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문화를 즐기자

청주고인쇄박물관을 관람하다

6월 10일, 아침에도 여전히 비가 내렸다. 오시는 비야 어쩌랴만은, 마음은 무겁다. 세상은 늘 앞으로만 가는 줄 알았던 때도 있었지만, 이제는 세상은 내가 애써 앞으로 밀고 가지 않으면 언제든 제자리 돌기를 하거나 아니면 아예 뒷걸음 친다는 것을 아는 나이가 되었다. 그런 깨달음이 슬피다. 늘 세상을 '모든' 사람과 같이 사는 세상이 아니라, 서로 차별하고, 그런 것들이 마치 어쩔 수 없는 것처럼 만들어 가고자 하는 힘도 분명 존재한다는 것을 다시 확인하는 요즘. 그래서 그런가 6월 10일 내리는 비는 더 무겁다. 일이 있어 청주시를 찾아가는 길, 이른 아침 버스를 타고 길을 나섰다. 비에 젖은 차창 너머로 보이는 들녘은 사람들의 거친 갈등은 아랑곳 없이 이제 새 생명이 잘 뿌리내리기를 기도하고 있다. 모내기가 끝난 들판은 너무 싱그럽다. 무거운 빗줄기도 여린 벼 위에서는 가볍게 춤을 추며 사쁜 내려앉는다.. 아, 세상이 이렇게만 희망 찰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청주시는 예전에 기적의 도서관 일이나 때마침 시작된 '한 책 읽기' 운동과 관련해서 종종 갔던 곳인데, 최근에는 가 본 지가 꽤 되었다. 다시 가니 그래도그 모습이 어제 본 것처럼반갑다. 그런데 내가 청주를 꽤 여러 번 갔었는데도, 생각해 보니 고인쇄박물관을 들어가 본 적이 없었다. 앗, 이런... 마침 예정된 일정까지 시간이 좀 남아서 청주대학교 앞에서 버스를 내리자마자 바로 박물관으로 갔다. 멀지 않은 곳에 있어 금방 도착. 이른 아침 시간이라 관람객은 없었다. 한적한 관람... 너무 조용하다. 세계 최초 금속활자본인 '직지'의 고장이라고, 그래서 이 박물관을 만들고 직지를 알리기 위해, 우리나라의 찬란했던 인쇄문화를 보여주기 위해 만들었을 이 박물관.. 뭐 세계 최초, 세계 최대라는 것에 자랑은 많이 하지만, 정작 그것이 오늘날 우리 삶 속에서도 살아 움직이게 하는 노력과 마음은 부족한 것 아닐까? 세계 최초 금속활자를 만들어 책을 찍은 나라라고 자랑하는, 인쇄에 있어서는 찬란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고 하지만, 지금 우리나라 인쇄산업과 출판 문화는 어떠한가? 선조들이 책을 찍어 뭘 하고자 했을까? 학문을 발전시키고 인성과 지혜를 널리 알리기 위함이 아니었을까? 그러나 지금은 어떠한가? 나라 세워진 이래 가장 어렵다는 출판산업.. 경제적으로는 세계를 선도한다고 하면서OECD까지 가입한 지 꽤 되었지만, 독서를 비롯한 정신문화나 시민의식은 여전히 스스로 문제를 제기하고 있지 않은가.. 선조가 남긴 찬란한 역사는 그저 박물관 전시물이 아닐진데, 왜 우리는 오늘날 그런 선조들의 위대한 노력을 이어가는 것에는 큰 관심을 가지지 않는 것일까? 먹고 살기 힘들었던 근대 역사 때문이었을까? 모든 것을 그저 잘 먹고(텔레비전에서 먹는 프로그램이 이렇게 많은 나라가 세상 또 있을까?)집 한 채 가지는 것에 모든 것을 걸고 사는 것이어야만 할까? 의식주의 해결은 기본이기 때문에 당연히 모든 사람에게 최소한의 의식주는 제공되어야 한다. 물론 지금 우리는 그런 기본조건조차 가지지 못한 사람들이 있으니, 그런 것을 먼저 해결해야 한다. 그러나 그것으로만 끝나면 안될 것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다시금 한 사회를 구성하는 여러 조건, 서로 상충되기도 한 다양한 관점들 속에서 서로를 이해하고 조정하고, 그러면서 다양성을 인정하고 사람들이 서로 생각과 조건, 태도가 달라도 최대한 이해하고 인정하면서, 천천히 걷는 그런 사회를 만들어야 할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조용한 박물관을 둘러 보았다. 세계에서 처음으로 금속활자를 만들었고, 그것으로 가장 먼저 책을 찍은 나라.. 그런 자긍심을 가지고 둘러보았다. 그러나, 뭔가 좀 허전하다. 그건 아마도 지금과 중첩되면서 나타나는 아득한 간극 때문일까? 과거는 박제되어 박물관에만 있는 볼거리 정도여서는 안될 것인데.. 그래도 요즘 청주시가 도서관을 꽤 많이 확충하고 독서진흥을 위해 한 책 읽기 등에 노력하고 있는 점은 그나마 위안이 된다. 또 벌써 3회 째인가.. 일반 시민들이 책을 한 권씩은 쓰도록 하고자 하는 캠페인과 지원은 새롭다. 그 모든 것이 '직지'에 대한 애정에서 출발한 것이라고 할 때, 사실 이런 노력은 마땅히 청주에서 해야 할 것이겠지. 그러나 이런 노력이 청주에서 나라 곳곳으로 번져 나갔으면 좋겠다. 청주시가 활자와 인쇄, 독서 문화 증진에 얼마나 노력하고 있는지 더 많이 알려지고, 실제 우리나라 문화, 특히 정신문화 발전에 큰 기여를 하기를 기대해 본다..

