제의 중심에서 오락가락 해 왔다. 문제는 과연 공공기관인 도서관에서 누가 이러한 책들의 소장과 이용을 결정하는가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비록 외부 권력에 의해 그와 같은 딱지가 붙었다고 하더라도 도서관은 도서관으로서의 존립목적과 운영방침, 방식 등에 따라 스스로 그 책의 거취를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사실상 우리 현실에서 그러한 것은 생각에서조차 존재하지 않았던 방식이다. 그러나 최근에는 사정이 많이 달라지기는 한 것 같다. 최근 지식과 정보를 둘러싼 다양한 문제들이 제기되는 상황에서 국제적으로도 이 문제, 즉 어떤 책을 검열하고 읽거나 읽지말아야 한다는 딱지를 붙이는 행위 그 자체에 대한 반대의 목소리는 점차 더 큰 힘을 얻고 있다. 그건 많은 나라에서 도서관이 공공기관이기에 그 존립목적인 이용자에게 서비스한다는 기본적인 가치와 입장에 근거해서, 즉 이용자의 입장에 근거해서 이러한 문제에 대해 판단을 하는 것 같다. 아직 우리는 그러한 수준에 이르지는 못한 것 같아 이러한 문제 또한 우리나라 도서관계의 과제이기도 하다. 앞으로 우리 도서관들도 이러한 문제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지고 무조건적으로 권력의 결정을 수용하는 것이 아니라 진정 이용자인 국민이나 시민, 학생들의 입장에서 과연 어떤 책을 도서관 장서에서 배제하거나 이용에 제한을 두는 것이 옳은 것인지를 판단하고 결정해야 할 것이다. 그래야만 이 시대, 왜 도서관이 필요한지에 대해 적절한 답변을 제공하는 것일 것이다. 어떤 특정한 책, 그것이 금서라는 이유로 도서관이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외부에서 어떻게 결정했든 무조건 수용하는 것이 아니라 도서관이 스스로 판단해서 어떤 결정을 내릴 수 있느냐 하는 주체적 역량 확보 또는 지식과 사상의 자유로운 광장이라는 도서관의 근본적인 가치를 확고하게 유지할 수 있느냐 하는 정체성의 문제라고 봐야 할 것이다. 그래야만 이 문제에 대해 정확한 입장 수립과 합리적 결정의 가능성이 생긴다. 아무튼 이번 <북새통>의 설문조사 결과는 또 한 번의 '생각해 보기'에 도움을 준다. 자세한 내용은 <북새통> 기사 원문을 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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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을 포함해서 앞부분 일부를 <북새통> 홈페이지에서 가져왔음.
금서(禁書)와 악서(惡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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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호 |2008-10-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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