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가 후기에 쓴 말을 보고, 웃었다.. "저는 재작년에 '분류하는 기술이 일을 바꾼다!'(니혼지쓰교슛판)라는 분류에 관한 책을 펴냈습니다. 분류 노하우를 어떻게 하면 일에 살릴지 해설한 실용서입니다. 그래선지 집안도 정리하고 사는 줄 오해하는 경우가 더러 있는데 제 작업실은 아주 어지럽습니다. 책과 자료정리에는 젬병입니다. 그저 분류에 관해 생각하기를 좋아할 뿐입니다."... 나는 직업이 사서이지만, 그래서 책을 분류하고 목록하는 것을 배우고 때로는 그것을 직업으로 삼기도 했는데, 사실 저도 집이건 사무실이건 제대로 정리를 하지 못하고 살고 있다.. 분류하는 것에 대해 책까지 쓴 사람도 정리에 젬병이라니 다행이다..
<지식의 분류사>는 분류라는 관점에서 인류의 '지'가 어떤 역사를 거쳐왔는지를 살펴본 책이다. 분류에 대해 배운 것들이 가물가물한데, 이 책은 아주 간결하게 '지'의 역사를 설명하고 있어 다시금 새롭게 읽었다. 저자(구가 가쓰토시)가 이 책을 쓰게 된 계기가 이와나미문고의 <백과전서>를 읽다가 만난 달랑베르의 '인간지식 계통도'(이 계통도는 이 책 93-97쪽에 거쳐 수록되어 있다) 때문이라고 한다. 장장 일곱쪽에 이르는 계통도를 보고 흥미진진했다고 한다. (나는 그런 점에서 그 계통도를 봐도 저자만큼 흥분되지는 않으니 이런 책을 쓸 생각도 못하는 것이리라....) 이 계통도를 보고 인류는 과연 어떻게 새로운 지식 체계를 구축해 왔는지를 탐구하게 되었고, 그 결과가 이 책이다. 이 책에는 박물학, 백과사전, 도서분류법등 3가지 영역으로 나누어 '지의 체계'를 살벼보았다. 나는 도서분류를 다룬 제4장이 좀 더 쉬웠지만, 그래도 상식적으로 알아왔던 박물학이나 백과사전에 대해서도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기회를 가졌다. 사실 분류하는 것은 그 대상을 정확하게 알고, 유사한 것들을 묶어가면서 뚜렷한 체계를 만드는 작업이다. 그래서 누구나 분류를 하지만, 또 그 누구도 제대로 하기 어려운 것이 분류다. 저자도 책 끝마무리에서 분류를 통해 사고 훈련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말하면서, 분류는 어디까지나 자의에 의하기 때문에, 두 가지, 세 가지 등으로 분할하는 것이 어렵기는 하지만 반드시 할 수 있는 방법은 있다고 말한다. 전적으로 동의한다. 누구든지 할 수 있는 일이 아마도 가장 어려운 일이 아닐까.. 그런 점에서 분류하기는 도서관에서 가장 중요한 작업 중 하나인데, 요즘은 이 일에 대해서 별로 관심을 두지 않는 것 같아 걱정스럽다.
지식의 체계를 보면 그 시대를 알 수 있다고 한 저자의 지적 또한 동의한다. 사실 예전에는 백과사전으로 그 시대를 종합적으로 볼 수 있었다. 백과사전의 체계를 통해 그 시대가 세상을 바라보는, 그 시대의 지식의 대강을 알 수 있었다. 그런데 지금 시대는 백과사전이 없어도 되는 시대이다. 잘 편집된 백과사전이 없어도 살아가는데, 알고 싶은 것을 아는데 불편이 없는 시대가 되었다. 그래서 저자도 지적하듯이 '더는 누구도 지식을 분류하려 하지 않게 됐다. 어디서도 지의 체계를 보기가 힘들어졌다. 그럼 현대에서는 분류가 필요 없어졌을까?"라는 질문은 내게도 진하게 다가온다. 정말 세상 살면서 분류를 할 필요가 없는 것일까? 그러나 사실 분류하지 않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해도 되지 않을까? 그 어떤 것의 존재를 정확하게 말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존재하는 것일까? 인터넷을 이용하면 무엇이든지 찾을 수 있고, 알 수 있다. 그래서 우리가 사물을 분류하는 것을 하지 않아도 되는 것 같지만, 가만히 살펴보면 무질서하게라도 분류되어 있다. 태깅도 분류하기의 하나이다. 사물에 이름을 붙이는 것도 분류의 결과이지 않을까.. 그렇게 보면 우리는 단 한 순간도 분류를 하지 않는 때가 없는데도, 체계화하지 않은 분류라서 분류가 없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제대로 분류의 체계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 각자가 삶을살아가는 자기 현장에서 자기의 '지'의 체계를 세우려는 노력을 통해서 다양한 분류 방법들이 고안되고, 그것들이 서로 융합하면서 한 시대를 드러내는 '지'의 체계를 만들어 갈 수 있다면, 더 체계적인 '지'의 활용이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 책은 간결하면서도 분류라는 활동을 중심에 두고, 긴 인류 역사를 되짚어보고,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데 있어 필요한 분류의 가능성을 설득력있게 제시하고 있다. 사서인 나도 흥미롭게, 재미있게 읽었다.
일본 저자의 책을 번역한 것이라서 우리나라의 내용은 없는 점은 책을 읽는 사람들이 보완해야 할 부분이다. 또 한 가지.. 책 뒤에 수록된 '참고문헌'을 보니까 모두 일본어로 된 책들 뿐이다. 다른 나라의 다양한 책들, 박물지 등도 일본어로 번역되어 있어 저자는 일본어로 된 책만을 가지고도 이런 책을 쓸 수 있었는가 보다..다른 언어로 쓰여진 풍부한 지식을 자국어로 번역해서 누구든지 읽을 수 있도록 하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는 생각을 다시 해 본다..
구가 가쓰토시 지음, 김성민 옮김,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2009.
978-89-89420-63-7 / 1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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