* 청주고인쇄박물관 홈페이지 바로가기

* 박물관 마당 우측에 있는 흥덕사지비.. 낯익은 이름이 보인다.

* 청주고인쇄박물관 정면.. 두루 편안한 모양새.

* 박물관에 들어서면 바로 보이는 장면. 직지가 밝게 빛나고 있다.

* 직지 인증서와 동판... 세계기록유산으로 2001년 등재되었다.

* 박물관의 중심부.. 흥덕사에서 금속활자를 만드는 과정이 재현되어 있다. 각 장면마다 시작 버튼을 누르면 인형이 작동하고 설명이 나온다. 약간 재미있다..

* 문자 이야기를 설명하는 곳에 있는 귀여운 모형.. 고대인들이 암벽에 그림을 그리고 있다... 그 그림 내용은 다른 벽면에 크게 그려져 있다.. 시대를 거슬러, 사람의 마음은 비슷한가 보다..



* 세계 인쇄문화 연표... 이런 것들이 좀 더 다양한 방식으로 사람들에게 인지되면 좋겠다.

* 프랑스국립도서관에 있던 '직지'의 존재를 처음으로 알려 세상으로 끄집어 낸 박병선 박사의 명예시민증과 훈장도 전시되고 있다. 한 사람의 노력이 세상을 조금은 바꿀 수 있다는 좋은 증거다. 자신 밖에 할 수 없는 일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될 때, 정말 그것을 실천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박 박사에게 존경을 보내 마땅하다.

* 조선시대 인쇄규정을 읽다가 숙연해 졌다. 인쇄를 할 때 실수를 하면 그에 따른 체별이 있다고 하니.. 글쎄 실제 그런 체벌이 있었을까 모르겠지만, 그 만큼 책을 만드는 관원은 성심을 다해 절대 실수하지 않아야 한다는 강력한 사명감? 아니면 그렇게 하도록 하기 위한 사전 조치? 아무튼, 나도 책을 만들면서 적지 않은 오탈자는 물론, 내용까지도 고민되는데..조선시대였다면 나는 아마도 책은 고사하고, 몇 쪽 만들지도 못하고 쫓겨났을 것 같다...


* 특별전시로 '옛책이 들려주는 효 이야기'가 조그맣게 열리고 있었다. 효는 중요하지만, 지금까지 너무 일방적으로 강요된 측면도 없지 않다. 효는 가정 안에서 온통 마음으로, 성심으로 보여지는 것을 통해 자연스럽게 배우고 몸과 마음에 스며야 하는 것 아닐까?

* 박물관 옆에 흥덕사 금당이 있다. 다른 건물들은 그 자리를 알리는 표지판만으로 남아 있다. 금속활자로 직지를 찍은 곳.. 그저 금당 하나와 탑 하나가 지금 '직지'의 상황을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