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다가 보면 때로 너무 몸과 마음이 아프다.최근 한 권의 책을 읽는 동안 내내 그랬다. 오래 전 자식(전태일)을 먼저 저 세상으로 보낸 한 어머니(이소선)가 여든 삶을 이야기한 것을 풀어 쓴 책이다. 노동자의 어머니, 이소선 여사가 기억해 낸 우리 역사는 너무 아프다. 그런데 여전히 그 아픈 삶을 극복하지 못한 채, 여전히 우리는 사람에 대해 예의를 제대로 지키지 못하고 있다. 그런 상황에서 이소선 여사는 "누군들 미쳐 살 만큼 힘들지 않겠는가. 그래도 함께한 사람들이 있다. 고맙다는 말, 다 못하고 헤어지고 떠나보낸 사람들이 너무 많다. 그들 모두가 내 인생의 주인공들이다. 고맙다. 지겹도록 고맙고 또 고맙다. 그립다, 보고싶다."(14쪽)라고 말한다. 결코 쉽지 않았던 삶을, 지금도 결코 쉽지 않은 삶을 살아가고 있는 한 여인이 살아온 여든 해 삶은 책 속에서서 펄펄 살아난다. 결코 활자에 갇힐 수 없는 그런 삶이기에, 그 목소리는 여전히 강하다. 그러나 한 편으로 함께한 사람들에게, 아니 만나본 적도 없지만, 그래도 같은 시대를 살아온 숱한 사람들에게 지겹도록 고맙다고 하는 말에서 위로를 받는다. 나 혼자 잘해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한다. 내가 모르는 사람들이 지금 내 하루하루 생활을 지탱해 준다. 그 얼굴도 모르는 분들에게 나도 고마움을 전할 수 있어야 하리라.
요즘 내가맡은 일은 업무로 건물을 하나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함께 할 집.. 그건 꼭 필요하겠지. 정말 될 수만 있다면 얼른 좋은 집 하나 가지면 좋겠다. 그러나 그러려면 몸과 마음으로 정성을 다하고, 발로 뛰어다녀야 한다. 이소선 여사도 집을 만들었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대목에서 나도 그런 바람을 슬며시 꺼내본다. "이제 바라는 게 있다면 저기 청계노조가 뭐로 바뀌었냐. 아무튼 청계노조 사무실이랑 여기 기념사업회 집이랑 다 함께 모아서 집을 하나 만들었으면 해. 어디 돈 받거나 남들한데 돈 모으지 말고, 우리 것 팔아서 자료실도 만들고 기념관도 만들고 사무실도 쓰고 할 수 있는 집 말이다. 내가 없어도 사라지지 않게 집을 만들어서 노동자들이 와서 쉴 수도 있고 잘 수도 있는 야무지고 단단한 노동자의 집."(284쪽) 이 대목에서 나는 부끄럽다. 노동자들 집을 만들어야 한다고 하면서, '남의 돈 받지 말고 우리 것팔아서' 집을 만들어야 한다는 말에서.. 지금 나는 도서관 사람들을 위한 집을 만들어야 한다고 하면서, 내 것을 팔아서 할 생각을 하고 있는지, 돌아보니.. 할 말이 없다. 앞으로 나는 내게 주어진 일을 어떻게 잘 해 낼 수 있을까.. 나는 가진 것이 얼마나 되지? 그걸 팔면 도서관 사람들이 함께 모여 밥도 먹고, 이야기도 나누고, 때로 우리 앞에 선 장벽을 부수고 넘어설 의지를 다지고, 힘찬 출발도 함께 할 수 있는 그런 우리만의 공간, 우리가 스스로 자유로울 수 있는 공간, 우리가 영원히 힘을 얻을 수 있는 지구 중심 그 알 수 없는 뜨거움이 가득한 그런 우리만의 집을 가질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될까...
이 책을 읽는 동안 어느 곳에도 줄을 그을 수가 없었다. 책을 읽다가 그냥 덮기도 했다. 잠시 숨을 쉬지 않고서는 더 앞으로 나아가기가 어려웠다. 그렇게 띄엄띄엄 읽었다. 책을 덮고서도 책을 시작한 것 같지도 않다. 그저 제목만 만지작 거린다. "지겹도록 고마운 사람들아". 나도 그 마음을 배우고 싶다.
참, 책을 읽다보니 이소선 여사는 1977년 여름 구속되어 1년을 수원교도소에 수감되었었다고 한다. 1978년 8월 24일 교도소를 나왔다고 하는데.. 나는 그 날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여름방학이었을 것이고, 그래서 그저 놀고 있었을까? 기억이 가물하다. 그래서 더 스스로에게 안타깝다.
오도엽 씀. <지겹도록 고마운 사람들아: 이소선, 여든의 기억>, 후마니타스, 2008.12. 12,000원.
저자는 이소선 여사와 꼬박 두 해를 같이 지내면서 이야기를 듣고 받아적었다고 한다. 이미 이렇게 사람들 이야기를 끄집어 내고 받아 적으면서 사회적 기억을 만들어 가고 있다고 한다.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저자 이외에도 공식적으로도 여러 부문에서 이렇게 사람들 이야기를 통해 지난 날을 잊지 않고 기록해 가는 일들이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이처럼 보통사람, 아니 세상에서 애써 잊혀지기를 강요받았던 사람들 이야기를 역사의 전면으로 끌어내는 일은 여전히 어렵다. 그럼에도 이러한 작업을 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에 위안을 받는다. "그동안 나는 '인간의 역사란 망각에 저항하는 기억의 투쟁'이라는 생각으로 구술 작업에 매달려 왔다.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기억은 다소 꾸며지는 경우가 있다. 심지어 역사의 중심에 자신만 있는 것처럼 기록자에게 불러 주기도 하고, 스스로를 신화적인 존재로 묘사할 때도 있다."(13쪽)고 저자는 책에서 말하고 있다. 그런 한계를 넘어서기 위해 기록자는 많은 고통 속에서 이야기를 듣고 기록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 저자의 노고가 책 속에 녹아 있다. 그 노고로 내가 한 번도 만나뵌 적이 없는 이소선 여사의 여든 기억을 함께 나눌 수 있고, 그런 중에 내 삶과의 연결지점을 찾아보면서, 내 삶을 돌아보게 되기도 한다. 이 책을 통해 나도 살아왔던 1970년대 이후 나도 살던 그 시절에 또 어떤 삶이 있었는지를 좀 더 제대로 알게 되었다. 그래서 이 책이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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