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길에, 오랜만에, 시를 읽다. 복잡한 출근길 지하철 속에서 시를 읽으면, 더 멋있어 보일 것 같아서, 거의 잊고 있었는데, 오늘은 우선 일 때문에 안동에 가서 시인을 만나뵈야 하고, 그래서 그 시인의 시를 읽었다. 안상학 시인. 안동에서 태어나 지금도 그곳에 살고 계시는가 보다. 울진에서 행사가 있는데, 우선 안동에 가서 시인을 만나 같이 가기로 한 것이다. 처음에는 가볍게 시작했는데, 조금씩, 가슴이 묵직해 진다. 아배가 계시지 않는 상황에서, 또 보고 싶은 사람들이 하나같이 곁에 없는 상황에서, 부재로부터 오는 막막함.. 답답함이 내게 밀려든다. 누구에게나 그런 상황이 닥쳐 올테고, 왔을테고, 그런 상황이 역시 막막하거나 답답할텐데, 시인은 그런 속에서 아득바득 그들을 시로 빚어 내다버렸다. 나는? 나는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 그저 잠시 술을 마시거나 울었고, 곧바로, 그래도 살아야기 하면서 애써 잊고 일상에 빠져 살고 있는데, 그것이 시인과 나의 차이일까... 그래서 내가 시를 읽어야 하는 것이리라. 오늘 나도 아배가 생각났다. 그러나 나는 한 줄도 아배를 시로 만들어 내지 못하니..
시를 읽어도 평을 할 능력은 없다. 그냥 읽고 마음으로 느끼고, 몸과 기억에 그 느낌을 새겨둘 뿐... 이 시집에는 홍용희 문학평론가가 해설을 썼다. 그 끝을 잠깐 인용한다.
"안상학의 이번 시집 '아배 생각'은 인간 삶의 원상과 그 예의를 특유의 순백한 화법을 통해 그려 보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아버지에 대한 불화, 갈등, 부정, 전복 등의 정서들이 다채로운 이미지를 통해 변주되고 확산된느 근자의 시적 유행과 달리, "아배"에 대한 동정과 그리움을 노래하는 그의 시편들은 분명 너무도 낯익고 평이한 고전적 정전처럼 느껴지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점이 또한 독자들을 가장 친숙하고 평안하게 하는 영원한 가치의 구현 양식이기도 하다. 노자가 <도덕경>에서 어수구하게 다스리면 백성이 순해진다고(其政憫憫 其政淳淳) 강조한 바처럼, 우리는 안상학의 꾸밈없이 순저한 시적 미감을 따라가면 어느새 스스로 순해지고 편안해지는 것을 느끼게 된다. 유가의 전통을 호흡하며 살아온 안동의 시인 안상학이 신산고초의 세월을 겪으면서 도달한 질박의 시학의 한 경지이다."
순해진다.. 질박한 삶에 대한 동경.. 아직도 도시에서 헤메이는 나 같은 사람에게도, 안동이라는 유가의 전통이 없는 이런 도시 속에서 태어나 살아가는 사람에게도 그런 질박함이 있는 것일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를 읽으니까 어디에 숨어 있었던 것일까? 작은 울림이 일어나는 것을 보니까 나에게도 어떤 그런 전통이 어딘가에 새겨져 있는 것일까? 아니면 '아배'라는 공통으로 가진 역사적 뿌리에서 오는 어떤 동질의 느낌일까? 글쎄... 그런 것들을 따지기 전에, 시가 혀에 딱 달라붙는다. 오늘 안동가는 길이 무척 설레인다. 그런데 나도 시를 쓸 수 있을까? 글쎄다..
안상학 시집, 아배 생각 (애시시선 020), 애지, 2008.
ISBN 978-89-92219-14-3
5월 18일에 초판 1쇄를 찍었는데, 4달 정도 지난 9월 30일에 4쇄를 발행한 것으로 되어 있다.
그리고 이 시집은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선정한 '2008 우수문학도서'의 하나이다.
'책 소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진보의 미래>를 만나다. 출판기념회도 열린다(12/16) (0) | 2009.12.12 |
---|---|
아무도 남을 돌보지 마라 - 인문학의 눈으로 본 신자유주의의 맨 얼굴 (10/29) (0) | 2009.10.19 |
노무현 대통령 책 3권... (0) | 2009.10.10 |
와우북페스티벌에서 만난 책들... (0) | 2009.09.27 |
<수공의 힘> - 최명희문학관 (0) | 2009.09.27 |